'Interesting things/To Become CEO'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12.24 실패에서 배워야 하는데.. 계속 실패하는 이유가?
  2. 2013.12.18 내가 만난 사람 - 웹케시 윤완수 대표님..
  3. 2013.04.04 [Peopl-Ism]과기부 2차관 윤종록 - 준비와 운.. 그리고 사람.
  4. 2013.01.02 애플 거품 붕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5. 2012.12.31 [혁신 기업 사례 - 사회적기업]보청기회사 - 딜라이트
  6. 2012.11.09 비즈니스 세계의 냉정함 -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런데 그게 비즈니스다. (2)
  7. 2012.08.23 삼성전자, 박사 5000명 시대 … 10년 새 4배 이상 늘어
  8. 2012.08.10 스포츠 마케팅 - LG는왜?
  9. 2012.07.26 LG전자 퇴직률, 삼성전자의 2배
  10. 2012.07.21 서남표 KAIST 총장 “자진사퇴하라지만 해임당하는 것이 카이스트를 위하는 길'
  11. 2012.07.13 내가 만들고 싶은 회사 모델 : 제니퍼 소프트
  12. 2012.06.13 나쁜 사장 vs. 더 나쁜 사장
  13. 2012.04.23 '전 국민 소득 6분의 1' 상위 1% 수입보니 from 중앙일보
  14. 2012.01.25 하시모토 토오루.. 그를 통해 일본의 현실을 보다.
  15. 2011.12.18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열풍…구글ㆍ페이스북 창업한 `플러그&플레이` 입주경쟁 from MK
  16. 2011.10.19 카카오톡 만든 이 남자 "악착같이 살지마" 의외의 조언 - 그대로 믿지마.. 제발
  17. 2011.03.25 안철수 - "다시 부는 세계적 IT붐…한국만 쏙 빠져" from Hani.com (3)
  18. 2010.02.11 [스크랩] 구본무 회장 "원천기술 위한 R&D 50년이 걸려도 해야" from MK

서비스와 비즈니스 실패는 기업 경영에서 상존한다.

어떤 회사도 실패가 없이 성공만을 한다는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히려 실패를 잘 하는게..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SK는 그런점에서.. 참 재미있는 기업집단이다.

SK텔레콤과 같은 최고, 최상의 브랜드와 서비스를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만하면.. 실패하기에 바쁘니..

벤처 정신이 부족한 대기업집단에서 어설픈 흉내 내려다가 망가지는건 아닐까.. 사실.. SKT같이 캐쉬카우가 분명한 비즈니스에서는 벤처정신을 찾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글로벌 경쟁의 한가운데 있는 IT회사의 애플의 스티브 잡스조차 "Stay Hungry"하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국내 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는 독과점 기업인 SKT가 Hungry할순 없지 않은가..

여하튼.. SK텔레콤은 자신들이 가진 인프라 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거나 M&A를 시도했다. 2002년 6월 라이코스 인수는 네이트닷컴 탄생의 발판이 되었으나, 끝내는 라이코스도 철수하게 되었고, 2003년 인수한 싸이월드는 한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인 SNS서비스였음에도 2013년 다시 벤처로 돌아갈 신세가 되었다.  벤처 정신이 부족한 대기업집단의 한계는 여러 서비스에서 여실히 들어난다. 

네이트닷컴이 2005년에 야심차게 진행했떤 블로그 서비스 '통(Tong)'과 게시판서비스 ‘톡톡’ 등은 사용에게서 잊혀졌다. :미니채널'을 오픈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검색엔진 써치플러스의 실패는 SK의 인터넷 서비스 전반의 위상을 끌어내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로 인해 2006년에 엠파스조차 인수했으나, 그 끝은 네이트의 종료로 마무리되고 있다.

최근 SK플레닛의 서비스 매각과 종료는 더욱 Hungry할 수 없는 SK를 보여준다. T스토어는 카카오톡에 팔고, "멜론"서비스로 유명한 로엠도 지분을 처분했다. SK플래닛은 현재 T맵(T map)이라는 위치기반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 마켓인 티스토어, 커머스 분야인 11번가, N스크린 서비스 Hoppin과 IPTV와 같은 뉴미디어 등 다양한 플랫폼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개방형 IT플랫폼을 지향하는 것 처럼 보이다. 

아마도, SK텔레콤을 뛰어넘는다는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사고 일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사업이나 모바일 사업은 될수가 없다.

SK컴즈가 몰락하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온라인/모바일 벤처의 역순환을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어떤 서비스가 되었던.. 대기업 이니셜이 붙으면 현실에 안주하거나 고만고만한 서비스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망한 벤처기업을 M&A하는 회사들이 인터넷 재벌인 네이버 혹은 그 방계회사(카카오 같은)밖에 없다는 것도 또다른 대기업 이니셜이 될까 두렵기까지 하다.

벤쳐로 돌아가는 싸이월드가 10년전 그 놀라움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팬으로서.. 건승을 기원해 본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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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진 기자 ] "지난해 말 구조조정 때에는 살아남으면 SK플래닛과 합병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연차가 낮은 대부분 직원들은 퇴직금을 계산해보고 있어요."

최근 재창업 수준의 사업 구조조정을 발표한 SK컴즈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이 한 말이다. 

SK컴즈는 대표 서비스인 싸이월드와 싸이메라 조직을 분사하고, 네이트 검색을 사실상 종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플래닛과 합병설이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마저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4일 SK컴즈에 따르면 SK컴즈는 전날 오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싸이월드를 종업원지주회사(EBO) 방식으로 분사하는 안을 밝혔다. 김동운 현 SK컴즈 태스크포스(TF)장이 일부 금액을 출자해 싸이월드의 사령탑을 맡고, 내년 1월 벤처회사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이다.

SK컴즈는 2011년에만 해도 SKT그룹 내 인터넷 컨텐츠 핵심 사업자로 부각됐다. 2011년 10월 SKT그룹은 인터넷 컨텐츠 사업 육성을 위해 SK플래닛을 물적 분할했고, SK컴즈의 최대주주는 SK텔레콤에서 SK플래닛으로 변경됐다. SK컴즈의 최대주주는 SK플래닛(64.54%), SK플래닛은 SK텔레콤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구조다.

당시에는 SK플래닛의 대표 서비스 중 하나인 11번가와 T스토어, T맵, SK컴즈의 싸이월드, 네이트 등 플랫폼 사업의 통합이 점쳐졌다. 특히 SK컴즈가 보유한 회원 정보와 트래픽이 사업 기반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SK컴즈는 2011년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영업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모바일 시대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면서 영향력이 축소되고, 싸이월드의 매출 하락세는 지속됐다. 

결국 SK컴즈는 지난해 말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300명의 희망퇴직을 받았고, 150여명의 그룹 내 이동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했다. SK컴즈는 약 1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SK플래닛은 이상한 행보를 보였다. SK플래닛은 지난 10월, 하나의 아이디로 자회사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원 아이디(One ID)'에서 네이트와 싸이월드를 제외키로 했다. 지분을 매각한 멜론(로엔엔터테인먼트)을 '원 아이디'에서 빼면서 함께 이뤄진 조치다.

SK플래닛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인 SK컴즈 주식을 100% 사들이거나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하면서 SK컴즈 매각설이 불거졌다. 현재 SK컴즈 주식 처분은 2년 유예된 상태다. 

SK컴즈는 "SK플래닛에 합병 관련 여부를 확인한 결과, 검토된 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SK텔레콤 또한 지난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손잡고 상품·서비스 강화와 신규 개발을 위한 포괄적 제휴를 체결했다. SK컴즈가 아닌 다음과 손잡고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에는 포털 1위 업체인 네이버와도 차세대 사업 발굴을 목표로 제휴를 체결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SK플래닛도 뚜렷한 수익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어 SK컴즈와의 합병은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며 "싸이월드는 서버 유지비용도 안나오는 상태로 알려지고 있는데 SK그룹 타이틀을 갖고 문을 닫기 어려우니 벤처로 되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시대로 전환하면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고 있는 업체가 드물고, 앞으로 SK컴즈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도 "이번 SK컴즈 사태는 SK 그룹 경영의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지난 2013년 11월 27일 "[SSK Seminar] Changing Frame of Business"에서 웹케시 윤대표님을 만났다.

웹케시의 고민은 한국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의 고민일수 밖에 없고, 한국적 현실에서 치열한 생존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수 있게 해주었다.

B2B 시장에서 장기적인 성장을 고민하는 윤대표님에게 소프트웨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꼭 성공적인 결과가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꼭 성공하셔서 1000억대 중견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수백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공화.

윤완수 웹케시 대표, “비즈니스 SW 도전장내년 유통플랫폼 출시”

■ SW가 미래다-금융권 IT 선두 `웹케시`

"웹케시는 이제 소프트웨어 `제조'에서 소프트웨어 `유통'회사로 거듭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24일 서울 가산동 웹케시 본사에서 만난 윤완수 웹케시 대표는 "웹케시가 처음에 금융IT회사로 첫 발을 내딛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자금관리 SW 제조 회사로 도약한 후 이제는 SW와 콘텐츠를 유통하는 비즈니스 SW회사로 거듭날 때"라며 "웹케시가 마련한 유통 플랫폼 아래에서 콘텐츠를 공급하는 SW유통회사로 변신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웹케시가 SW유통회사로 변신을 준비한 건 2010년부터다. 당시 웹케시는 두가지 고민거리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회사 설립 초기 주력사업이었던 금융시스템통합(SI)사업의 수익이 떨어지자 2000년대 중반 자금관리시스템 등 SW를 직접 만들어 판매에 나섰지만 이 역시 성장 한계에 달했던 것.

또 하나는 2009년 후반 아이폰의 등장 이후 촉발된 스마트 환경이었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의 등장과 이용 확산은 더이상 직접 찾아가서 IT시스템을 설치해주는 종전의 사업 모델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프트웨어로서의 서비스(SaaS) 등 시대에 맞는 사업과 서비스 모델이 필요했다.

이 두가지 고민 속에서 웹케시는 새로운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과 이 플랫폼 위에서 다양한 기업용 SW를 판매하는 창구를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나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윤 대표는 "웹케시가 1000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국내 시장 한계에 부딪히면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앱스토어가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에게 정착됐던 것처럼, 웹케시의 플랫폼도 SW를 판매, 구매하는 기업들에게 좋은 유통 창구가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웹케시는 2010년 이 사업을 구상했고, 그동안 여러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모델을 정립했다. 기존 구글 앱스, 네이버 웍스 등과 비슷한 모델이지만 이들 기업이 개인용과 기업용 오피스에 초점을 맞춘 반면, 웹케시는 철저히 기업시장을 공략하고 기업이 원하는 다양한 SW를 유통할 수 있는 창구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본격적인 시작은 내년 초 유통 플랫폼인 `비즈플레이(가칭)'가 시장에 선을 보이는 시점이다. 그리고 이 유통 플랫폼을 웹케시의 또다른 사업 모델로 정착시키고 앞으로 글로벌 시장까지 진출하는 포석으로 만들 방침이다.

그는 "이미 지난 3년간 준비한 사업이고,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부터 본격적인 이윤이 창출될 것"이라며 "1차 목표는 국내 시장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끄는 플랫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dubs45@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요즘 과기계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윤종록은 누구?


윤종록 위원(왼쪽)과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오른쪽)가 '창업국가' 번역서 출간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조선일보DB

체구는 작다. 조근조근한 말투는 담백하다. 수식어와 감탄사 같은 양념은 별로 없다. 백지장 같은 얼굴에 걸친 깨끗한 안경테는 공학도 특유의 반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윤종록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교육·과학 전문위원.

물론 KT 부사장 출신인 윤 위원은 유명세를 치른 대중적인 인물도 아니고 인수위에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런데 요즘 과학기술업계에서 곧잘 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관심은 과기계를 넘어선다. 인수위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한참 조명을 받았다. 박근혜 당선인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내세운 ‘창조경제’ 아이디어를 윤 위원이 내거나 적지 않게 보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윤 위원의 어떤 아이디어에 박 당선인이 주목한 것일까. 9개 부처의 핵심 기능을 흡수, 창조경제 밑그림을 그릴 미래창조과학부는 어떤 행로를 그릴까. ‘윤종록의 아이디어’를 추적해봤다.

◆ ‘KT 신사업 = 윤종록’이 된 사연

1980년 한국항공대를 졸업한 윤 위원은 기술고시(15회)에 합격, 옛 체신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1983년 한국통신연수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25년 이상 KT에서 근무했다.

85년 미국 AT&T 파견 근무, 98년 KT 미국 현지법인(코리아텔레콤아메리카) 사장 등을 맡기도 했지만, 윤 위원의 KT 이력은 신사업 혹은 신기술 부문에 집중돼 있다. 2001년 e-Biz 사업본부장 상무보, 2003년 KT 마케팅기획 본부장, 2005년 KT 신사업기획본부 본부장, 2006년 KT R&D부문 부문장 겸 인프라연구소 소장을 거쳤다. 2009년 KT를 떠나기 직전 윤 위원의 명함은 KT 성장사업부문 부사장.

윤 위원에게 승승장구한 비결을 뭐냐고 물으면 거창한 비전과 영웅담을 늘어놓을 법도 한데 그는 손사래부터 친다.

“아니다. 나는 지역사업총국장을 한 번도 못해봤다. 백이 없어서 늘 가슴 졸이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신사업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승승장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KT 다니면서 힘을 쓸 수 있는 자리엔 앉아보지 못했다는 의미다.

윤 위원에게 신사업 담당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은 이상철 현 LG유플러스 부회장이 KT 사장으로 취임한 2000년 12월부터였다. ‘카카오톡’이 판을 치는 요즘에야 통신회사가 전화로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2000년초만 해도 통신업체는 여전히 공룡이었고 전화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철 사장은 “KT는 더 이상 전화회사가 아니다. e비즈니스 기업을 지향해야 한다”는 낯선 취임 일성을 내놓았고, 곧바로 e비즈사업부를 만들었다. 그는 KT e비즈사업부의 초대 본부장으로 윤종록 당시 상무를 낙점했다.

◆ 운명같이 나타난 ‘창업국가’

동기보다 승진이 빨랐던 그가 KT를 떠나게 된 것은 2009년이다. 이석채 신임 사장(현 회장)이 취임하고 조직 개편이 있은 후였다.

“보통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되면 소위 말하는 ‘멘탈붕괴(멘붕)’가 오게 마련인데, 윤 부사장님은 책을 집필할 생각부터 하시더라구요.”(전 KT 직장 동료)

이 때 윤 위원이 집필한 책이 ‘호모디지쿠스로 진화하라’다. ‘불안한 미래를 내 손안에 넣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정보기술이 바꿔놓을 미래사회와 미래경제 시스템을 그리고 있다. 호모디지쿠스란 디지털 시대 신인류를 뜻한다.

이 책은 교육, 의료, 환경, 교통 등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디지털이 바꿔놓는 신경제를 그리고 있지만,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거나 파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IT와 미래사회라는 주제로 관련 지식과 트렌드를 꾸준히 따라온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법한 주제를 기술 전문가가 일목요연하고 알기 쉽게 정리한 기술 대중서였다. (그의 장점 중 하나를 엔지니어이면서도 기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윤종록의 어록 중에는 “IT는 비타민이다” 가 있다.)

정작 그의 행로를 바꿔놓은 것은 ‘창업국가’라는 번역서였다. 미국 정부 외교 자문위원회에서 중동 지역 전문위원과 벤처 투자가로 활동한 댄 세노르와 저널리스트 출신인 사울 싱어가 공동 집필한 ‘Start-Up Nation’을 2010년 윤 위원이 번역 출간했다.

빈곤한 자원, 사방이 적과 대치 중인 안보상황 등 이스라엘은 한국과 어딘가 유사하면서도 오히려 더 열악하다. 인구 710만명인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나스닥에 많은 기업을 상장시켰다. 세상에서 가장 밀도 높은 벤처 창업이 일어나고 (책에 따르면, 1884명당 창업), 글로벌 벤처 투자 자금도 이스라엘로 몰려들고 있다. 저자들은 111명의 인사를 직접 만나거나 언론을 통해 밝혀진 내용을 요약해 이스라엘의 역동성, 다시 말하면 자원이 없는 나라의 생존법을 구체적인 사례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이 번역 출간되자마자 청와대 등 정부 안팎에선 창업국가 읽기, 이스라엘 알기 붐이 일었다. 윤 위원에게 특강 제안도 쇄도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세계 11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더 이상 모방할 국가가 없어 방황하는 시점에 국가 자체가 거대한 벤처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스라엘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윤 위원은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남다른 비결을 꼭 하나만 짚으라면 ‘후츠파(chutzpah) 정신’을 꼽는다. 후츠파는 ‘주제넘은, 뻔뻔스러운, 철면피, 놀라운 용기, 오만’이라는 뜻의 이스라엘 말이다. 이스라엘에선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 기업의 사장과 말단 직원은 물론이고 군대의 상사와 부하 직원에 이르기까지 끝장 토론을 통해 해법을 찾아간다. 오죽하면 이스라엘 말에는 존칭어도 없고 ‘실례합니다(excuse me)’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조차 아예 없을까.

이런 후츠파 정신은 ‘역발상’과 ‘창의력’으로 이어진다는 게 윤 위원의 설명이다. 이스라엘 기업가들은 배터리를 탈부착하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해놓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곤 국가가 오히려 축복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군대 문화는 또 어떤가. 남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 이스라엘에선 군 복무 기간이 실전 경험을 쌓는 절호의 기회다. 최신 교육과 인맥까지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를 버리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고위급 자녀들의 병역비리가 끊이지 않는 한국사회와는 딴판이다.

“후츠파 정신이야말로 위계질서와 형식을 타파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스라엘 도전정신의 근원입니다. 후츠파 정신을 좀 더 입체적으로 탐구해서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요즘 윤 위원의 각오다.

‘창업국가’라는 책은 2009년 윤 위원이 KT를 그만두고 벨 연구소 특임연구원으로 일할 때 만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미국에서 화제작을 추천해 준 것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라는 키워드가 윤 위원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2005년 당시 이스라엘 부총리 겸 산업, 통상, 노동부 장관이 방한, KT 등 주요 기업을 둘러봤다. 또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윤 위원도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2005년만 해도 이스라엘과 레바논이 전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한국에선 여행자 보험도 발급되지 않았다. 윤 위원 일행이 예약해놓은 호텔이 폭파당하는 바람에 방을 변경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그 때 윤 위원이 만났던 이스라엘 부총리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이스라엘을 이끈 12대 이스라엘 총리인 에후드 올메르트다. 그는 윤 위원이 번역한 한국판 창업국가의 추천사를 썼다.

이스라엘이 성공한 것은 사실 미국의 정치, 언론, 금융을 장악한 유대인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물으면 윤 위원의 답은 간단하다. “그것만으로 과연 창업국가가 가능했겠느냐. 내가 주목하는 것은 창의력의 원천이다.”

◆ 이기태 상상개발론 더해지고 고(故) 이춘상 보좌관이 주목하고

‘윤종록의 아이디어’에는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사업을 오랫동안 담당해 온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윤 위원의 끊임없는 탐구 대상이었다. 윤 위원 나름의 기술관에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 그리고 최근엔 이공계 스타 CEO였던 이기태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 소장과 의기투합까지 이루어지면서 윤정록의 아이디어는 발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대표이사와 기술 총괄 부회장을 지낸 이기태 소장은 ‘애니콜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다. 이 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라디오나 만들며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무선사업부를 세계가 두려워하는 휴대폰 생산기지로 만들어냈다.

‘깜빡이 없는 불도저’ ‘Mr. 휴대전화’로 불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 휴대폰은 던져버리기로 유명했던 이 소장은 요즘 대학교에서 상상개발론(I&D)을 주장하고 있다. 산업 간 융합이 빠르게 일어나는 IT혁명기에 살고 있지만, 연구개발과 교육은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융합기술연구소는 기존 공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통섭형, 융합형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

이 소장은 “연구개발(Research&Development) 시대는 가고 상상개발(Imagine&Development) 시대가 왔다”면서 미래융합기술연구소를 한국형 MIT미디어랩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이 소장의 이런 생각은 윤 위원이 뼛속까지 벤치마킹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창업국가론과 맞아떨어졌다. 윤 교수는 미국 벨연구소 특임연구원 2년 생활을 정리하고 2011년 이 소장이 있는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 연구교수로 이직한다.

윤 위원은 “4대강을 개발하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라며 건설토목에 기반을 둔 경제개발론에 의문표를 단다. 대신 “정보기술과 과학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야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윤종록의 아이디어를 주목하고 박 당선인에게 소개한 사람은 박 당선인을 그림자처럼 보좌한 최측근 보좌 그룹 4인 중 한명인 고(故) 이춘상 보좌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보좌관은 박 후보가 1998년 정치권에 입문했을 때부터 15년간 박 후보를 옆에서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박 당선인은 컴퓨터 공학박사 출신인 이 보좌관에게 정보기술 정책 개발과 인터넷 업무 등을 주로 맡겼다. 그는 대선 캠프에서 박 후보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메시지 관리 등 핵심 역할을 해왔다.

이 보좌관 덕분에 윤 위원은 2011년 11월 박 당선인이 주최한 과학기술정책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그 이전에는 박 당선인과 윤 위원이 특별히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과학기술의 융합과 산업화를 통한 창의국가’를 주제로 내건 세미나에서 윤 위원은 “산업경제에서 지식창업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창업경제’로 국가 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발표 자리에는 윤 위원 외에도 최영명 대덕클럽 회장, 유영제 서울대 교수, 이공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등도 있었다.

당시 세미나에서의 박 당선인의 언급을 찬찬히 뜯어보면,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미래창조과학부’에 관한 구상을 이미 마무리해놓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미나에서 박 당선인은 “국내 과학기술 정책 통합 조정을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면서 “과거 우리나라 경제개발 5개년을 세울 때 동시에 과학기술 5개년 계획도 수립했었다.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과기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획기적으로 수정해 최상위 위치를 갖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오래된 구상과 윤 위원의 창조경제론은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지난달 11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32명 전문위원과 3명의 실무위원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추가로 임명된 인수위 전문위원 교육과학분과에는 김재춘 영남대 교육학과 교수, 나승일 서울대 농산업교육과 교수.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곽노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등과 함께 윤종록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소 교수가 포함됐다.

인수위 전문위원이 되고 나서 윤 위원은 외부와의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지인들에게 윤 위원 근황을 물어보면, 대부분 “요즘엔 내 전화도 안 받더라(못받더라). 정말 많이 바쁜가 보다”라고 말한다. 이번 인수위가 유난히 보안을 강조하는 까닭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위원은 인수위 사무실이 있는 경복궁역까지는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고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이 신설된 것을 보면 ‘미래’와 ‘과학기술’이 박 당선인의 선거 구호를 넘어선 국가 비전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윤 위원은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 ICT 전담 차관이나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후보로 거론되며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류현정 기획취재팀장 dreamsho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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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사후.. 애플은 역시 붕괴될 것이다.

과거 잡스가 짤렸을 때 처럼.. 한 3년 남았나.. 노키아처럼 순식간에 기업은 망하게 된다.

애플은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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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주가 1천달러 시대가 열린다” 

 

지난해 9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쏟아낸 분석이다. 정확히 2012년 9월21일(이하 현지시간) 애플은 주가 705.07달러라는 신기록을 썼다. 

 

당시 애플의 하청공장 폭스콘은 ‘아이패드 미니’ 생산에 한창이었다. ‘아이패드 미니’만 나오면 안 그래도 고공행진인 애플 주가가 더 치솟을 것이라는 장미 빛 시나리오가 나왔다. 시장 기대치는 역대 최고. 애플 주식 매수 행렬이 이어졌다. 

 

■애플 거품 대 붕괴…임원도 주식 던져

 

이 같은 기대가 섣불렀음을 깨닫기까지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1천달러 돌파는커녕 500달러 붕괴 위험선이 애플 주가의 현 주소다. 애플 투자자들에게 공포가 본격화됐다. 

 

705.07달러 사건 후 연일 급락한 애플 주가는 지난 달 28일 뉴욕증시서 종가 509.58달러를 기록했다. 허공에 사라진 주가가 9월 대비 30%에 육박한다. 
▲ 밥 맨스필드(왼쪽)와 댄 리치오

1천달러를 논했던 애널리스트들의 화제는 500달러선 붕괴로 이동했다.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등의 판매 호조 소식이 각국서 들려와도 주식시장 분위기는 차갑다. 

 

시티그룹은 아이폰5 수요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조정했고, UBS는 중국서 아이폰5 인기가 전작들만 못할 것이라며 780달러였던 목표 주가를 700달러로 내렸다. 

 

이 와중에 애플 핵심 임원들은 잇따라 주식을 던졌다. ‘잡스의 왼팔’로 불린 밥 맨스필드 부사장은 지난해 11월28일 애플 주식 3만5천주, 당시 가격으로 무려 2천37만달러치를 팔았다. 하드웨어 총괄 댄 리치오도 주식 1만9천726주를 처분했다. 

 

애플의 돈 잔치가 막 내렸음을 임원들이 미리 예상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분노한 소액 투자자들에게 애플은 이미 ‘신’이 아니다. 

 

■진흙탕에 나온 ‘전직 신’

 

주가 추락 이유는 다양하지만 애플이 과거의 위상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대부분 귀결된다. ‘혁신의 대명사’는 옛 말이고, 다른 주자들처럼 시장 점유율 싸움에 분주한 처지가 됐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역시 애플’보다 ‘애플도 역시’라는 말들이 나왔다. 

 

주력 제품 가격을 보면 애플이 ‘평민(?)’으로 내려왔음이 보인다. 출시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폰5를 월마트가 고작 127달러(13만6천원)에 판매 중이다. 약정 조건을 감안해도 전작들 대비 확연히 빠른 가격 추락이다. 월마트가 깐깐한 애플의 협의 없이 벌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월마트뿐만 아니라 베스트바이와 라디오샥도 아이폰5 가격을 기존 대비 50달러가량 내렸다. ‘아이폰은 명품’이라며 지갑을 열던 소비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 사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팀 쿡이 점유율 방어에 급해 고가 정책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혁신이 없으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월스트리트는 설명한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피터 미섹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협력업체들에게 아이폰5 부품 주문량을 크게 줄이겠다고 통보했다”며 “아이폰5 재고가 과도하게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곳간에 바닥이 드러났다

 

애플 제국에 균열이 보이자 투자 전문가들은 저마다 어두운 전망을 그려냈다. 이 가운데 근래 유독 회자되는 것이 마크 안드레센의 이른바 ‘애플판 저가전략 회의론’이다. 안드레센은 넷스케이프 창업자로 유명한 벤처투자가다. 

 

“잡스는 새로운 제품으로 늘 시작하기에 점유율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쿡은 다르다. 시장점유율 방어에 더 치중하기 위해 저가 정책, ‘아이패드 미니’와 같은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점유율이 떨어지면 애플리케이션 시장서도 밀리게 된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도 분석을 보탰다. 

 

“애플 주가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호재보다는 악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애플은 잡스 사후 ‘혁신 곳간’이 비었음을 드러냈고,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저가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투자가들은 부정적 소문과 분석을 더 의식하는 방어 전략에 나섰다. 숙적 삼성전자와 구글의 위협적 성장세가 애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와의 법정 싸움과 생산시설 부재에 따른 장기적 공급 한계, 승부처인 중국 시장서의 고전, 태블릿 시장 영향력 감소, 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압박 등의 악재가 애플 앞에 산적하다.

 

애플의 후속 카드들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발휘할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스마트 시계와 자동차 연동 모바일, 텔레비전까지 각종 비장의 카드들이 대기 중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삼성전자와 구글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뛰어든 분야여서 애플 투자자들은 낙관하지 않는 모습이다. 애플 제국의 품위 유지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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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경영학도가 세운 기업 - 딜라이트.

니치 비즈니스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다. 

앞으로 시장상황은  건강, 노인 그리고 저가 라는 공식에 보청기시장의 비능률적인 유통구조에서 기회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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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라이트 "가격 경쟁력으로 매출 고공행진"
연평균 200% 성장…미국 시장 진출 본격화 매년 수직 성장에 주변 업체들 '견제'
2012년 12월 24일 (월) 14:47:51 고수진 기자  sj9270@doctorsnews.co.kr

소셜벤처 기업으로 불리며, 시장가 대비 70~50% 저렴한 가격에 보청기를 판매하는 딜라이트가 사회적 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저가 보청기를 앞세운 딜라이트는 창업 당시 4명이던 직원이 설립 2년만에 12월 현재 42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14억 매출에 이어 올해 매출은 42억을 달성했다.

   
▲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이사.
그러나 수직 성장에 딜라이트는 주변 업체들의 시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를 만나 보청기협회와의 마찰과 딜라이트 보청기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기존 보청기와 달리 저렴한 가격으로 보청기 판매를 하게된 계기가 무엇인가.

-현재 보청기는 국내에서 150원대부터 300원대로 판매되면서 가격이 높게 책정돼 있다. 고가의 보청기로 인해 경제력이 없는 노인들은 보청기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접하게 됐다.

치과의 보철도 보험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어떻게 하면 보청기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 고민하다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Q. 딜라이트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딜라이트는 '가격'과 '유통' 정책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업체의 경우 모든 제품에 대해 개인별 맞춤 작업을 하면서 제품 단가가 높다. 딜라이트는 이와 달리 특허 등록기술 '샘플링을 통한 표준화'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생산 원가를 절감해 제품 가격을 낮추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청기 지원 금액인 34만원에 제품의 가격을 맞추고, 소외계층 등 형편이 어려운 수요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다.

또 불필요한 유통 마진을 없애기 위해 대리점이나 일반 취급점을 배제하고, '직영점'을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한다.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유통 구조로 전국 영업조직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는 12개 전국 직영점을 통해 조직망을 갖추고 있다.

Q. 이런 경쟁력을 두고, 보청기협회에서는 딜라이트가 '허위광고를 하면서 '비윤리적 기업'이라는 공방을 내세우고 있다.

-기존 보청기 판매 가격을 30만원대로 현저히 낮추다 보니 기존 보청기 업체들이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보청기를 판매하는 개인사업자들로 구성된 보청기협회에서는 창업초기때부터 문제 제기를 해왔다. 다국적 기업이 오랫동안 점유해온 국내 보청기 시장에서 가격을 내린 신생기업이 성장하면서 공격을 받고 있는거라 생각한다.

Q. 보청기협회는 딜라이트가 설립 1년동안 식약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보청기를 팔았으며, 인터넷 판매를 통해 '혁신적 유통'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 딜라이트가 설립 초기에는 보청기를 제조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다른 제조업체를 통해서 위탁 생산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업허가만 받았다. 그 후 회사가 안정이 되면서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인터넷 판매 역시, 처음에 시작했지만,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고객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제품을 공급하고자 인터넷 판매를 중지했다. 딜라이트는 과거의 잘못된 부분과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면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Q. 보청기협회와의 마찰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과거의 실수를 토대로 협회는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진솔한 얘기들로 오해를 풀어나갈 생각이다. 보청기 시장이 확대되고, 많은 난청인들이 보청기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협회와 노력해 나갈 것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달라.

현재 딜라이트는 매년 200%의 매출 신장율을 보이고 있으며, 제품수 기준으로 시장의 6% 내외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성장에 맞춰 2013년에는 계속해서 신규 직영점을 확충해 나갈 것이다.

또 매출의 8~10% 연구투자를 할 정도로 연구개발에 더 많은 역량을 투여할 것이며, 국내를 넘어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할 예정이다.

딜라이트는 고객의 동선 전체에 걸쳐 제품과 서비스의 편의성·기능성을 극대화하는 '서비스 디자인'개념을 도입해 제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서비스까지 고객이 원하는 대로 구매할 수 있는 ' 서비스 패키지 구성'을 내년 중에 완료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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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비즈니스 세계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비즈니스 세계의 기본은 권력관계에 있다.

애플이전엔 MS가 있었고, 그이전엔 에너지 기업이 있었다. 


모든건 먹는냐? 먹히는냐? 라는 이분법에서 시작하는게 비즈니스 세계다.

애플은 그런 전략을 매우 미국적으로 발산하는 기업이다. 자신들에게는 충성스런 몇억의 고객이 있다. 

그 고객에게 판매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기준에 들어온 기업들이라면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맞게 움직이라고 한다.

아니면, 말고..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진짜 실력있는 기업이라면, 애플과 거래하지 않는다 아니 애플이 제발 물건 공급해 달라고 애걸할 것이다.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은 애플과 거래하지 않으면 매출이 안나오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서 "독배"를 마시는 거다.

잠시의 성장을 위해 그 밑으로 기어들어간 기업에게 애플의 전략이 맘에 안든다고 한다면, 어쩌겠나.

이익을 공유하거나 기업을 서로 성장시켜주기 위해서 협력업체들이 애플에게 하는 건 별로 없다.

애플은 새로운 기술과 철저한 기획 그리고 시나리오, 전략으로 중무장하고 있고, 거기다 돈도 많다. 


좀 먹고 살만하니.. 애플 때문에 못살겠다고 난리친다. 서로 공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술도 전략도 거기다 돈도 없는 협력기업이 어쩌겠는가... 노가다 밖에.. 

경영학에서 이야기 하는 모든 경영전략은 결국은 이익의 극대화에 있다. 

애플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유리한 위치에 있을때 최대한 많이 빼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이 불리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협력업체와 공생하려 들것이다. 

그게 비즈니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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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현기자] "애플하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0.004달러, 한국 돈으로 4전을 가지고도 협상해야 한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국내 업체 임원의 푸념이다.

"애플은 매 분기마다 앞서 두 달은 정상구매량의 50%만 주문해 시장 가격을 떨어트리고 나머지 한 달간 싼 가격에 부품을 구입한다. 비정상적인 구매 패턴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지난 7월 한 반도체 회사의 2분기 경영설명회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던진 질문이다.

애플의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이 어디서 비롯되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단면들이다.

애플의 2010년 영업이익률은 28.2%, 2011년엔 31.2%, 2012년엔 35.3%였다.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기업의 영업이익률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전자기기 판매 기업이 이런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인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은 결과적으로 애플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품 공급이나 조립 생산을 위한 협력업체를 혹독하게 쥐어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HS디스플레이뱅크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애플의 반도체 구매수량은 2008년에 비해 약 5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애플이 30% 이상의 물량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은 이같은 절대적인 '바잉 파워'를 통해 분기 초에 의도적으로 주문량을 줄여 부품 가격을 끌어내린 뒤 분기 말에는 출하량과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쓰는가 하면 개별 업체와 혹독한 단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엄청난 마진을 챙긴다는 이야기가 된다.



◆"日·中 전자 부품업체들, 'ifactory'로 전락"

스마트 시대를 열어젖힌 애플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됐다. 부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견제하는 수준이지만 쏠림이 강화되면서 전자 부품업계의 수급 균형이 무너졌다. 부품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애플 눈치만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직 애플 임원도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애플에는 파트너십이란 것이 없다. 오직 애플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수십 명의 전·현직 애플 직원과 애플 협력업체들을 인터뷰한 '인사이드 애플'의 저자 애덤 라신스키는 저서에서 "애플은 마치 냉전시대에 미국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조언을 구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부품회사들을 대한다. 미국과 나토는 동맹관계였지만 당시 초강대국은 한 국가밖에 없었다"고 기술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폭스콘이다. 아이폰 조립업체인 중국의 폭스콘 공장은 9월에 이어 지난 10월 5일 또 다시 파업을 재개했다. 중국 현지 인력 100만명 이상을 고용한 폭스콘 공장은 최근 3년 동안 자살과 파업 사태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중국 공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정보서비스 그룹 톰슨로이터는 지난 2004년 초 6%대였던 폭스콘 영업이익률이 지난 2011년에는 2.4%로 절반 넘게 떨어졌다고 보고한 바 있다. 애플은 살찌고 있지만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협력업체는 적자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외신들은 애플이 그간 협력 업체를 쥐어짜 폭리를 취했지만 이젠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영국 종합일간지 미러는 폭스콘 아이폰 공장을 잠입 취재해, 아이폰5의 제조과정상 인권침해 상황을 기사화했다.

'미러'에 따르면, 폭스콘 생산라인에선 30초당 제품을 하나씩 조립해야하며 노동자간 대화도 할 수 없고 14시간 업무를 하는 동안 화장실을 3번 이상 갈 경우 임금이 삭감되는 등 혹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고 한다.



일본 '다이아몬드'지는 일본 가나가와 현에 있는 중견 전자부품 제조사 시코가 '애플 도산'의 첫 사례라고 소개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모터를 개발한 시코는 애플에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할 것으로 기대하고 신규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회사의 재무상태가 신규 설비를 충분히 도입할만큼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애플은 주문을 취소했다.

수급 균형이 무너지면서 시코 뿐 아니라 샤프·엘피다·소니·도시바·파나소닉 등 일본의 주요 전자부품 회사들 모두 공급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일본의 19개 주요 전자부품 회사 중 11개가 애플에 납품하고 있다며 일본 전자부품 업계 성장의 절반은 애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일본 최대 메모리업체인 엘피다가 지난 7월 2천억엔(한화 약 2조7천억원)이라는 업계 예상치보다 낮은 금액에 마이크론에 인수된 데 이어 샤프도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일본 전자업계는 전반적인 난조에 빠졌다.

샤프의 7일 기준 종가는 153엔으로 이는 올 초 대비 77% 폭락한 것이며 38년만에 기록한 최저가다.

◆국내외 부품업계, 생존 위해 공급량 줄여

상황이 어려워지자 부품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투자와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먼저 폭스콘을 비롯한 중국·대만 주문형제품생산(OEM) 업체들이 납품량을 줄이고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폭스콘은 지난 2006년부터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을 조립했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 조립이 까다로운 '아이폰5'가 애플에 첫 반기를 드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폰5'는 제품 뒷면과 옆면을 알루미늄으로 포장해야 하는 등 공정이 더 까다로워져서 불량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애플은 불량률과 상관없이 폭스콘에 지불하는 제품 한 대당 조립비용과 부품비용을 합친 단가 책정을 이미 끝낸 상태이기 때문에 불량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 협력업체에 돌아간다.

테리 고 폭스콘 최고경영자(CEO)는 "아이폰5의 까다로운 품질 공정으로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달 초 품질기준을 올리자 폭스콘에선 두 번의 파업이 일어났다. 애플이 임금인상 등 당근 정책을 쓰지 않으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국내에서 이같은 움직임은 맞춤형 부품 공급 업체보다는 범용 제품을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두드러진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생산량 30% 감산을 발표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지난 2011년 말 대비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웨이퍼 기준 6만장 정도 줄였다. SK하이닉스도 지난 7월 준공한 청주 M12라인을 낸드플래시·D램 혼용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계 해 아직까지 시장 전체의 낸드플래시 생산량 증가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

공급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낸드플래시 64Gb/32Gb MLC 고정거래가는 5.52달러로 지난 6월 3.84달러에 비해 약 70%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 5일 D램익스체인지가 발표한 3분기 낸드플래시 매출 동향을 살펴보면, 낸드플래시 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전반적으로 올라 공급업체들의 매출이 전분기에 비해 적게는 1.8%에서 많게는 19.7%까지 증가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홍완훈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낸드플래시 가격은 공급부족 현상 때문에 올라가고 있는 추세"라며 "이 같은 공급부족 현상은 수급 불균형과 공급업체의 감산 추진 두 가지 다 모두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부사장은 "공급이 다시 증가되고 수요가 비수기를 맞이하면 가격은 또 어떻게 변동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에 휘둘리던 일본·중국의 전자 부품업체들과는 달리 국내 부품업체들은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전동수 메모리사업부 사장은 지난 26일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수요와 공급간 가치 공유 시대로 지금부터는 굉장히 기술이 앞서가야하고 그 기술이 세트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며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던 과거와 달리 좋은 기술을 가져가면 가치를 인정 받는 가치 창조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고 몇몇 소수업체가 산업을 이끌고 있으니 그들의 정책에 사업이 망할 수 있다"면서도 "이 때문에 시장이 좋고 나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거래선들이 좋은 전략을 가지고 사업할 때 우리가 어떻게 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 1분기 애플·삼성의 신규 제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크게 차이나는 일 또한 줄어들 것"이라며 수급 균형을 맞추는데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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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박사인력이 이공계인력이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 생각보다 Management분야에도 박사인력이 많다.

그만큼 관리역량도 연구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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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300~400명 채용

삼성전자에 근무하는 박사 수가 10년 새 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이 회사의 박사학위 직원은 4500여명으로 집계됐다. 1000명 수준이었던 2000년보다 4.5배가량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직원 수는 2.5배 늘었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300~400명의 박사를 채용할 계획이어서 내년이면 박사 수가 5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박사급 인재가 가파르게 증가한 이유는 선도적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전문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원기찬 삼성전자 인사팀장(부사장)은 "20~30년 전에는 박사급 직원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글로벌 경쟁을 하는 지금은 필수적"이라며 "몇 년 전까지만해도 반도체 등에 주로 있던 박사 인력이 TV, 휴대폰 등의 사업부에도 늘어나 지금은 전 사업부에 비슷한 수준의 박사급 인력이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급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이건희 회장의 인재 철학도 크게 작용했다. 이 회장은 2002년부터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00명, 1만명을 먹여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라며 "10년 뒤 초일류로 도약하려면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사급 인재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급으로 분류된 인재에게는 삼성전자 사장보다 더 많은 연봉을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S급이 아니더라도 박사들은 입사 때부터 우대받는다. 대졸 공채로 입사하면 사원, 대리로 4년씩 총 8년을 근무한 뒤 과장으로 승진하지만, 박사급은 과장 직급부터 시작한다. 삼성전자 인사 담당자는 "실무 경험은 없지만 연구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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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전략과 스타일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가장 경영에 잘 활용하고 성공한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삼성"을 꼽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스포츠를 통한 마케팅에 앞장섰던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비인기 종목이든 인기 종목이든, 스포츠의 숭고한 정신을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연결하고 끊임없이 재활용하는건 배워야 할 대목이다.  LG는 왜? , 삼성과 LG를 비교한다는게 이젠 무의미 하지만, 가끔 두 기업을 통해 많은 걸 고민해 보게 된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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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닷컴|황준성 기자] LG전자가 런던올림픽 특수를 노려 높은 몸값의 유명 배우와 걸그룹, 아나운서를 광고모델로 기용하며 3D TV광고에 거액을 쓰고 있지만, 정작 올림픽에 출전하는 비인기 종목이나 선수에게는 지원하지 않아 타 그룹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비인기 종목을 적극 후원하는 삼성, 현대차, SK와는 달리 LG그룹은 야구 농구 등 인기 종목에만 투자할 뿐 비인기 종목은 외면하고 있다. 국내 빅4 대기업 중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곳은 LG그룹이 유일하다.

◆ LG 비인기 종목 외면, 삼성ㆍ현대차ㆍSK 적극투자로 메달밭 만들어

3일 재계에 따르면 육상, 양궁, 핸드볼 등 올림픽 종목에 지원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은 런던에서 한국 선수단을 응원하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자택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IOC위원)과 가족은 지난달 28일 런던올림픽파크 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수영 400m 결승전을 관전하며 박태환을 응원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국내 최대 기업 삼성그룹은 계열사 삼성전자를 통해 마라톤, 경보 등 육상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삼성생명은 레슬링과 탁구, 에스원은 태권도, 삼성전기는 배드민턴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레슬링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관심은 크다. 이건희 회장은 서울사대부고 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지난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을 맡아 비인기종목인 레슬링을 한국 금메달 밭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IOC 위원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양궁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여 궁사들이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도, 바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있는 관계자석이었다. 여 궁사들은 금메달을 딴 기쁨을 정의선 부회장과 부둥켜안고 함께 했다.

정의선 부회장의 부친 정몽구 회장은 지난 198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올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이후 한국 양궁은 크게 발전했다. 정몽구 회장은 사비를 털어 심장박동수 측정기, 시력테스트기를 구매해 양궁협회에 보내기도 했으며, 계열사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는 레이저를 활용한 연습용 활을 제작해 선수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또한 1991년 폴란드 세계선수권대회 때 선수들이 물 때문에 고생하자, 스위스에서 비행기로 물을 공수해준 일화는 아직도 선수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정의선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에 이어 대한양궁협회장으로 한국 양궁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런던 로즈 크리켓 가든에서 열린 한국 대 중국의 여자양궁 결승전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왼쪽)과 임동현 선수가 참관해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지원에 적극적이다. 핸드볼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국내 최초 핸드볼 전용 경기장을 만들었으며, 런던을 방문해 핸드볼국가대표팀을 직접 응원하고 선수들을 격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의 계열사 SK텔레콤은 지난 2007년 6월부터 국가대표 수영팀의 박태환 선수를 후원해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이외에도 SK텔레콤은 2003년부터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아, 우수선수 발굴과 선수들의 기량 향상 등 다양한 후원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런 지원 등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3일 오전(한국시각) 현재, 박태환 선수는 은메달 2개를, 여자 펜싱 개인 사브르에서 김지연 선수가 금메달 1개, 남자 펜싱 개인 플뢰레에서 최병철 선수가 동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달성했다.

4대그룹 외에도 한화그룹은 2002년부터 대한사격연맹의 회장사를 맡아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탁구와 박태환, 손연재 선수에 대해 후원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핸드볼협회장)은 지난달 18일 `2012 런던올림픽 핸드볼 국가대표 출정식`에 참석해 선수, 코칭 스태프를 격려했다./사진=서울중앙우체국

◆ 비인기 종목 후원 외면 LG, 올림픽 특수 노리다 IOC 제재

선수나 종목을 후원하는 기업은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중요한 비즈니스 무대로 보고 있다. 올림픽은 월드컵, 엑스포와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자사 브랜드를 전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업은 상대적으로 대중적 관심을 모으는 인기 종목을 지원해 회사를 다소 쉽게 홍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인기 종목에만 대기업의 지원이 몰리면 비인기 종목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특히 한국에선 양궁, 유도, 태권도, 핸드볼, 사격 등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에 대한 인기가 올림픽 기간 동안 급증하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그 인기는 금세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기업의 후원이 없다면 자력으로 경기력을 유지해갈 수 없는 종목도 많다. 이같은 사정을 고려한 국내 일부 기업들은 기업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으며 국내 스포츠가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저변에는 기업들의 후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업 또한 자사 브랜드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국내 4대그룹 가운데 유독 LG그룹만 비인기 종목 육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 비인기 종목 관계자는 “LG그룹이 지원을 해주면 고맙지만 안 해준다고 구걸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른 대기업과 달리 오직 인기 종목에만 투자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실제 LG그룹은 에어컨 광고모델로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를 쓰고 있을 뿐 경기 단체에 대한 지원은 하지 않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스포츠 지원은 야구와 농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면 비인기 종목이라 할지라도, 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서 높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레슬링과 양궁이 그 예”라면서 “이번 올림픽과 LG는 무관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기업에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를 강요할 수 없지만, 이 부분도 사회 지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볼 수 있다”며 “국내 체육 발전을 위해 더 많은 기업들이 비인기 종목에 대해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LG그룹은 비인기 종목과 선수, 올림픽에 후원을 하지 않지만, LG전자를 통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LG 시네마3D 스마트TV 생중계’ 관련 광고를 대대적으로 했다. 올림픽 후원 기업이 아님에도 '런던올림픽을 LG 스마트 TV로 즐기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통해, 이들 광고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내용을 LG전자 측에 전달했고, 이에 LG전자 TV 광고는 일시 중단됐다. LG전자는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한 뒤 지난달 13일 오후 늦게부터 방송 광고를 재개하고 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별로 할말은 없네요.. 하지만.. 분명한건 구성원들은 똑똑하고 능력있는데.. 역시.. 경영진문제와.. 결정적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이 문제겠죠. 뭐.. 그게 실력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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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퇴직률, 삼성전자의 2배

LG전자 작년 퇴직률 25.6%..삼성전자는 9.85% 그쳐
女 비율 LG전자 28.3%..삼성전자 처음으로 40% 넘어
해외인력 비중 LG는 감소 추세..삼성은 더 늘어나

입력시간 :2012.06.18 13:58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LG전자 임직원의 퇴직률이 삼성전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인력의 비중 역시 삼성전자의 경우 처음으로 40%를 넘어선 반면, LG전자는 여전히 20% 수준에 머물렀다. 
 
18일 두 회사가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066570) (59,100원 ▲ 3,000 +5.35%)의 지난해 회사를 퇴직한 임직원의 비율은 25.6%였다. 근무하던 직원 4명 중 1명은 지난해 퇴사한 셈이다. 
 
▲ 삼성·LG전자 퇴직률(자료:양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국내사업장과 해외사업장의 퇴직률은 각각 6%와 37.6%를 기록해 2010년에 비해 각각 1.1%포인트와 6.9%포인트씩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005930) (1,167,000원 ▲ 9,000 +0.78%)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지난해 삼성전자 임직원의 퇴직률은 9.85%인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전자 국내사업장의 퇴직률은 4.9%로 지난해와 같았지만, 해외사업장의 경우 2009년 11%에서 ▲2010년 15.3% ▲2011년 15.6% 등으로 꾸준히 퇴직률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퇴직 사유로는 이직이 가장 많았다. 학업, 계약 종료, 건강 등의 대답도 있었다. 

여성 인력의 비중은 두 회사 모두 전년도에 비해 증가했지만, 삼성의 여성 비중이 앞도적으로 높았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여성인력 비중은 40%로, 2010년에 비해 1%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중국의 경우 여성인력 비중이 각각 63.9%와 55%로, 남성 인력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의 여성인력 비중은 28.3%로, 2010년(26.7%)에 비해 1.6%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2009년의 여성인력 비중인 29.2% 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특히 LG전자 여성인력 중 임원의 비중은 0.03%에 그쳐, 삼성전자(1.5%)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두 회사 모두 해외 인력의 규모가 국내 인력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전체 임직원 22만1726명 중 해외 인력이 11만9753명으로, 전체의 54% 비중을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해외인력 비중은 2009년 46.1%에서 ▲2010년 49.8% ▲2011년 54% 등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LG전자는 전체 임직원 9만1045명 중 해외 인력이 5만5759명으로 61.2% 비중이었다. 하지만 LG전자의 해외인력 비중은 삼성과 달리 ▲2009년 65.2% ▲2010년 64.8% ▲2011년 61.2% 등으로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서남표 총장.. 뚝심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하는 일은 혁신을 기반으로 기업의 프로세스, 문화를 바꾸고 더 높은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에서도 혁신은 엄청난 반발과 강력한 저항세력을 만나게 된다.

영화의 한장면과 같이 극적인 타협도 없고, 완벽한 굴복도 없다. 

그리고.. 강력한 반발은 "적"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타협"을 하게 되고.. 경쟁력은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고. 잠깐 효과만 있을 뿐이다.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끊임없이 생사를 넘나는 기업의 경우도 "독재"적 혁신활동이 없으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리더의 Commitment가 혁신활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라고 하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학에서라면?? 대학은 그 어느곳 보다 "혁신"이 필요한 곳이지만.. 그 어느곳 보다 "혁신"적이지 않은 곳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고 좋은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고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저 그런 이류, 삼류로 남을 거라면.. 혁신은 필요도 없고, 그냥 남들 눈치만 보면 된다. 그러나.. 세계 10대 대학을 꿈꾼다면, 그건 다른 문제인것이다. 그래서.. 기업에서 하고 있는 "독재"적 혁신은 필요 할 수 밖에 없다. 기존에 강하게 뿌리내린 기득권층은 가만히 앉아서 세계 10대 대학을 꿈꾼다. 아니 10대 대학이라는 말에 콧웃음을 친다. 자신들이 젊은 혹은 능력있는 교수들에게 밀린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레 학생들을 조장하게 된다. 순진한 학생들은 그저 소통이니 신뢰니 하면서 그 말에 쉽게 넘어가게 마련이다.


혁신은 소통을 필요로 하지만, 독재가 전제가 되어야 한다. 소통은 독재를 위한 일종의 fake motion일 뿐.. 

서남표 총장은 그런 기법이 부족했던것 같다. 한국식 Fake motion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감언이설이 잘 안되어서 혁신을 하지만, 반대세력이 많은 것이다. 특히 소통이 안되는 리더는 혁신의 성과를 지지해줄 자신의 지원세력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그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것이 서남표 총장의 한계일 수 있다. 한국은 적과 아군을 만들어서 나를 대신해서 적과 싸워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건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기본중에 기본이다. 내손에 피를 뭍힐 필요가 없는법


미국식 사고는 그렇지 않다. 논리와 정의가 있으면 궁극적으로 따라온다는 로마식 전투사고가 있다. 그래서야 쓰겠나. 

여하튼 서남표 총장의 혁신은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혁신 과정대로 해 나가고 있고, 또한 일정부분 성공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MIT같은 미국식 경쟁주의와 성과주의 중심에 있는 대학과  KAIST와 같이 경쟁과 성과주의가 애매한 국립대학에서 혼자서 싸운다는 건, 그 시작과 끝이 비슷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서남표 총장이 아쉽다. 그의 혁신은 동의하지만.. 그 과정은 조금더 한국적 상황에서 한국적 방법으로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왜 자꾸.. 거스 히딩크의 용병술과 교묘한 언론플레이가 생각 나는지.. 그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보고 싶다. 한국 대학교육의 전환점 역할을 했으면 한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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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카이스트 이사회는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 대한 계약해지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명 카이스트 이사장은 이날 새벽 서 총장과 대화를 나눈 후 안건 처리를 연기했다. 카이스트 총장 거취 문제가 더 깊은 안갯속으로 빠져들어 더 묘한 해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국민적인 이목이 집중된 상아탑 대혈전을 보고 있다. 고급 과학기술 인재 양성과 국가 과학기술의 첨단화를 위하여 설립된 이공계 영재들의 대학 카이스트. 거기 고고한 지성의 전당에서 두 명의 노 석학이 해외 과학계의 시선까지 쏠린 가운데 생애의 명예를 건 일전을 벌이고 있다. 

칼을 잡은 오명(73) 카이스트 이사장이 지금까지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다 벼랑 끝으로 몰린 서남표(75) 카이스트 총장을 찌를 것인가. 오 이사장은 체신부·교통부·과학기술부 장관과 아주대·건국대 총장 등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 서 총장은 미국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및 석좌교수, 미국 과학재단 부총재 등을 역임하고 정부의 요청을 받아 2006년 카이스트 총장으로 부임한 이래 ‘서남표식 개혁’이라는 말을 탄생시켰을 정도로 바람을 일으킨 카이스트 개혁의 달인이다. 

행정 9단과 개혁 9단의 1합은 20일 새벽 비밀리에 펼쳐졌다. 강호의 무림들은 이날 오전 열리는 카이스트 이사회에서 오 이사장이 서 총장 계약해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서 총장이 장렬히 전사할 것이고, 그 결과 국내는 물론 세계 과학계에서 어떤 파장이 일어날 것인지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1회전의 결과는 비밀에 휩싸여 있다. 이날 새벽 변호사 입회하에 이루어진 대화에서 두 사람은 “이사장과 총장은 총장의 거취와 관련해 총장의 자율에 맡기기로 하며, 향후 후임 총장을 함께 선임하기로 한다”고 합의한 후 오 이사장은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총장 계약해지안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심은 서 총장에게 쏠린다. 우리 사회에서 개혁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대학을 뒤흔든, 더구나 개혁을 시도하다 번번이 총장들이 중도하차한 카이스트에 회오리를 일으키다 교수·학생의 반발에 이어 자신에게 불리해진 이사진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가 이 벼랑에서 어떻게 탈출할지 궁금하다. 오명 9단이 숨기고 있는 검법도 관심거리다. 서 총장과의 인터뷰는 17일 오후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3시간가량 진행됐고, 20일 이사회 후 보충 인터뷰를 거쳤다. 

-20일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에서 41년 카이스트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연임에 성공(2010년 7월)한 서 총장을 계약기간 4년 중 2년 만에 계약 해지시킨다는 것이 일반의 예상이었다. 상황이 급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19일 저녁 오명 이사장이 학교 발전과 개혁 지속을 위한 원만한 해결 방안을 제안해 와 20일 오전 6시30분부터 90분 동안 대화를 진행했다. 두 사람은 학교 개혁이 중단돼선 안 된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카이스트 발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는 데 힘을 합치기로 했다.” 

-두 사람의 합의 내용이 수수께끼 같다. 자율에 맡긴다는 앞부분은 총장직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향후 후임 총장을 함께 선임하기로 했다는 뒷부분은 자진 사퇴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진사퇴로 유도한다는 오명 이사장의 뛰어난 전략이라고 평가해도 되겠는가. 

“모든 것은 진상규명이 우선이다. 그간 나는 학내에서 수없는 음해와 모함을 받았는데, 모 교수가 자신의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항구)’ 특허를 내가 가로채가지고 있다가 들통나게 되자 되돌려 줬다는 주장을 폈다. 그 주장이 계속 확대되니까 학교 내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경찰에 조사를 요청했다. 관할 둔산경찰서에서 조사한 결과 그 교수가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를 ‘사전자 기록위장 및 동행사’라는 죄목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자 교수협에서는 학내 문제를 수사기관으로 가지고 갔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쨌든 검찰에서 이 문제를 수사 중이니까 진상이 가려진 후 총장의 거취 문제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이사회에서 서 총장 계약해지안을 상정한다는 소식 알려지자 ‘자진 사퇴는 없다, 차라리 쫓겨나는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임기 중에 나를 내보내려면 그만한 근거를 갖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얘기도 들은 바가 없다. 나는 미국에서 많은 혜택을 다 뿌리치고 생애의 마지막 부분을 고국에 봉사하고자 6년 전 카이스트의 총장으로 왔다. 그후 지금까지 하루 14시간 이상을 카이스트를 위해 일하며 많은 것을 바꿔왔다. 내 목표는 오로지 카이스트를 미국 MIT 수준의 세계 최고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신명을 다 바쳐 일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해임되는 수모를 당하지 말고 자진 사퇴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카이스트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굴욕적으로 해임을 당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과 카이스트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서 총장을 내보내기 위한 그룹이 있다고 했는데 그들이 누구인가. 

“대략 짐작은 하고 있지만 형체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 카이스트 내부와 타 대학 인사, 정부 인사 등 상당히 교묘하게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 파악되고 있다. 이사진도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로 꾸준히 물갈이됐다.” 

-처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남표식 대학 개혁을 지지했다. 그러나 개혁 피로감 때문이었는지 카이스트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반대 의견이 형성됐다. 추진 방식이 독선적이고 불투명하다는 것이 교내의 불만 사항이다. 이사회에서도 반대쪽으로 돌아섰고 막판에는 카이스트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서 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최선이라는 여론이 확산됐다. 

“나를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실제로 내가 한 만큼만 해줬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교수들은 서남표의 대학 개혁 흐름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도가 넘은 공격을 해왔다. 누구나 반대 주장을 할 수 있고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켜야 할 수위가 있다. 교수단체의 태도를 보면 하나의 사퇴 이유가 효력을 다하면 제2, 제3의 사퇴이유서를 다시 쓴다. 그렇게 해서 지난 1년간 30여 차례의 사퇴이유서를 이사회에 냈다.” 

-개혁 대상인 사람들이 총장을 몰아내려 했다는 말인가. 

“내가 조사해보니까 우리 교수 중 20% 가까운 사람이 과거 5년 이상 논문 한 편 안 쓰고 1주일에 평균 3시간 강의하고 평균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총장 퇴진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데모하는 사진을 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주축이었다. 우리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이라 강의가 적은 대신 연구나 학생 지도에 힘을 써야 한다. 80%의 교수들은 1주일에 60시간 이상을 일한다.” 

-젊은 학생들이 반발한 것도 이기적인 동기를 가졌다는 말인가. 

“재수강 제도를 없앤 것이 첫 번째 반발의 이유였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학비와 기숙사비 등 모든 것이공짜니까 성적이 좋지 않으면 졸업을 하지 않고 몇 번씩을 재수강해서라도 낮은 학점을 높은 학점으로 변경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학교의 수준과 명성에 관련된 문제다. 이런 식으로 좋은 학점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 해외의 유명 대학에서 카이스트의 학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어려운 것에 당당히 맞서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책임감이 생기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 생긴다. 기숙사도 부족하다. 여기에 전과목 영어강의도 엄청난 반발에 부닥쳤다. 총학생회에서 얼마 전에 75%의 학생이 총장 퇴진을 요구했다고 발표했지만 전체 4000여명 중에서 투표에 참여한 학생은 1278명이고 그중에서 950명이 퇴진에 찬성했다. 전체 19%에 불과한 수치다. 나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이메일이 계속 날아오고 있다.” 

-인사 제도를 강화해 지난 6년간 39명이 테뉴어(정년이 보장된 교수) 심사에서 탈락했고 19명이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어느 대학도 상상할 수 없는 수치다. 국민들은 시원해 했지만 내부적으로 반대세력이 생겨나 똘똘 뭉치는 것 아닌가. 

“세계 10위권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제도다. 이렇게 하니까 카이스트가 세계 대학 100위 내에 진입하고 공학 분야에서는 20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그러나 실적 없는 교수들이 직업의 안정성이 위협받게 되니까 반발하고 타 대학에서도 영향을 받을까 위기를 느낀 교수들이 합세한 것이다. 그리고 학과장 중심제로 학교를 운영하니까 오랜 경력과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교수들이 반발한 것이다.” 

-학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조차 서 총장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교수 두세명 늘리는 데에도 총장과 부총장이 교과부에 들어가 90도로 절을 하고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해서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과정을 포기하고 밖으로 뛰어다니며 연구비를 모았고 지난 5년간 279명의 뛰어난 신진 교수를 채용했다. 온라인전기자동차,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항구), EEWS(에너지, 환경, 물 등 지속가능 과제)도 세계 과학계에서 매우 주목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연구비를 다 몰아간다고 타 대학에서도 당연히 나를 미워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세계 유명 대학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연구비 수주와 같이 돈으로만 따져도 되는 것인가. 

“과학기술 분야는 돈이 없으면 연구할 수 없다. 기계 하나에 몇 십억원씩 한다. 연구를 잘해야 연구비를 받아오게 된다. 우리 대학은 교수 1명당 평균 연구비 2억5000만원을 쓴다. 과학기술 분야의 특수성이다. 연구를 잘 하는 교수라야만 연구비를 얻어오게 돼 있다.” 

-우리 사회와 미국 사회의 리더십, 소통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있는가. 

“한국은 문제의 본질보다는 외부적인 것을 갖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삼성전자가 지방색 따지고 학맥 따지고 그랬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소통을 잘못 했다는 지적에는 앞으로도 반성하고 깊게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좀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대화를 하자고 하면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다가 뒤에서 다른 소리를 한다. 그리고 카이스트에는 정치 성향이 너무 많다. 뒷말과 의혹이 판치고 교수가 지녀야 할 보편가치보다 헤게모니가 더 우선순위로 작용한다.” 

-한국 사회에 정치적 연고, 학연, 지연과 같은 카르텔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어느 나라에나 그런 것이 있는 것 아닌가. 

“카르텔은 어느 곳이나 있고 개혁 역시 어디서나 어렵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옳은가 아닌가 하는 점을 놓고 치열하게 싸워도 모함이나 거짓 공격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방식을 동원하는 사람은 발붙이지 못한다. 미국에 비해 한국의 카르텔은 열배는 강하다고 생각된다. 열 몇 살 때 어느 고등학교를 다녔는지가 60대에까지 작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 카이스트 총장은 어떤 사람이라야 한다고 생각하나. 

“다음 총장에 대해서는 지금 내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카이스트 총장은 적당히 일하면서 자리 유지하고, 모나지 않게 학교 관리하는 자리는 아니다. 앞으로 카이스트는 5년쯤 지나면 폭발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카이스트에는 교수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이 인적개편은 틀림없이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게 될 것이다. 5년 정도 지나면 분위기와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다. 정의는 늦더라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카이스트 총장의 역사는 평탄하지 않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전임 로버트 러플린 총장은 교수평가를 시도하다 반발에 부닥쳐 2년 만에 물러갔고, 전 전임 한홍택 미 UCLA 석좌교수는 1년2개월을 근무하고 자진 사퇴했다. 범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서 총장도 힘든 줄타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행정 9단은 그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을 개혁시켜 세계적 대학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서 총장이 끝내 임기 중에 물러나게 된다면 카이스트의 이사회를 대표하는 오명 이사장이 서 총장과 비교해 건국대나 아주대를 얼마나 개혁시켰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 총장에게 문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미국식 개혁은 위험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러나 학교의 낡은 시스템을 바꾸고 세계적 대학으로 만들고자 열정적으로 일한 노 석학이 막다른 길로 몰리는 닫힌 구조, 이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와 대학이 풀어야 할 문제다. 이 세상에 행정 9단과 개혁 9단을 겸비한 18단의 고수가 있는가. 

만난 사람=임순만 논설실장 soon@kmib.co.kr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5년 전인가.. 

지인들과 여러가지 사업애기 부터 살아가면서 무엇을 할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때..

중견기업을 운영하던 한분께서 회사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의견을 구했던 적이있다.

난 아직 내 회사를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앞으로 CEO가 될 사람으로서 그냥 꿈꾸는 회사의 모습은 있다고.. 

직원들 평균연봉은 2억쯤, 직원은 20명 내외, 3층짜리 전원주택같은 회사건물, 오직 열정과 지식으로 먹고살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놀면서 일할 수 있는 회사 였으면 좋겠다고.. 

그 분께서는 그런 회사라는게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반문과 함께.. 그런 회사를 언제가 꼭 만들어 보라고.. 했는데..

이런.. 제니퍼소프트가 그런회사가 인것 같다.

한발 늦었다..^^ 그러나.. 내가 꿈꾼 조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실제적 증거가 국내에도 있다는 점에서..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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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제니퍼소프트 본사에서 지난 6월 열린 행사에 참여한 직원과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니퍼소프트의 ‘꿈같은 복지’
주35시간 근무·월 3일씩 재택·지하엔 수영장 스파

하루 7시간, 주 35시간 동안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회사, 수영하는 시간도 근무로 쳐주는 회사, 직원 자녀들과 놀아줄 미국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회사, 생리휴가를 별다른 말 없이 쓸 수 있는 회사….

제니퍼소프트 얘기다. 지난 6일 방문한,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제니퍼소프트 본사는 헤이리 예술마을 안에 있는 카페들과 외관상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1층 입구는 밖으로 트여 있고, 안에는 ‘카페 제니퍼’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쓰여 있다. 이원영 제니퍼소프트 대표는 “카페는 직원들이 일하거나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라며 “외부인들도 가끔 카페인 줄 알고 들러 쉬다 간다”고 말했다.

제니퍼소프트는 국내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 분야 1위 업체로,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은 웹 시스템의 성능, 트래픽, 과부하 등을 그래픽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다. 은행, 대학, 홈쇼핑, 전자업체 등 제니퍼소프트의 고객사는 592개에 달한다. 지난해 라이선스 매출 101억원, 순수 매출 43억원을 올렸다. 작지만 알짜배기 회사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48%에 달한다. 직원 수는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지사의 직원들을 합쳐 총 22명이다.

직원수 22명·고객사 592개·영업이익률 48%…작지만 ‘알짜배기’
이원영 대표 “직원 복지는 필수…이윤창출은 목표 아닌 결과일뿐”

경기도 파주시 제니퍼소프트 본사에서 지난 6월 열린 행사에 참여한 직원과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루 7시간 근무는 2005년 회사 설립 이후 줄곧 지켜온 원칙이다. 직원들은 보통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한다. 중간에 수영하는 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한다. 회사 지하 1층에는 수영장과 스파시설이 있다. 이 대표는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수영장을 떠올렸다”고 했다. 특정한 근무 공간과 근무 시간을 강제하지도 않는다. 1주에 35시간을 자율적으로 지키면 된다. 생리휴가도 특별한 언급 없이 쓸 수 있다. 이 업체는 생리휴가제의 실질적인 운영을 위해, 전 직원들에게 다달이 2~3일 동안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이 대표는 상대적으로 짧고 자유로운 근무시간에 대해 “지식정보 서비스산업에서 고도의 지성적 역량을 발휘하려면 몰입과 여유가 중요하다”며 “단순한 장시간 노동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말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헤이리로 사옥을 이전한 뒤부터 직원 자녀들의 ‘친구’ 역할을 해주는 미국인 제이미를 회사는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제이미는 아이들과 회사 옥상에 텃밭을 가꾸고 수영, 그림 등을 가르친다. 또한 회사 차원에서 추진할 ‘나눔활동’ 등을 기획한다.

경기도 파주시 제니퍼소프트 직원들은 본사 지하의 수영장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제니퍼소프트 제공
“이윤 창출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 회사의 건강한 체계와 그 안에서의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의미다.” 이 대표는 회사의 복지제도가 생산성을 위한 도구는 아니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직원 복지는 당연히 해야 할 필수사항이며, 생산성과 정비례 관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주식 상장이나 인수합병에 대한 생각은 없다고 했다. “주식 상장은 기업주들에게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기업가치를 불려서 기업주 본인이 지배력을 발휘하거나 현금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니퍼소프트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의 비즈니스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새스(SAS) 인스티튜트’는 상장을 하지 않고도 설립 뒤 36년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야근, 비정규직, 정년, 정리해고가 없고 최상의 복지시설을 갖춘 회사로 유명한 새스는 2010년 <포천>이 뽑은 ‘미국인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회사 앞길을 지나던 여성 3명이 1층 벽면에 쓰여진 수영, 스파라는 문구를 보고 물었다. “여기 수영하는 데 얼마예요?” 이 대표는 “수영은 무료예요. 여긴 회사인데 직원들 수영장이에요. 원하시는 분들한텐 개방합니다”라고 답했다. 일행 중 한명은 “와, 나도 이런 회사 다니고 싶다”며 부러워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그렇다면, 금전적 동기도 낮고 일도 별로라면.. 무조건 다른곳으로 옮겨야 하는것 아닌가?

그런데.. 갈곳이 없다면..


한국의 기업환경은 In/Out이 원할 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어차피 평생직장은 없는데.. 결국 더 나쁜 사장이 되는게 가장 현명한것 아닐까? 돈이라도 많이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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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장 vs. 더 나쁜 사장

[청계광장]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그룹 대표|2012.06.11 09:57

여기 두명의 CEO가 있다. 한명은 ‘나쁜’ 사장이고, 다른 한명은 ‘더 나쁜’ 사장이다. 둘 다 ‘연봉 때문에’ 직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 ‘나쁜’ 사장은 연봉 때문에 부하들을 떠나게 만드는 CEO다. 직원들 입장에선 회사가 좋고, 계속 일하고 싶다. 하지만 물적 보상이 너무 약해서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 과외비, 아파트 대출이자,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 입장에서는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기웃거릴 수밖에 없다. 이직을 생각하다 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당연히 업무 몰입도는 낮고 일의 성과는 떨어진다.

그러다 가끔, 기사 있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CEO를 보면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한다. ‘자동차 유지비 조금만 줄여 그 돈 나한테 주면 정말 열심히 일 할텐데….’ 

돈 때문에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게 만드는 CEO가 나쁜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회사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CEO가 경영을 못한다는 얘기다. 회사의 전략, 마케팅, 사람관리, 재무관리 중 분명 어딘가에 ‘구멍’이 있다. 만약 회사는 돈을 버는 데 직원 보상이 적다면? CEO의 탐욕이 문제다. 버는 법만 알고 나누는 법을 모르는 나쁜 CEO 역시 직원들을 떠나게 만든다.

이제 ‘더 나쁜’ 사장을 얘기할 차례다. 연봉 때문에 부하들을 남아있게 만드는 CEO다. 직원들 입장에선 회사가 너무 재미없고 싫다. 하지만 물적 보상이 강하다 보니 직장을 떠날 수는 없다. 아이들 과외비, 아파트 대출이자, 풍족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 입장에선 이 정도 벌 수 있는 곳이 없으니 회사에 ‘붙어’있는 셈이다. 하지만 일의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당연히 업무 몰입도는 낮고, 일의 성과는 떨어진다.

그러다 가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친구를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한다. ‘부양할 가족만 없어도, 5년만 젊었어도 내가 하고 싶은 하며 살텐데….’

이런 직원들을 양산하는 회사의 CEO가 더 나쁘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부하의 내적 동기를 ‘거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는 분명 동기(motivation)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외적(外的) 동기'와 '내적(內的) 동기'로 구분한다. 화가를 생각해보자. 작품 활동 자체가 행복해서 붓을 잡는 화가는 내적 동기, 돈과 명예 때문에 붓을 잡는 화가는 외적 동기가 충만하다고 볼 수 있다.

돌고래를 예로 들어보자. 동물원의 돌고래들은 왜 춤을 출까?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보람 있고 기뻐서? 불행히도 아니다. 조련사가 던져 주는 ‘먹이’라는 외적 동기 때문이다. 부하를 ‘돈’이라는 외적 동기로만 조정(manipulate)하고 붙잡아(retain) 두는 CEO는 ‘리더’라기 보다 ‘조련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조련사 밑에 있는 부하는 불행하다. 왜? 스스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련사형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훗날 ‘어른아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글을 읽은 당신, 혹시 돌고래가 되어도 좋으니 먹이(월급)라도 실컷 받아 봤으면 좋겠다는 ‘서글픈’ 생각은 말자. 인간은 돌고래가 아니다. 외적 동기에 의해 ‘조련되는’ 삶을 살기엔 당신의 피가 너무 뜨겁지 않은가?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정보.

한국의 미국화의 단면.. 이대로 갈것인가? 기회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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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의 43.9% 부담 미·영보다 높아
국세청·통계청 자료 분석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6.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17.7%) 다음이다. 그만큼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하단 뜻이다.

 22일 한국조세연구원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이 38조4790억원으로, 전체(231조9560억원)의 6분의 1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상위 1%의 기준은 연 소득금액 1억원 이상으로 모두 18만 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2006년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한 결과다. 소득세 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 상위 1%를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세연구원 관계자는 “현재는 상위 1%의 연 소득이 1억원보다 더 높아졌을 것”이라며 “정확한 금액은 국세청의 과세자료 공개 제한에 따라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OECD가 공개한 상위 1% 최신 자료도 2000~2008년으로 제각기 다르다”며 “다른 나라와 객관적 비교에 쓸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유일한 자료가 2006년 국세통계연보”라고 말했다.


 OECD 주요 19개국(한국 제외)은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평균 9.7%를 차지했다. 19개국 중 우리나라보다 부의 쏠림이 심한 건 미국뿐이었다. 미국의 상위 1%는 연 소득 33만5861달러(3억8300만원) 이상으로 전체 소득의 17.7%를 벌어들였다. 3위는 영국(14.3%), 4위는 캐나다(13.3%)였다. 일본(9.2%)과 호주(8.8%)는 조사 국가 평균에 못 미쳤다.

 이는 한국은 소득 불균형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는 결과다. 우리나라는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가처분 소득 기준)가 0.315로, OECD 국가 평균(0.314) 수준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중간 수준이라고 평가돼왔다. 조원동 조세연구원장은 “지니계수처럼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엔 초부유층 표본이 빠져있다 보니 불평등 정도가 실제보다 과소평가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상위 1%는 세금도 많이 냈다. 2006년 상위 1%가 낸 소득세는 총 9조131억원으로, 전체의 43.9%였다. 영국(24%)이나 미국(40%)보다 높다. 우리나라가 영국·미국에 비해 소득이 많아질수록 세율이 더 높아지는 세금 구조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상위 1%의 모습은 어떨까. 본지는 이들의 최근 모습을 추정하기 위해 통계청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상위 1%는 평균연령 51.3세의 남성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 연 3억3728만원의 소득을 거뒀다. 직업은 주로 전문직(32.4%)이나 관리자(24.8%)다. 보유한 자산 총액은 평균 22억1352만원으로, 이 중 74%가 부동산이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하시모토 토오루..
현대 일본의 현실을 읽을수 있다.

문뜩.. 히틀러가 생각나는건 왜일까?
피폐했던 독일을 극우적 파시즘으로 극복하려 했던 히틀러.. ㅎㅎ

역사는 되풀이 된다던 이야기.. 틀리지 않다.
일본의 현실은 이제 다시금 극우적 사고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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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 그를 주목한다. 우리의 대중적 현실에서 토오루는 어쩔수 없는 등장인물일듯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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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토오루에 관한 기사 몇편을 살펴봤다.

역시 뉴스데일리는 믿을만한 뉴스는 아니다. 논리의 비약이 곳곳에서 보인다... 뉴스는 팩트가 중심아닌가. 거참.
암튼.. 토오루를 보면 기존정치세력과 교묘하게 선을 긋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또한, 법률적 근거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괜찮은 접근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탈법적 관행을 혁파하며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권리를 정확하게 행사하겠다는 논리... 나쁘진 않다.

하지만.. 뭔가 불안하다... 통합하고 소통해서 돌파하기 보다는 무조건 싸우려 한다.
기존에 잘못된 것을 무조건 자르려 한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했다면.. 정치를 뭐하려 하나.

일본의 정치현실이 토오루같은 인물이 득세할 수 밖에 없다는게.. 어찌보면 다행이다.
우린 그런 사람을 이제 안봐도 되는데.. 

앞으로 계속 살펴보겠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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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후 日, 천황제 폐지하고 대통령제 도입하나 (from newdaily)

한국 언론과 정치인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집착’하는 사이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그 중 일본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급부상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토오루의 인기 때문이다. 하시모토는 지난 21일 "총선이 앞당겨질 경우 전국적인 공천을 할 예정"이라고 언론에 밝혀 일본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시밭길 헤쳐 온 일본 정계의 ‘기린아’

2011년 11월 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가 오사카 시장에 당선되자 국내 좌파 언론은 ‘일본의 박원순(또는 안철수)이 당선됐다’고 보도했다. 하시모토를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하시모토는 안철수처럼 좋은 집안에서 자라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다. 그의 논리와 주장도 몇 년 동안 TV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전체로부터 검증받았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은 1969년생이다. 일본에서 ‘불가촉천민’이라는 부라쿠 출신으로 자라면서부터 차별을 받았다. 야쿠자였던 그의 부친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살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혼자 힘으로 당대 최고의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는 점 때문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였던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오오사카 부립 기타노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시절에는 럭비선수로 전국대회까지 출전했다. 고교 졸업 후 재수해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8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시모토는 대학 재학 시절 지금의 부인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그는 공부와 생계를 동시에 해나가면서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 가죽점퍼 장사를 시작했다 실패하기도 했다. 그가 법학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하시모토가 일본에서 유명해진 것은 TV프로그램 덕분이다. 하시모토는 당초 탤런트 프로덕션 회사를 상대로 변호사 활동을 하다 본인이 직접 프로덕션 소속 탤런트가 된 뒤 라디오와 TV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방송인' 하시모토는 2003년 도쿄로 진출, 니혼 TV의 법률상담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5명의 변호사가 출연해 독특한 이슈에 대해 법적해석을 내리는, 법과 코미디를 합친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하시모토는 뛰어난 언변과 빈틈없는 논리로 시청자에게 ‘쿨한 매력’을 보여줬다.

한 번은 방송에 “‘사랑하는 마지막 그 날까지’라고 새긴 다이아몬드 반지를 여자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그녀에게 차였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돌려받으려 하는데 가능한가?”라는 사연이 나왔다. 다른 변호사들은 법적인 논리를 내세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하시모토는 말 그대로 ‘쿨’했다.

“여기 10만 엔 있으니까, 가져가라. 남자가 쩨쩨하게…”

이런 행동은 겉치레에 집착하는 일본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무기력에 빠진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시모토는 이후 시사프로그램·토론회·문화행사에 얼굴을 내밀면서 “일본은 썩었다. 지금 고치지 않으면 영원히 어렵다”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졌다. 하시모토는 니혼 TV의 법률상담프로그램에서 “일본의 문제는 강한 자에게 약한 것보다 약한 자에게 더 약한 ‘잘못된 미덕’에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그가 오사카 부 지사에 당선된 뒤 처음 시도한 ‘혁명’은 ‘구제불능의 복지 시스템 개혁’과 ‘공무원 대량 감축’이었다.

“합법적이라면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경쟁시켜라”는 하시모토 정신

‘계파 정치의 철옹성’인 일본에서 무소속으로 오사카 부 지사에 당선된 하시모토는 2008년 2월 취임 첫 날 ‘오사카 부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예산 1,000억 엔 삭감을 발표했다. 자신의 월급 30%와 퇴직금 50%도 삭감했다. 

TV출연 당시의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언변과 논리가 뛰어난 변호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TV출연 당시의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언변과 논리가 뛰어난 변호사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시모토는 그때까지 운영하던 28개의 빈민 집단시설, 44개의 부 산하 법인을 모두 폐지하고, 일반직원 퇴직금, 비(非)상근 직원 보수, 의무교육 등에 들어가는 교육특별수당 등을 모두 삭감했다. 오사카 부 직할 주택사업과 문화 사업도 재검토하고, 오사카 부 인권협회 등 각종 시민단체와 문화단체에 대한 시 보조금을 모두 폐지했다.

오사카와 일본의 모든 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문화단체 등이 “시민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재자”라고 하시모토를 비난했다. 시민단체, 공무원 노조, 생활보호대상자들이 그를 따라다니면서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하시모토는 ‘일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는 자’를 둘러싼 ‘비즈니스’와 ‘교육을 인질로 삼은 무능한 교사’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오사카 학생들의 퇴학률·범죄율은 전국 최고다. 반면 학습률은 전국 최하위다. 오사카 어린이들은 미래에 대해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다. 그 원인은 무능한 학교 선생들에게 있다.” 

“학교 선생은 평생직장이 아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가야 한다. 9할의 선생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1할의 놀고먹는 무능한 선생들을 퇴출(退出)해야만 오사카의 미래가 보인다.” 

“아이들에게 말로 해서 안 될 때는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된다.” 

“능력 검증 없이 시간이 흐르면 진급하는 그런 인간들을 위해 세금을 낼 수는 없다. 애들이 그런 자를 본받으며 살아갈 미래를 생각해 보라. 승자승(勝者勝) 원칙의 경쟁이 필요하다.” 

이 같은 발언으로 하시모토는 오카사 사람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며 ‘혁명’을 시작했다. ‘혁명’은 계속됐고 ‘빈민구제 비즈니스 단체’와 ‘일교조’는 점차 설 땅을 잃었다.

혁명의 두 번째 목표는 ‘무능 공무원 감축’

2011년 11월 이번에는 오사카 시장이 된 뒤에는 새로운 ‘혁명’ 준비를 마쳤다. 2011년 12월 5일 하시모토는 오사카 시청에 출근했다. 취임 전이었지만 향후 시정(市政) 방향을 밝히기 위한 아침회의를 열었다. 그의 첫 발언은 이랬다. 

2010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그의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많다.
▲2010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만난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 그의 정책은 이명박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많다.

“시청직원들의 채용경위에 대한 정확한 보고서를 받고 싶다. 채용경위에 문제가 있을 때 재시험을 통해 자격을 묻겠다.”

이 발언은 1981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취임연설에서 일갈한, “현재 위기를 맞아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정부 자체가 바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했다. 

하시모토의 발언에 오사카 공무원들은 긴장했다. 오사카는 시민 1만 명당 공무원 수가 51.4명이라고 한다. 그 중 계장 이상 간부가 전체 공무원의 31.4%로 다른 일본 도시의 20%보다 월등히 많다. 이런 오사카 공무원들을 일러 하시모토는 ‘세금 갉아먹는 흰개미’라고 불렀다. 하시모토는 공무원의 30%인 1만2,000명을 감축하고, 퇴직한 시 공무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온 118개의 외곽단체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공무원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가 됐다. 하시모토는 공무원 인건비를 1년 내 10% 삭감하고, 최종적으로 30%까지 삭감한다고 약속했다.

일본 국민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건 2008년부터 시작한 ‘혁명’을 대부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반면 일본 정계와 그 주변에서 '공생'하던 집단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본 국민들, 좌파 시민단체와 관료주의가 만든 ‘복지천국’에 분노

하시모토는 기존 정치권은 물론 ‘자칭 시민단체’와 ‘무조건적인 복지’를 혐오한다. 오사카에는 하시모토가 싫어하는 것들이 모두 뭉쳐 있는 곳이다. 실제 2010년 5월 오사카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 이해가 된다.

2010년 5월 일본 오사카에 입국한 푸젠성(福建省) 출신 중국인 48명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오사카 시청으로 몰려가 생활보호대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오사카에 있는 ‘자칭 친척’을 통해 합법적으로 오사카시에 거주하기로 돼 있었다. 오사카시는 외국인이라도 체류자격만 있으면 생활보호대상자에 포함시켜 준다. 

일본 현행법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남의 나라 국민이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해보라.

오사카 시의 경우 2011년 7월 기준으로 15만1천여 명이 생활보호대상자라고 한다. 일본 전체로 보면 1천명당 16명이 생활보호대상자지만, 오사카는 1천명당 6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에게 드는 돈은 2010년 말 기준으로 2,916억 엔, 시 일반예산의 17%에 달한다. 결국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때문에 경찰이나 환경미화원에게 줄 돈이 부족해 치안이 엉망이 되고 거리는 쓰레기로 뒤덮이는 일까지 생겼다. 

2010년 말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는 202만 명, 가구는 146만 세대에 달한다. 단순통계로 보면 일본 인구 1천명당 16명 정도가 생활 보호대상자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3조4천억 엔(한화 47조6천억 원) 가량. 우리나라 국방예산보다 더 많은 돈이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들어간다는 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본의 ‘자칭 시민단체’와 관료주의 영향이 컸다. 일본에서 우파나 극우는 ‘국민’이나 ‘신민’이라는 표현을 쓴다. 좌파는 ‘시민’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시민’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체면 99%는 ‘좌파 조직’이라고 본다. 

일본 국민들은 ‘시민’이나 ‘국민’이란 말이 들어간 단체를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극단적인 성격’ 정도로 받아들인다. 특히 정치적인 뜻의 ‘시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정통이 아니라 이단(異端), 상하 관계를 무시하는 독불장군’인 사람으로 받아들인다고.

이런 일본 ‘시민단체’들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와 함께 등장해 정치인, 관료와 함께 각종 복지제도를 만들었다. 복지제도를 만들면 정치인은 표를 얻을 수 있고, 관료는 감독 권한과 예산 배정권한이 생기며 시민단체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시민단체’들은 최근 일본에 노숙자들이 증가하자 생활보호대상자를 내건 ‘비즈니스’로 돈을 벌고 있다.  

하시모토는 이런 시민운동·시민단체에 반대한다. 말 뿐이 아니었다. 그동안 일본 정치인들은 시민단체가 협박을 하면 ‘타협’을 했다. 하지만 노조나 일교조 등으로부터 ‘살해위협’까지 받은 하시모토는 ‘타협’하지 않았다. 이제는 오사카 시민들도 하시모토의 ‘시민단체’ 지원금  전면 백지화를 응원하고 있다.

하시모토가 원하는 일본은 ‘보통 국가’?

이런 하시모토가 늘 강조하는 것은 “合法でさえあれば道徳にしばられず競争すべきだとしている(합법이기만 하다면 도덕에 얽매이지 말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의 변호사시절 홈페이지.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아이돌'에 가깝다.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부지사의 변호사시절 홈페이지.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아이돌'에 가깝다.

하시모토는 조총련계에 대한 시각도 부정적이다. 그는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린 학교에 어떻게 일본 국민의 세금을 지원할 수 있는가”라는 말과 함께 오사카의 조총련계 고교에 대한 보조금을 끊었다. 오사카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시모토는 그동안 어떤 정치인도 손을 못 대던 ‘부라쿠’ 지원금도 끊겠다고 약속했다. 부라쿠 주민 중 하시모토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의외로 반발은 심하지 않다고 한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에 대한 태도도 명확하다. “노래는 잘 못하지만, 열심히 국가를 부르는 모습에 감동한다”며 권투경기장에 들러 직접 ‘기미가요’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국가가 갖는 의미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인간은 교육자가 될 자격이 없다”며 기미가요를 따라 부르지 않거나, 심지어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학교 교사들을 맹비난했다.

이런 하시모토가 2007년 12월 오사카 부 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자민당이나 민주당, 공산당, 사회당은 그를 멀리하며 공천을 주지 않았다. ‘기성 정치인’은 하시모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년이 흐른 지금은 ‘오사카 유신의 모임’이라는 지역 정당을 이끌고 있다. 그의 후배가 오사카 부지사를 물려 받았고, 자기 스스로 그보다 낮은 오사카 시장이 됐다.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은 물론 자민당, 일본신당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야쿠자와 상부상조하며, 밤이 되면 게이샤를 옆에 끼고 여야가 함께 ‘국사(國事)’를 논하던 ‘기성 정치인’들 대신, 20대에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둔 젊은 정치인, 변호사로 TV에 출연해 명쾌한 논리로 개혁을 설파한 하시모토에 열광하고 있다. 하루 200~300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그의 능력도 기성 정치인과 비교된다.

36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갖고 있는 하시모토의 영향력은 ‘무기력’에 빠진 젊은 세대들에게 더 크다는 점도 중요하다. 2008년 오사카 부 지사 선거 때 하시모토를 부라쿠 출신이라고 비난한 글이 인터넷에 오르자 수천 명이 달려들어 무차별 공격하기도 했다.

일본 일각에서는 하시모토의 ‘오카사 혁명’이 동북대지진으로 ‘일본의 중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도쿄 정치를 넘어서리라고 예상한다. 

하시모토는 ‘오사카 시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총선출마를 않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정계는 그가 총선에 출마할 때가 되면 나라 전체에 큰 돌풍이 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하시모토의 궁극적 목표는 ‘정상적인 시스템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대접을 받는, 보통국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우리나라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 하시모토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 Pacific Partnership)로 미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하시모토는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더 이상 빚은 없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무슨 책임을 지라는 것이냐”라고 반문한다. 하시모토는 반핵(反核)·비핵(非核)에 반대하며, 일본도 중국과 북한에 맞서기 위해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일본 우익도 조심스레 그에게 손을 뻗고 있다.

하시모토가 총선에 나서게 되면 당선은 물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당선 후 2015년 정도에 내각제 대신 이원집정제나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시모토가 지난 21일 "총선이 실시될 경우 우호정당과 함께 전국적인 공천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혀 그의 '국가 개혁' 행보는 더욱 빨라질 수도 있다.

만약 하시모토의 ‘혁명’이 계속 성공하고, 세력을 갖춰 ‘개헌’에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2015년 한미연합사 해체 후 그동안 주일미군 주둔을 이유로 국방분야를 홀대하던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맞선다며 본격적인 군비확충을 할 경우 우리나라는 ‘안보 샌드위치’나 ‘아태동맹의 계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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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말 실시된 오사카 시장선거에서 하시모토 도오루가 60%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일본 언론들이 그를 극단적인 주장과 독설을 펴는 포퓰리스트, 파시스트라고 비판해왔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최근의 신문 여론 조사에서는 54.8%가 하시모토의 국회 진출을 희망했다.

 젊은이들 중에는 "오사카가 아닌 국제적으로 정체된 일본을 바꿔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시모토의 총리 당선까지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장 선거 당시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여야 의원들이 오사카를 수도 도쿄도(東京都)와 같은 도(都)로 승격시키려는 하시모토의 구상을 연구하고 협력하겠다고 표명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자민당은 지난 14일 대도시 문제에 관한 연구회를 열고 오사카도(大阪都) 구상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자민당 의원들은 하시모토의 눈치까지 보고 있다.

 하시모토는 지방 중심 정당인 '유신회'의 대표로 뛰어난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 다들 무서워하고 있다.

 그는 원래 변호사 출신이지만 TV 탤런트로 더 알려져 있다. 지난 2003년 4월부터 2007년까지 인기 TV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그의 솔직한 발언이 인기를 끌었다. 인기에 편승해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 부지사에 당선됐다.

 한국에도 관심을 가져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해 서울과학고등학교에서 영재교육의 현장을 시찰한 적이 있다. 시찰 후 차세대의 리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하시모토의 오사카도 구상은 오사카시와 오사카부(府)를 합병하고 10~12개 특별 자치구에서 이루어지는 오사카 수도를 신설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중 행정의 낭비를 줄이고 산업기반의 정비와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오사카도 구상뿐만 아니라 시대에 맞는 구상도 발표하고 있다. 그 하나가 탈원자력발전소다.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 관서지방의 자치단체와 협력해 새롭게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관서지방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대의 공약은 공무원 개혁이다. 오사카시는 비슷한 규모의 인구를 가진 나고야, 요코하마에 비해 공무원 수가 많고 월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면 시에서 채용된 버스 운전기사의 평균 월급이 민간업체의 2배에 가깝다. 학력을 속이고 채용된 직원이 400명 이상인 것도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하시모토는 인사관계를 엄격히 해 일할 의욕이 없는 직원의 월급을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고도 할 생각이다.

 노조가 반대하고 있지만 하시모토는 철저히 대처해 나갈 태세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개혁을 통해 오사카를 바꿔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오사카는 에도 시대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경제 중심이었다. 오사카는 일본의 부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 이후에 파나소닉 등 오사카에 있던 기업들이 대부분 본사를 도쿄로 옮겼다. 그 후 범죄가 늘고 인구는 감소했다. 오사카시의 도 승격에는 지방자치법을 비롯한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는 등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만약 실현되면 메이지 유신 이후 계속된 지방자치제도의 개혁이 실현된다.

 하시모토는 정치적인 적을 '바보'라고 부르고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 기자의 트위터에서 본명으로 공개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의 하시모토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그러나 하시모토가 일본을 바꿔줬으면 하는 목소리도 높다. 오사카시 선거에서 하시모토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특히 하시모토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대조적인 면이 있다.

 노다 총리는 주변에 배려는 잘하는 편이지만 강한 개성이 없고 일본의 소비세 개혁이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에 있어 별다른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인기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하시모토의 정치적 지명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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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고이즈미’ 42세 하시모토 “일본정치에 독재 필요”
[중앙일보] 입력 2011.11.05 00:06 / 수정 2011.11.05 00:43

“오사카 시장과 일 못하겠다” … 지사직 던지고 시장 출마 파격

하시모토 전 오사카부(府) 지사
‘젊은 고이즈미’ ‘제2의 오자와’.

 요즘 일본 정치권의 최대 화제 인물인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42·사진) 전 오사카부(大阪府) 지사를 일컫는 말들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민주당 대표처럼 카리스마가 강한 하시모토 전 지사를 두고 일각에선 ‘독재자’로 폄하한다. 하지만 리더십 부재로 고민하는 일본에서 모처럼 강한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엇갈린 평가도 만만치 않다.

 하시모토는 지난달 말 오사카부 지사직을 내던졌다. 툭하면 충돌하는 히라마쓰 구니오(平松邦夫·62) 오사카 시장과는 같이 일하기 힘들다며 이달 27일에 치러지는 오사카 시장 선거에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곤 오사카시(市)와 사카이시(市) 등으로 이뤄진 오사카부(府)에서 시(市)와 부(府) 단위 행정구역을 없애고 오사카도(都)로 단순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같은 사업을 이중으로 벌이는 비효율을 근본부터 뜯어고치기 위해선 도쿄도()에 이은 제2의 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자신이 한 단계 격을 내려 오사카 시장이 된 뒤 ‘오사카도’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시’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 시장이 되겠다는 역발상이다. 대신 오사카부 지사 보궐선거에는 자신의 최측근을 내세웠다.

고이즈미 전 총리
 하시모토의 거침없는 언동은 ‘하시모토류(流)’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지금 일본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독재”라고 말했다. 오사카도 구상에 반대하는 기존 정치권을 향해선 “(이번 선거는) 여당을 비롯한 기존 정당과의 대전쟁이다. 이걸 피하면 안 된다. 하지 않으면 ‘결단력이 없다’고 비판하고, 하면 ‘독재자’라고 비난할 것이다. 어차피 비난당할 바에야 하고 비난받는 쪽을 택하겠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아사히신문은 4일 “절규하는 듯한 연설, ‘저항세력’을 만든 뒤 이를 비판하는 정치수법은 우정민영화를 추진한 고이즈미 전 총리를 방불케 한다”고 비교했다.

 하시모토는 변호사 시절 오랫동안 법률상담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명도를 쌓은 뒤 38세이던 2005년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서 당선됐다. 취임 일성으로 직원들 앞에서 “당신들은 지금 파산회사의 종업원”이라고 몰아세운 뒤 공무원 인건비와 각종 단체 보조금 삭감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오사카부는 그의 취임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여야와는 거리를 둔 ‘오사카 유신(維新)의 모임’을 구성, 지난 4월의 오사카 지역 지방의회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넘는 약진을 보였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일본의 총리는 (국민이 직접 뽑는) 공선(公選)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론을 반복, “다음 단계로 총리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사상적으로는 극우에 가깝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미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이런거 아닐까?

한편에선 월가의 탐욕과 정치권의 유착, 거짓이 판치는 정치판이 득세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애플과 구글과 같은 창조적 혁신기업이 등장하고 아이디어로 창업이 가능한 그런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그런 미국이 부럽다.
한국의 젊은이는 그런 미국으로 떠나야 할까?
그렇게 해서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성공하고 한국에 그런 문화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나도 언젠가 그곳에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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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일) 구할 때 `아이 케임 프롬 MS(마이크로소프트 출신입니다)`보다는 `아이 케임 프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출신입니다)`이라고 하면 한 번 더 쳐다 봅니다."

서울과학고와 코넬대를 거쳐 시카고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받은 정재훈 씨(35)는 한국 유수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제2의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 외곽 서너 평짜리 사무공간에서 만난 정씨는 "실패가 빠를수록 좋다는 의미인 패스트 페일(fast fail)이 요즘 키워드"라며 "모바일 AR(증강현실) 등에서 다시 사업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작은 벤처에 잘게 나눠 투자하는 마이크로VC(벤처캐피털)가 많아 숨통이 트이고 있다고도 전했다. IT(정보기술) 메카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어느 때보다 조용하지만 활기찬 창업 열풍이 일고 있다.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기업은 물론 직원 5명 이하 벤처까지 휩쓸었던 감원 바람이 스타트업이란 새싹을 돋게 하는 자양분이 되고 있는 느낌이다.

복직하지 못한 수많은 엔지니어는 물론 기업에 몸담고 있는 기술자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가세하고 있다. 일을 마치고 밤에 2~3명씩 벤처 사무실로 다시 출근해 미래를 준비하는 `문라이트 워커`가 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기업이 태어난 요람인 플러그&플레이(벤처 사무공간이 모인 빌딩)도 입주경쟁이 치열했다. 이곳에서 몬스터 게임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접목하는 사업을 키우고 있는 캐머런 씨는 "밤에 공동 창업자들과 합류해 일하며 내년 상반기에 소액 펀딩을 받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대학들에선 각종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 움직임이 활발하다.

실리콘밸리 한국인 엔지니어 3000여 명이 모여 만든 단체인 K그룹을 최근 맡은 조성문 공동대표(35ㆍ오라클 프로덕트 매니저)는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이 각종 창업 프로그램에 300대1 정도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다"며 "주제별로 교육받다 2~3명씩 자연스럽게 팀이 돼 창업하고 나중에 멘토가 지분을 갖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윤종록 벨연구소 특임연구원(연세대 융합대학원 교수)는 "비즈니스 크리에이션(사업창조)이 중요해지면서 지식창업경제 시대가 됐다"며 "미국 대학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는 학생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학생을 배출하는 쪽으로 교육 방침을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고액 연봉 뿌리치고 2~3명씩 모여 밤마다 창업준비

- "I came from startup" 대기업 출신보다 더 인정
성공적 엑시트 위해 매출낼때까지 창업자 연봉 無

◆실리콘밸리 스타트UP◆

"IPO(기업공개)를 하면 페이스북 시가총액이 115조원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지만, 현재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마운틴뷰에 집 한 채만 있고 돈이 없어 항상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20여 년간 벤처창업 지원 활동을 해온 김종갑 매크로비아파트너스 대표는 "SNS 거품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요즘 밴처캐피털들은 투자할 기업이 수익모델이 있는지를 철저히 검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문화 자체가 한국과 다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투자한 회사가 매출을 올리기 전까지는 창업자 연봉을 주지 않는 게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는 것. 창업자는 나중에 회사를 키운 뒤 엑시트(지분을 팔아 큰돈을 확보)할 수 있으므로 이런 방식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따라서 투자 금액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사업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창업자는 거지꼴이 될 수도 있다. 일부 한국 벤처 창업가들이 투자를 받아 사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여기선 생겨나기 어렵다. 2주마다 이사회를 열어 철저히 창업자 그룹을 감시한다. 출장 때 창업자가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하는 것도 지적한다. 대신 핵심 업무를 맡은 팀장이 비즈니스클래스를 타면 그냥 넘어가는 문화다. 창업자라도 밴처캐피털에서 투자받는 순간 특정한 소임이 없으면 이사회가 바로 해고하기도 한다.

이처럼 냉혹한 투자문화를 뿌리로 둔 채 실리콘밸리에선 크게 세 가지 붐이 일고 있다. 한 번에 큰돈을 투자하는 대신에 소액을 벤처에 투자하는 마이크로VC(벤처캐피털)가 늘고 있다. 두서너 명씩 모여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는 공간인 플러그&플레이가 달아오르고 있다. 대학생들이 자생적으로 만드는 창업동아리 프로그램도 많아졌다.

뉴스콥이 운영하는 다우존스 실리콘밸리 지사에서 인터넷사업을 담당하다 그만두고 최근 창업을 모색하는 피터 김씨(44)는 "얼리스테이지(초기단계) 벤처에 투자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3~6개월간 프로그램과 사무공간을 제공해주는 식인데 Y콤비네이터, 파운더스쿱 등에 많은 학생과 엔지니어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팰러앨토에 위치한 스탠퍼드대학 내 창업동아리 파운더스 수프(Founders` soup)를 만든 노범준 씨(34)는 "미국은 공대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창업 환경을 만들어가는 게 특징"이라며 "대기업들도 아이디어를 창업으로 연결하는 인큐베이팅 그룹을 운용할 정도"라고 전했다.

지난 14일 기자가 찾은 실리콘밸리 서니베일에 위치한 플러그&플레이(구글 페이스북 등이 처음 사업을 시작한 창업센터)는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할 만큼만 어두운 조명에 복도엔 커다란 지구본들이 걸려 있었다. 페이스북 본사에 만국기가 걸려 있는 것과 비슷했다.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의지가 읽힌다.

플러그&플레이는 전원만 꽂으면 실행된다는 뜻으로, 창업자를 위한 벤처공간이다. 상대적으로 임차료가 싸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응모해서 심사받고 선정돼야 한다.

에릭 리 매크로비아파트너스 비즈니스개발 부사장은 "실리콘밸리 창업은 대학, 소기업, 대기업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통해서 키워진다"고 강조한다.

대학들은 학과 과정에서부터 논문보다는 아이디어와 특허를 상용화하는 커리큘럼을 만드는 추세다. 실제 비즈니스 특허를 강의에 적용해 팀 단위로 특허권자와 상의해 어떻게 이를 비즈니스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토의한다. 비즈니스 플랜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성적이 매겨지고 그 자리에는 현지 투자자들은 물론 대기업 신사업 전문가들이 배석해 평가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방송ㆍ영화ㆍ교육ㆍ유아 관련 동영상을 IPTV 방식으로 전송하는 사업을 하는 앤티비(&TV) 수비야 수브라마니암 이사(49ㆍ인도계 미국인)는 "사업을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확대하기 위해 조사를 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는 살아 있거나 죽은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쌓여 있는 기름진 땅"이라고 표현했다.

[새너제이 = 유진평 모바일부장]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가끔 이런말 들으면 짜증난다.
아니.. 너무 무책임하다.

오래된 절에서 오랜 수련을 한 고수 혹은 고승이 인생 살아가는게 별거 없다 하다고 하면.
보통사람들은 그 내공을 이해하지 못한체.. 그저 겉모습만으로 별거 없는 인생을 살수도 있다.

아니 그게 전부라고 믿게 된다.

김범수의 "악착같이 살지마"라는 조언은 그런 고수의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본인은 오랜 기간동안 악착같이 살아왔으면서.. 그래서 뭔가를 이루었으면서(한게임, NHN 등) 그리고 또 이루었으면서(카카오톡).. 이젠 다른 사람은 "악착같이 살지마"라고 한다면..

어찌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거참..  그저 무책임하는 말뿐..  

돈오를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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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만든 이 남자,
"악착같이 살지마" 의외의 조언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7>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최우영 이현수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11.10.19 05:30|조회 : 14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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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사무실 책장에는 이런 책들이 꽂혀 있었다.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 '드림 소사이어티' '소통형 인간'··· "자기가 잘하는 걸 하면서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생태경제를 만들고 싶다"는 김범수. 카카오의 모든 직원이 직책 떼고 영어이름으로 부르도록 한 브라이언(Brian) 김범수. 그의 바람은 고스란히 책장에 녹아있었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가난 딛고 입학 후 팽팽 놀던 서울대생
휴학시키고 함께 밤새 게임 '별난 아빠'
"문제를 정의하라, 관점을 바꿔보라"


PC통신 유니텔을 만들고, 한게임을 만들고, NHN을 만들고, 그리고 카카오톡까지 만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45).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줄 알았다. 아무래도 ‘있는 집’ 자식들이 보고 듣는 것도 많아 창의적인 일에 강하다고 하니깐. 험하게 자란 얼굴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는 ‘없는 집’ 자식이었다. 그것도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야 했던 아주 ‘없던 집’ 자식이었다.

“어머니하고 같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어요. 지방에 돈 벌러 다니신다고 말이죠. 2남3여 맏아들인데 대학에 간 건 저 혼자뿐이었죠. 그래서 저한텐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모성애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 말입니다.”

그래서 김범수도 힘들어 하는 청춘들에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꿈’을 주문할 줄 알았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장승수 변호사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반대였다.

“스스로에게 희망을 고문(拷問)해선 안될 것 같아요. ‘내가 안 되는 건,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죠.” 김범수는 희망조차 고문하며, 스스로를 달달 볶아야 살아남는 지금 세상에 대해 “이의(異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힘들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에서 출발하자”고 얘기했다.

“몰래바이트 첫 월급으로 라면 사먹을 때, 울컥했다”

김범수의 부모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경우였다. 아버지는 중졸,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하면서, 어머니는 지방에 머물며 식당일하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할머니까지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죠.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어머니 사랑을 많이 못 받았던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더라고요.”

김범수가 중학생때 아버지가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작은 집을 장만하기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났다. 그래서 재수를 할 때는 혈서까지 쓰면서 독하게 공부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니까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될 것 같았어요. 마음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 베서 혈서를 썼죠. 3번을요. 담배 끊으려고 ‘까치담배(낱개로 파는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진짜 힘들 때만 피자고 했죠. 1년 후에 2개비가 남았더라고요.”

대학(서울대 산업공학과)에 들어간 후, 그는 먹고 사는 게 막막했다. “1학년에 딱 들어갔는데 점심 값이 없었어요. 친한 친구도 없었고, 소심해서 점심 사달라고 엉겨 붙기도 그렇고, 굶고 다녔죠. ‘돈 벌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땐 과외가 금지였지만 ‘몰래바이트’ 무지무지하게 했습니다. 첫 월급 15만원 받아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먹는데 울컥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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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연결된 세상에 대한 첫 경험, 이게 뭐야, 대체!”
눈물 젖은 라면 먹으며 학비를 벌었으면 공부도 독하게 했을 법 한데 김범수의 대학생활은 정반대였다. “재수 1년을 워낙 힘들게 해서 그랬는지, 보상 심리랄까, 고스톱 포커 당구 바둑에 푹 빠졌어요. 교수할 것도 아니고, 서울대 졸업하고 취직 못할 것도 아니고, 이왕 놀 거면 도둑질 빼고는 다 해보자 싶었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런 숱한 경험들이 버려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하는 게 첫걸음인 것 같아요. 한게임 만들 때도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게 뭐지’하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게임과 잡기, 이런 걸 온라인으로 옮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밤새워 놀았던 경험들이 온라인에서도 되겠다 싶었죠.”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가난하다고 모질게 공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질게 공부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빠지고, ‘내가 잘하는 것’에서 길을 찾는 것. 험하고 힘든 청춘일수록 말이다.

김범수가 '연결된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거 돈 되겠네’가 아니었다. ‘이게 뭐야, 대체’였다. “대학원 시절 BBS(전자게시판시스템, PC통신의 초기형태) 사업쪽으로 창업한 후배 사무실에 갔는데, 이게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제가 모르던 세상이 존재하더라고요. ‘직접 만나서 떠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채팅을 한다? 이게 뭐야, 대체’ 싶었죠. 연결된 세상에 대한 첫경험이었죠,.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3개월을 후배 사무실에서 합숙하면서 배웠죠. 졸업하고 컴퓨터 원 없이 쓸 수 있는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결심했죠.”

“내 성공의 비결은 영화 ‘올드보이’와 피카소”
김범수는 늘 반 발자국씩 앞서왔다. 삼성SDS 동료들이 코볼, 포트란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있을 때 그냥 다 건너뛰고 윈도에 집중했고, 동료들이 프로그래밍에 집중할 때 유니텔 사업에 자원했다. 인터넷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회사 때려치우고 나와 한게임을 차렸고, 아이폰이 출시되는 것을 보고 모바일 메신저에 주목했다. 남들보다 반발자국씩 앞서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15년을 가두잖아요. 최민식이 ‘어떤 놈이 대체 날 가뒀나’ 고민하고 관객들도 그 느낌을 쫓아가죠. 하나씩 비밀이 풀어지니까 ‘저래서 가뒀구나’ 하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나 싶었는데 유지태가 딱 한마디합니다. ‘당신이 틀린 질문을 하니까 틀린 답만 찾을 수밖에 없다’고. ‘왜 가뒀나가 아니라 왜 풀어줬나가 올바른 질문이다’고 말이죠. 거기서 땅 때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김범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인지하는 능력,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의 능력은 답을 찾아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어떤 어떤 문제를 풀어봐’라고 말이죠. ‘어떤’ 문제를 풀어보라고 할지가 경쟁력이죠.”

그는 ‘관점의 이동’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대부분 인간이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데, 다른 관점으로 사물을 보자는 것이죠. 피카소는, 남들이 눈에 보이는 걸 그릴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서 세계 최고가 됐죠.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 이걸 내재화하고 습관화하면 경쟁력이 되는 거죠.”

PC통신을 처음 봤을 때 ‘이제 뭐야, 대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동료들이 포트란이라는 현재에 매몰됐을 때 다 건너뛰고 ‘다음엔 뭐지?’하며 윈도와 유니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모두가 인터넷에 대해 두루뭉술한 느낌을 가지고 있을 때 ‘인터넷이 뭐야’하며 온라인으로 밤새 노는 것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새로운 것으로 무얼 하지? 전화기란 게 대체 뭘까?’라며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 이게 바로 그의 경쟁력이었다.

“사건 A가 발생했는데 한발 앞서 사건 B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것, 바로 이것이 남들이 모르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길게도 필요 없어요. 딱 6개월만 앞서 다르게 보고 질문을 던지면 웬만한 건 다 준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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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애들 휴학 시키고 PC방서 밤새 게임하고 노는 아빠”

김범수는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 이해진 사장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된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친 이후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는다. 그러다 2007년 8월 대표직을 던진다. 성공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돈 많이 버는 게 성공이라 정의해버리고 달려온 것 같았죠. 어릴 때 트라우마 때문이었겠죠. 멈춰야겠더라고요. 이해진 만나서 그랬어요. ‘잘 모르겠다. 난 일단 가족들에게 가야겠다’고.”

김범수는 다 털고 가족이 있던 미국으로 떠났다. 애들과 놀아주고 학교 데려다주면서 1년을 보냈다. “그런데 뭔가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더라고요. 내면으로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것, 의미가 있는 것, 가치가 있는 것 말이죠. 돈을 얻은 대신, 내가 잃어버린 것 말입니다.”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다시 귀국해 음악에 빠지고, 책에 빠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했던 게 저한텐 새로운 축복으로 다가왔어요. 이 나이에 말이죠.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물었죠. 행복하냐고, 어떤 꿈이 있냐고.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까 약간의 힌트가 보이더라고요.”

김범수는 너무 외로워서 “1년만 휴학하고 한국서 놀자”고 미국에 있던 가족들을 설득했다. “큰 애는 고1, 둘째는 중3이었는데 1년 늦게 대학가면 어떠냐 싶었죠. 나도 재수했는데. 넷이서 여행도 가고 당구도 치고 별 걸 다해봤죠. 아무 것도 못하게 하고 놀게만 했어요. PC방도 자주 갔어요. 저도 게임 잘하고, 와이프도 고수거든요. 딸이 문제였는데 아들의 지도로 실력이 일취월장했죠. 넷이 게임하다보면 금세 새벽 4시였어요. PC방 주인이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행복했어요.”

그렇게 혼자서, 또 가족과 놀기를 3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그는 가족들에게 다시 양해를 구했다. “출근 좀 해야겠다”고. 그러고서 김범수가 세상에 들고 온 게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면서 말이다.

“악착같이 살지마라. 다만 관점을 바꿔보라”

김범수는 “카카오톡이 꿈이 묶여있는 젊은이들이 그 꿈을 훨훨 펼칠 수 있는 플랫폼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규모의 경제에서는 재벌이든, 언론이든, 포탈이든 독점하고 줄 세우는 것이 꿈의 경지였잖아요. 또,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에서 금융이 일으키는 가치라는 게 별 거 없는데 가져가는 건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새로운 실험이 성공한 거에요. 애플이 만든 생태계에 35만개 앱이 활동하고 있어요. 다 같이 먹고 사는 구조가 가능해진 것이죠. 카카오톡도 수혜를 입었고요.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젊은 친구들이 활개칠 수 있는 툴을 만들어주는 것, 플랫폼을 만들어주는 거에요. 카카오톡 가입자가 2500만명인데 이건 엄청난 기반이에요. 음악이건, 책이건, 동영상이건, 콘텐츠 하나로 전세계에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해리포터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에요.”

김범수는 청춘들에게 악착같이 살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모바일로 소설을 연재해 500억원 대박을 낸 작가가 있어요. 유명작가가 아니에요. 짧은 문장과 빠른 템포로 모바일에 맞췄던 거죠. 이제 고시공부처럼 과거지식을 쌓는 트레이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어요. 글을 쓰고 싶은 친구라면 글쓰기 연습을 하는 동시에, 글쓰기와 패러다임 변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에 대한 스킬을 쌓으면서 동시에 관점을 바꿔 세상을 볼 줄 아는 것, 그 두개가 딱 만나는 선에서 답이 나오는 거 같아요.”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역삼동 카카오 사무실로 찾아가면서 기자는 크게 성공한 김범수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들에게 어마어마한 노력을 강조할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오히려 악착같이 살지 말라고 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고문하지도 말라고 했다.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다만 관점을 이동해볼 것, 문제를 정의할 것을 주문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놀이를 해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 바로 이것이 김범수의 성공 비결이었다.

최우영 이현수기자 young@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한국에서 벤처는 어떤의미일까?
패배자 양산, 무의미한 도전, 그리고 절망..

1990년대 초반의 벤쳐붐 이후로 우리사회는 급속하게 보수화 되었다.
그렇게 맞이한 2011년..

20년도 체 안되는 사이에. 미국은 IBM, GE, MS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데.
한국은 그대로다.
여전히 삼성, 엘지, SK, 현대가 우리사회를 지배한다.

한국이 점차 일본화 되는건 분명하다.
지진만 없을뿐.. 다른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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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튼튼한 벤처와 중소기업이 많아지려면.. IT산업 특히, 부품산업과 S/W산업이 발달해야 한다.
IT부품이 발달한 일본의 저력은 지진과 원자력으로 국가적 비상사태에서 더 놀라울 정도로 나타난다.
일본 IT부품이 없어 아이패드 조차 생산이 지연되고 있으니,
S/W 산업이 발달한 미국은 구글과 페이스 북 그리고 MS, 오라클까지 세상 모든 S/W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삼성과 엘지는 그저 그 위에 T.V를 만들고, 스마트폰을 끼워넣는다.

IT부품과 S/W가 청년실업을 해결할 열쇠이고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지만,
왜 국가적 지원이 한계가 있냐?
 건설이나 유통같은 "정치적 이권"이 없기 때문이고,
 중공업과 같이 투자 Barrier가 있는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도 정치적 이권과 연계된다)

즉, 정치하는 사람이나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사람들에겐.. IT는 돈 안되는 산업이다.
그러니.. MB정권에서 정통부를 해체하고 산자부에 통합한것 아니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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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교수의 끊임없는 외침이 있다한들 한국에서는 변화가 쉽지 않다.
실력있는 사람이라면.. 기회가 있는 미국이나 앞으로 더 기회가 생길 중국으로 가야 할것 같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똑똑하다면 벤처를 하기보단 전문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진짜 똑똑하다면 권력을 잡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

그게 한국이 진짜 일본 처럼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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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서해성의 직설] “페이스북 저렇게 무방비로 놔둬도 됩니까”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가 정리하는 IT벤처산업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
한겨레
»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사명감 없는 이들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운영하면 바이러스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제43화 ‘소셜 백신’을 찾아라

‘석좌교수’에 대한 오해부터 풀자.

그가 준 명함을 보며 상식적인 개념을 떠올렸다. ‘외부기금으로 초빙해 가끔 강의하는 사회 저명인사나 석학.’ 다시 말해 ‘한가한 타이틀’로 여기기 십상이다. 사실과 달랐다. 풀타임 정교수였다. 다만 연구비 보조를 받기에 ‘석좌교수’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는 주민등록까지 대전으로 옮기고, 후배들을 위한 조언자로서 승부를 건다고 했다.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안철수(49) 석좌교수를 모셨다. 본인이 설립한 안철수연구소의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연구소 사무실엔 한달에 딱 두번 올라온다. 그날 중 하루를 골랐다. 1년에 쏟아지는 강연 요청이 3000여건에 이르는지라 직설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100건 중 98건을 거절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안철수 교수와 함께 한국 사회를 치유할 ‘소셜 백신’을 찾아보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아작난 한국 아이티(IT)벤처산업의 현실, 소셜네트워크의 위험성을 거쳐 ‘정의란 무엇인가’에까지 이야기는 흘러갔다.

본문에 넣지는 못했지만, 그는 뜻밖에도 ‘386세대의 숙명’을 말했다. 에피소드도 하나 들려줬다. 1980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이념서클에 가입해 공부했다고 한다. 한데 고향인 부산에 잠깐 내려간 사이 휴교령이 떨어졌다. 그 탓에 한참을 서울에 못 올라왔고, 서울의 친구들과 ‘진도’(!) 차이가 나면서부터 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의 성향이 어디를 가겠냐”며 웃었다.

그처럼 성실하게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땐 약 5초 단위로 “네에… 네에… 네에” 하는 추임새를 이어나갔다. 그러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되받았다. 진행·정리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서해성(이하 서) 디지털 화타(옛 중국의 명의), 이제마, 허준 중에서 고른다면?

안철수(이하 안) 요즘 이런 느낌인데요.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데 뒤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나서 돌아봤더니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웃음). 부담스럽죠.

한홍구(이하 한) “얘가 전교 1등이래”라는.(웃음)

대중적 관심에 대한 피로도 같은 거겠죠. 바이러스란 대체 무엇인가요?

디지털 쓰레기죠. 자기만 쓰레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치우는 사람까지 끌어들여 뻥 하고 사라지는. 요즘은 돈벌이로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벌이가 되지요?

예전에는 광고를 누르면 검색회사가 돈을 버는데, 요즘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대리점’을 운영하거든요. 사용자 클릭을 가지고 오면 수수료를 더 주게 되어 있습니다. 아예 그런 프로그램들을 심어놓고 모으기도 해요. 중국 같은 데에 개인정보 암시장까지 생겼고요. 옛날엔 아마추어가 해킹을 취미로 하다가 관심이 없어지면 끝났는데, 요즘은 조직화됐죠. 러시아 마피아 같은 데서 돈을 대고 프로페셔널을 고용하고.

해커가 공격할 전기밥솥 또는 원전?

요즘 보니 만약에 해커들이 원전을 공격대상으로 삼게 되면 더 치명적이 될 텐데, 바이러스의 장래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나중엔 전기밥솥 같은 것도 인터넷으로 연결될 텐데, 밥 태우는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죠.(웃음) 병원에 있는 환자의 심폐소생기구가 연결돼 있으면 사람도 죽일 수 있고요.

정치적 의도를 가진 카슈미르나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인도나 이스라엘 정부, 엠에스 서버를 공격하기도 하고, 사파티스타(멕시코 무장혁명단체)가 시아이에이(CIA)하고 해킹전쟁을 선언한다거나 하는, 약자의 정치적 제스처로서 바이러스 공격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디도스(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자로 북한을 지목하기도 하는데.

인터넷이 가져다준 제일 큰 효과 중 하나가 슈퍼 인디비주얼의 등장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부족한 리소스를 가지고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그래서 오바마 정부도 백악관 내에 사이버 전쟁 담당 부서를 신설했고요.

슈퍼 인디비주얼의 등장도 중요하지만, 국가도 무한감시가 가능해졌죠. 이런 변화는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인터넷도 21세기 와서 웹2.0이나 위키피디아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활용법을 찾은 거 같아요. 리비아나 이집트에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결국 인터넷이 가진 풀 포텐셜(잠재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죠. 정보에 대한 억압이나 독점이 아니고 오히려 더 널리 퍼지는 거대한 흐름을 못 막을 것 같습니다.

안철수연구소는 1995년에 생겼고, 웜 바이러스를 처음 퇴치(88년)한 걸로 치면 23년 되었는데, 정부로부터 물질적 지원 받은 적이 있는지요. 미국에서 ‘모리스 웜’ 바이러스가 네트워크 컴퓨터 6천여대를 감염시키자 펜타곤(국방부)이 대응했거든요. 한국에선 디지털 의사 안철수 혼자죠. 왜 그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단 한번도 지원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른바 우선순위에 밀렸겠죠.

바이러스 감염으로 컴퓨터를 날려버린 경험을 지닌 정책결정권자들이 없어서?(웃음)

개인병원 있다고 국가가 병원 안 짓는 격이죠. 정작 어려울 때 국가가 개인병원을 찾고.

안 선생이 바이러스를 만든다면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텐데요. 모든 바이러스의 진화과정을 꿰고 있고, 어떻게 막는지도 잘 알 텐데.

의사가 전염병 많이 돌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그래서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쪽 분야에 들어오면 안 되죠. 그래도 억울하지 않은 게, 10년 전만 해도 보안 쪽 하는 회사가 200개도 넘었습니다. 지금은 10개도 안 남아 있어요. 흑색선전도 하고 그러다가 돈이 안 벌리니까 접고 나가더라고요.

일본은 이런 기관이 있나요?

국가기관 없고 민간업체 하나 있었는데 매카피(미국의 아이티회사)가 사버렸죠. 현재 백신회사가 없어요. 한국을 부러워하죠. 다행히 일본은 디도스 같은 사고가 난 적이 없지만, 그래서 더 두려워합니다. 디도스가 공격방향을 일본으로 틀면 당하게 되거든요.

매카피가 안철수연구소도 팔라고 제안했던데.

1천만달러. 그때 회사가 적자였거든요. 매출 20억원 정도. 지금은 총액 2천억원 정도 되죠.

심리적으로 한국인들이 안철수연구소 때문에 안심하는 걸로 치면 가격이 더 크겠죠. “우리 동네 의사 있다”는 건 다른 거거든요.

돈만 벌려고 했다면 무료로 백신 배포 안 했겠죠. 돈은 더 벌었겠지만 존중받는 기업이 됐을까 의문입니다.

다시 부는 세계적 IT붐…한국만 쏙 빠져

같이 일하고 싶은 시이오(CEO) 1위잖아요. 이건희 회장이 2위.(웃음) 그나저나 한국이 여전히 아이티 강국입니까?

아니죠. 소비강국입니다.(웃음) 이미 8년 전에 그렇게 말을 했죠.

노무현 정부 때부터 내리막길로 들어갔다는 얘기네요.

한국 아이티산업의 문제는 첫째 대기업 위주, 둘째 하드웨어 위주, 셋째 정부든 기업이든 초단기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요.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수출액 비중이 너무 커서 그 회사가 기우뚱하면 한국 경제 자체가 충격파를 크게 받게 돼 있어요. 정부가 방조했죠.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튼튼히 해놓아야 대기업이 힘들어도 장기적으로 안정된 구조로 갈 수 있어요.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정운찬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앉혔잖아요(3월21일 사의 표명).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를 말하자 이건희 회장은 듣도 보도 못한 거라고 했잖아요.

이 정부 초창기에 대기업들에 많은 지원을 하면서 일자리를 만들어달라고 기대했던 것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면 가능하면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효율성 높이는 쪽으로 가니까 일자리를 늘릴 수 없습니다. 동반성장 이야기는 3년쯤 늦은 거 같고요.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건 과실다툼이지 않습니까? 그 전에 불법부터 정리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드는 게 우선순위가 아닐까요?

아이티벤처 하면 거품이었다는 식의 인식이 많잖아요.

아이티벤처 업계가 꼭 사업아이템만 벤처가 아니고 경영관행에서도 투명성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참 아쉽죠.

10년 전처럼 벤처가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다시 필요하기도 하지요.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아이티 쪽 벤처에 새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거품인가 아닌가 논쟁이 일 정도로 열풍이죠.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까지.

새로운 사이클에서 핵심 영역이 뭔가요?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소셜)커머스, 클라우드(컴퓨팅), 네가지가 서로 접목되면서 새 영역이 생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거기서 완전히 빠져 있어요.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대기업 위주 구조 때문에 한국만 철저히 소외된 갈라파고스 섬이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그동안 남이 해온 것 중 가능성이 검증된 분야만 빠른 속도로 쫓아가서 모방하는 식이었죠. 퍼스트 무버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마저도 중국 추격으로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한국 경제는 ‘삼성 동물원’에 갇혀 있다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레이트 커머’로서 쫓아가다 보니 어느새 1등 근처에 와서 쫓아갈 데가 없어지고 그다음부터 헤매게 됐죠.

이대로 가면 일본처럼 되는 것 같습니다. 이걸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생태계를 형성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겁니다.

가령 페이스북이 싸이월드를 베껴갔다는 게 업계에 떠도는 이야긴데요, 이를 에스케이티(SKT)가 인수한 뒤 수백만명이 만들어내던 소셜네트워크 기능은 거의 소멸돼 버렸죠. 페이스북 가격은 지금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지 않습니까?

80조원.

삼성은 애니콜 때문에 아이폰을 못 들어오게 했죠. 결국 3~4년 늦게 들어왔는데 다급해져서 베끼기 급급하고 있죠.

삼성한테 독이 됐죠. 기득권이 과보호되면 기득권에도 치명적인 독이 되죠.

아이폰에 맞서거나 뛰어넘는 기획을 했어야 하는데, 자기 시장방어에만 몰두한 거죠.

미국의 예를 들면 포레스터가 생기고, 마이스페이스가 포레스터를 제치고 1위가 됐는데, 페이스북이 나오면서 1위가 바뀌었습니다. 절대강자 구글도 빙(마이크로소프트)이 위세를 떨치자 검색 알고리즘을 재정비하는 등 치열한 경쟁이거든요. 과보호석에서 그냥 편하게 1위 하는 게 아니고 실력으로 1위를 유지하죠. 그게 건강한 생태계입니다.

사자가 쫓아오니까 100m를 9초에 달리는 격이죠.(웃음)

한국에선 편하게 1위 하고, 이익 챙기고, 노력 안 하고, 몇 년 지나 외부에서 들어온 적 때문에 기반이 흔들려서 나라 전체가 살기 힘들어지는 구조가 반복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빌 게이츠에게 “누가 경쟁자냐” 했더니 대기업보다는 허름한 차고에서 학교 중퇴하고 컴퓨터 뚝딱거리는 놈이라고.

삼성이나 에스케이, 엘지는 자기들한테만 납품하도록 조건을 묶어버립니다. 한국 시장이 작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세계에서 십몇 위 되는 시장을 가졌는데, 그중 일부인 삼성동물원에 갇혀 있으니까 너무 작아지는 겁니다. 크지도 못하고.

한국의 기업들이 에버랜드에 갇혀 있는 거네요.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업경영자, 교수까지 정말 다양한 스펙을 쌓아왔습니다. 슈퍼엄친아로 하는 일마다 성공하면서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되었는데, 스펙이란 무엇인가요?

대기업, 공공기관에서 스펙 보고 뽑으면 거기에 맞춰 청년들도 스펙 쌓게 돼 있죠. 젊은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하게 된 것은 사회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반영하기 때문인 것 같구요. 요즘 청년들이 도전정신 없지 않아요. 사회구조가 이들을 더 보수적으로 만드는 거죠. 우리 사회의 커다란 인센티브 시스템을 고쳐야죠.

스펙이라는 게 창의성 가지는 걸 일정하게 일탈적으로 여기도록 만들어버리는 거죠. 시장논리(스펙)에 포섭된 청년들이란 자본의 예비사병 같은 거죠. 근데 국방부와 아이티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국방부에는 엔에스시(NSC)가 없고, 아이티에는 정보통신부가 없습니다.(웃음) 둘 다 컨트롤타워가 없어요. 엠비 정부 들어 정통부가 여러 부처로 쪼개졌죠. 안 선생은 ‘잃어버린 3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죠.

아이폰 출시(2007)되고 3년 동안 완전히 흐름에 뒤처졌거든요. 곧 아이패드로 연타를 맞아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죠. 또 하나는 세계적인 아이티 벤처 붐이 불면서 매출 10조 이상 되는 회사가 3년 만에 여러 개 탄생했는데, 거기서 한국이 소외된 거죠.

어떻게 해야 전망이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벤처 창업이 성공 확률이 높고, 창업에서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인프라가 갖춰져야죠. 정부 내에서 이게 내 일이라고 여기고 쫓아가는 데가 없으니 아까 말한 세계적 흐름을 몰랐던 거구요.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평가가 다양합니다. 트위터에서 어젠다 세팅의 일방성도 그렇지만, 상품화와 맞물려 있어서 우려되는 면이 큰데요.

인류 역사상 불가능했던 타깃 마케팅이 열추적 미사일처럼(웃음) 정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광고를 밀어넣을 수 있게 됐죠. 페이스북이 더 무섭죠. 물어보지도 않은 개인정보를 다 쏟아내니까. 정확하게 한 사람에게 가는 타깃 마케팅이 가능해졌어요. 굉장히 위험하죠.

자본이 개인의 소비는 물론 취향을 탐색·축적하고, 프라이버시까지 침해하면서 상품 판촉을 하는 거죠. 기계문명의 그늘이 짙은데… 디지털 섀도라고나 할까.

중앙정보부와 빅브라더보다 더 위험한…

기업은 이익을 내는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아직 페이스북이 자기가 가진 포텐샬을 일부밖에 못 쓰고 있지만 세계 인구 10분의 1(6억)이 가입돼 있거든요.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계속 한 사기업의 양심에 맡기고 내버려둘 거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 중 하나죠.

옛날 중앙정보부가 정보가 많았다지만 평시에는 알고 있는 게 많지 않더라고요.(웃음) 일이 터졌을 때 뭐든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겠지만. <1984>의 빅브라더 같은 경우도 열심히 노력해서 들여다봐야 정보를 알 수 있잖아요?(웃음)

이건 자진해서 내주는 거죠. 그 대책에 관한 논의가 외국에선 되고 있죠.

국가가 개인 신상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죠. 흔히 이북이 밤낮 들여다보고 감시하는 걸로 알지만 이산가족 찾기 명단 교류하면 북쪽은 비교도 안 되게 느려요.

주민등록증은 세계 최악의 신분증이죠. 2차대전 때 영국이나 프랑코 독재 때 에스파냐 수준이죠. 얼마 전에는 혈액형을 넣자는 말도 돌았고. 페이스북은 그에 비길 바가 아니죠.

사명감 없는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면 바이러스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겁니다.

페이스북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시장국가가 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워요. 그물국가, 초상업적인 그물국가, 자본과 네트워크를 쥔 세력이 이를 먹어치우게 되는 거죠. 이에 대응하는 국제협약 같은 게 필요한 시점이죠.

95년에 낸 수필집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정보화시대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썼어요. 아직도 그 윤리 도입이 안되고 있지만.

인터넷상 프라이버시나 정보침해는 거리에서 침 뱉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죠. 최고의 바이러스 전문가로서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백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소셜 백신!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정의죠. 역시 정의로운 사회가 젤 중요한 거 같아요.

정의가 뭡니까?

상식적으로 보면 힘없는 자 편에 서는 게 한국 사회 정의 같거든요. 강한 사람들은 국가 필요 없잖습니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약한 사람 보호하는 건데요. 안 그러면 약육강식 동물사회랑 똑같죠.

두번째 백신은 뭡니까?

계속 그, 그 그거.(웃음) 두번째, 세번째도 정의!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CEO의 생각을 읽어보자.. 요즈음 하는 생각이다.
회사의 Owner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Owner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LG는 SS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년 2등 기업이란 이미지가 존재한다.
특히 기술수준으로 봤을 땐 정말 2등기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특별히 전자부품은 일본을 LG나 SS가 따라 가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구회장의 R&D 관점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와 
일본 부품소재기업이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이유가 기술 중심의 첨단기업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했을것 같다.

특별히 성장형 인재(즉, 상명하복식 인재)보다는 자율형인재(즉, 창의적 사고를 보유한 인재) 양성을 더 주문한것도 그런 맥락일듯 하다. 

임직원의 자율과 창의를 통해 R&D의 간격을 넘어서려는 것.. 그런 의지가 아닐까? 진정한 1등을 위해서.. 

하지만..
1등, 2등, 3등 이든 등수와 상관 없이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건 어떨까?

매출액으로 무한성장을 꿈꾸는건 불가능한 현실이다.

애플이 전자부문에서 매출로 1등은 아니지만, 항상 애플리언(Appleion)은 존재했다.
그들이 왜 항상 애플을 사는걸까?

LG가 50년후에 가장 큰 회사가 되기보단 가장 존경받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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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원천기술 위한 R&D 50년이 걸려도 해야"

구본무 LG그룹 회장(사진)이 신임 전무들을 대상으로 원천기술ㆍ연구개발(R&D)의 중요성과 기(氣)를 살려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방법을 설파했다.

11일 LG그룹에 따르면 구 회장은 지난 9일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신임 전무 승진자 교육을 통해 "기술자립을 못하면 생존할 수 없고 기술을 가진 기업에 수모를 당한다"며 "영속적 기업이 되려면 10년이 걸리든 50년이 걸리든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R&D를 꼭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런 이유로 R&D 투자를 단기성과 평가에서 제외하고 장기적 R&D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 우리의 R&D 투자 비중은 낮기 때문에 더 벌어서 R&D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의 R&D 철학은 이미 올해 경영계획에 반영돼 있다. LG그룹은 올해 사상 최대인 3조7000억원을 R&D에 투입할 예정이며 이는 작년보다 23% 증가한 규모다.

구 회장은 공학도와 젊은 인재 육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중국의 칭화대에 각 성에서 똑똑한 학생들이 모이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공과대학에 더 많은 인재들이 지원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또 "젊은 사람을 키우려면 기를 살려 자꾸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줘야 한다"며 "내가 창의와 자율의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재 쓰임새는 적재적소가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꿈과 비전을 갖고 끈기 있게 최선을 다해 열정을 쏟는 사람을 좋아한다"며 인재관도 피력했다.

구 회장은 최근 3D 영화 `아바타`를 본 소감을 언급하며 3D 디스플레이 사업의 육성 의지를 재차 피력했고 LED와 같은 성장 부품사업을 적극 키워 나가라고 당부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