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 Strategy/Business Strategy'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3.10.14 경제의 활력은 부의 이동에 있는데...
  2. 2013.09.26 [실패사례] 90년대 세상의 혁신을 주도한 소니...
  3. 2013.04.13 [충격] http://hot.coroke.net/ 충격 고로케..
  4. 2012.04.24 2012년 종말?? from Skeptic.com
  5. 2011.08.21 HP, 모바일 사업 철수…PC사업부 분사 - 현명한 선택인가?
  6. 2011.08.16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 가장 큰 타격은 LG전자?
  7. 2011.04.22 Game Theory -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은 왜 최악의 선택했나
  8. 2011.04.14 LG전자 요직에 외국인 임원 배치 '남용의 실험' 왜 실패했나
  9. 2011.03.30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 From 조선비즈
  10. 2011.02.28 경쟁 부추기다 회사 망친다 [From 한겨레]
  11. 2011.02.22 How LG lost the smartphone race - full version
  12. 2010.10.14 애플보다 HTC를 더 연구해야 하는 이유..
  13. 2010.09.26 이코노미스트의 LG전자의 CEO 교체에 대한 비판 (3)
  14. 2010.04.22 역사의 변곡점 그러나.. 역시.. (CTO 황창규에 대한 소감)
  15. 2010.04.05 '비지오(VIZIO)'의 성공모델 (28)
  16. 2010.03.02 제 1 장 1-1 Inforpreneur의 정의 <2010년 3월 2일>
  17. 2010.02.18 [스크랩]도요타 사태를 통한 교훈 from Joins.com
  18. 2010.02.18 [스크랩]스마트폰 추진 전략에 대한 잔상 from Hani
  19. 2010.02.10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 (2)
  20. 2010.02.03 [스크랩] 회사가 원하는 직급별 인재상
  21. 2010.02.01 LG-삼성은 애플을 이길수 없다.
  22. 2010.01.29 IT국가경쟁력 1위에서~3위 그리고 이젠 16위
  23. 2010.01.27 세계스마트폰 시장 전망 From IDC
  24. 2010.01.25 [전략] 성공딜레마 - 과거 성공의 법칙이 덫이 된다.
  25. 2009.11.14 [스크랩] 1.6 Billion Dollars Online Community SW Market by 2013 at U.S. from zd Net
  26. 2009.11.14 [스크랩]“내 머리는 기획실, 손은 공장”-1인 기업 from 동아일보
  27. 2008.12.01 100년 기업의 조건 - LG앞선 구조개편. (1)
  28. 2008.07.23 [인포프리너] NYT ‘맥루머스닷컴’ 운영 전업 아널드 김씨 소개
  29. 2008.03.18 한국의 미래, 10년을 내다본다면.. 무슨일이 있을까?? (3)
  30. 2007.11.27 [스크랩]['글로벌 탤런트'를 춤추게 하라] ②스웨덴

세상이 변한다는 이야기는 부의 이동과 밀접한 관계 가 있다. 과거 부를 독점할 수 밖에 없던 계급사회를 지나,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이루어진 현시점에서는 부는 곧 세상의 변화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국의 경우 그 변화는 다이나믹하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 록펠러나 다우, GE같은 기업이 부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었다면 80년이후에는 IBM이나 HP등과 같은 IT기기를 만드는 회사들이 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당시 새롭게 회사를 만든 Compaq이나, DELL, 시스코는  부의 지도를 바꿨다.

90년이후에는 미국의 부는 MS를 비롯한 SW기업들에 집중되어 있다. Apple, Facebook,e-Bay,Amazon등.. 무수히 많은 신규강자들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부를 창출하고 있다. 즉.. 기존의 생태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를 촉진하는 구조에서 새로운 강자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고민할 점은.. 미국이나 그외 국가들이 가진 환경적, 지리적, 인구학적 강점때문이라고 애써 회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의 창출이 다양하게 창출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의 체계가 매우 다이나믹하다는 의미이다.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고, 기존 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가질수 없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서 사회전반의 투명성은 높아지게 된다. "물은 고이면 썩게 되고, 뿌리가 어디인지가 더 중요하다"

유사한 사례가 일본이라고 볼수 있다. 일본의 전자산업은 한때 전세계를 호령하고 어디를 가든 소니, 파나소닉, 내쇼널 등의 브랜드에 열광했다. 그들은 내부적으로 경쟁하지 않았고,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그 논리는 전세계에서 경쟁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 뿌리는 독점적 구조의 일본내에 있었고, 본인들을 보호해줄 일본정부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2류가 되었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은 모든 산업에서 전세계에서 경쟁한다는 논리로 독과점을 당연시 한다. 하지만, 생태계가 문제다. 경쟁을 해도 든든한 빽에 안주할 수 있고, 아무리 경쟁을 해도 내부 경쟁자가 없다면 물은 썩게 마련이다.

우리 환경에서 새로운 대기업들이 많이 나타날수 있다면, 한국의 경쟁력은 15위 언저리에서 상위권으로 급상승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현재 재벌기업들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해체해야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가장 걱정스러운 상황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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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323

‘왕회장’은 이제 안 나온다
웅진·STX 등 창업 신화의 몰락…50대 부자 중 세습이 78% 달해
[1251호] 2013년 10월 09일 (수) 이한구│수원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네 번의 가출. ‘왕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화려한(?) 청소년 시절 이력이다. 정주영은 1915년 강원도 통천의 궁벽한 시골에서 부지런한 농사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소년기를 통과하면서 가난한 농부 대신 도시에서의 입신출세 꿈을 키웠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4세 때 친구와 함께 함경도 청진으로 처음 무단가출한 이후 무려 세 차례의 집 떠나기를 감행했으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 부모님의 간곡한 만류 때문이었다.

“정주영, 동아시아 유교 자본주의 상징”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고향 탈출을 도모해 18세 때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에 도착했다. 그는 막노동판과 상점 점원 생활을 전전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1947년 중구 초동에서 현대토건이라는 영세한 가게를 냈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그룹의 모태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몸소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근래 국내에는 ‘왕회장’과 같은 입지전적인 기업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나산그룹 안병균, 거평그룹 나승렬은 1997년 외환위기란 벼락을 맞아 문턱도 넘기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에는 봉급쟁이의 우상이었던 웅진 윤석금과 STX그룹 강덕수마저 위태롭다. 1945년생인 윤석금은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의 서적 외판원으로 시작해 적수공권으로 1980년에 헤임인터내셔널(웅진씽크빅)을 창업해 2011년 기준 자산 총액 8조710억원의 웅진그룹으로 키웠다.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 순위 38위로 공기업을 제외한 순위는 16위다.

   
STX그룹의 탄생도 극적이다. 강덕수는 1973년 쌍용양회 사원으로 입사한 후 27년 동안 재직하면서 재무·기획 일을 했다. 2000년 11월 국내 최대의 대형 엔진 제작업체이자 자산 규모 수천억 원대의 쌍용중공업 경영권을 강덕수는 사재 20억원으로 장내 매수 등을 통해 확보하고 2001년에 상호를 ㈜STX로 변경했다. 이후 지속적인 M&A 등을 통해 수직 계열화를 완성해 STX그룹은 2011년 21개 계열사에 자산 총액 21조9690억원으로 재계 서열 12위에 올랐다.

웅진과 STX가 사라지면서 재계 판도는 기존 재벌의 독무대로 변했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삼성·현대차·LG·SK 등 세습 재벌의 약진만 두드러졌던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뉴페이스는 아예 명함을 내밀지 못할 수도 있다.

국내에는 자수성가를 통해 당대에 ‘톱10’에 진입한 경우가 단 한 명도 없다. 최고 부자 순위를 50위까지 확대해도 세습 부자 비중은 무려 78%로 일본의 60%보다 월등히 높다. 과거보다 대물림 부자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 70%, 당대에 거부로 발돋움

외국은 어떨까. 블룸버그는 올해 세계 10대 거부를 선정했는데 1위는 멕시코의 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다. 1940년에 레바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슬림은 26세에 부친에게서 받은 40만 달러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됐다. 기부 천사 빌 게이츠가 2위, 스페인 국적의 인디텍스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3위에 랭크됐다. 오르테가는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부터 셔츠 가게 사환으로 사업과 인연을 맺은 후 자수성가해 패스트패션 ‘자라(ZARA)’를 세계 1위로 키웠다. 4위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1956년에 단돈 100달러로 주식 투자에 나서 현재는 세계 최고의 주식 투자 달인으로 대접받는다. 자린고비로 유명한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17세 때 사업에 투신한 이래 조립식(DIY) 가구 생산으로 5위에 올랐다. 미국 석유 재벌 코크인더스트리즈의 코크 형제가 각각 6위·7위, 시스템 개발업체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8위를 기록했다.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LVMH의 창업자 베르나르 아르노와 미국 최대 할인매장인 월마트의 상속녀 크리스틴 월튼이 각각 9위와 10위에 올랐다. 세계 10대 거부 중 ‘금수저’를 들고 태어난 이들은 코크 형제와 크리스틴 월튼 등 3명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 부자의 70%가 당대에 부를 일군 것이다.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된다. 유니클로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는 1984년 부친이 운영하던 양복점의 점원으로 출발해 티셔츠를 팔아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됐다. 한국계 교포 3세이자 소프트뱅크 창업자인 손정의가 3위다. 4위인 미키타니 히로시는 1997년에 엠디엠을 창업해 일본 최대의 인터넷쇼핑몰인 라쿠텐으로 키운 인물이다. 일본 10대 부자 중 세습 부자는 산토리의 사지 노부타다와 일본 부동산 거물인 모리 아키라(6위) 등 2명에 불과하다. 일본 최고 부자 10명 중 8명이 당대에 치부한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는 앙트레프리너(혁신적 기업가)에겐 여전히 신천지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다. 신흥 재벌은 기초 체력부터 튼실하게 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채 몸집 불리기에 급급하다 퇴장했다. 외환위기와 금융 위기란 연이은 폭풍에 쓰러져버린 것이다.

국내 시장이 협소한 데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은 또 다른 이유다. 스타트업의 경우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국내에서의 내공 쌓기가 필수인데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은 예외 없이 기성 재벌이 독과점 및 짬짜미(담합) 등으로 장악하고 있어 착근(着根)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 역할이 한계를 보이는 것은 설상가상이다. 역대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해외 차관 지불 보증과 알짜 공기업 불하 등을 통해 기성 재벌의 성장을 촉진했다. 장기 저리의 융자 및 세금 감면은 물론, 독과점 혜택으로 신참 기업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경제력 및 시장 집중, 정경 유착, 부실 경영, 각종 기업 비리 양산은 개발 독재 체제의 당연한 귀결이어서 정부는 신흥 재벌에 매를 들 수밖에 없었다. 산업민주화와 개방화에 따른 투명 경영 압력은 또 다른 변수였다. 신생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무기들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취업과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로 규정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은 것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 기업가가 생겨날 리 만무하다. ‘한강의 기적’은 온 국민의 염원이다. 그러나 ‘왕회장’ 정주영의 성공담이 단순한 신화(神話)로 전락할 수도 있어 답답하다. 

 

시대별 재벌 해체사 


1970년대

●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시대 정경 유착 기업의 퇴조(삼호, 태창, 대한, 중앙, 동립산업).

●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등장한 율산그룹·제세그룹·원기업이 중동 건설 퇴조와 함께 도산.

1980년대

● 국제그룹, 명성그룹, 동명그룹 해체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으로 신발·목재 등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채산성 악화로 경쟁력을 상실한 게 주원인.

   - 무리한 사업 다각화로 재무 구조 악화.

   - 관치 금융 체제에서 정치권과의 소원한 관계도 경영상 불리한 요인이 됨.

1990년대

● IMF 외환위기로 인한 재벌 대붕괴의 시대.

●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 뉴코아, 해태, 한라, 쌍방울, 수산, 극동, 청구, 나산, 동아, 거평 도산.

● 이 중 한보, 한라, 뉴코아, 수산, 거평, 나산, 청구그룹은 창업 20년 미만으로 1980~90년대에 공격 경영을 통해 사세 확장 추구한 기업들.

● 제2, 3금융권의 차입 비중이 높은 취약한 재무 구조가 특징.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소니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

기업은 영원할 수 없는 유한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90년때까지 TV는 삼성이나 LG가 아니라.. 소니를 사야.. 최고로 쳤고,

오디오 장비도 최고는 소니였다.. 돈 좀 있는 집안 사람들은 소니를 샀다.. 

그랬던.. 소니가.. 이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 멀어졌다.. 왜 그렇게 된 걸까?

2000년 후반엔 애플이 세상을 바꿨다.. 과거 소니가 그랬듯.. 

애플이.. 계속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소니에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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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8-20 오후 1:40:43 게재

MS·소니 혁신 ‘부서이기주의’가 걸림돌
LG경제연구원 분석 … "인사ㆍ협업보상으로 부서간 이해 상충 문제 해결해야"

마이크로소프트와 소니 등이 혁신에 실패한 원인이 부서이기주의라는 분석이 나왔다.

19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새로운 도전을 막는 부서 이기주의로 혁신과 멀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은 MS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딕 브라스의 얘기를 빌어 부서 이기주의로 MS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사장시킨 일화를 소개했다. MS는 2001년 태블릿 PC를 만들고 있었지만 오피스를 담당하고 있던 부사장이 태블릿 PC 컨셉트가 맘에 들지 않고 성공 가능성이 없을 것 같다는 이유로 태블릿 PC에 오피스를 연동시키는 것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MS는 태블릿 PC에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끝내 시장을 선점할 수 없었다. 

또 e-book 등의 스크린 상에서 문자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클리어 타입'이라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다른 영역 성공을 견제한 기존 오피스 부문에서 이 기술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고 통제하려는 등 견제가 심해 결국 이 기술이 빛을 볼 수 없었다는 일도 소개됐다.

MS의 부서 이기주의에 따른 시장 선점 기회 상실은 CEO의 입을 통해 시인되기도 했다.

MS CEO 스티브 발머는 지난 7월 각 사업부들이 더 민첩하게 협력하도록 만들겠다면서 조직 개편을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부문 전략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회사에서 나오는 하나의 전략으로 집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서 이기주의가 회사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워크맨, CD 플레이어까지 한 때 최고 기술을 자랑하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소니도 내부 분열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빼앗긴 사례로 거론된다.

지난 2003년 소니는 부문간 융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트랜스포메이션 60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소니의 전자와 콘텐츠 사업 부문은 부서 이기주의로 인해 각자 영역을 지키려다 서로에게 손해를 입히게 된다. 

MD 플레이어가 속해 있는 전자 부문은 소니가 주요 음반 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지위를 이용해 유용한 콘텐츠를 활용, 자사의 기기를 음악계 표준으로 만들려고 했다. 콘텐츠 부문 입장에서는 MP3, 아이튠즈 등의 등장으로 음악 공유와 기기의 연결이 자유로워짐에 따라 음원의 불법 복제가 두려운 나머지 소니 뮤직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자사 음원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부문간 이해 관계 상충은 시너지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 것이다. 

GE 헬스케어는 영상기기 판매와 컨설팅 서비스를 결합해 솔루션을 제공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설했다. 하지만 일을 맡은 부서가 고객 중심이 아닌 부서 중심 사고에 빠지면서 고객을 만나는 자체를 꺼리는 등 부서 이기주의로 사업이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의 다임러 그룹과 미국 크라이슬러 그룹 합병은 세기의 빅딜로 불렸다. 표면상 경영권을 반으로 나누는 평등한 합병을 추구했다. 하지만 독일과 미국 경영진 사이 갈등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합병 9년만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LG경제연구원 원지현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일 자체가 그렇게 설계돼 있는 것인지, 조직 구조가 문제인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제 해결 방안으로 인사제도 보완과 지속적인 경영진 노력을 꼽았다.

원 선임연구원은 "부서 단위 성과에 대한 보상이 클 경우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부서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협업 성과 보상 등으로 사업부간 협업을 유도하는 디즈니 사례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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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1주년 특집3-창조, 기업에서 배운다]`왕년의 애플` 소니, 혁신 잃고 몰락의 길 걷다

[ 2013년 09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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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혁신의 대명사가 애플이나 구글이지만 한때 그 자리는 소니 차지였다. `응답하라 1997`세대의 사춘기를 점령한 소니 소형 카세트플레이어 `워크맨`은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1979년 첫 등장한 워크맨은 최초의 휴대용 오디오 시스템으로 이동하며 음악을 듣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소니는 워크맨에 이어 1990년대 CD플레이어, 2000년대 초 MD를 잇달아 선보이며 애플 `아이팟` 등장 전까지 맹주로 군림했다. 

휴대용 음악기기 만이 아니다. 세계 TV 시장을 재패했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기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 소니를 혁신 기업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소니 역시 더 이상 막대한 수익을 내는 기업도 아니다. 휴대용 음악기기는 애플에게 밀렸고, TV는 삼성에게 왕좌를 내줬다. 그나마 게임기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남아있지만 올 가을 출시를 앞둔 플레이스테이션4 성공을 지켜봐야 한다. 혁신 기업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소니 몰락의 이유는 무엇인가.

◇무리한 자사 표준 고집

자사 표준 고집이 몰락의 첫 번째 이유다. 소니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 자신들의 기술을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자신들이 만든 기술이 표준이 되고 자연히 시장이 따라 온다는 자신이 있었다. 자만은 폐쇄주의로 흘렀고 결과적으로 실패를 불러왔다.

소니는 과거 비디오 시장에서 자사의 베타맥스 방식을 고수했다. 베타맥스 방식은 화질에서 라이벌인 마쓰시타의 VHS 방식보다 앞섰다. 비디오테이프 크기도 VHS 보다 30% 작았다. 소니는 독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기술이전을 막았다. 혼자서 시장을 키우고 혼자서 그 과실을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마쓰시타는 소니에 대항하기 위해 VHS 방식 기술을 공개했고 많은 우군들과 함께 경쟁에서 승리했다. 기술을 공유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생산량을 늘린 마쓰시타의 전략이 VHS 방식을 표준으로 만들었다. 소니는 한때 한 해에 230만대를 팔았던 베타방식 VCR 생산을 2002년 중단했다.

더 큰 실패는 음악 시장에서 일어났다. 워크맨과 CD플레이어로 음악 시장을 점령한 소니는 MD로 왕좌 수성을 노렸다. MD는 CD에 비해 현격하게 뛰어난 음질과 작은 크기, 녹음 기능을 갖췄지만 인터넷 시대와는 맞지 않았다. MP3 등장과 함께 음악을 오디오 대신 컴퓨터로 듣는 사람이 늘었다. 컴퓨터와 휴대용 기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중요해졌고 애플 아이팟이 `아이튠즈`를 앞세워 새로운 왕자가 됐다. 소니는 인터넷 시대의 맞는 MP3 대신 CD의 연장선상에 있는 MD를 고집하다 애플에 뒤쳐졌다.

MD 실패 이후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아이팟에 대응하기 위해 `네트워크맨`을 선보였지만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MP3가 아닌 ATRAC 포맷을 고집했다. 소니뮤직이란 콘텐츠 자회사를 보유한 소니로선 복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네트워크맨에서만 재생되는 ATRAC포맷은 매력 없었다. 결국 네트워크맨도 실패했고 음악 산업 주도권은 완전히 애플에게 넘어갔다.

◇내부의 적과 싸우다

잘못된 소니식 경쟁 문화도 실패를 부추겼다. 소니는 사업 부문과 규모에 관계 없이 무차별적인 상대평가제도를 도입했다. TV사업부가 잘해도 PC사업부 성과보다 부족하면 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부서 간 경쟁을 통한 상향평준화를 노렸지만 결과는 부서 이기주의로 나타났다. 같은 소니 브랜드를 쓰지만 부서가 다르면 협력하지 않았고 상대 부서에 도움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적과 싸우는 상황이 발생하며 조직을 좀 먹었다.

아이팟이 나오기 2년 전, 소니는 새로운 디지털 음악 재생기기를 선보였다. `메모리스틱 워크맨`과 `바이오(VAIO) 뮤직 클럽` 두 가지였다. 한 회사에서 차세대 모델이 둘씩 나온 이유는 부서 간 경쟁 때문이다. 메모리스틱 워크맨은 오디오 사업부, 바이오 뮤직 클럽은 바이오 사업부 작품이었다. 같은 기기를 만들면서 양측의 정보교환이나 사전 조율은 전혀 없었다. 시장 선점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여력을 가진 소니였지만 전력이 양분됐고 뒤늦게 등장한 아이팟에 추격을 허용했다. 두 부서가 협력해 하나의 혁신 제품을 내놓는 대신 그저 그런 제품 두 개를 내놓으며 시장 실패를 맛봤다.

MP3 시장 참패도 같은 이유다. MD 실패 후 절치부심 디지털 플레이어 개발에 매달린 소니 전자사업부는 다양한 음악 콘텐츠를 보유한 소니뮤직을 활용한 재기를 꿈꿨다. 우수 콘텐츠를 독점하면 단 기간 내 시장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콘텐츠 부문은 입장이 달랐다. 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불법복제 위험이 커졌다. 애플 아이튠즈처럼 저렴하게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부서 이기주의에 빠진 두 사업부는 합리적 조율에 실패했고 결국 음원 불법복제를 막기 위해 독자 포맷(ATRAC)을 발표해 커다란 실패를 맛봤다.

◇기술 포기, 핵심역량을 잃다

2000년대 중반 수익성이 줄어든 소니는 비용절감이란 자구책을 꺼냈다.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소니는 기술개발 조직에 대한 투자를 줄였다. 소니 혁신의 심장부로 꼽힌 A3연구소 해체가 대표적이다.

소니 TV의 핵심인 영상기술개발을 담당한 이 연구소는 소니 TV의 글로벌 성공을 이끈 주역이었다. 하지만 A3연구소도 비용절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2008년 4월 연구소 해체를 통보했고 엔지니어 대다수가 회사를 떠났다.

당시 A3연구소 수장이었던 곤도 데쓰지로가 “소니는 더 이상 기술 기업이 아니다”라며 회사를 떠난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는 소니에서 29년간 근무한 엔지니어였다. 새로운 연구개발 투자 없이 기존 기술로 수익을 내려던 소니의 전략은 기술이 퇴보하며 실패했다. 소니는 TV시장 주도권을 삼성에 완전히 내주며 빠르게 존재감을 잃었다.

무분별한 영토 확장도 기술력 퇴행의 단초가 됐다. 기업 핵심인 기술이 집약되는 하드웨어 경쟁력 강화가 아닌 신사업 진출로 기업 역량을 분산했다. 강점을 가진 하드웨어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엘도라도로 떠오른 소프트웨어의 시너지를 노렸지만 계산대로 되지 않았다. 영화와 음악은 물론 금융 산업에까지 진출하며 인수합병에 엄청난 돈을 썼지만 기대했던 효과는 없었다. 기업의 정체성인 기술에 대한 투자 대신 신사업 발굴에만 열을 올린 결과는 하드웨어 부문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일본의 한 경제주간지는 “전설의 소니는 이제 없다”며 “기술을 버린 소니가 회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진욱기자 jjwinwin@etnews.com

소니 최근 매출 및 순이익 추이(단위:억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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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좋은 아이디어에.. 기발한 사고..

단순함의 미학과 블랙코미디의 통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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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전망대

‘충격 고로케(hot.coroke.net)’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우리 언론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이트는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복잡한 알고리즘이나 기술적 장치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그저 수작업에 가깝게 계산한 간단한 통계만을 제공한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 신문의 기사 제목에 ‘충격’, ‘경악’, ‘멘붕’, ‘발칵’, ‘이럴 수가’ 등 선정적이고 과장된 어휘가 얼마나 들어갔는가를 계산해 그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충격 고로케’가 밝히는 ‘낚시질’ 점수는 선정적 어휘를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려는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스스로 권위지임을 주장하는 다수의 신문사들이 낚시질 점수에서 상위에 자리잡는 것도 한국적 현상이다.

인터넷 뉴스 시장에서 언론사들이 낚시질 경쟁에 뛰어드는 이유는 ‘주목(attention)의 경제’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주목이 경제적 자원으로서 희소한 상품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하룻동안 주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돼 있다. 더군다나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정보량은 우리한테서 주목할 기회를 뺏어간다.

정보의 과잉은 양날의 칼과 같다. 너무 많은 정보가 빠르게 지나가서 글을 숙독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룻동안 가장 중요한 뉴스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이 많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에 하루라는 주기는 너무 길고 많은 정보로 차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뉴스도 우리가 신경 쓰지 않고 지나치는 거리의 수많은 간판들과 다를 바 없다. 허버트 사이먼은 정보의 급속한 성장이 ‘주목의 결핍’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한다.

주목의 결핍은 언론사·블로그·광고주들과 같은 정보 제공자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주목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것이 미디어 산업이지만, 소비자들한테서 ‘주목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목의 경제는 경영의 관점에서 주로 응용돼왔다. 광고 전략, 맞춤형 또는 개인화 서비스들은 ‘주목의 결핍’을 보완하려는 전략이다. ‘빅데이터 분석’도 소비자 행동을 분석해 최적의 주목 효과를 낳기 위한 시도다. 그러나 낚시질 제목 달기는 경영학적 전략이라기보다는 궁여지책에 불과하기에 다소 쑥스럽기까지 하다.

충격고로케(hot.coroke.net)
‘주목의 경제’를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상의 대부분의 콘텐츠는 무료가 아닌 경우가 많다. 상업적 사이트들은 키워드나 디스플레이 광고를 주목해주는 대가를 어디엔가 숨겨놓는다. 이를 ‘주목의 거래’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낚시성 제목은 희소한 주목을 유인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유발시키는 것이다. 현재 등록된 인터넷 신문사 수는 3천개가 넘는다. 이 많은 신문사들이 소비자의 주목에만 의존해 선정적이고 과장된 용어로 시선을 유혹한다. 그 비용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다.

언론의 특성상 부작용이 있더라도 국가 개입은 어떤 형식이든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자율 규제에만 맡겨두기에는 미덥지가 못하다. 현실성 없는 상상이지만, 소비자들이 주목을 뺏어간 대가를 청구하는 것은 가능할까?

언론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힘이 중요하다. ‘충격 고로케’는 그것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기사 제목의 유혹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개개인의 주목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그런 점에서 ‘충격 고로케’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황용석/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난 음모론자이며, 회의주의자이다.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일지도.

그런데.. 그냥 재미있다. 

아래 글은 Skeptic.com의 회의주의론자들의 입장에서 지구의 종말은 정말 골때리는 일이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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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AND COU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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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ASA Scientist Answers the Top 20 Questions About 2012

PUBLIC CONCERN ABOUT DOOMSDAY IN December 2012 has blossomed into a major new presence on the Internet. This fear has begun to invade cable TV and Hollywood, and it is rapidly spreading internationally. The hoax originally concerned a return of the fictitious planet Nibiru in 2012, but it received a big boost when conspiracy theory websites began to link it to the end of the Mayan calendar long count at the winter solstice (December 21) of 2012. Over the past year, many unrelated groups have joined the doomsday chorus, including Nostradamus advocates, a wide variety of eschatological Christian, Native American, and spiritualist sects, and those who fear comet and asteroid impacts or violent solar storms. At the time of this writing there are more than 175 books listed on Amazon.com dealing with the 2012 doomsday. The most popular topics are the Mayan calendar and spiritual predictions that the disaster in 2012 will usher in a new age of happiness and spiritual growth. Quite a few authors are cashing in with manuals on how to survive 2012.

As this hoax spreads, many more doomsday scenarios are being suggested, mostly unrelated to Nibiru. These include a reversal of the Earth’s magnetic field, severe solar storms associated with the 11-year solar cycle (which may peak in 2012), a reversal of Earth’s rotation axis, a 90- degree flip of the rotation axis, bombardment by large comets or asteroids, bombardment by gamma rays, or various unspecified lethal rays coming from the center of the Milky Way Galaxy or the “dark rift” seen in a nearby galactic spiral arm. A major theme has become celestial alignments: supposedly the Sun will align with the galactic center (or maybe with the Milky Way Dark Rift) on December 21, 2012, subjecting us to mysterious and potentially deadly forces.

Unlike most pseudoscience stories, there seems to be no factual core on which the Nibiru- 2012 hoax has been constructed. This is different from, for example, the claims of aliens and a crashed UFO at Roswell, New Mexico. The alien stories are a fabrication, but the core fact is that an instrumented balloon did crash in Roswell on July 7, 1947. There is no similar factual core to Nibiru—just dubious “predictions” from psychics, or the Mayans, or Nostradamus. The rest is pure fiction.

I answer questions from the public submitted online to a NASA website, and over the past two years the Nibiru-2012 doomsday has become the dominant topic people ask about. Many are curious about things they have seen on the Internet or TV, but many are also angry about supposed government cover-ups. As one wrote “Why are you lying about Nibiru? Everyone knows it is coming.” Others are genuinely frightened that the world will end just three years from now. My frustration in answering questions piecemeal motivates this “Twenty Questions” format to organize the facts and shine a skeptical light on this accumulation of myths and hoaxes.

1. What is the origin of the prediction that the world will end in December 2012?

The story started with claims that Nibiru, a supposed planet discovered by the Sumerians, is headed toward Earth. Zecharia Sitchin, who writes fiction about the ancient Mesopotamian civilization of Sumer, claimed in several books (e.g., The Twelfth Planet, published in 1976) that he has found and translated Sumerian documents that identify the planet Nibiru, orbiting the Sun every 3600 years. These Sumerian fables include stories of “ancient astronauts” visiting Earth from a civilization of aliens called the Anunnaki. Then Nancy Lieder, a self-declared psychic who claims she is channeling aliens, wrote on her website Zetatalk that the inhabitants of a fictional planet around the star Zeta Reticuli warned her that the Earth was in danger from Planet X or Nibiru. This catastrophe was initially predicted for May 2003, but when nothing happened the doomsday date was recalculated (a standard procedure for doomsdayers) and moved forward to December 2012. Only recently have these two fables been linked to the end of the Mayan long-count at the winter solstice in 2012—hence the predicted doomsday date of December 21, 2012.

2. The Sumerians were the first great civilization, and they made many accurate astronomical predictions, including the existence of the planets Uranus, Neptune and Pluto. So why should we not believe their predictions about Nibiru?

Nibiru is a name from Babylonian astrology sometimes associated with the god Marduk. Nibiru appears as a minor character in the Babylonian creation poemEnuma Elish as recorded in the library of Assurbanipal, King of Assyria (668–627 BCE). Sumer flourished much earlier, from about the 23rd century to the 17th century BCE. The claims that Nibiru is a planet and was known to the Sumerians are contradicted by scholars who (unlike Zecharia Sitchin) study and translate the written records of ancient Mesopotamia. Sumer was indeed a great civilization, important for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e, water management, urban life, and especially writing. However, they left few astronomical records and they most certainly did not know about Uranus, Neptune or Pluto. They also had no understanding that the planets orbited the Sun, an idea that first developed in ancient Greece two millennia after the end of Sumer. Claims that Sumerians had a sophisticated astronomy, or that they even had a god named Nibiru, are the product of Sitchin’s imagination.

3. How can you deny the existence of Nibiru when NASA discovered it in 1983 and the story appeared in leading newspapers? At that time you called it Planet X, and later it was named Xena or Eris.

IRAS (the NASA Infrared Astronomy Satellite, which carried out a sky survey for 10 months in 1983) discovered many infrared sources, but none of them was Nibiru or Planet X or any other objects in the outer solar system. Briefly, IRAS cataloged 350,000 infrared sources, and initially many of these sources were unidentified (which was the point, of course, of making such a survey). All of these observations have been followed up by subsequent studies with more powerful instruments both on the ground and in space. The rumor about a “tenth planet” erupted in 1984 after a scientific paper was published in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titled “Unidentified point sources in the IRAS minisurvey,” which discussed several infrared sources with “no counterparts.” But these “mystery objects” were subsequently found to be distant galaxies (except one, which was a wisp of “infrared cirrus”), as published in 1987. No IRAS source has ever turned out to be a planet. A good discussion of this whole issue is to be found on Phil Plait’s website. The bottom line is that Nibiru is a myth, with no basis in fact. To an astronomer, persistent claims about a planet that is “nearby” but “invisible” are just plain silly.

4. Maybe we should be asking about Planet X or Eris, not Nibiru. Why does NASA keep secret the orbit of Eris?

“Planet X” is an oxymoron when applied to a real object. The generic term has been used by astronomers over the past century for a possible or suspected object. Once the object is found, it is given a real name, as was done with Pluto and Eris, both of which were once referred to as Planet X. If a new object turns out to be not real, or not a planet, then you won’t hear about it again. If it is real, it is no longer called Planet X. Eris is one of several dwarf planets recently found by astronomers in the outer solar system, all of them on normal orbits that will never bring them near Earth. Like Pluto, Eris is smaller than our Moon. It is very far away, and its orbit never brings it closer than about 4 billion miles. There is no secret about Eris or its orbit, as you can easily verify by googling it or looking it up in Wikipedia.

5. Do you deny that NASA built a South Pole Telescope (SPT) to track Nibiru? Why else would they build a telescope at the South P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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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a telescope at the South Pole, but it was not built by NASA and it is not used to study Nibiru. The South Pole Telescope is supported by the National Science Foundation, and it is a radio telescope, not an optical instrument. It cannot take visible light images or photos. You can look it up on Wikipedia. The Antarctic is a great place for astronomical infrared and short-wave-radio observations, and it also has the advantage that objects can be observed continuously without the interference of the day-night cycle. I should add that it is impossible to imagine a way in which an object can be seen only from the South Pole. Even if it were due south of the Earth, it could be seen from the entire southern hemisphere.

6. There are many photos and videos of Nibiru on the Internet. Isn’t that proof that it exists?

The great majority of the photos and videos on the Internet are of some feature near the Sun (apparently supporting the claim that Nibiru has been hiding behind the Sun for the past several years). These are actually false images of the Sun caused by internal reflections in the lens, often called lens flare. You can identify them easily by the fact that they appear diametrically opposite the real solar image, as if reflected across the center of the image. This is especially obvious in videos, where as the camera moves, the false image dances about always exactly opposite the real image. Similar lens flare is a source of many UFO photos taken at night with strong light sources such as streetlights in the frame. I am surprised that more people don’t recognize this common photo artifact. I am also amazed that these photos showing something nearly as large and bright as the Sun (a “second sun”) are accepted together with claims made on some of the same websites that Nibiru is too faint to be seen or photographed except with large telescopes.

One widely reported telescopic photo shows two views of an expanding gas cloud far beyond the solar system, which is not moving; you can see this from the fact that the stars are the same in both pictures. A sharp-eyed reader on my website identified these photos as a gas shell around the star V838 Mon. Wikipedia has a nice write-up and a beautiful photo of it from the Hubble. Another high school student was initially impressed by posted images of a red blob that were said to be of Nibiru. Then he worked out in his Photoshop class how to make just such pictures starting from scratch. One video posted in summer 2008 on YouTube shows a guy standing in his kitchen claiming that one of the objects discovered by NASA’s x-ray telescope is Nibiru. What is his evidence? That since this false-color x-ray image released by NASA is blue, this must really be a nearby planet with an ocean. This would be hilarious if it were not used to frighten people.

7. Can you explain the fact that the area at (5h 53m 27s, -6 10′ 58″) has been blackened out in Google Sky and Microsoft Telescope? People suggest that these have been blackened out because those are the co-ordinates where Nibiru is located at present.

Several people have asked me about this blank rectangle in Orion in Google Sky, which is a presentation of images from the Sloan Digital Survey. This can’t be a “hiding place” for Nibiru, since it is a part of the sky that could be seen from almost everywhere on the Earth in the winter of 2007–08 when much of the talk about Nibiru began. Plus, that would contradict the claims that Nibiru was hiding behind the Sun or that it could be seen only from the southern hemisphere. But I too was curious about this blank rectangle, so I asked a friend who is a senior scientist at Google. He replied that he “found out that the missing data is due to a processing error in the image stitching program we use to display the Sloan survey images. The team assures me that in the next run through, this will be fixed!”

8. If the government knew about Nibiru, wouldn’t they keep it a secret to avoid panic? Isn’t it the government’s job to keep the population at ease?

There are many objectives of government, but they do not include keeping the population at ease. My experience is that sometimes parts of the government do just the opposite, as in the frequent references to various terrorist threats or warnings about driving accidents on long holiday weekends, which are no more dangerous than any other time. There is a long history of associating bad things with political opponents (older readers will remember the “missile gap” in the 1960 election, younger ones will note the many current references to who is or is not keeping the U.S. safe from terrorists). Further, social scientists have pointed out that many of our concepts of public panic are the product of Hollywood, while in the real world people have a good record of helping each other in a time of danger. I think everyone also recognizes that keeping bad news secret usually backfires, making the issue even worse when the facts finally come out. And in the case of Nibiru, these facts would come out very soon indeed.

Even if it wanted to, however, the government could not keep Nibiru a secret. If Nibiru were real, it would be tracked by thousands of astronomers, amateurs as well as professionals. These astronomers are spread all over the world. I know the astronomy community, and these scientists would not keep a secret even if ordered to. You just can’t hide a planet on its way into the inner solar system!

9. Why does the Mayan calendar say the world will end in 2012? I have heard that they have been pretty accurate in the past with other planetary predictions. How can you be sure you know more than they did?

Calendars exist for keeping track of the passage of time, not for predicting the future. The Mayan astronomers were clever, and they developed a very complex calendar. Ancient calendars are interesting to historians, but of course they cannot match the ability we have today to keep track of time, or the precision of the calendars currently in use. The main point, however, is that calendars, whether contemporary or ancient, cannot predict the future of our planet or warn of things to happen on a specific date such as 2012.

I note that my desk calendar ends much sooner, on December 31, 2009, but I do not interpret this as a prediction of Armageddon. It is just the beginning of a new year.

10. What is the polar shift theory? Is it true that the Earth’s crust does a 180-degree rotation around the core in a matter of days if not hours? Does this have something to do with our solar system dipping beneath the galactic equator?

A reversal in the rotation of Earth is impossible. It has never happened and never will. There are slow movements of the continents (for example Antarctica was near the equator hundreds of millions of years ago), but that is irrelevant to claims of reversal of the rotational poles. However, many of the disaster websites pull a bait-and-switch to fool people. They claim a relationship between the rotation and the magnetic field of Earth, which does change irregularly with a magnetic reversal taking place, on average, every 400,000 years. As far as we know, such a magnetic reversal does not cause any harm to life on Earth. A magnetic reversal is very unlikely to happen in the next few millennia, anyway. But the 2012ers falsely claim that a magnetic reversal is coming soon (in 2012 of course) and that this is the same as, or will trigger, a reversal of Earth’s rotational poles. The bottom line is this: (a) rotation direction and magnetic polarity are not related; (b) there is no reason to expect a reversal of magnetic polarity any time soon, or to anticipate any bad effects on life when it does eventually happen; (c) a sudden shift in the rotational pole with disastrous consequences is impossible. Also, none of this has anything to do with the galactic equator or any of the other nonsense about alignments that appears on many of the doomsday websites.

11. When most of the planets align in 2012 and planet Earth is in the center of the Milky Way, what will the effects of this be on planet Earth? Could it cause a pole shift, and if so what could we expect?

There is no planet alignment in 2012 or any other time in the next several decades. As to the Earth being in the center of the Milky Way, I don’t know what this phrase means. If they are referring to the Milky Way Galaxy, we are some 30,000 light years from the center of this spiral galaxy. We circle the galactic center in a period of 225–250 million years, always keeping approximately the same distance. Concerning a pole shift, I also don’t know what this means. If it means some sudden change in the position of the pole (that is, the rotation axis of the Earth), then that is impossible, as noted above. What many websites do discuss is the alignment of the Earth and Sun with the center of the Milky Way in the constellation of Sagittarius. This happens every December, with no bad consequences, and there is no reason to expect 2012 to be different from any other year.

12. When the Sun and the Earth line up on the galactic plane at the same time with the black hole being in the center couldn’t that cause something to happen, due to the fact that the black hole has such a strong gravitational pull?

There is a supermassive black hole at the center of our galaxy, and like any concentration of mass it exerts gravitational force on the rest of the galaxy. However, the galactic center is very far away, approximately 30,000 light years, so it has negligible effects on our solar system and Earth. There are no special forces from the galactic plane or the galactic center. The only important force that acts on the Earth is the gravitation of the Sun and Moon. As far as the influence of the galactic plane, there is nothing special about this location. The last time the Earth was in the galactic plane was several million years ago. Claims that we are about to cross the galactic plane are untrue.

13. I am scared about the fact that the Earth will enter the Dark Rift in the Milky Way. What will this do? Will the Earth be swallowed up?

The “dark rift” is a popular name for the broad and diffuse dust clouds in the inner arm of the Milky Way Galaxy, which block our view of the galactic center. The entire “galactic alignment” scare is ridiculous. Late in December the Sun is always approximately in the direction of the center of the Galaxy as seen from the Earth, but so what? Apparently the scaremongers have decided to use these meaningless phrases about “alignments” and the “dark rift” and “photon belt” precisely because they are not understood by the public. As far as the safety of the Earth is concerned, the important threats are from global warming and loss of biological diversity, and perhaps someday from collision with an asteroid or comet, not the pseudoscientific claims about 2012.

14. I have heard that the Earth’s magnetic field will flip in 2012 just when the strongest level of solar storms in history is predicted to take place. Will this kill us or destroy our civilization?

Near solar maximum (which happens approximately every 11 years), there are many more solar flares and coronal mass ejections than near solar minimum. Flares and mass ejections are no danger for humans or other life on Earth. They could endanger astronauts in deep space or on the Moon, and this is something that NASA must learn to deal with, but it is not a problem for us. Large outbursts can interrupt radio transmissions, cause bright displays of the aurora (Northern and Southern Lights), and damage the electronics of some satellites in space. Today many satellites are designed to deal with this possibility, for example by switching off some of their more delicate circuits and going into a “safe” mode for a few hours. In extreme cases solar activity can also disrupt electrical transmissions on the ground, possibly leading to electrical blackouts, but this is rare.

The last solar maximum occurred in 2001, so the next one was predicted for around 2012, 11 years later. However, the most recent solar minimum was unusual, with a period of a couple of years with almost no sunspots or other indications of solar activity, so scientists now guess that the next maximum will be delayed, perhaps to 2013. However, the details of the solar cycle remain basically unpredictable.

It is true that the Earth’s magnetic field protects us by creating a large region in space, called the Earth’s magnetosphere, within which most of the material ejected from the Sun is captured or deflected, but there is no reason to expect a reversal of magnetic polarity any time soon. These magnetic reversals happen, on average, only once in 400,000 years.

15. I am confused about a report on the Fox News website that in 2012 a “Powerful Solar Storm Could Shut Down U.S. for Months.” They referred to a report from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that was commissioned and paid for by NASA. If nothing is going to happen as a result of the event in 2012, why would NASA allow such nonsense to be reported?

NASA is pleased with the National Research Council report on heliophysics. As noted, this report includes a worst-case analysis of what could happen today if there were a repetition of the biggest solar storm ever recorded (in 1859). The problem is the way such information can be used out of context. There is no reason to expect such a large solar storm in the near future, certainly not in 2012 specifically. The reference to “the event in 2012” illustrates this problem. There is no prediction of an “event in 2012.” We don’t even know if the next solar maximum will take place in that year. The whole 2012 disaster scenario is a hoax, fueled by ads for the Hollywood science-fiction disaster film 2012. I can only hope that most people are able to distinguish Hollywood film plots from reality.

16. All my school friends are telling me that we are all going to die in the year 2012 due to a meteor hitting Earth. Is this true?

The Earth has always been subject to impacts by comets and asteroids (as has the Moon, as you can see because it has no atmosphere to erode the impact craters), although big hits are very rare. The last big impact was 65 million years ago, and that led to the extinction of the dinosaurs. Today NASA astronomers are carrying out the Spaceguard Survey to find any large near-Earth asteroids long before they hit. We have already determined that there are no threatening asteroids as large as the one that killed the dinosaurs. All this work is done openly with the discoveries posted every day on the NASA NEO Program Officewebsite, so anyone can see that nothing is predicted to hit in 2012.

17. If Nibiru is a hoax, why doesn’t NASA issue a denial? How can you permit these stories to circulate and frighten people? Why doesn’t the U.S. government do something about it!

If you go to the NASA home page, nasa.gov, you will see many stories that expose the Nibiru-2012 hoax. Try searching nasa.com under “Nibiru” or “2012”. There is not much more that NASA can do. These hoaxes have nothing to do with NASA and are not based on NASA data, so we as an agency are not directly involved. But scientists, both within NASA and outside, recognize that this hoax with its effort to frighten people is a distraction from more important scientific concerns, such as global warming and loss of biological diversity. We live in a country where there is freedom of speech, and that includes the freedom to lie. We should be glad there are no censors. But if we will use common sense we can recognize the lies. As we approach 2012, the lies will be come even more obvious.

18. Can you prove to me that Nibiru is a hoax? There are so many reports that something terrible will happen in 2012. I need proof because the government and NASA are keeping so much from us.

Such questions should be put to the doomsday advocates to prove that what they are saying is true, not to NASA to prove it is false. If someone claimed on the Internet that there were 50-foot tall purple elephants walking through Cleveland, would anyone expect NASA to prove this wrong? The burden of proof falls on those who make wild claims. Remember the often-quoted comment from Carl Sagan that extraordinary claims require extraordinary evidence.

However, I think that astronomers have reached the point where we can offer extremely strong arguments that Nibiru does not exist. A large planet (or a brown dwarf) in our solar system would have been known to astronomers for many years, both indirectly from its gravitational perturbations on other objects and by direct detection in the infrared. The NASA Infrared Astronomy Satellite (IRAS) carried out the first allsky survey in 1983, and several subsequent surveys would also have seen Nibiru if it were there. Further, if a large mass passed through the inner solar system every 3600 years, we would see its disruptive effects on the orbits of the inner planets, and we don’t.

But don’t take my word for it. Just use common sense. Have you seen Nibiru? In 2008 many websites said it would be visible to the naked eye in spring 2009. If a large planet or brown dwarf were headed for the inner solar system in 2012, it would already be tracked by thousands of astronomers, both professional and amateur, all over the world. Do you know any amateur astronomers who are watching it? Have you seen any photos or discussion of it in the big popular astronomy magazines such as Astronomy or Sky & Telescope? Just think about it. No one could hide something like Nibiru if it existed.

19. What about the scary ads for the new film 2012? They tell us to look at these Internet sites to verify the doomsday threat.

The pseudoscientific claims about Nibiru and a doomsday in 2012, together with distrust of the government, are being amplified by publicity for the new film from Columbia Pictures titled 2012, to be released in November 2009. The film’s trailer, appearing in theaters and on their website, shows a tidal wave breaking over the Himalayas, with the following words: “How would the governments of our planet prepare 6 billion people for the end of the world? [long pause] They wouldn’t. [long pause] Find out the Truth. Google search 2012.”

The film publicity includes a faux scientific website for “The Institute for Human Continuity”, which is entirely fictitious. According to this website, the IHC is dedicated to scientific research and public preparedness. Its mission is the survival of humanity. The website explains that the Institute was founded in 1978 by international leaders of government, business, and science. They say that in 2004, IHC scientists confirmed with 94% certainty that the world would be destroyed in 2012. This website encourages people to register for a lottery to select those who will be saved; a colleague submitted the name of her cat, which was accepted. According to Wikipedia, creating this sort of fake website is a new advertising technique called “Viral Marketing,” by analogy with computer viruses.

20. Is it possible that the influx of questions you describe is part of some kind of campaign for a book or movie, in the hopes that the volume of denials is taken as more “evidence” that there is a conspiracy?

I ask myself the same questions every day, as the volume of mail I receive about Nibiru (along with various alignments and pole shifts) keeps increasing—now more than 20 per week. Clearly there is money to be made from people’s fear about an approaching doomsday. Many websites are selling books and tapes about Nibiru or even “survival kits.” It is all very sad, given the many real issues such as global warming and the financial collapse on which our attentions should be focused. In the final chapter of a new astronomy book (The Hunt for Planet X) Govert Shilling writes: “There is plenty to do for the debunkers—the archaeologists and astronomers who take a long and skeptical look at the tidal wave of Nibiru nonsense and explain with scientific precision what is wrong with this cosmic fairy-tale. They will have their work cut out in the next few years. And on December 22, 2012 there will be a new pseudoscientific cock-and-bull story making the rounds and the whole circus will start all over again, because no matter how many new celestial bodies are found in our solar system, there will always be a need for a mysterious Planet X.”

About the author

Dr. David Morrison is the Director of the NASA Lunar Science Institute and Senior Scientist in the NASA Astrobiology Institute. Dr. Morrison received his Ph.D. in astronomy from Harvard University (where Carl Sagan was his thesis advisor) and has spent most of his career working in planetary science and astrobiology. He is a Fellow of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of the 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 He is recipient of the Dryden Medal for research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Aeronautics and Astronautics and the Sagan Medal of the American Astronomical Society for public communication. Morrison is a leading skeptic and proponent of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HP.. 와우~~~

놀랍다. HP는  IT기기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회사다.
세계 100대 기업중 IBM과 HP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라 할만하다.

사실 HP가 컴팩을 인수할때.. PC는 좀 아니다 싶긴했다.
컴팩이 오히려 더 능력있고 역량있는 PC업체가 될듯했는데...

IBM이 Thinkpad를 중국의 레노버에 팔았을때.. 언젠가는 HP도 PC는 분사할 것이라 생각했다.

또.. 모바일사업이 아무리 PC를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핸드폰 사업을 거의하지 않던 HP입장에선.. 모바일 사업을
다시 한다는게.. 그렇게 좋은 선택으로 보이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HP는 아주 현명한 전략을 선택한것으로 보인다.
PC는 더이상 이익을 내기에는 치킨게임이 난무하는 시장이고
모바일 기기 특히 테블릿PC는 PC 역량과 모바일기기 그리고 소프트웨어가 전부 있어야 하는데..
그런점에선 약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HP의 과감한 결정은 HP를 더 강한 회사로 만들것이다.

한국의 삼성, LG는 어떻게 할까? 더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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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과 애플의 벽은 높았다. 팜 인수 후 ‘터치패드’를 출시하며 태블릿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HP가 사실상 해당 사업을 포기했다.

8월 18일(현지기준) 레오 아포테커 HP 최고경영자는 컨퍼런스 콜을 통해 “태블릿 터치패드의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며 “HP는 태블릿과 웹OS를 사용하는 스마트폰 사업을 접겠다”고 밝혔다.

터치패드가 출시된 지 2개월 만에 관련사업을 HP가 다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HP는 터치패드 가격 인하를 발표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보였다. 갑자기 발표된 급작스런 소식에 블룸버그를 비롯 현지 외신들은 일제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블룸버그는 “HP전체 매출에서 웹OS와 태블릿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갑자기 사업을 정리할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포테커 최고 경영자가 HP를 지휘할 능력을 잃었다”며 HP의 모바일 사업 철수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현지 언론의 이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아포테커 최고경영자는 이날 컨퍼런스 콜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HP가 모바일 사업을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며 “앞으로 웹OS의 가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와 관련해 모바일 사업의 분사나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입장을 번복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줬다.

이날 HP의 깜짝 발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IBM, 델과 함께 PC사업의 전성기를 열었던 HP가 PC사업도 분사하겠다고 발표한 것.

PC사업은 HP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다. 그러나 아포테커 회장은 컨퍼런스 콜에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였지만, 이번 PC사업 분사를 통해 HP는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포테커 최고경영자는 “단, 프린터와 스토리지 디바이스, 네트워킹 장비 등은 분사되지 않고 잔류한다”고 덧붙였다.

HP의 PC사업 분사라는 엄청난 소식에 뉴욕타임즈는 “HP가 2002년 컴팩을 인수하면서 세계 최대 PC회사가 됐다”며 “이후 태블릿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가 성장하면서 PC 매출이 떨어졌고, 이에 결국 아포테커가 부담을 느껴 PC사업 분사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뉴욕타임즈는 “결국 HP의 이번 발표는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기 위해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며 “오노토미 인수를 통한 소프트웨어 부분 성장으로 HP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날 HP는 모바일 사업 포기와 PC사업부문 분사 외에 보도자료를 내고 “데이터베이스 검색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업체로 유명한 오토노미를 인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오토노미는 영국 2위 소프트웨어업체로 코카콜라, 미국증권거래위원(SEC) 등을 주 고객으로 갖고 있다. HP가 오토노미를 인수할 경우 HP의 소프트웨어 서비스 사업의 매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HP는 오토토미를 인수하기 위해 주당 42.11달러의 가격을 제안했다.

하드웨어 사업은 정리하면서 소프트웨어 사업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한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아포테커 회장 취임 후 강도 높은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결국 엄청난 구조조정을 맞이한 HP에 대해 래리 엘리슨 오라클 최고경영자와 마크 허드 전 HP 최고경영자는 웃음짓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하며 “아포테커 최고경영자가 이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구글이 수순대로 H/W 업체를 인수했다.
구글의 기본적략인 구글 생태계 전략은 S/W만으로 한계가 있다.
 
M/S가 Windows를 통해 S/W 생태계는 구축했지만, 세상의 룰은 계속 바뀌게 되고, 완벽한 종속을 만들어 내긴 힘들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또한 애플은 ipod/iphone을 통해서 H/W를 통해 세상의 룰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구글은 효과적으로 M/S와 애플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들의 성공방법에는 H/W업체 인수는 당연한 수순이다.
역시 구글이다. 거의 망한 모토롤라 기술과 역량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구글이라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혜택을 보고, 피해를 볼까?

가장 큰 해택은 "노키아"와 "MS"라고 할 만하다.
스마트폰과 패드에서 존재감이 없던 노키아는 "애플"과 "안드로이드"의 양강구조를 깰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실제로 가능할까?
 비슷한 예는 많다. LG전자는 LG유플러스라는 통신사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삼성전자보다 더 쉽게 휴대폰 사업을 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삼성은 세계1위로 등극했고 애플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고 있다. 삼성은 누구에게나 휴대폰을 팔수 있지만, LG전자는 LG유플러스를 위해서 휴대폰을 만들어야 했고, LG유플러스는 LG전자의 쓰레기 폰도 판매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주로 모토롤라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다면 LG전자-LG유플러스와 뭐가 다를까?

가장 많은 피해는 "LG전자"라 하겠다.

"LG전자"는 시장에 뒤쳐져 있다. S/W역량도 부족하고 스마트폰 품질도 부족하며, 삼성과 애플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도 형편없다. 더욱더 마케팅 능력도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이드를 통해 H/W 역량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데 S/W 역량 없인 게임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게임의 룰이 급변하게 되었다.
 애플과 MS를 끊임없이 따라하는 삼성전자는 S/W역량이 필요성을 조금더 일찍 고려했다는 점에서 "bada"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놨던 것이고, 실제 OS역량은 S/W 역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LG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상황이 점점 LG전자에 불리하게 흘러간다. H/W 성능은 최근 많이 따라왔는데, 아직 Hit 상품이 없고(나올수 있을까?), S/W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OS 업그레이드 역량을 보면 이해가 될듯하다. 최근 삼성전자는 끝낸 진저브래드 업그레이드가 왜 안될까?) 인데.. 구글의 모토롤라 선택은 내부적으론 충격일수 밖에 없다.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성공할 수 있을까?
80~90%는 성공이 가능할 것이다. 구글이 가진 S/W Power와 OS역량은 애플의 그것보다 더 좋다. 그런관점에서 H/W역량이 모토롤라에 아직 남아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특히 기존 구글폰을 HTC와 삼성전자를 통해서 출시했을때 반응을 추론컨데 모토롤라는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세상은 H/W, S/W적으로 "구글"과 "애플"그리고 나머지로 개편될 수밖에 없는가?

만년 2등, 최근엔 3등이 되어버린 LG가 이런 현실을 타게해 낼 수 있을까?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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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터넷기업 구글이 휴대폰 제조업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기로 전격 결정함에 따라 구글의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제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국내 휴대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애플 등의 특허 공세를 막기 위한 조치인 만큼 당장의 큰 변화는 없겠지만, 구글과의 ‘무한한’ 협력관계가 변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다각화된 OS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삼성ㆍLG도 ‘환영’(?)… 그러나 국내 업체 타격 불가피
=15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와 관련, 래리 페이지 구글 CEO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구글플러스에 파트너사 대표들의 축하 메시지를 공개했다.

최대 파트너사인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은 “구글이 깊이 헌신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고, LG전자 박종석 MC사업본부장(부사장)도 “안드로이드와 파트너를 보호하려는 구글의 헌신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애플,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MS), 로드시스 등 경쟁사들의 특허 공세에 구글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휴대폰업체 수장들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는 39개 제조사와 231개 통신사의 지원으로 매일 전 세계에서 55만대의 관련 제품이 개통되고 있다. 이에 출시 3년 만에 43.4% OS 시장 점유율(IDC, 2분기 기준)로 노키아 심비안(22.1%), 애플 iOS(18.2%)를 압도하고 있다.

페이지 구글 CEO가 “안드로이드는 앞으로도 무료로 공개될 것”이라고 했지만 시장은 장기적으로 안드로이드 동맹이 느슨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증권거래소에서 노키아의 주가는 9.1% 급등했다. ‘불타는 플랫폼’ ‘추락하는 휴대폰 공룡’ 노키아의 이 같은 상승폭은 2010년 이후 최대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구글 안드로이드 OS 연합의 약화 전망이 주가 상승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금’ 간 신뢰관계, 국내 업체 OS 전략 재정비=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 역시 ‘환영한다’는 공식 입장과 달리 내부적으로 구글의 의도 파악과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국내 한 휴대폰업체 관계자는 “혼자서 애플과 상대하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될 것”이라며 “자칫 파트너사들을 자극해 (파트너사들이) 독자 OS 개발을 강화하거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을 강화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다는 계산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팬택 관계자도 “달라질 게 전혀 없다. 오히려 안드로이드 진영 관련 특허 소송 쪽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 대부분은 구글과의 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아울러 구글과 모토로라가 강력한 히트상품을 만들어낼 경우, 기존 파트너사들에 대한 지원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애플처럼 폐쇄 정책으로 전환, 무료 OS 정책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휴대폰업체 관계자는 “구글이 아직 자신의 생태계를 확산시켜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장을 극단적으로 몰고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내부적으로 구글의 인수 의도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 단계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휴대폰업계는 이번 사건이 앞으로 삼성전자가 독자 OS인 ‘바다’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OS 다각화와 함께 ‘독자 OS 개발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은 왜 최악의 선택했나
삼부토건 법정관리 신청에 동양측 "독박 쓸 수 없어" 둘다 법정관리로 가게 돼

우량 건설사로 꼽히던 삼부토건동양건설산업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란 최악으로 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연대보증'이라는 족쇄에 묶여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유사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죄수의 딜레마란 게임이론의 대표적인 예다. 각각 다른 방에 갇혀 조사를 받는 두 범죄자에게 혐의를 자백하는 사람에게 가벼운 처벌을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두 범죄자는 상대가 먼저 자백하는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끝까지 혐의를 부인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길 대신 둘 다 자백해 무거운 처벌을 받는 선택을 하는 상황을 말한다.

삼부토건과 동양건설산업은 2006년 4월 서울 내곡동 헌인마을 개발사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대출 4270억원에 대해 각각 2135억원씩 지급보증을 섰다. 양사는 어느 한 회사가 보증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나머지 회사가 채무를 인수하는 연대보증 약정을 맺었다.

이 연대보증이 비극을 불렀다. 양사는 이달 초부터 만기(13일)가 임박한 PF대출 상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채권단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부토건이 만기 하루 전날(12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삼부토건측은 "채권단이 담보가 부족한 동양쪽 채무에 대한 추가 담보까지 요구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깜짝 놀란 채권단은 12일 밤 "르네상스서울호텔(시가 1조원대)을 담보로 내놓으면 만기 연장을 해줄 수 있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삼부토건도 일단 이 제의를 받아들여 법정관리 철회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이번엔 동양건설산업에서 문제가 터졌다. 삼부토건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12일 밤 채권단이 모든 거래계좌를 동결한 것. 채권단 생각은 이랬다. 삼부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보증채무를 동양측이 모두 떠안아 자칫 부도나면 채권 보전이 어렵다는 것. 동양도 결국 사흘 뒤인 15일 법정관리 신청 카드를 빼들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만 '독박'을 쓸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동양측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이번엔 삼부토건의 법정관리 철회가 난항에 빠졌다. 채권단과 삼부토건은 6000억~7000억원대 자금 지원에 대해 그동안 상당한 의견접근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채권단 관계자는 "동양쪽 연대보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삼부도 (법정관리) 철회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두 회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지만 결과는 모두 법정관리로 가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양사의 법정관리가 확정되면 채권·채무 동결로 채권단과 하도급 업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게 돼 누구도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된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원문출처 : [Weekly BIZ] LG전자 요직에 외국인 임원 배치 '남용의 실험' 왜 실패했나
 원문링크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24/2010122401273.html

● 커뮤니케이션 '不通' 
말 안 통해 서로를 경쟁자로만 간주…임원회의 후엔 한국인끼리 또 회의

● 문화적 토대 없이 사람만 덜렁 
"원칙만 강조" "경영 ABC도 몰라"…상대 알려는 노력은 않고 불만만

● 실험은 계속돼야 
"공급망 혁신으로 현금흐름 개선 등…긍정적 변화도 적지않다" 평가도

 지난 2007년 초 LG전자의 새 CEO로 부임한 남용 부회장은 회사의 대대적 변신을 선언했다. "앞으로 LG전자를 글로벌 마케팅 컴퍼니(Global Marketing Company)로 만들겠다"는 비전이었다. 당시 사업 부진에 시달리던 LG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케팅과 브랜드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그에 걸맞은 글로벌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른바 'C레벨(C level)'로 불리는 회사의 최고 보직 임원(부사장급)에 전원 외국인을 스카우트했다. 2007년 말부터 2009년 7월까지 맥킨지·존슨앤드존슨·IBM 등 해외 기업에서 일했던 5명의 인물들이 차례로 영입됐다. CMO(최고마케팅책임자), CHO(최고인사책임자) 등 하나같이 경영지원부서 최고 중책들이었다.〈표 참조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인 이달 초 LG전자는 재직 중이거나 계약 만료 예정인 5명에 대해 계약 해지나 계약 불연장 통보를 했다. LG전자의 실험은 국내 다른 기업은 물론, 타임(TIME)지에서 '아시아계에서는 드물게 다양성을 갖춘 기업'으로 언급하는 등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실험이 왜 중단됐을까?

■문화적 토대 없이 사람만 데려와

LG전자는 "외국인 임원 제도가 필요한 만큼 성과를 냈고 이젠 우리 스스로도 그만한(외국인 못지않은) 역량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부의 시각은 다르다. 외국인 임원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면 어렵게 데려온 그들을 한 번에 모조리 내보낼 리는 없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외국인 임원 축출 사건은 LG전자의 실적 부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LG전자는 2008년과 2009년에 연이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으나, 올 들어 1~9월은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3% 급감했다. 3분기 영업이익은 4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애플의 아이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열풍이 불었지만, LG전자가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에 그만 둔 외국인 임원 중에 전략과 마케팅 최고책임자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LG전자는 실적 저하와 함께 외국인 최고 임원 제도의 성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임원제의 실패와 관련해 LG 안팎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원인은 '소통의 부재'이다. 한국인 직원과 외국인 임원들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과 외국인 임원들이 거리감을 둔 채 '저쪽은 원래 그러려니'하며 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조직·문화적 토대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만 데려왔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양측은 정서적·문화적으로 너무 달랐다. 생산·영업 현장에서 십수 년씩 일해온 국내 직원들은 원칙만 강조하는 외국인 최고 임원들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LG전자의 한 중간 간부는 "그들은 실상과 거리가 먼 원론적 이야기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가령 시장 급변으로 새로운 제품 개발이 필요한데 외국인 임원들이 브랜드나 마케팅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시장 대응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외국인 임원들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경영의 ABC를 안 지킨다"는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소통의 부재

외국인의 전폭적 영입으로 LG 공채 출신의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 것도 원인이었다. LG 계열사의 한 부장은 "적어도 20년 가까이 임원 승진만 바라보며 일해온 LG전자 고참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됐다"고 했다. 외국인 임원들을 함께 일할 파트너가 아니라 나의 자리를 빼앗아가는 경쟁자로 여긴 것이다. 남용 부회장이 외국인들에게만 귀를 기울인다는 말도 나왔다. 남 부회장이 보고 중인 한국인 간부의 말을 자르고, 그 밑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에게 다가가 의견을 물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둘째, 언어도 생각 이상으로 큰 장애 요인이었다. LG전자의 한국인 임원과 외국인 최고 임원을 모두 만나봤다는 모 대학 A교수는 "임원 회의를 한 뒤에 내용 확인을 위해 한국인 임원끼리 따로 회의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전했다.

반대로 외국인 임원들은 선뜻 다가오려 하지 않는 한국인 직원에게 서운한 감정이 컸다고 한다. A교수는 "한 외국인 임원은 '한국 직원들끼리만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를 따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양측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데, 회사 차원의 개선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상황은 악화됐다. 외국인 임원들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자 함께 일할 부하 직원을 외부에서 데려오곤 했다. 이는 양측 간 소통의 부재를 더욱 심화시켰다.

LG전자의 한 부장급 직원은 "비용 지출과 투자, 인사 같은 회사의 젖줄을 쥐고 있는 외국인 최고 임원과, 필드에서 뛰는 직원들 간에 거리감이 커지면서 LG전자의 강점 중 하나였던 유기적 시너지가 점점 약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 뿌리내리기 어려웠던 외국인 최고 임원들은 갈수록 고립됐고, 자신들을 데려온 CEO만 바라보게 됐다. 남용 부회장은 시종 '낭비 제거''비용 절감'을 강조했고, 외국인 임원들은 이를 금과옥조로 여겼다. LG전자의 한 팀장급 간부는 "우리가 외국인 임원에게 기대한 것 중 하나가 한국식 문화에선 힘든 합리적 제도나 개선 건의였는데, 실제는 어떤 제안이든 간에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면 묵살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는 '한국 사람과 다른 게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실험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 임원들이 LG전자에 와서 일으킨 긍정적 변화도 적지 않다. 최고마케팅책임자 더모트 보든 부사장의 경우 이전까지 제각각이던 LG전자 광고 이미지를 일관된 콘셉트로 정리했다. 최고인사책임자 피터 스티클러 부사장은 전 세계 지사별로 달랐던 직원 평가 기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단일화했다.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 디디에 셰네브 부사장은 공급망관리 혁신으로 현금흐름을 직간접적으로 수억달러 개선했고, 최고구매책임자 토머스 린튼 부사장은 구매 관련 프로세스와 시스템에 진전을 이뤄내 전사 구매력을 크게 높였다는 평이다.

외국인 임원들은 무엇보다 LG전자 직원들에게 기존의 틀에만 안주해선 안 된다는 위기감을 심어줬다. 글로벌 기업에 필요한 영어 구사 능력의 필요성도 절감하게 했다. LG전자의 차장급 한 직원은 "일부 외국인 임원은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도 함께 마시는 등 적극적인 동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의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은 세계의 인재들이 자신의 장래를 맡길 만하다고 느끼고 몰려들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LG전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LG전자 외국인 임원들의 일괄 퇴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적 부진으로 인해 다양성의 실험이 미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좌초했다는 것이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LG전자 구본준 부회장이 CEO 남용이 남긴 절반의 실패를 치유하면서 동시에 그가 선구적으로 실천한 다양성의 시도는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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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 정태영사장 현대차 그룹의 로열패밀리다.
그러나, CEO로서 놀라운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현대카드 외부적 평판과 회사 내부 평가를 들어보면
카드와 캐피탈의 사채업적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한 강점이 많은 회사라는 생각이든다.

정태영사장이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현대모비스에서 14년간 근무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구매 총괄을 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놀랍다.

현대모비스와 같은 자동차 관련 제조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굴뚝산업 전문가라면
금융업과 유통업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카드회사를 성공시킨 역량은 뭔가 다른게 있는 건 아닐까?

아마 추측건대..
1. 인문학(불문학)에서 시작된 사고의 깊이와 유연성
   - 인간에 대한 탐구가 기본인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점에서 감성마케팅과 디지인 중심 사고가 나온건 아닐까?
   - Management를 할 자리에 있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배우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그러니 Manager의 기본 소양이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2. 끊임없이 자기 혁신하려는 사고
   - 51세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사려고 하는 모습과 제조업을 통해서 배운 혁신사고??
     (사진으로 봐도 실제봐도 상당히 스타일쉬하고 젊어보인다. 통상 제조업 근무를 오래하면 군대같이 썩게 마련인데)
     (스포츠와 미술에 관심도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고 한다)
     (예술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성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자기혁신은 예술적 상상력의 발호라고 우겨도 될듯한데)

3. 카드업에 대한 통찰력
   - 카드업은 현대판 대부업의 꽃이라고 볼수 있다. 속된 말로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고 쉽게 사용한다.
     그래서 감성이 중요하다. 기술적인 이유(1% 금리차, 0.1% 더 주는 포인트)로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한
     산업이다. 그냥 카피하면 끝.. 그래서 인간의 심리와 감성을 흔들어야 한다.
   - 인간의 감성적 취약점을 노골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건 산업에 대한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4. 그리고 패밀리라는 강한 추진력과 책임감.
   - 조직 구성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해오던대로 그리고 다르곳에서 하던데로..
   -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직은 성장할 수 없다.
   - 그래서 Owner가 중심이 된 기업(자회사도)이 미래가 있다. 한편 쉽게 망할 수도 있지만  아닌가.

5. 현대캐피탈 효과
   - 현대 카드는 실상 현대차라는 든든한 빽을 통한 대부업 현대캐피탈이 없었다면.. 지금 처럼 못했을지도 모른다.
   - Cash Cow 현대캐피탈 효과는 현대 카드 성장의 분명한 이유가 된다.

그런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쉬운 게임은 아니다. 국내 카드업은 통신업과 매우유사하다. 한정된 시장에서 서로 땅따먹기를 통해 생존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 카드를 대체할 지불 결제 수단이 계속 그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플랫폼 전쟁중).
금융-통신 융합에 따라 통신사는 금융을 하려고 할 수 있으나(하나SK카드, BC-KT), 카드사는 금융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해외 카드 브랜드의 공격도 가속화 될것 같다(특히, 중국 Unionpay).

그래서 카드 전업사의 미래는 안개속이다.
해외 공략, 새로운 결제수단의 복합화, 커머스로의 진출, 융복합 금융상품 개발...
비슷한 고민을 여러 카드사에서 하겠지만..

왠지. 정태영사장의 집중과 선택이 궁금하다.
아직까진 감성과 이미지를 통한 혁신을 뛰어넘을 새로운 혁신의 모습은 내부/외부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사장이 아니라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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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Career Path에 대한 일종의 미신같은게 있다.
10년 이상은 자신이 업으로 가져야 할 Job이 이어야 하고 그래도 Outlier가 된다고 한다면..
정태영 사장은 제조업체 CEO를 했어야 하는거 아닐까?

정태영 사장에게는 현대모비스에서 구매총괄을 했던 것이 CEO로서 준비 했던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혹은 그 안에서 Innovator로 Job을 정의했던 건 아닐까?

만약 그게 맞다면, 겉으로 보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을 했던게 중요하게 되지만..
그래도.. 정태영 사장이 패밀리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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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꿰뚫라" 시장점유율 7년 만에 6배로
한발 앞선 재기 넘치는 광고, 내놓을 때마다 대박
김승유·어윤대회장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카드사 CEO

"처음 현대카드에 와서 너무 힘들었죠."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51)이 지난 2003년 현대카드에 처음 둥지를 틀었을 때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은 2%대로 최하위권이었다. 옛 다이너스 카드였던 현대카드는 지난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로 인수됐지만 정 사장이 오기까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허덕이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정 사장이 부임한 해인 2003년 이른바 '신용카드 대란'이 닥쳤다. 정 사장은 경쟁 신용카드사들이 자산 부실화와 높은 연체율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모(母)회사인 은행에 차례로 흡수합병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작년 말. 정 사장이 이끌어 온 현대카드의 시장점유율(신용판매 이용실적 기준)은 12% 이상까지 올랐다. 7년만에 시장점유율이 6배 가량 상승한 셈이다. 현대카드는 이로써 신용카드 전업사 중 강력한 라이벌인 삼성카드를 제치고 1위인 신한카드(옛 LG카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작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영업이익 합계액은 7000억원을 넘어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정 사장은 한국의 대표 CEO(최고경영자) 중 한 명으로 자주 꼽힌다. 규모로만 본다면 정 사장 보다 큰 기업을 이끄는 성공적인 경영자가 많지만 정 사장 만큼 관심을 받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지난 1월 조선비즈닷컴과 인터뷰를 가졌던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이진한 기자
◆ "아버지는 말하셨지" "make break make"…스포츠ㆍ문화 마케팅 선도

정 사장과 현대카드가 7년의 짧은 기간 내에 창조적인 기업문화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재치 넘치는 광고 덕이 크다. 현대카드는 내놓는 광고마다 소위 '대박'을 쳤다.

정 사장이 처음 선보인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광고는 인기 유행어가 됐다. 카드의 옆면도 컬러 디자인의 영역임을 강조한 '앞면 앞면 옆면 옆면' 광고도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최근 선보인 'make break make' 광고는 단순한 광고를 넘어 현대카드의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혁신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광고 뿐만이 아니다. 정 사장과 현대카드는 디자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현대카드는 지난 2004년 금융권에선 처음으로 유앤아이라는 자체 서체를 도입해 모든 제품과 영업점에 현대카드만의 디자인 이미지를 심었다.

정 사장과 현대카드는 스포츠마케팅과 문화마케팅을 금융업과 잘 접목시켜 브랜드 파워를 높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태영 현대카드ㆍ현대캐피탈 대표가 디터 람스(Rams)가 디자인한 'LE1'스피커의 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카드ㆍ현대캐피탈 제공
현대카드는 지난 2005년 9월 첫 '슈퍼매치' 타이틀을 내걸고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테니스 경기를 개최해 좌석 매진을 이끌었다. 현대카드는 2007년 1월 팝페라그룹 일디보를 시작으로 '슈퍼콘서트'를 열었다. 현대카드는 이후 2008년 11월 빌리 조엘, 2009년 1월 플라시도 도밍고, 작년 8월 스티비 원더 등을 초청해 대박 공연을 이어갔다.

금융계 대선배인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나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가장 닮고 싶은 카드사의 모델로 정 사장의 현대카드를 꼽고 있다. 김 회장은 기자와 만나 "카드업은 금융업과 유통업이 섞여 있는데 정태영 사장이 이것을 꿰뚫어 보고 잘 경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트위터로 通한다" 트위터·아이폰 마니아

정 사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www.twitter.com)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경영인으로 손꼽힌다.

그는 지난 6일 하루 동안에만 8개의 글을 트위터에 남겼다. 그는 회의나 업무 중에도 아이폰을 이용해 자유롭게 생각과 의견을 피력하곤 한다. 그는 최근 네덜란드의 디자이너와 업무회의를 하며 느낀 생각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좋아하는 음악CD를 찾은 소감을 다양하게 트위터에 소개했다. 지난 4일에는 신입사원 환영식을 치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는 "어떤 분이 현대카드의 광고 슬로건인 'make break make'의 뜻을 물으셔서 최초로 그 뜻을 외부에 공개합니다"며 "만들었던 딴 카드사 카드 취소하고 현대카드 만들라는 의미의 콩글리쉬(한국식 영어)였습니다^_^"라고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 사장의 트위터는 단순히 농담이나 자신의 일상을 뽐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종종 그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기업 경영에 대한 인사이트(통찰력)와 소신을 밝히곤 한다.

그는 교보문고 본점에 들른 후 "서점 운영의 핵심은 교보문고 처럼 경험이 많은 도우미 분들의 책 안내서비스"라며 "집수리 용품을 파는 미국의 홈디포 체인 역시 고객을 돕는 인자한 도우미가 경영 핵심이었는데 비용 절감한다고 도우미를 해고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42)과 작년부터 트위터를 통해 친해진 뒤 오프라인에서도 만남을 이어가며 '디자인 메이트(design mate·디자인을 통해 가까워진 친구)'로 친분을 다졌다. 정 부회장은 최근에는 신세계 사원증 디자인을 현대카드에 맡기기도 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트위터.
◆ 현대종합상사-현대모비스-기아차-현대차에서 두루 근무

정 사장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정경진 종로학원 대표의 아들이라는 것은 웬만한 금융업계나 재계에선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현대카드 CEO를 맡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 사장은 1983년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스공대(MIT)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에 앞서 정 사장은 전공을 살려 학생시절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1987년 경영학 석사를 딴 후 귀국해 현대종합상사 기획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8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동경지사, 샌프란시스코지사 등을 맡다 2001년 전무를 역임했다. 정 사장은 현대모비스에서만 1988년부터 2001년까지 13년을 근무한 셈이다. 현대카드 재직기간의 2배에 가까운 기간이다.

정 사장은 2001년부터 기아자동차로 옮겨 자재본부장, 2002년 현대기아자동차에 부임해 구매총괄본부 부본부장을 지냈다. 현대기아차그룹에서 자재본부 또는 구매총괄본부는 엄청난 규모의 자재를 관리하는 핵심 부서다.

그는 기자와의 식사자리에서 "현대차그룹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술이 늘었다. 처음엔 술을 못해 고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한 자리에서 소주 몇 병을 거뜬히 비워 소탈한 면모를 보여줬다. 고급 와인이나 위스키만 선호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 최장수 카드사 경영자… 그의 과제는

정 사장은 8년째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이끌고 있다. 카드업계 최장수 CEO(최고경영자)다. 카드업계를 떠나 금융권에서도 8년이면 상당한 기간의 CEO 경력으로 평가받는다.

정 사장은 한 번 쉬어갈 법도 하지만 최근 주위 사람들에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두렵다며 경계감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현대카드와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져선 안된다"는 말을 했다.

올해 정 사장과 현대카드의 과제는 현대카드M의 성공을 이어갈 새 먹거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실제로 경쟁 카드사들은 현대카드의 빠른 성장이 현대카드M의 성공에 힘입은 부분이 크다며, 이제 그 효과가 떨어질 때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작년의 경우 세금감면 혜택으로 현대기아차가 많이 팔렸고, 그로 인해 현대기아차와 선(先)포인트 할인제휴를 독점적으로 맺고 있는 현대카드의 성장세가 컸지만 올해부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카드는 연회비 7만~10만원가량의 프리미엄 신용카드인 플래티넘3 시리즈로 신(新)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이 카드는 연회비가 7만~10만원대로 일반카드보다 비싼 대신 포인트를 두 배로 적립해 주거나 주유 할인 혜택을 대폭 늘려 실용성을 강조했다.

정 사장은 작년 10월말 직접 플래티넘3 시리즈 신상품 발표회에 나섰다. 그는 "기존 플래티넘 카드 시장이 회원 500만명, 이용액 40조원 규모지만 카드사별로 차별성이 없어 고객들의 아쉬움이 컸다"며 "자동차 할부구입 혜택과 쇼핑, 여행 등에 특화된 현대카드 플래티넘3 시리즈로 새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트위터에서 "출시 4개월여만에 현대카드 발급 카드 중 플래티넘3 카드 발급수가 전체의 20% 비중을 넘어섰다"면서 연회비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높은 한국 신용카드 시장 현실을 고려하면 성공적인 추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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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어느 조직에서든 경쟁은 필요하다.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작동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속의 경쟁이다.
먹이사슬은 그런 경쟁의 자연스러운 체계이고, 자연이란 이런 먹이사슬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쟁을 한다는 건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러나, 생명체들은  그들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쟁만을 하진 않는다.
사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수백마리의 라젤이 무리지어 행동하고,
무서운 자연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댐과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낸 인간의 행동은

경쟁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 경쟁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수도 있다.
나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 안에서는 경쟁은 약보다는 독이 될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는 약이 될까? 독이 될까?

마르크 무슬리는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에 난 심정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우던 피터 드러커의 말이 더 깊이 다가온다. 

" 미국 경영학의 귀재 피터 드러커는 기업에 부서 간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는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쟁은 기업 밖에서 하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 내에서 경쟁은 절대 금물이다.” 그는 베버리지 경의 말까지 인용하며 “조직을 구성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충고했다. "


이걸 해내는 경영자와 리더가 Great Leader가 아닐까 싶다.
--
마르크 무슬리 Marc Mousli 경영 컨설턴트

에어버스사가 실시하는 직원평가제도가 최근 도마 위에 올랐다. 제도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공판이 열리기 전에 회사 쪽이 미리 잘못을 시정하면서 사건은 조용히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강제배분평가제도’(Forced Ranking System, 직원을 상·중·하로 평가해 하위 10%를 내보내는 방식)가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미국계 회사 가운데 5곳 중 1곳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또 이미 수년 전 프랑스 IBM사와 휼렛패커드사가 비슷한 문제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강제배분평가제도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제너럴일렉트릭(GE)사의 회장을 지낸 잭 웰치를 통해서다. 창의성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던 잭 웰치는 20년 동안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자이자, GE 직원들 사이에 가장 두려운 존재로 군림해왔다. 1984년에는 <포브스>로부터 “미국의 가장 과격한 보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과격한 보스, 잭 웰치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증진시킬 획기적인 방법이 없을까 늘 고심하던 잭 웰치는 어느 날 책상 한 귀퉁이에 가우스곡선을 그려넣었다. 그리고 곡선을 삼등분했다. 중간 부분은 GE사를 위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일 잘하는 간부사원 70%(웰치는 이 부분의 직원을 일컬어 ‘Vital 70’이라고 불렀다), 상단은 가장 우수한 상위 20%(Top 20), 하단은 가장 형편없는 하위 10%(Bottom 10)를 의미했다. 그리고 경영진에게 이렇게 세 등급으로 간부직원을 평가해 분류하도록 강제했다.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는 목표 달성 능력과 패기, 그리고 간부사원으로서 지녀야 할 리더십 따위가 거론됐다. 특히 웰치가 금과옥조로 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GE사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회사의 가치를 공유하는 직원이라면, 목표를 달성할 때에는 포상을 내리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심하게 문책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회사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직원은 아무리 실적이 뛰어나도 가차 없이 하위 10%로 분류됐다.

이들에게 내일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평가서를 전달받는 경영진은 대부분 “조직 내에 하위 직원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이제 하위 10%에게 남은 일은 다른 직장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종용받는 일뿐이었다. 강제배분평가제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제도를 일컬어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등급 매겨 쫓아내기)라고 부른다.


잭 웰치는 이렇게 실적이 부진한 직원을 무더기로 퇴출하다 보면 “우수한 인재로만 조직을 구성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해가 거듭될 때마다 선별 기준도 한 단계씩 올라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강제배분평가제도가 주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경영진의 자리는 그야말로 가시방석이 따로 없다. 10명의 절친한 동료 직원 가운데 1명의 목을 쳐내야 하는 일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영진에 올라 손발 맞는 사람들을 모으고 팀을 조직할 때까지는 그런대로 탄탄대로가 펼쳐진다. 하지만 일단 팀이 갖춰진 다음에는 냉혹한 현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평가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제대로 평가를 수행하지 않거나 이를 거부하는 경영진은 곧바로 하위 10% 신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배분평가제도는 단순히 비인간적인 제도만이 아니다. 생산성도 떨어진다. 집단 업무란 경마와는 다르다. 명마 15마리만 줄줄이 세워놓고 경주를 시킨다고 전체적인 경기 성적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전문기술을 요하는 부서에서는 뛰어난 인재가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 실무 부서에서는 지나치게 뛰어난 인재는 오히려 조직에 독이 된다.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학 교수도 유능한 점원을 해고하게 된 어느 점포에 관한 얘기를 예로 들었다. 서튼에 따르면 이 점원은 매출 실적 면에서 가장 뛰어났지만, 동료들을 거만한 태도로 대하거나, 동료의 고객을 가로채거나, 동료들 사이에서 비협조적으로 행동하기 일쑤였다. 강제배분평가제도가 낳은 폐해였다. 하위 10%에 속하지 않으려면 동료를 돕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요, 목숨을 부지하려면 동료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타급 판매사원을 해고하고 나서 경영진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을 겪게 된다. 점포의 총매출액이 30%나 증가한 것이다. 사실상 이 ‘판매왕’은 그동안 조직에 위화감을 조성해 전체 직원의 판매 실적을 저조하게 만드는 원흉이었던 셈이다.

 

실적 좋은 놈이 조직 망쳤네

미국 경영학의 귀재 피터 드러커는 기업에 부서 간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는 경영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쟁은 기업 밖에서 하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 내에서 경쟁은 절대 금물이다.” 그는 베버리지 경의 말까지 인용하며 “조직을 구성하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충고했다.

우리는 그동안 조직원들끼리 서로 함께 일하고 싶어하거나, 별다른 꿍꿍이 없이 서로 편하게 협력하고, 논쟁을 벌이는 조직이 상대적으로 실적도 좋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런 조직에는 실력이 특출한 직원이 평범한 직원과 나란히 앉아 일을 한다. 아이큐는 평균보다 낮지만 상냥한 직원이 있는가 하면, 새로 나온 경영론을 익히는 일보다는 바로크 음악이나 송어 낚시 등에 더 관심이 많은 ‘예술인’도 하나둘 섞여 있을지 모른다. 잭 웰치나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기업의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은 내부 경쟁이나 개인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직원 사이의 신뢰와 동료애다.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해고 목적의 평가는 안 될 말

강제배분평가제도 실시에서는 불가피하게 노동법을 위반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먼저, 평가 결과를 악용하는 문제가 있다. 연봉이나 상여금의 수준을 책정하거나 업무 역량을 증진할 요량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합법적인 행위다.

하지만 직원을 해고하기 위한 목적의 평가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직원평가 결과는 업무상 과오를 저지르거나 역량이 부족한 직원을 처벌하기 위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없다. 해고 규정은 따로 있다.

직원을 평가할 때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경영진은 논란의 여지 없이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한다. 회사는 직원 평가 기준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직원이나 노사협의회에 통지할 의무가 있다. ‘기업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문제는 모호한 성격을 지니므로, 직원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에는 부적합하다. 가치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제도가 반대 세력이나 조합원, 심지어 경영진의 선택에 약간 토를 다는 이들까지 회사 밖으로 쫓아낼 빌미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저물어가는 MS와 전략적제휴를 한것도 그렇고.. (노키아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CEO의 전략적 직관이 얼마나 소중한것인지도 여럼풋이 느껴진다.

삼성의 대응과 LG의 실기..이에 따른 전략변화..
삼성의 Owner 중심의 대응과 LG의 늦었지만 Owner중심의 대응..

언제나.. 따라하기 전략인가 싶기도 하다.

읽어볼수록.. 기업 문화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끔 LG라는 기업의 한계를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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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LG lost the smartphone race - full version

LG_optimus_korea.top.jpg By Shin Kiju, contributor


FORTUNE -- It was a fateful day back on Feb. 16, 2009. That's when LG Electronics' then-vice chairman and CEO Nam Yong met with Microsoft CEO Steve Ballmer in Barcelona, Spain. There, at the world's largest mobile industry trade show called the Mobile World Congress, LG and Microsoft inked an agreement for strategic collaboration. LG wanted to use Microsoft Windows Mobile OS as its platform for some 50 types of smartphones by 2012. The decision by the world's third-largest handset manufacturer to select Microsoft as the operating system for its smartphones was one of the most puzzling announcements to come out of the confab.

Yet Nam confidently told reporters that LG's smartphones using the Windows Mobile OS would be key to setting trends in the rapidly growing smartphone market. Ballmer concurred: "Microsoft's software technology and LG Electronics' hardware technology will provide users with an amazing mobile experience."

Microsoft had every reason to be happy. The market was shifting away from PCs toward mobile phones. Microsoft, which had been complacent thus far, was struggling in the mobile market, having already lost the upper hand to Apple and Google. So it was a surprise that LG, which had just edged out Motorola for third place in the global handset market, was joining forces with Microsoft. (LG had posted an 8.6% share of the global handset market in 2008.)

Many questions about LG's strategic choice needed answering. After all, Windows Mobile was a hastily cooked-up OS designed to keep up with Apple and Google. Microsoft had basically scaled down its PC-based Windows OS and squeezed it into a handset, making the OS painfully slow. Moreover, the problems with Windows Mobile were not restricted to speed. While in Barcelona, Ballmer was busy criticizing Apple's App Store -- not on product merit, but on the basis of Apple's closed system. Ballmer said it was important that the App Store be open, because he viewed openness as a basic requirement.

But with Windows Mobile, it would be impossible to match the App Store's application ecosystem in the short term. Apple, having just created a sensation with its iPhone, had not even bothered to show up at Barcelona. And yet, the rising star, LG Electronics, chose the setting sun, Microsoft.

Thus, right from the outset, LG started off on the wrong foot in the smartphone business. While pledging to make a slew of smartphones into 2012, it had no solution for the Windows OS's lack of applications.

The company also made another strategic mistake. LG Electronics Mobile Communications Company CEO and President Skott Ahn, who was also in Barcelona, said the key trend in handsets for 2009 would be the User Interface (UI). The UI is focused more on how one uses a handset, rather than on what to use, due to its focus on making usability easier. LG's Arena Phone, for example, uses touch screens to show function buttons in 3D. The touch screen was becoming the trendsetter among handset UIs, and now LG had gone one step further. LG's 2009 business strategy focused on making a more consumer-friendly interface. Stating that it would push for a convenient UI as its key strategy meant aggressive marketing efforts. LG even set in motion a plan to increase its product-planning staff.

In another part of the handset market, Motorola had already decided to collaborate with Google to launch its Android phone. After Motorola's eclipse by LG in global market share, it spared no effort in developing an Android phone with Google (GOOG, Fortune 500) in a bid to make a comeback. In Korea, the Pantech Group was also putting everything on the line to develop a new smartphone using Google's OS.

These competitors were just waiting for the chance to deal a blow to LG. They believed that the market's shift to smartphones offered them a golden opportunity. Pantech wanted to ride Google's winning streak, which had begun with its win against Microsoft (MSFT, Fortune 500) in the OS market, and do the same in handsets. Meanwhile, LG stressed on the one hand a more user-friendly interface and more aggressive marketing and, on the other hand, Microsoft Windows Mobile, which was already proven to be a failure in the market with no applications store. And that's not to mention that LG was planning to wait three years to launch smartphones, as late as 2012.

Success only in the short-term

In 2009, at least, LG's strategy was paying off. It set a sales goal of 100 million units. It said it would post double-digit global market share. With Nam at the helm, it achieved both. It sold more than 100 million handsets, and market share climbed to 10.4%. LG's success in cementing its position as the No. 3 handset manufacturer in the world owed much to design.

The Chocolate phone, which it launched in 2005, triggered a design competition in the global handset market. It joined forces with the luxury designer brand Prada and launched the Prada phone, which sent handset makers scrambling to collaborate with other fashion designers. Samsung launched Giorgio Armani phones as a direct result of LG's lead.

LG, it seemed, was definitely thinking ahead of the competition. Nam, with 25 years in the electronics industry under his belt, is known as an intrinsically a professional manager who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marketing, of listening closely to and noting customers' ever-changing tastes. This meant the focus of Nam's handset strategy would inevitably switch to designs that would immediately grab consumers' attention.

The head of the LG Electronics Corporate Design Center, Paul Bae, well-known and respected internally for pioneering the shift to CDMA technology years before, led the design strategy. With him at the helm, LG was hot on the heels of Samsung with its new phones called Lollipop and Cookie. In the second half of 2009, glitzy girl groups and boy bands were advertising LG handsets. The brand was hot.

In the second half of 2009, however, the smartphone emerged as a game-changer. With the aggressive introduction of the iPhone into Korea, the market instantly changed from one of usability competition to a smartphone contest. The real errors in judgment began from this point on, and LG failed to see the pace of change. Upper management refused to even be briefed on smartphones. "[We] did know. It's just that the pace of change was faster than we had anticipated," recalls an LG employee who asked not to be named. "Moreover, LG Electronics was growing its top line. We had achieved the year's target in terms of sales and market share. [Management] said that the environment was changing, but it was difficult to single out any one problem."

The global financial crisis had blindsided LG. In the second half of 2008, the mobile operations, home entertainment, and air conditioning units of LG had all seen sales fall sharply, filling the company with a sense of crisis. Nam's focus on handset marketing, design and usability, which were directly linked with immediate performance, were in direct response to the company's need to recover shrinking sales revenues. LG's recovery in the first half of 2009 was impressive, and the mobile unit's operating income margin more than doubled over late 2008.

Yet there were some worrying signs. Sales revenues and margins began a downward curve from the third quarter of 2009 onward. "Yet LG did not declare a crisis, as they had done in late 2008," says a handset management consulting insider. "They probably felt yet another crisis management so soon after successfully overcoming the financial crisis could make the company look bad." The ROA Group, which analyzes and forecasts trends in the mobile market, points out that LG's response came too late compared with market expectations.

Failure to see the threat

LG had, in fact, completely missed the immediate threat from smartphones. The first half of 2010 was a failure. Smartphone sales dominated the market more quickly than had been anticipated. It goes without saying that Apple, the originator of the smash hit, had a great year. Taiwan's HTC, in collaboration with Google, also launched its Android phones and gained market share, which was a further blow to LG. Motorola (MOT, Fortune 500) likewise demonstrated considerable success with its Motoroi. One small piece of good news for LG was when Google scrapped its ambitions to create an Apple-like hardware division. At least Google could now become an ally to all handset manufacturers in their battle with Apple (AAPL, Fortune 500). Yet LG remained unwilling to cooperate with Google. Instead, it was obsessed by its deal with Microsoft.

But Microsoft was having its own problems. Its plans to launch a replacement for Windows Mobile kept being postponed. As Microsoft failed to come up with an effective solution, LG ended up the loser.

Unable to address the smartphone issue, LG had no choice but to depend on its feature phones. It came up with the Maxx phone, the only selling point of which was a piling on of hardware, which it said would enable it to compete with smartphones. It even showed a dependence on past glories from the second half of 2009, launching a New Chocolate Phone and even a Prada 2 Phone. These strategies were nothing more than a rehashing of past hits. Since it could not compete with its software, it attempted to surmount its difficulties through hardware.

Samsung comes on strong

Like LG, Samsung had initially missed the smartphone opportunity. However, Samsung made sure not to miss the next step. The first half of 2010 fully demonstrated Samsung's ability to catch up with a market leader. Samsung had an advantage in hardware, like LG. No matter how much Apple pushed its App Store, it could not afford to completely ignore hardware. Samsung, as a leading hardware company, maintained its advantage and began to augment its shortcomings in increments. It first launched the Omnia series and then quickly followed up with better smartphones, albeit incomplete models. This strategy paid off.

According to an employee of Samsung's wireless business division who spoke on condition of anonymity, the company in early 2010 was the busiest it had ever been in his entire career. The streets near the division were filled every night with employees working late and then unwinding with a drink or two. One department continued to roll out products to keep up with the market, while other departments worked feverishly on a smartphone strategy.

Samsung was attempting to do everything it could to keep up with rivals before the gap became insurmountable. Chairman Lee Kun-hee's return to the leadership of Samsung proved effective, too. The owner's return whipped the company into shape again, just as Samsung had started to lose its influence in the market.

On the other hand, the first half of 2010 was when LG was fully exposed to the impact of its weakness. "We had missed the moment but we could still have launched a smartphone in the first half which could have competed with Samsung's Galaxy S," an official at LG recalls. "Company employees even complained that the management could not admit that it had misread the market and had lost ground on smartphones, and that launching a smartphone at that moment would be an admission of this failure, and so they continued to drag their feet."

Because mobile execs enjoyed very high status within the LG Group umbrella, those who called the shots in the handset business were always well placed for career advancement. This made the management reluctant to admit to any failure on their watch. Moreover, a strong owner leadership style did not exist in LG at the time, with Nam being a typical management-oriented professional. Devising the 2009 business plan with a focus on performance and marketing, likewise, was a demonstration of his leadership style. His office was filled with ideas to save expenses and eliminate waste, customer insights, and ways to achieve more effective work performance. The latter even included guidelines on how to converse efficiently by phone and how to save time commuting. There was nothing on creative management or the next big idea.

It took more than six months for LG to come up with the Optimus Q. Its platform was the Android OS. Yet Optimus Q still lagged behind Samsung's Galaxy S and HTC's Incredible. In spite of using the same chip set, competitors used the Android OS 2.1 version, while the Optimus Q was the only one using the 1.6 version. LG intended to provide free upgrades later on. Even though the Android 1.6 gave sufficient performance for a smartphone, the market standard had already switched to 2.1. Once consumers felt the product was less innovative, the smartphone had little chance of survival, regardless of how well made it was. LG was once again behind the curve. Its lack of speed in responding to changes in the market held LG back throughout the first half of 2010.

When quality had been the deciding point, such as in design or usability, LG's decision-making structure had been successful. Yet when the market started to be driven by speed, LG began to falter. That has been most remarkable difference between Samsung and LG. Samsung moved fast enough to continue the chase while developing its proprietary OS, the Bada, in spite of its own weaknesses. LG, on the other hand, reacted too slowly in decision-making and changing direction to be able to catch up with its rivals. LG required the importing of the necessary components and software development from outside the company in order to begin a new paradigm, but Samsung already had the components at hand and only needed to put them together.

Many believe that Samsung actually has the ability to take the market lead, but its conservative organizational culture means it prefers to stay half a pace behind the market leader. LG always seems to chase from behind. It responds only after the trend changes.

This strategy of remaining the slow pursuer is not the only culprit. Smartphone innovations have been nothing less than technological shifts, where a handset market that was centered on hardware has had to transform to a focus on software. This could be read as a political shift as well. It is a diplomatic battle where handset manufacturers and software companies form and break alliances depending on the gains to be made from them. Just as had originally happened in the PC market, this appeared to be a duel between Apple and Microsoft. When Apple grew too fast, hardware companies including Samsung and Nokia (NOK) collaborated to form an anti-Apple front. It was around that time that LG's CEO Nam Yong and Microsoft CEO Steve Ballmer shook hands in Barcelona.

The Google factor

Ties changed again, however, when Google entered the picture. When Google gave up its Nexus One phone and announced that it would make the Android OS public, this pitted Google against Apple. Google had stepped into the fray when Microsoft failed to meet the high expectations of the industry and devise an OS that could compete with Apple. Microsoft's slump caused Google to have no qualms about dropping Nexus One. Hardware companies that were battling Apple all gathered around Google's Android banner. Yet LG, for some reason, still saw the market as Apple vs. Microsoft.

As the handset market realigned itself as a duel between Apple and Google, companies with outstanding hardware like LG and Samsung actually found themselves at more of an advantage. If the software were all Google, the market would involve competition for hardware. LG read this situation incorrectly. Samsung recognized the change in the market early on, and it had the necessary resources to instantly vault into a leading position as the most important handset manufacturer in the Google camp.

The diplomacy war did not stop there. Apple joined forces with mostly second-ranked telecom service providers around the world. A telecom service provider and a handset manufacturer are like husband and wife. The manufacturer makes products the telecom company needs, and the telecom company creates the environment the manufacturer needs.

Apple's alliance with KT [formerly Korea Telecom] has been in this vein, with KT aggressively adding Wi-Fi zones that benefit iPhone users. SK Telecom already had a tight partnership with Samsung. LG has been left dangling, its telecom service provider lagging behind as the third-ranked in Korea.

With each quarter of 2010 came reports of losses. LG's market share sank to under 20%, and the company posted $190 million loss in the third quarter of 2010.

Nam was relieved of his position as CEO, leaving dishonorably with three months left in his term. On Sept. 30, 2010, the outgoing CEO admitted in a farewell address to employees that his feelings of regret were all the more acute as the slump in the company's fortunes had started just as they were boasting of record sales performances and slapping one other on the back.

Can a founder's grandson save LG?

Nam's replacement was Koo Bon-joon, a 59-year-old grandson in LG's founding family. While to outsiders, this might be interpreted as a bad move reeking of nepotism, owner management can bring benefits. Rather than short-term gains, owner-managers can pursue longer-term strategies. And, as is often the case, an owner returns not because the company is in trouble -- but because he or she believes that the company can be saved. Koo's appointment signals that there is a road map in place for resuscitating the ailing company.

One sign of this is the Optimus 7, which launched last fall in Western Europe, Australia and Singapore. Using Microsoft Windows 7 as its OS, the phone has received laudatory reviews. CNET Australia called it "our pick of the Windows phone range so far" with "a complete package of design, features and usability," and gave it a 9.0 out of 10.

Since it was Microsoft's mobile software troubles that had led to LG Electronics' troubles, it could be Microsoft's resurrection that will herald LG Electronics' revival. Microsoft is already pushing the Windows Marketplace as a competitor to Apple's App Store.

If ex-CEO Nam was a gentleman, new CEO Koo is a fighter. He is one of the top electronics experts in the LG Group, having worked at electronics-related affiliates for 25 years. He was also one of the key figures behind the development of LG Display. Koo is said to be results-oriented, strict in punishing failure, and generous in rewarding success -- a management style that could accelerate decision-making processes along the lines of Samsung's. While CEO of LG Display, Koo always urged the company to be No. 1 in its sector. He even made LG Display employees greet one another with the words: "Let's be Number One." He emblazoned the words "First-place Company, First-Place Employee" on his business card, going against the overall LG Group's second-place strategy. When LG Display outstripped Samsung to top the LCD field, it was due in large part to Koo's efforts.

Koo's team has also been handpicked. Park Jong-seok has been named head of mobile phone development, elevated from his previous position running the R&D Center. Park has a reputation for strength during crisis, having headed the division that resurrected plasma-display TV after it was nearly eclipsed by LCD. At the Consumer Electronics Show in Las Vegas in 2008, Park won the Best of Innovation award for the LG XCanvas BoBos PDP TV. It was a complete surprise to all, as plasma had been seen as a fading technology. Having been groomed to take the mobile helm during his tenure at R&D, his appointment was merely accelerated by the crisis situation. Havis Kwon will lead the Home Entertainment division, considered the epicenter of the business. He is known to be one of the most aggressive and decisive managers inside LG, who prefers to lead than to have to play catch-up.

Focus on recovery

For now, the outlook is positive. LG is planning its recovery mainly around the well-received Optimus 7. Koo's inaugural address to employees last October stressed that the least amount of complacency can lead to a company being overtaken by its competitors. In the months since, Koo has set about transforming LG from a marketing-centered to a technology-centered company. The change in the company's fortunes has begun.

The Koo-Park-Kwon trio is considered among the most aggressive in the history of LG. It is a rare set of appointments inside LG Group, which normally is said to place great importance on harmony. It goes without saying that innovation will continue as a result of these and other appointments. There is also a high likelihood that a slew of young executives will appear at the forefront of the leadership, as moves are afoot to promote a number of younger executives.

There's no time for complacency over at Samsung, which has begun its own Changing of the Guard after Chairman Lee Kun-hee declared that the company needed young blood at the top. The company has overhauled its leadership with Chairman Lee's return, CEO Lee Yoon-woo's resignation, and Choi Gee-sung being named CEO of Samsung. Internally, Samsung's flagship division has seen a change in its organization with some bold personnel replacements. Although not having graduated from a prestigious university, one employee widely acknowledged as a mobile phone expert has been named a team manager and executive, sending ripples throughout the company.

For LG, there may well be some bold acquisitions on the horizon. When ex-CEO Nam was at the restructuring unit of LG Group, he led negotiations to sell off LG Semiconductor, to Hyundai Electronics. That means LG lacks a semiconductor division like Samsung, putting it at a technological and cost disadvantage in mobile technology. With Koo's assumption of the helm, there is now discussion of a possible bid by LG to take over Korean semiconductor manufacturer Hynix.

As late as the first half of 2009, LG Electronics was congratulating itself on its highest-ever earnings. Just two years later, it was in acute crisis. By 2012, it is possible that it will have transformed its business, setting the trends after all that it predicted it would on the stage in Barcelona. LG's revival has already begun. To top of page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스마트폰 하면 주로 애플의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를 주목한다.

그러나 애플의 성공은 애플이 1970년대 이후로 오랫동안 가져온 고유의 자산에 힘입은바 크다.
그때도 애플은 매우 좋은 회사였고, 혁신적인 회사였다. 그리고 거기엔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가 있었다.

지금 애플의 아이폰이 시대를 앞서가지만, 그들을 벤치마킹해서 성공한다는 건 쉽지 않다. 문화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HTC에 주목해야 한다.

대만의 한 작은 PDA회사였던 HTC..
대만은 2007년만 해도 대부분의 핸드폰을 노키아와 모토롤라가 선점하고 있던 곳이다.
평범한 저자기기 OEM회사에 출발해서 지금은 세계 5대 Smart phone회사로 성장했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술을 삼성과 LG같은 Public 전자회사보다 더 잘 접목시켜 성장하고 있다. 조만간 RIM은 재칠수 있지 않을까..

HTC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점은 "Reading and Moving New Trend Quickly"가 아닐까?
PDA OEM회사에서 만들어낸 강점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트랜드를 빠르게 읽고 준비해서 움직인것이 아닐까?
작고 효율적인 조직구조와 대만 회사가 가진 하드웨어 효율성은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최근 LG가 시장과 동떨어졌는지를 애플보다는 HTC를 연구해야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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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50여 분 거리에 있는 타오위안. 조용한 시골마을인 이곳에 대만의 `앙팡테리블(무서운 신예)`로 불리는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 본사가 있다. 13년 전 창립 때만 해도 PDA(개인정보단말기)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는 업체였으나 2006년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는 순간 기회를 잡아 HTC라는 자체 브랜드를 부착한 스마트폰을 내놓은 후 현재 전 세계 안드로이드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생산해내고 있다. HTC가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8년 세계 최초 안드로이드폰 `G1`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지난해 구글이 처음으로 자체 유통한 `넥서스원`을 생산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으며, 올해 세계 최초로 4세대폰 `에보 4G`를 내놨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제쳤으며 노키아, 림, 애플에 이어 4위다. 지난해 매출액은 45억달러(5조760억원), 영업이익은 7억9000만달러(7998억원), 영업이익률은 무려 17%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5조8300억원으로 벌써 스마트폰 판매량 820만대를 돌파했다.

피터 처우(Peter Chou) CEO는 "올해는 전년 대비 글로벌 브랜드 인지도 200%, 매출액 200%를 끌어올린 의미 있는 해"라고 강조했다. HTC가 이처럼 초고속 성장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스마트폰이라는 한우물만 팠기 때문이다. HTC는 1997년 설립 이후 PDA를 거쳐 스마트폰만을 생산해왔다. PDA 대표 격인 HP `아이팩`과 마이크로소프트(MS) `포켓PC`가 HTC 제품이다.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HTC는 연매출 중 25%를 연구개발과 제조설비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으며 현재도 전 세계에 대만 엔지니어 1000여 명을 파견해 지역 특화형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작은 업체지만 용기 있게 나서 글로벌 리딩 IT 기업과 제휴를 추진해온 것도 급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됐다. HTC 기술력을 인정한 구글은 자사 첫 번째 안드로이드폰 제작을 맡겼고, 윈도폰7 운영체제(OS)에 바탕한 스마트폰 개발을 위해 MS와 지난 2년간 꾸준히 협력해 이달에 윈도폰7 스마트폰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HTC는 이 같은 협력을 바탕으로 미국 AT&T, 영국 BT, 프랑스 오랑주, 싱가포르 싱텔 등 글로벌 이통사로 유통망을 확대해갔다.

처우 사장은 "모두와 손잡고 같이하고 있다. 영국 BT에서 엔지니어들을 파견해줘서 통신과 모바일 생태계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원래 약속했던 기간이 2년에서 3년 반으로 늘어날 정도로 친해졌고 이후 다른 글로벌 이통사들도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2006년부터 `겸손한 훌륭함`과 `당신을 이해하는 휴대폰`이라는 HTC만의 철학이 담긴 슬로건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도시 심장부에 선보이면서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한 것이 HTC 매출액 수직 상승을 가져왔다.

존 왕 수석마케팅책임자(CMO)는 "가방 속에 스마트폰이 있으면 벨소리가 크게 울리고 사용자가 이를 꺼내 손에 쥐면 점차 소리가 줄어드는 등 독자적인 `센스` 유저인터페이스는 사용자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HTC는 7일 타이베이 중심부에 있는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 `디자이어HD`와 `디자이어Z`를 공개했다. 안드로이드 2.2(프로요) 버전에 4.3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디자이어HD는 한국시장에 우선적으로 KT를 통해 출시될 예정이다.

쿼티폰인 디자이어Z는 아직 한국 출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날 스마트폰 분실 시 PC상 지도로 스마트폰 위치를 찾고 원격으로 제어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인 `센스닷컴(HTCSense.com)`도 시연됐다.

[타오위안(대만)=매일경제 황시영 기자]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한국의 경영 스타일에 대한 비판..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 기자가 작성한 기사일 것이 분명하다.
Owner에 의한 의사결정이 삼성,  LG, 현대를 만들어왔고, 그러한 현실은 노키아와는 다를것이다.

특히, 위기때마다 결정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창출했던 전력(삼성-이건희 회장, 현대-정몽구 회장)같은
경우를 보면... 한국 재벌기업은  Owner에 의한 위기탈출은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이러한 위기 극복 시나리오가 주로  하드웨어 분야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이긴 하다.
1~2년 후면 LG전자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알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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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스마트폰 시장에 제때 대처하지 못해 위기에 처한 LG전자의 최고 경영자 교체를 북한의 권력승계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잡지는 최근호 `LG의 고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창업주의 손자를 CEO에 앉히는 것이 LG전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잡지는 "북한은 파산을 앞둔 소름끼치는 독재국가인 반면 LG전자는 단지 어려운 시기에 봉착한 전자업체"라면서 "LG를 회복시키는 일은 북한을 회생시키는 것만큼 힘든 작업이 아니지만 양측은 모두 최고 권력승계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직면해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LG전자의 수난은 노키아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면서 "노키아가 역동성 있는 외부 인사를 CEO로 영입한 반면 LG전자는 창업주 일가인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을 택했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새로운 LG전자의 CEO가 그룹의 다양한 부문을 이끌어와 무능한 사람은 아니지만 참신한 인재라고는 볼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인들은 전자제품에 있어 얼리어답터이자 열정적인 고객으로 자국 시장에서 선전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데 LG전자의 스마트폰은 한국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LG전자가 1천만대 판매를 목표로 옵티머스원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경쟁제품은 강력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고 대만기업인 HTC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이 정부의 CTO가 되었다고 한다.
지경부 4.4조 예산을 총괄하는 중책이라고 하지만.. 삼성전자에서 수십조씩 다루던 사람에겐
그렇게 많은 예산도 아닐듯 하다.

그런데... 이사람의 이야기가 참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소위 황의 법칙으로 유명세를 맛본 황창규는 "한국의 SW가 약하지만 H/W는 세계적 경쟁력.. 산업간 융복합이 해답"이라고 한다. 100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세상은 변곡점에 와있다"는 의미있는 이야기도 했다.
변곡점은 과거 농업시대에서 산업혁명시대로 다시 정보화시대로 변화되었던 바로 그 순간을 이야기 한다.

지금의 변곡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은 "콘텐츠" 즉 S/W라고 한다.

그런데 반도체 만들던 황창규는 그 변곡점에서 H/W를 더 강조하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항상 H/W 경쟁력을 끊임없이 고민해 온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세계적 경쟁력은 무조건 선택해야 할 강점일 것이다.

처음 "미로를 뚫고 가자는 말"을 들었을 땐 H/W 패러다임에서 S/W 패러다임으로 혁명적 변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단순히 S/W 잘 만들자가 아닌 S/W 사고로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는데.. 

황창규는 아주 안전한 방법인 점선을 따라가는 방법을 취하고 만다.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

Forter의 경쟁론을 보나, BCG의 역량모델을 보나 모든 경영이론에서 주장하는 것은 잘하는걸 더 잘하고
못하는걸 버리라는 것이다.

그런 접근 방식에 매몰되었다면 지금의 삼성에는 반도체도 없었을 것이고, 현대중공업의 조선기술이나 LG의 생명과학투자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걸 정말 잘하고 더 좋은 기술을 만드는건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쉬운 방법이고 안전하다. 하지만 절대로 "벽을 뚥고 지나는 방법"은 아니다.

지금의 변곡점은 S/W 콘텐츠 세상의 도래에 있다. 그점을 잊고 있는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CTO라면 진정 혁신적 접근을 통해 한국을 변화시키는 큰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PS>>
삼성과 LG, 현대 출신의 인물을 꼭 CTO로 하는 이유는 뭘까?
H/W만 열심히 만들던 그들에게는 S/W에 대한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다.

항상 H/W를 가지고 성공하려고만 했던 사람들을 데려다가 진정한 변곡점에 놓인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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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국가CTO 황창규의 `미로 속 생쥐論`

4.4조 지경부 R&D 예산 총괄 전략기획단장 임명
"또다시 변곡점..세상 바꾸는 새로운 기술 필요"
"SW 약하지만 HW 세계적 경쟁력..융복합이 해답"

입력시간 :2010.04.21 16:00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갑자기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미로 속의 생쥐가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 전략기획단 단장으로 임명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사진)이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느닷없이 `미로 속의 생쥐`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미로 밖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점선을 따라가면 됩니다.(미로 그림에는 미로를 탈출하는 길이 점선으로 고불고불 그려져 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황 단장은 "지금 나온 대답은 그간의 R&D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미로 밖으로 돌아간다는 대답은 정해진 룰을 벗어난 편법을, 점선을 따라간다는 대답은 새로운 시도 없이 정해진 대로만 연구하던 관행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황 단장은 "정답은 미로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라며 "우리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던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돌아왔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가 4조4000억원에 달하는 지식경제 R&D 예산을 총괄하는 전략기획단 단장 자리를 맡았다. 

▲ 황창규 전략기획단 단장은 미로 속의 생쥐가 미로를 가장 빨리 탈출하는 방법은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라며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단장은 "지금은 변곡점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가장 빨리 변한다는 IT의 성장세는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고, 유가는 급상승 중이고, 지구 온난화 때문인 기후변화 문제, 인구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다. 

황 단장은 "과거 80년대 아날로그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넘어가면서 우리나라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1등의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또 다른 변곡점이 도래하고 있다"며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연속적 기술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선진국을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고 미래를 예측해서 앞서나가는 `선도자(first mover)` 전략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황 단장이 가장 강조한 부분은 `융복합`이다. 황 단장은 "자기산업과 타산업간의 경계 없이 드나들고, 국내 뿐 아니라 외국의 최고 기술과 아이디어도 빌려 오는 융복합으로 전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에서 가진 강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폈다. 

황 단장은 "소프트웨어 부분에 뒤처져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 가지지 못한 하드웨어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강한 IT 기술과 자동차, 조선, 원자력 등 주력산업을 융복합한 우리만의 독창적인 신산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새로운 사업전략 방향 모델

-  network 경영 전략
- 제조업의 서비스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

 : Nike, Fila와 같은 대표적인 신발 제조회사의 Network 경영사례를
 애플, 구글이 했던 것 처럼 High-Tech 제조업체가 실행해서 성공한 사례이다.

 특히, 마케팅과 기획역량만 가지고 모든 건 아웃소싱을 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유통업체의 PB상품 혹은 포트폴리오 전략과 제조업체의 All-Less 전략이 맞아 떨어진 대표적인 사례이다.
 
 역시 미국이니 가능한건 아닐까?
 대형 유통업체 중심의 시장 환경, 유통 채널에 따른 수수료 차이도 명확하고, 합리적 소비에 익숙한 소비자와
 대형 LCD TV 시장의 폭발적 증가는 "VIZIO"라는 브랜드를 가능하게 한건 아닐까?
 또한, 소니의 VISIO를 교모하게 따라한 느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건지..

 암튼.. 한국에선 아직까지 이와 유사한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제조회사가 공장이 없다면...
 얼마나 다이나믹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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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시장 돌풍 비지오의 네트워킹을 배워라

생산·기술·유통 모두 아웃소싱
작년 LCD TV 600만대 팔아 1위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인포프래너란 무엇일까?

인포 프래너의 정의를 위키에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 Infopreneur is a person whose primary business is gathering and selling electronic information.[1] This term is a neologism portmanteau derived from the words "information" and "entrepreneur". An infopreneur is generally considered an entrepreneur who makes money selling information on the Internet. They use existing data and target an audience.

The term is often used on the Internet. The word infopreneur was registered as a trademark (USPTO) on February 1 1984 by Harold F. Weitzen. In 1988, H. Skip Weitzen published "Infopreneurs: Turning Data Into Dollars" (John Wiley & Sons).

Before the explosive popularity of the Internet, at the turn of the millennium, such an occupation already existed. These legacy inforpreneurs sold their information in other mediums such as audio tapes, audio CDs, CD-ROMs, videos, talk shows, and conferences. The classification of infopreneur has created a new style of business on the Internet, which allows anybody with a computer and an Internet connection to start a businesses by publishing information that may appeal to a specific market.

There are generally two kinds of infopreneurs: those that sell information they have amassed on their own and those that earn commissions from selling information that they know nothing about. The latter may be considered more of a "information trafficker".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Infopreneur>"

인포프래너는  온라인상 정보<**electronic information>를 모으거나 파는 비즈니스 행위등을 행하는 사람을 일컬는다.  

‘Information(정보)+Entrepreneur(기업가)’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1984년 2월 1일 Harold F. Weitzen란 사람에 의하여 처음 특허청 USPTO 에 등록되었다. 이후 1988년 H. Skip Weitzen이 "Infopreneurs: Turning Data Into Dollars" (John Wiley & Sons). 출간하였다.

폭발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 되기 이전 부터이 직업은 존재해었고 초기 인포프래너들은 그들의 정보를 오디오 테입, 시디, 비디오, 토크쇼, 회의를 통하여 전파 또는 판매 하였다. 인포프래너들은 인터넷상에서 상거래 및 이익창출등을 목적으로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 스타일을 만들었다.  

인포프래너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자신만의 지식을 인터넷의 새로운 아이템으로 만들어 판매 하는 인포프래너가 있는가 하면  타인의 정보를 훔치거나 빼와서 다른 3자에게 판매하는 information trafficker와 같은 분류가 있다.
 
** "electronic information" <여기서 electonic은 PC, 휴대폰, PDA 등의 매개체를 통한  웹이나 넷등 온라인을 의미 하는걸로 의미된다>

Posted by narcis99
도요타...
제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심심하면 듣는 도요타.. 품질, 이익, 사람 등등 모든걸.. 도요타, 도요타 하는 기업들..
사실.. 삼성하면 괜히 짜증나니까.. 도요타를 더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암튼.. 그런 도요타..

이번의 품질사태는 도요타라는 가장 대표적인 제조 기업의 신화가 흔들렸다는 것 때문에 충격으로 다가 오는것 도 있지만,
그런 표면적인 현상과 더불어 

미국의 "양면성"을 다시금 보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힘의 논리, 자기 이익의 논리, 이런것이 국가별 생존 경쟁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힘있는 국가가 가진 논리가 모든걸 지배할 수도 있다는 현실.. 강대국의 논리라는 것이 이것이다.

도요타도 이정도인데.. 한국기업들 중 버틸수 있는 기업은 있을까?

여하튼.. 전문가들의 도요타 사태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자.
역시.. 역량 초과? 과도한 욕심? 그리고 상대적 불이익 현상 정도로 요약하고있다.

특히 눈에 띄이는 것은 "아날로그로의 결판"이라는 하세가와 가즈히로의 향후 판세 예측이다.
우리는 "아날로그"를 준비는 하고 있는 것일까?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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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동호.이종찬] “도요타자동차가 그릇 이상의 일을 벌였다.”

일본에서 ‘컨설팅의 신(神)’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가즈히로(長谷川和廣·70·사진) 회사력연구소(會社力研究所) 대표의 말이다. 능력을 벗어난 일을 하다 사고를 냈다는 얘기다. 도요타의 강점인 품질관리의 실패를 가리킨다.

40여 년간 글로벌 기업을 컨설팅해 온 그의 진단은 명쾌하다. 그는 일본에서 적자 회사를 흑자로 돌리는 ‘문제 기업 컨설팅’의 1인자다. 그에게 도요타의 리콜 사태를 계기로 도마에 오른 일본 ‘품질 신화’의 위기와 미래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16일 도쿄 시내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도요타 리콜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업 규모가 ‘그릇’을 초과했다. 도요타의 강점은 품질관리였다. 그러나 일본 밖으로 나가면 일본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못 하게 된다. 도요타가 의도했던 대로 품질관리가 되질 않는다. 해외 공장에서는 도요타 방식의 관리 방식이 도달하지 않았다. 글로벌화를 너무 서둘렀다. 회사가 통제 범위 이상으로 커졌다. 자동차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5년 후 사용된다. 부품업체들은 이미 5년 전부터 엄청나게 부품 가격 인하 압력을 받았다.”

-어느 부분에서 품질관리에 구멍이 뚫렸을까.

“일본의 품질관리는 한국·중국 기업과는 개념이 크게 달랐다. 일본은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한 품질관리였다. 한국과 중국은 대량 생산을 위한 품질관리였다. 도요타는 글로벌 체제에서도 품질 통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기술력에 자신감이 있어 도요타 표준을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제 품질관리의 기준이 좋은 물건을 만드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부분이다.”

-전자제어 시스템까지 신뢰성을 의심받고 있다.

“앞으로 엄청난 법적 분쟁거리가 될 거다. 차량 설계상으론 문제가 없을 것이다. 도요타도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끝까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체제가 되면서 부품에 결함이 생기거나, 어디에선가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 어느 회사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어떤 제품도 완벽한 것은 없다. 미국의 과잉 반응도 사태를 키우고 있다. 있어선 안 되지만 제품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일본의 전자 메이커도 활력이 크게 떨어졌다.

“상상력의 결여다. 지금부터의 경쟁은 아날로그에서 결판이 난다. 디지털은 웬만큼 한·중·일의 수준이 같아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고 해도 디지털 기술보다는 창의력이 생존의 관건이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창의력과 열정의 차이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오만과 방심을 키웠다. 나는 요즘 대학 강단에 설 때도 최종적으로 아날로그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제조업은 활력을 회복할 수 있나.

“도요타 문제로 한국이나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안이한 생각으로는 안 된다. 기술 격차가 많이 좁혀졌지만, 그래도 일본의 기술력은 경쟁국들과는 깊이와 폭에서 차원이 다르다. 더구나 글로벌화에 따라 노동 비용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결국 생산 비용이 같아지면 경쟁의 열쇠는 다시 기술력이 된다. 이게 일본이 생존할 수 있는 생명선이다. 여기에 일본은 희망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은 정치가 나쁘니까, 이렇게 되고 있다. 사회의 긴장감이 풀린 것이다. 한국은 절대로 일본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요즘도 한 달의 3분의 2를 세계 시장을 돌아다녀 보면 일본인의 근면성이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절감한다. 너무 윤택해져 나태해졌다. 한국 기업도 현실 안주는 금물이다. 10년 후 생존을 위해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급기야 도요타는 다음 주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리콜 사태를 해명해야 한다. 그동안 도요타의 품질 신화를 높게 평가해오던 전문가들조차 도요타생산방식(TPS)과 일본식 경영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서는 형국이다.

그러나 TPS에 관한 미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제프리 라이커(60·사진) 미국 미시간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리콜 이후 미국 언론에서 제기하는 도요타 품질에 대한 비판은 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며 “도요타는 특유의 ‘도요티즘(도요타 정신)’을 통해 이번 리콜을 초래한 문제점을 찾아 재빨리 개선하면서 더 강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인터뷰는 두 차례 e-메일 교환을 통해 이뤄졌다.

-대량 리콜 파문이 아직도 확산 중이다. 진짜 도요타 차의 품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나.

“고객들의 불만에 도요타답지 않게 늑장 대처해 대량 리콜을 자초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도요타가 다른 경쟁 차보다 안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지난해 가을 포드가 운전제어장치 이상으로 800만 대를 리콜했고 해당 차량에서 550건이 넘는 화재 사건이 일어났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것과 비교해보면 최근 도요타 리콜에 대한 비판 수위는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이번 리콜은 한 차례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돼 800만 대를 넘어섰다. 품질이 나빠진 것 아닌가.

“리콜을 했다고 무조건 품질이 나빠졌다고 해석할 수 없다. 도요타는 최근 각종 품질지수에서 타사를 압도했다. 지난해 자동차 전문 조사업체인 JD파워의 초기품질지수에서 도요타는 20개 부문 가운데 10개나 1위를 차지했다. 제조업체라면 리콜은 피할 수 없는 경영 행위다.”

-리콜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과 추측이 나오는데.

“밝혀진 리콜 사유는 바닥 고무매트, 가속 페달, 브레이크 시스템의 소프트웨어 결함 등 세 가지다. 매트의 경우 바닥에 고정되지 않았을 때 가속페달을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도요타가 아닌 타사 차량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나머지 두 결함은 설계상 문제다. 도요타가 부품업체에 발주한 설계 승인은 이미 7년 전에 이뤄졌다. 7년간 두 개의 설계 실수를 했다면 품질관리상 그리 나쁜 수치가 아니다.”

-그렇다면 도요타는 무엇이 문제인가.

“도요타가 소비자의 불만에 좀 더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건 도요타가 강조하는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 가이젠(改善·개선)하는 TPS에도 상반된다. TPS에서 가장 큰 죄악은 바로 문제점을 숨기는 것이다. 리콜 이전에 도요타의 강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결함 빈도가 적어도 안전과 관련된 사고로 이어진다면 소비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자동차는 지극히 복잡한 기계라 실제 사용상 일어날 오류를 예측하기도, 문제점을 추적하기도 어렵다. 어떤 자동차회사도 완벽할 수 없다. 문제는 언론의 도요타 비판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포드의 중형차인 퓨전 하이브리드 역시 프리우스와 똑같은 브레이크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지만, 포드는 리콜을 하지 않았고 언론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를 무리하게 깎아 품질이 나빠졌다는 시각도 있는데.

“도요타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격적으로 비용 절감을 해왔다.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해온 것과 같은 방식이다. 도요타는 내부적으로 생산 효율화와 품질 향상을 꾀하면서 협력업체에 같은 수준을 요구했을 뿐이다. 납품가격 인하와 리콜은 별개의 문제다.”

-리콜 이후 도요타에 대한 전망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강해지는 게 TPS의 강점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도요티즘의 원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종찬 기자

하세가와 가즈히로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 킴벌리·제너럴푸드 등에선 프로덕트 매니지먼트를, 켈로그·바이엘 재팬 등에선 사장을 맡았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모두 2400개사를 컨설팅했다. 현재 연간 매출 100억~2000억 엔 규모의 회사 7~8곳을 컨설팅하고 있다. 그가 지난해 7월 출간한 『사장의 노트』는 6개월 만에 17만 부가 팔렸다.

제프리 라이커는 20년간의 도요타 연구를 집대성해 2004년 『도요타 방식(The Toyota Way)』을 펴냈다. 40여 명의 도요타 고위 관리자·임원을 120시간 이상 인터뷰해 도요타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1997년에는 컨설팅 회사인 ‘옵티프라이즈’를 설립해 크라이슬러, 포츠머스 미 해군 조선소 등 미국 주요 기업·기관에 도요타 생산방식을 접목하는 컨설팅을 해왔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하드웨어 중심의 한국, 일본은 역시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국을 따라가긴 어려운 모양이다.
배만든는 일이나 TV만드는 거나.. 핸드폰 만드는 것까지.. 아참.. 한때는 DNA 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것도
정말 잘하는 우리가.. 정작 소프트웨어 중심의 생각은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듯 하다.

스마트 폰이 이렇게 빨리 올줄 몰랐다던 안사장의 말에서.. 언제까지나 2등 전략을 취하는 LG를 보게되고..
1등을 기여코 해내겠다는 최사장의 고집이 "바다"라는 기형아를 태생시키는 건 아닐지...

게임의 룰은 벌써 만들어 졌고.... 이제 Next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인데..
어찌.. 스마트 폰에서 늦어진걸 탓하랴...

지금까지는 하드웨어만 죽어라 판.. 우리의 한계라고 밖에 볼수 없다.. 이게 2~3년 뒤진 이유인듯 한데..
2~3년이란게.. 소프트웨어 세계에선.. 20~30년이다.

기반이 튼튼해야 하고.. 천재들이 많아야 가능하다.
애플이나 구글이 소프트웨어는 인도의 천재들이 만든다고 하는데...
우리는 누가 만들까?

각설하고..
이제라도.. 기업의 사고를 좀 바꿨으면 좋겠다..
기존의 제조업 사고가 아니라.. 서비스 업으로. 소프트 사고로.... 이런게 대세가 아닐까?
하지만.. 회사엔 아직도 제조업적인 R&D만 판치고.. 단기대응을 위한 공정개선만 외친다..
어디에도.. 전략적 기획도 새로운 사고도 없다... 그저.. 보너스 만이 나오는 일만하다가.. 한몫잡으려는 생각뿐..

..
아참.. 도요타 사건도.. 알고보면..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에서 벌어진 자연스런(?) 현상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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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전쟁터 삼성-엘지 ‘만시지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2위와 3위인 삼성전자와 엘지전자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늑장대응을 함께 반성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업 강화 전략을 놓고서는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16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전시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디어 솔루션 센터(MSC)를 1~2년 앞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삼성전자 미디어 솔루션 센터는 운영체제인 ‘바다’를 포함해 모바일용 소프트웨어를 발굴하고 개발하는 곳으로, 3년 전 최 사장이 휴대전화 사업을 총괄하는 무선사업부장(사장)으로 있을 때 만들었다. 그의 말에는 미디어 솔루션 센터를 좀더 일찍 만들어 운영체제 중심의 생태계 구축을 서둘렀으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구글 등에 기선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란 반성이 묻어 있다.

안승권 엘지전자 휴대전화사업부문 사장도 이날 전시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스마트폰 시장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 흐름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해 대처하고 있었는데, 소비자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엘지전자는 세계 3위 휴대전화 회사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스마트폰 사업은 뒤늦게 쫓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휴대전화 사업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에서도 두 사람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최 사장은 “무엇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세계 휴대전화 2위 업체이다 보니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쓴다”며 “전략과 맞지 않으면 발을 담그지 않되, 이 과정에서 상대를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사장 역시 “세계적인 통신업체, 스마트폰 운영체제 공급업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물밑으로 활발한 합종연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생태계가 갈수록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적을 만드는 것은 망하는 길을 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래 휴대전화 사업 전략에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최 사장은 “지난해 미디어 솔루션 센터에 13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는 더 많은 투자를 할 예정”이라며 “삼성전자가 못 가졌는데 탐나는 기술이 있으면 사거나 개발업체를 인수합병해서라도 소프트웨어 쪽의 생태계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살 길을 바다 중심의 모바일 생태계 구축에 두는 것이다. 반면 안 사장은 “당분간은 안드로이드아이폰을 빼고는 독자적인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엘지전자는 적어도 앞으로 2~3년 안에는 독자적인 스마트폰 플랫폼 구축을 시도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 사장은 휴대전화 터치방식과 관련해 “우리나라와 중국 등 한자를 쓰는 동양권의 소비자들은 섬세하게 반응하고 필기체도 사용할 수 있는 감압식이 더 유리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정전식은 영어를 쓰는 미국시장에 유리하다”며 “삼성전자는 그동안 생각이 너무 많아 감압식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스티브 잡스 vs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세계 IT업계의 양대 CEO 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전세계 IT의 현재와 미래를 제시하는 이들은 955년 같은 해에 태어났고, 대학을 중퇴했으며, 젊은 나이에 부와 명성을 얻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출발점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리더쉽 스타일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스티브 잡스는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지시형 리더쉽을 빌 게이츠는 직원 배려형 리더쉽을 보여준다.

 

두명의 CEO를 비교 해 본다.

 

<실리콘 벨리의 풍운아, 스티브 잡스>


나 개인은 스티브 잡스를 선호한다.  정말 힘들게 변변한 배경도, 뛰어난 학벌도 없는 그의 성공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과 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은 대단한 집안의 후광을 업고 출발한 빌 게이츠와 대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릴적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뒤 기계 수리공인 잡스 부부에게 입양돼 성장했다. 단과대학에 입학 후 입양부모에게 학비를 대어 달라고 손 벌릴 자신이 없어 한학기 만에 대학을 중퇴한다.  그 뒤 히피 기질이 조금 강하고, 전기공학과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은 지극히 평범한 청년으로 생활한다.

 

잡스는 빌 게이츠가 하버드 기숙사에서 포커판을 벌이고 있을 때 휴렛 패커드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했다. 빌 게이츠는 포커판에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뭔지를 처음으로 확실히 배울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릴 때 빌 게이츠는 이 포커판에서 하루밤에 50만원을 잃고서 기분 나빴다는 소리를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만난 친구 스티브 워즈니액과 장거리 공짜 건화를 걸 수 있는 프리킹(Phreaking) 장치, Blue Box를 만들어 팔았다.

 

스티브 잡스는 21살이 되던 해, 친구 스티브 워즈니액과 함께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애플社를 설립하고 컴퓨터 사업을 시작한다.  잡스의 재산 목록 1호였던 폭스바겐 마이크로 버스를 팔고 워즈니액의 휼렛 패커드 계산기를 팔아서 마련한 돈 1300달러(130만원)가 사업의 자본금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내기 전까지 '컴퓨터'라는 단어는 곧 오늘날 은행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의미했다. 그런 상식을 180도 전환한 것이 애플 컴퓨터가 내놓은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Apple이었다. 오늘날 퍼스널 컴퓨터 시대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셈이다.

 

이후 애플의 거대한 성공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컴퓨터 산업'을 창출하고 스티브 잡스는 불과 이십대 중반에 세계적인 거부이자 실리콘 벨리의 '무서운 아이'가 되었다. 창고에서 시작했던 애플 컴퓨터는, 이른바 닷컴 붐이 한창일 당시의 그 어떤 기업도 깨지 못한 연평균 150%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몇 년 내리 이어가며 전세계에 피씨 붐을 창조해 왔다.

 

그렇게 세상을 한 번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는 이후 MS를 끌어들인 IBM에 의해 자신이 창출한 피씨 시장을 빼앗긴 뒤에도 또 다시 매킨토시라는 새로운 개념의 사용자 친화적인, 유연한, 대항 문화적인 컴퓨터를 내놓으며 마우스와 그래피컬 유져인터페이스를 필수 사양으로 만들어 낸다.

 

매킨토시를 내놓을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애플 III'의 실패 등 여러 가지 악재로 회사 내의 입지가 좁아져 있었다. 안전하게 하고자 했다면 새로운 애플 모델은 당시의 표준이었던 아이비엠과 호환되는 컴퓨터여야 했다. 하지만 철저한 완벽주의자에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던 스티브 잡스에게 이미 자리를 굳힌 표준에 따르는 것은 전혀 성향에 맞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새로운 개념을 대중화하는 쪽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 빌 게이츠가 있었다면 GUI를 담은 신개념의 컴퓨터를 내놓아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식의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을 것이다. IBM에 호환되는 컴퓨터를 많이 팔아서 회사 이익도 늘리고 주가도 올린다는 생각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있었다.

 

 

남이 생각치 않는 다른 세계 이것이 스티브 잡스의 존재 의미다. 스티브 잡스는 완벽한 스타일리스트 이며 비전 제시가이다.

 

스티브 잡스는 트랜드를 창조하고 차세대 핵심기술을 가장 우아한 스타일로 가장 먼저 업계에 소개한다.  나는 비즈니스를 선구적으로 재 정의해 나가는 스티브 잡스는 시장이라는 무대위에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싸움꾼 빌 게이츠 보다 한차원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다.  잡스는 일반인을 위한 퍼스널 컴퓨터를 최초로 양산해 낸 주역이다.  또한 GUI(Graphical User Interface)를 일반 피씨 수준에서 최초로 상품화해서 이후 윈도우즈라는 모조품이 세상에 나타나게 하는 기초를 제공한 매킨토시를 창조했다.

 

컴퓨터 공학도 사이에서만 떠돌던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넥스트스텝/넥스트머쉰을 통해 완벽하게 구현해 낸 사람 역시 잡스다. 이후, 아이맥(iMac)을 통해 인터넷 피씨의 원형을 선보였고, 아이팟아이튠즈(iTunes)를 통해 디지틀 시대 음악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낸 사람. 바로 이 모든 것이 파이어니어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다.

 

 

애플로부터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는 이후 몇 년간의 野人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영화 <Toy Story> I,II를 폭발적으로 히트시키며 디지틀 애니매이션이라는 새로운 쟝르를 창조해 낸 Pixar Animation Studio의 CEO로, 코카콜라나 나이키에 버금가는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애플 컴퓨터의 CEO로 멋있게 복귀한다.

 

애플은 공개적으로 제록스 PARC와 협조하며 실험적으로 만들어져 있던 GUI에 여러가지 새로운 기능들을 (메뉴바, 단축키, 윈도우 리사이징, 실시간으로 업데잇 되는 윈도우, 휴지통, 프린터 아이콘,..) 첨가해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록스에게 많은 주식을 제공했고 반대 급부로 제록스 PARC 개발팀의 협조를 얻어낸다. 즉, 공개적인 협약에 따라 개발이 진행되었다.

 

게다가 맥 개발을 자극했던 제록스 ALTO 머쉰은 아이디어만 참조되었을 뿐 맥에서의 실제 코드는 모두 새롭게 작성되었다. 더욱 중요한 점은, ALTO 머쉰이 한 번도 양산되지 못한, 제록스 내부적으로도 상업적 가치가 없다고 여겨져서 내팽겨 쳐져 있던 컴퓨터였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제록스로부터 GUI를 '훔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 빌게이츠.>


컴퓨터를 조금 안다는 사람도 빌 게이츠가 뛰어난 프로그래머로 출발해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한다. 종종 신문에 실리는 글에 그런 이야기가 등장한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 한 명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느니, 그럴려면 우리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느니.



 빌 게이츠는 전통적인 미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명문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 법학부를 다녔다.  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지속에서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 스티브 잡스가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후 1975년 마이크소프트社를 설립했다. 

 

 

이런 환경은 빌 게이츠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만들어 주었다.

빌 게이츠 할아버지가 대은행가였고 빌 게이츠 어머니 메리 게이츠(Mary Gates)는 IBM 회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거물 여성이었다.  바로 어머니의 사교에 힘입어 MS는 IBM의 파트너사가 된다.

 

 그렇게 막강한 집안의 배경을 업고 출발한 빌 게이츠는 처음부터 철저한 상인 기질을 보여준다. 소프트웨어를 누구나 공유하던 풍토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상업용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빌 게이츠는 자신이 '만든' 베이직의 복사본이 나돌자 컴퓨터 유져들에게 공개 편지를 띄운다. "그건 도둑질이야!"  당시로는 아무도 팔고 살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일련의 수학적 논리체계인 프로그램을 하나의 상품으로 승격시킨 사람이 바로 이 위대한 비즈니스맨 빌 게이츠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오늘날의 오픈 소스(Open Source)처럼 누구나 프로그램을 널리 배포하고 다 같이 혜택을 나눠 갖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일거에 뒤흔들어 버린 쾌거를 이룬 그는, 이후 특유의 사업 감각을 십분 활용, 헨리 포드(Henry Ford)에 맞서는 20세기 최고의 비즈니스 맨 중의 한 명으로 성장한다.
 
빌 게이츠에 대한 평가 중 우호적인 것은 대부분 그가 한 명의 기업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데 기초한다. 헨리 포드는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은 자동차에 사용되는 어떤 부품도 발명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튼튼한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했다. 그는 자동차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자동차 산업'을 발명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같은 식으로 빌 게이츠는 퍼스널 컴퓨터를 발명하지 않았지만 퍼스널 컴퓨터 산업을 창출했다고들 한다.
 
MS-DOS는 컴퓨터 시대의 "Model"이 되었다. 하지만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퍼스널 컴퓨터 산업을 창출한 것이 아니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창출한 것이다. 빌 게이츠가 퍼스널 컴퓨터 산업의 아버지라고 우기면 진짜 퍼스널 컴퓨터 산업의 아버지인 스티브 잡스는 신이라 불려야 한다.
 
 
 
 빌 게이츠는 프로그래머가 아닌 경영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나 오픈 소스의 운동을 주도한 리챠드 스톨만과 같은 프로그래머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비지니스 맨이었고 그후로도 계속해서 비즈니스 맨일 것이다.
 
 
빌 게이츠가 유일하게 코딩을 했다고 주장하는 Q-BASIC마저 빌 게이츠가 만든 것이 아니다. MS 웹싸이트의 빌 게이츠 소개 페이지에 보면 폴 앨런과 빌 게이츠가 아이비엠 피씨용 BASIC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 Q-BASIC의 부동소수점(floating point) 연산 부분을 만든 사람은 당시 하버드에 같이 다니고 있던 데이비도프란 사람이다.
 
유일하게 그가 코딩했다고 하는 Q-BASIC마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적당히 포장해서 내놓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MS 웹싸이트에는 자신이 다 완성한 것처럼 데이비도프란 이름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런 뻔뻔스러움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개발 과정에서 애플사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노골적으로 카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 잘 통한다.
 
"윈도우즈는 제록스 머쉰에서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고, 애플 Mac OS 역시 제록스를 베낀 것이므로 윈도우즈는 맥 오에스의 모작이 아니다." 라는 억지 주장을 너무도 태연스럽게 뱉어내는 그 승부사 기질이 오늘날 빌 게이츠를 탄생 시켰을 것이다.
 
신문에 디지털 시대 운운하며 글 쓴 사람들 주장대로라면 빌 게이츠 같은 두꺼운 얼굴을 가진 인재를 많이 키워내야 다가 올 지식기반사회에서 우리 나라가 세계속의 한국으로 우뚝설 수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MS-DOS가 당시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큰 명성을 얻고 있던 CP/M을 젖히고 아이비엠 피씨의 공식 운영체계가 된 과정에 대해서 많이 알려진 일화가 하나 있다. 우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MS-DO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운영체계가 아니다. MS-DOS는 QDOS(Quick and dirty DOS)라는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사들여서 적당히 이름만 바꾼 다음 내놓은 소프트웨어였고 그 QDOS는 CP/M의 여러 카피 중 하나에 불과했다.
 
피씨 산업의 중요성에 뒤늦게 눈을 뜬 IBM은 자사 하드웨어에 탑재할 운영체계를 모색하던 중 최고의 운영체계로 손꼽히고 있던 CP/M 개발자를 접촉하게 되었다. CP/M 개발자는(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모른 채) IBM 팀을 홀대한다.
 
그 뒤, CP/M 개발자의 거만한 태도에 화가 난 IBM 스탭들은 다른 운영체계를 찾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만난 공손한 빌 게이츠에게 호감을 갖게 되어서 MS-DOS를 택했다는 이야기, 지금도 여기저기 자주 언급되고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공손한 빌 게이츠에 워낙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 하나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빌 게이츠가 엄마의 소개로 IBM 쪽에 손쉽게 줄을 댈 수 있었다 사실.
 
 
 빌 게이츠는 지금 '인터넷 시대'의 MS Windows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일까를 연구한다고 말한다.
 
 
잡스 VS 게이츠
 
이것이 바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다.
검정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슽티브 잡스,
비즈니스 차림에 블수 와이셔츠로 신뢰성을 주는 빌 게이츠 !
 
아이맥을 안고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는 스티브 잡스, 넥스트머쉰을 프리젠테이션 하는 스티브 잡스, 제록스 팰로 앨토 연구소에 있는 스몰톡 머쉰 앞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 스티브 잡스, 청바지 차림에 커피 잔을 들고 해적깃발을 걸어놓고서 매킨토시 개발팀을 독려하는 스티브 잡스 !
 
 
하드웨어 회사에게 협박조의 얘기를 풀어 놓는 빌 게이츠, 라이센스 계약에 어긋난다는 점을 알면서도 썬의 자바를 변형시킬 것을 개발팀에 주문하는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가 개발되던 당시부터 상당히 깊은 관여를 한다. 그 이유는 맥 용 워드와 맥 용 엑셀 등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애플이 기술을 공유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비밀리에 [윈도우즈 1.0]이라는 조악한 매킨토시 카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당연히  애플은 윈도우즈 1.0 출시 후 무단으로 애플 기술을 사용해서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지적하며 소송을 준비한다.
 
위협을 느낀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관련 라이센싱 협약을 하며 애플 맥 오에스를 '공식적으로' 카피하게 된다. 그런데, 지적 재산권 관련 협약을 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특유의 협박 전략을 구사한다. [윈도우즈 1.0]뿐만 아니라 향후 모든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서 애플 기술을 사용하게 한다는 식의 얘기를 넣지 않으면 맥용 워드와 엑셀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당시 CEO인 존 스컬리에게 엄포를 놓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협박 전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것이다.  
 
펩시콜라에서 애플로 옮겨와서 테크 섹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던 CEO 존 스컬리는, 어리숙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허풍에 넘어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대로 지적 재산권 관련 협정을 맺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2.0] 이후부터는 노골적으로 애플을 카피하기 시작한다. 애플은 뒤늦게 소송을 제기했지만 사실상 패소를 하고만다. 그런 과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가 외부 기고 등을 통해 여전히, '애플도 ALTO를 베끼지 않았는가, 우리는 ALTO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다' 식의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카리스마 VS 전략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인 스티브 잡스는 타인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며 직원들을 끌고나가는 지시적 리더로 성장했다.  직원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 험한 말은 물론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지만 직원들은 모두 충실히 따른다.  자신만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수백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전자메일을 모두 암기하는 세심함을 함께 갖춘 인간적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관습적 결재 라인을 깨고 실무자와 직접 소통한다.  실무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부르거나 직접 찾아가서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또 이성보다는 자신의 직관을 중시 여긴다.  세계 MP3 시장을 석권한 아이팟은 스티브 잡스 직관의 산유물이다.
 
 
빌게이츠는 사업상의 만남과 회사 경영에서 철저하게 상대를 배려한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도 사내 전자메일로 그에게 의견을 개진한다.  심지어 반대 의견도 수렴된다.  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개발할 당시 한 간부는 이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때 빌게이츠는 화를 내며 폭언을 내뱉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 그 간부는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다.  다혈질 적이고 때로는 천방지축처럼 행동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익과 승리를 할 수 있다면 자신과 다른 의견도 수용할 줄 아는 남다른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  관계 지향적인 배려의 리더쉽이다. 
 
이 둘의 라이벌 경쟁에서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 보다 억만 장자 대열에 먼저 들어섰지만 한때 애플의 CEO를 빼앗기며 야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로 화려하게 컴백한 스티브 잡스는 다시 애플의 CEO로 등장하며 아이팟, 아이맥 등 연이은 히트작을 생산하며 스티브 잡스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재, 애니메이션, 온라인 음반 등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석권해 나가고 있다.
 
 
 
빌게이츠는 X-박스로 차세대 게임시장을 공략하고 있고, 애플을 깨뜨리기 위해 MTV와 손을 잡는 등 파트너망을 넓혀가고 있다. 

출처 Play with MPR | 온다리
원문 http://blog.naver.com/astrojason/20033072976


Posted by narcis99
회사가 원하는 직급별 인재상이라..

개인적으론 2직급 위를 보면서 나의 인재상을 만들어가는건 어떨지?
사원이면 과장급의 눈으로.. 과장이면 임원급의 눈으로 본다면.. 더 앞서나가지 않을까?

실제론 직급은 크게 의미가 없다.
직급보다는 그 사람이 Job Position(직위)가 더 중요하다..
내가 맡은 일에 따라선 사원도 될수 있고 CEO처럼 생각도 해야 하는 그런 인재가 진짜 인재이기 때문이다.

난 항상 내가 Owner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Owner라면 저런 투자할까? 내가 Owner라면 저런 사람을 저 위치에 놓을까? 내가 Owner라면 누구와 사업을 할까?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곤 한다.
난 Owner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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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급은 조직에 젊음과 역동성을 더해야 하고 과장급은 실무와 함께 변화, 혁신까지 주도해 나가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취업ㆍ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취업 컨설턴트들의 의견을 토대로 조사한 ‘직급별 기업의 인재상’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광석 인크루트 대표는 “기업이 최근 들어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조직’이라는 특성 때문에 직급이라고 불리는 위치에서 특히 필요한 조건과 역량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직장인이라면 과연 기업이 자신이 어떤 인재이기를 바라는 것인지 역으로 되새겨보는 것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데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크루트가 분석한 ‘직급별로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을 정리했다.

▶사원급
기본적인 실무와 함께 직장예절, 부서간의 업무협조,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조직관계 등을 빠르게 습득해야 한다. 아직은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기 전인 만큼 전문영역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업은 적극적으로 직무 교육을 받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실무습득을 위해 노력하는 사원급 인재를 선호한다. 전 직급에서 유일하게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좋은 인재의 잣대로 작용할 수 있는 때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효과적으로 업무와 연결해 내는 전략이 필요하고, 멘토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또 기업은 사원급의 젊고 역동적인 힘과 분위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밝고 낙관적이며 기업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하는 것 역시 기업이 원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대리급
어디 내 놔도 손색없는 실무능력이 필수적인 때다. 전문성의 토대가 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것. 모든 직급에서 마찬가지지만 특히 실무를 가장 많이 하는 시기인 만큼 일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 기업은 급속하고 다양하게 일어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력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적응능력과 도전정신이 있는 대리급을 선호한다. 자신의 경력지도의 밑그림, 즉 커리어 로드맵 설계와 커리어 네트워크를 쌓아갈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 밖에도 새로운 기획을 해 내는 능력을 갖춘 인재, 효과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소통해 낼 줄 아는 인재, 어느 정도 시장을 분석하고 관측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과장급
실무와 관리 모두를 가장 잘 해내야 하는 시기다. 사회초년시절의 풋풋함과 서투름을 탈피해 어느 정도 관록을 쌓았기 때문에 중간자의 위치에 서있는 직급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경영자와 말단 직원을 유연하게 잘 연결시키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교역할을 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이 요구된다. 기업은 이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과장급이 회사의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주도해 나가길 기대한다. 또 자신만의 업무노하우를 쌓고 있는지, 또 인적 네트워크와 매니지먼트 능력 등 진짜 ‘프로페셔널’의 능력이 이때 어느 정도 판가름 난다. 즉, ‘자신이 아니면 안 되는’ 핵심역량을 갖춰가는 인재가 가장 바람직한 과장급의 인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장급
부장급은 직무의 측면에서 프로페셔널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해가는 직급이다. 따라서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기업에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인재여야 한다. 스페셜리스트에서 제네럴리스트로 변모해 가며, ‘리더’로서의 자질을 확고히 해 가는 과정이므로 스스로의 능력 이상으로 조직의 성과를 촉진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실무적인 감이 떨어질 수도 있는 때이므로 디지털 환경과 글로벌적인 역량을 유지하고 업데이트 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의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시기인 만큼 자기관리도 중요하다.

▶임원급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실적, 성과 등의 결과에 결정적으로 책임을 지는 시기다. 때문에 늘 신중하면서도 빠른 결단력이 요구된다. 업무와 회사 뿐 아니라 업계, 시장, 경제흐름 등 전반적인 모든 부분들을 아울러 해석하는 넓고 깊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단순한 관리에 그치지 않고 조직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잠재력을 끌어내는 역할이 중요한 때다. 관리하는 매니저에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과에 직결되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인맥, 최신 동향을 민감하게 읽어낼 수 있는 매체나 정보전달 도구, 보고체계 등을 효과적으로 구축하고 관리하는 인재여야 한다. 골프모임 등 외부모임에 필요한 외적인 요소까지 두루 요구되며, 때로는 회사 자체를 대표하고 대변할 수 있는 품성도 갖춰야 한다. 책임과 임무가 무거운 만큼 스트레스 관리와 건강유지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한 12년전 처음 벤처 창업 했을때 기억이 새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벤처는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건 사실이다.

새롭게 기회가 마련된 Mobile Generation 시대에.. 성공하는 기업가가 된다는건..
아이디어, 기술 그리고 열정만으론 안될 것같다.

오히려 사람과 소통 그리고 네트워크라는 근본적인 인간 존재의 이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하는건 아닐까?

이런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가?
이들을 도와주고 내가 도움을 받으며 성공적인 사업가가 될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난 끊임없이 그 길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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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삼성은 절대 애플을 이길수 없다.

하드웨어로 지금까지 성공해온 LG-삼성의 기업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이해할수도 그리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향기에서 나온다는 고윤환 대표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 대기업에겐 공염불에 불과하다.

LG-삼성이 일본의 소니나 파나소닉을 이기는 이유도 똑같다. 일본의 대기업도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이기 때문이다. 오직 "열정"만을 강조한다. "창조와 창의"가 아니라..

애플을 이기려면 안철수 교수가 이야기 하듯 영혼이 살아있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고민하고 관계하는 그런 영성이 꿈틀거리는.. 조직..

말로만 사람에게 집중하지 말고.. 진짜 사람에게 투자하는 기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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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환 캘커타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아이폰부터 아이북, 맥북 에어까지 없는 게 없는 '애플 마니아'다.
ⓒ 김시연
고윤환

평일 낮인데도 손님 발길이 뜸한 서울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 공구상가에 유달리 활기찬 곳이 있다. "이제 나도 사장이다!"란 구호 아래 20~30대 예비창업자 수백 명이 꿈을 키우고 있는 '강남청년창업센터'다. 이들에게 오롯이 주어진 공간은 넷이 나눠 쓰기도 빠듯한 공동 사무실뿐이지만 열띤 분위기만큼은 구글이나 애플 본사 안 부럽다.

 

모바일 웹 솔루션 업체인 캘커타커뮤니케이션 고윤환(37) 대표는 이곳에서도 눈에 띈다. IT(정보통신) 분야에서 보기 드문 여성 창업자여서만은 아니다. 1994년 LG데이콤 천리안(LG텔레콤에 통합)을 시작으로 IT업계에 15년 넘게 몸담은 만만찮은 경력에다 창업 첫해 억대 자금을 끌어 모은 남다른 수완까지 갖춘 탓이다.

 

"10년 만에 온 IT 격변기, 다시 파도 타야죠"

 

"여기서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KAIST, 서울대 출신은 물론이고 삼성전자 출신까지 놀랄 만한 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거든요. 요즘 다시 창업 붐이 이는 건 실업률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10년 전 닷컴 골드러시 때처럼 모바일 제너레이션(세대)을 큰 기회로 여기는 것 같아요."

 

전화 모뎀으로 PC통신 하던 시절 IT업계에 발을 들여놨으니 '웹 1세대'를 넘어 '웹 0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고윤환 대표는 자칭 '모바일 웹 전도사'이기도 하다. 

 

"아는 교수님이 '네 인생 마지막 IT 격변기일 수도 있으니 이 파도를 다시 타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모바일 웹 사업 아이템을 지인들에게 얘기했다 공격받고 반론을 펴다보니 직접 창업 기회까지 잡게 됐네요."

 

지난해 2월 중소기업청 예비기술창업자 지원으로 출발한 고 대표에게 지금 주어진 건 책상 두 개가 들어갈 공간이 전부지만 그 뒤엔 든든한 '백'이 있다. '탄력 근무' 형태로 번갈아 출퇴근하는 경영지원 담당, 개발자 등 월급 주는 직원만 6명이고 수시로 자문해주는 회계사, 법무사, 변리사까지 두고 있다.

 

모교인 경희대 창업보육센터에 있는 연구소와 강남 파트너 회사들을 오가느라 한창 정신없을 고 대표지만 요즘 발목이 잡혔다. 지난 연말 길에서 미끄러져 발을 다치는 바람에 3개월 동안 거동이 힘들게 된 것. 문정동 사무실을 찾은 지난 1월 28일에도 휠체어에 탄 채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이패드 때문에 킨들 산 사람들 속 좀 쓰릴 걸요"

 

마침 이날 새벽 애플에서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처음 선보였다. 고 대표가 쓰는 아이북 모니터에선 애플 CEO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 시연 동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잡스 오빠, 정말 멋지지 않아요? 절 위해 딱 499달러에 내주시고…."

 

아이북 뿐 아니라 아이팟 터치, 아이폰, 맥북 에어까지 이미 책상 위엔 '사과' 로고들이 가득했다. 고 대표는 '잡스 오빠'가 서류 봉투에서 얇은 맥북 에어를 꺼내는 모습에 반해 2008년 국내 출시 전에 샀을 정도로 '애플 마니아'다.

 

고 대표가 지금 하는 일도 애플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 아이폰 때문에 관심이 커진 '사용자 경험(UX)' 기반 모바일 웹 디자이너인 고 대표는 요즘 한창 애플 앱스토어에 올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까지 몸담았던 데이콤멀티미디어인터넷(DMI) 무료 소프트웨어 다운로드 서비스 '심파일'을 모바일 웹으로 구현한 '모바일 심파일' 사업의 일부다.    

    

"아이패드는 가격 대비 효과적으로 균형을 맞춘 것 같아요. 아마존 킨들 사신 분들 속 좀 쓰렸을 걸요. '큰 아이팟'이라고도 하지만 사용자 패턴에서 태블릿 수요는 분명 있었어요. 다양한 콘텐츠가 없었을 뿐이었죠. 카메라, 메모리카드가 빠진 건 원가 때문이겠지만 다음 모델에 반드시 들어갈 거예요. 개인적으로 제가 만드는 플랫폼이 아이패드에도 그대로 들어갈 수 있어 더 좋아요. 모바일 웹 표준에 충실하게 만들었고 크기 변경도 가능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플랫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죠."

 

"PC통신 시절 갑-을 관계, 이젠 안 통해요"

 

  
고윤환 캘커타커뮤니케이션 대표
ⓒ 김시연
고윤환

1991년부터 PC통신을 즐기다 1994년 아예 천리안에 들어가 IT업계에 발을 들인 고 대표는 지난 10여 년 IT 산업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도중에 회사를 박차고 나와 당시 유행하던 소호(소자본) 창업을 했다 쓴맛을 본 뒤 다시 LG인터넷에 들어가 채널아이, 심마니, 심파일 등 다양한 사업에 참여했다.

 

"1997년 회사를 그만두고 CP(콘텐츠 제공) 사업을 3년 정도 했어요. 그때는 20대 중반이라 아직 세상 모를 때였죠. 결국 다시 경영학과에 편입해 2년 공부하고 2006년 대학원에서 e비즈니스모델을 전공했어요. 다시 기초로 돌아가 기술과 마케팅, 지식과 삶의 경험을 정리한 거죠.  

 

콘텐츠로 돈 버는 CP는 전체의 4%에 불과해요. 최소한 인건비는 보장돼야 하는데 앱스토어처럼 개발자 대 유통업자 7대 3 배분은 드물어요. 아주 나쁜 관행이죠. 애플이 이런 관행을 시원하게 깬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CP가 이통사에 입점하려면 사전 접촉 과정만 3개월이에요. 옥션이나 G마켓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죠."

 

고 대표는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 '1인 창조기업인' 선정에 이어 서울지식센터 해외 특허권 지원을 받기도 했다. 고 대표가 해외 특허를 낸 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갈 '모바일 ASP(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제공자) 솔루션'이다. 이에 바탕을 둔 '모바일 심파일'은 현재 이통사와 앱스토어에 묶여 있는 무료 소프트웨어 유통 경로를 개방해서 사용자들이 정보 공유를 통해 나눠 쓸 수 있게 돕는 서비스다.

 

"저는 모바일 웹을 많은 사람들이 기획하길 바라고 모바일 웹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요즘 클라우딩 컴퓨팅(응용 프로그램은 자체 데스크톱이 아닌 외부 데이터센터에 두고 공유하는 기술)이 유행인데 앞으로 클라우딩 창업을 계속할 거예요. 창업자들끼리 서로 협력하면 그만큼 기회가 많이 생겨요. PC통신 시절 같으면 갑과 을 관계겠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와 러닝메이트가 돼야 하는데 갑-을 자체가 말이 안 되죠."

 

한국에서 아이폰-아이패드가 나올 수 없는 까닭

 

닌텐도나 애플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삼성, LG 같은 한국 기업들은 왜 그런 걸 못 만드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IT 업계에선 한국은 하드웨어는 되는데 소프트웨어는 안 된다는 자조 섞인 얘기도 들린다. 고윤환 대표는 그 원인을 '사람'에서 찾는다. 

 

"어차피 사람이 만드는 건 똑같아요. 문제는 어디가 더 인간적이냐죠. 기술은 훔쳐도 사람 마음은 훔쳐가지 못하잖아요. 아이패드만 봐도 애플 CEO가 나와서 깔끔하게 가격 공개하잖아요. 몇몇 기능이 빠진 것은 499달러에 맞는 최상의 가치를 만든 거라고 봐요. 고객을 먼저 생각해 제품과 서비스가 나온 거죠. 삼성은 어떻죠? TV 신제품 내놓고 가격은 마트에 가서 물어봐라, 그런 식 아닌가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3D 지식노동자'로 전락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좋은 소프트웨어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이날도 한 IT벤처기업 이사로 있는 개발자가 고 대표를 찾았는데, 월급이 두 자릿수라고 해 '88만 원 세대'냐고 농담 삼아 물었더니 '66만 원 이사'라고 하더란다.

 

"너무 비참해요. 자금 1억을 주무르는데 왜 내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없을까. 억대 연봉요? 지난 한 해 집행한 돈이 억대란 얘기지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어요. 원고료나 강사료, 자문료 등 부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거죠."

 

열악한 수입 구조는 IT 인력을 떠나게 만든다. 특히 여성 인력 유출도 심각한 문제다. 캘커타 직원 6명 가운데 2명이 여성인데 뛰어난 실력을 갖고도 자녀 양육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복귀한 경우다.

 

"결혼과 자녀 양육으로 여성 고급인력들을 썩히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바라는 건 높은 연봉이 아니라 일자리거든요. 지난 IT 10년 결과가 이런 거예요. 밤새 소프트웨어 만들다가 지쳐 업종을 바꾸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고 경력을 썩히는 거죠."

 

'IT 벤처인의 하루'라는 애초 계획은 어느새 3시간짜리 전격 인터뷰가 돼 버렸다.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사무실에서 먹던 거라며 군것질거리를 쥐어주면서 덧붙인 말은 떠나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10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아키아바라에서 아이들이 쇼핑카트에 소프트웨어를 과자처럼 주워 담는 걸 보고 충격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외산까진 아니어도 국산 소프트웨어만큼은 꼭 정품 사서 써요. 지난 10년 소프트웨어가 붕괴하고 대부분 SI(시스템 구축)로 넘어간 것도 이런 차이 때문이죠. 이제야 다시 시작하려니 버블도 생기는 거예요."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한국의 IT 경쟁력은 몇위일까? 1위?
착각하지 마라.. 이젠 16위란다..

이젠 삼성/LG같은 제품보다 apple 제품에 열광하는 우리자신을 보면.. 16위란 말이 틀리지 않다.
다른 선진국이 더이상 한국의 IT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그렇게 뒤쳐저 가고 있다.. 하루하루.. IT산업의 6개월은 여타산업의 3~5년이란다.
이젠 한국이 그동안 경쟁력을 가졌던 Hardware Power가 아니라.. Software Power가 필요한 시대라..

투자를 더욱 늘리고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에겐 IT는 그저 도구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의사결정권자로 뽑아서 뒤쳐져 가고 있다.
다음 정권이 더 걱정된다..
지금의 그들은 지난 정권의 해택을 그나마 업고 있기 때문이다.

Software Power, Contents Power가 필요한 향후의 IT산업.. 거긴엔... Leader의 강한 철학이 필요하다.

그래서.. Leader를 잘 뽑지 못한 내 자신이 미안할 따름이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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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제경쟁력 2년새 3위에서 16위로 ‘뚝’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잖아요. 지금은 과거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명성과 기술력으로 ‘망한 부자’처럼 버티는 거예요.”

참여정부시절 ‘IT839’ 정책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28일 ‘한국 IT의 현주소’를 이같이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IT 관련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가 분해되고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IT산업이 건설·자동차·조선 등 이른바 ‘굴뚝 산업’보다 가치없는 산업으로 인식되는 등 IT강국의 위상이 몰락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경영분석업체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는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이 2007년 3위에서 2008년 8위, 2009년에는 16위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일본 총무성이 선진국 IT인프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본이 한국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고 자랑했다.

‘무어의 법칙’을 누르고 반도체 메모리 용량은 1년마다 갑절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 같은 한국 IT 신화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1990년대 말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해 놓고도 애플의 ‘아이팟’에 시장을 뺐겼던 것처럼 신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제대로 엮어내는 콘텐츠 부족으로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가속화된 한국 IT의 몰락은 첫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일본이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우정성을 해체하고 IT와 관련된 기능을 총무성, 문화성, 경제산업성 등으로 쪼갠 것을 그대로 도입한 것이 실책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IT 하나 갖고는 먹고 살 수 없으니 굴뚝 산업에 접목시켜 시너지를 창출하자며 ‘뉴 IT’를 주창했다. 컨버전스(융·복합)라는 명분 아래 IT를 굴뚝산업의 하위 산업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예산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추경예산 중 IT 관련 예산은 4대강 예산의 1%에 불과했다. 뒤늦게 정부가 IT특보를 신설하고 IT융합 등 5대 핵심 전략에 5년간 190조원을 투자키로 했지만 IT산업에 대한 홀대는 그대로다. 실제 5대 핵심전략은 IT산업 자체의 발전보다는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더 중시하고 있다.

현대원 서강대 교수는 “IT산업에서 6개월은 다른 산업의 3년과 같은데 현 정부 들어 IT산업 홀대로 세계 시장에서 상당히 뒤처졌다”며 “이번 정부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 차기 정권에서는 정통부가 아니더라도 IT부문의 경쟁력을 되살릴 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IDC 세계 스마트폰(컨버지드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이 2009-2013 동안 연평균 20.9% 성장하며 오는 2013년에는 3 9,0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모바일 운영체제(OS) 판도가 지속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때 시장은 블랙베리, 심비안, 윈도우 모바일과 같은 소수의 선도 업체가 주도했지만 이제는 개방형 표준 (안드로이드) 직관적인 디자인과 네비게이션 ( OS X webOS) 갖춘 새로운 업체들이 등장, 사용자와 단말기 제조업체 모두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IDC
에서 Mobility Telecom 연구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스테판 드레이크 (Stephen D. Drake) 부사장은 "경쟁이 극심한 모바일 단말기 시장에서 모바일 운영체제에 대한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 언급하고, "단말기의 전반적인 디자인과 느낌이 여전히 구매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불편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운영 체제의 잘못된 선택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게 "이라고 덧붙였다.

IDC
주요 분석 내용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심비안이 전망 기간(2009-2013) 동안 세계적으로 여전히 주도적 위치를 유지할 전망이다. 이는 미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갖는 노키아의 영향력 때문이다.

안드로이드가 모바일 운영 체제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나타낼 것이다. 2008 69만대로 시작한 안드로이드 탑재 단말기 시장 규모는 연평균 150.4% 성장해 2013 6,80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안드로이드를 채택하는 휴대폰 제조사들이 증가함에 따른 것으로 2013 출하량 규모를 기준으로 심비안에 이어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눅스와 webOS 판매는 전망 기간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게 것이다.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강조되는 추세 속에서 리눅스를 채택하는 단말기의 판매는 감소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업체가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Palm webOS 완만하게 성장은 하겠지만, 다수 통신 업체에서 제한적으로 도입, 사용됨에 따라 시장 점유율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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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미디어 통해 '1등 함정' 自省

"삼성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

지난해 12월 중순, 그룹 내 언론 역할을 하는 '미디어 삼성'에 올라온 '1등 기업의 함정'이라는 기사 내용의 일부다. 그룹 커뮤니케이션팀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담아 자체 문제점을 지적한 이 기사는 "과거 성공의 법칙이 덫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삼성은 최근 이 기사를 방송으로 제작, 전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내보내기도 했다.

추격자 전략의 실패로 든 사례는 스마트폰이었다. 기사에 등장한 한 직원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출시할 A플랫폼 기반제품은 훨씬 빨리 내놓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A플랫폼 회사가 우리쪽에 먼저 제안을 해왔다"고 말했다. 윈도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개발에 주력하던 삼성에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을 개발하고자 제안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제안은 검토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구글은 대만 HTC와 손잡고 첫 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았다. 삼성은 왜 구글폰을 거부했을까. 이 직원은 "뒤늦게 A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왜 우리는 꼭 성공모델이 있어야 도전하는 것인지,과연 우리가 진정한 1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삼성이 구글폰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최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시장이 형성된 곳에 자금과 인력을 집중 투입해 1위를 만들었던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다른 개발자도 "우리는 뭔가 창조적 제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만들어서도 안됐다. 성공 사례들을 벤치마킹해 성장해왔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A연구원은 "개발하다 보면 가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내면 '뜬구름 잡지 말고 다른 거 생각해봐! 바로 시장에 낼 수 있는 걸로…' 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직원은 "잘 만들면 획기적 상품이 될 수 있는데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들에게 화제가 됐던 이 기획기사는 '성공의 덫,창조의 조건,한국식 문화' 등 3부로 구성돼 있으며 삼성 기업문화의 문제점을 과감히 지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계열사 사장은 "이런 기사를 쓴 것은 작지만 큰 변화"라며 "이런 움직임이 새로운 10년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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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C forecasts $1.6 billion online community software market by 2013

Posted by Jennifer Leggio @ 11:3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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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report issued this week, research firm IDC reports that demand for online community software solutions in the workplace is growing steadily. According to the study, titled “U.S. Online Community Software 2009-2013 Forecast: Strong Growth Despite Recession,” companies that are not providing these types of solutions for their employees are being trumped by employees who are doing it themselves, thus breeding security and privacy issues. This is not for lack of options — there is a crowded market of online community software providers. It’s due to delays in corporate culture evolving to embrace such communities.

Despite this, and despite a slow-down in technology spending due to recession, IDC forecasts that the U.S. online community software market will grow from $278.4 million last year to $1.6 billion in 2013, at a CAGR of 41.8%. IDC states that dominant vendors in the space reported double-digit growth rates in 2008 and higher than expected growth rates thus far in 2009.

According to the report, online community software came to be a market based on the recognition that customers, employees, partners and suppliers have emerged as the most valuable assets to a company. Online community softare is centered around social networking applications and leverages the interactive functionality of Web 2.0 technology including blogs, discussion forums, wikis, micro-messaging, bookmarking and tagging, creating a competitive market.

IDC expects this market to continue growing due to the following market forces:

  • Web becomes more social and businesses want to participate
  • Consumerization of IT
  • Worker demand for Web 2.0 tools
  • Global competitive pressures to innovate

“The lesson that technology is only as good as its user will be a hard lesson learned for many companies needing to focus more on community strategy and management than on the technology solution,” says Caroline Dangson, IDC research analyst. “Online community software enables new ways of working that require a shift in mindset and culture. IDC finds that traditional corporate culture acts as a major barrier to adoption today, even more so than the economic downturn.”

Download the full report.

Jennifer LeggioJennifer Leggio, aka "Mediaphyter," writes about the "social business" side of social media - including enterprise, security and reputation issues. See her full profile and disclosure of her industry affil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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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내 머리는 기획실, 손은 공장”-1인 기업 [동아일보, 2007/1/20]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 시간에 자신만의 지식과 지혜로 수완 좋게 사업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1인 기업’이다. 이들은 특정 기업의 하청 업무를 맡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1인 화물사업자나 학습지 교사 등을 포함하는 ‘프리 에이전트’와 구별된다. 단순히 오프라인 상점을 온라인으로 옮긴 1인 쇼핑몰과도 다르다. 1인 기업은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거나 만들어 내는 특성을 지녔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고객인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세분화되는 흐름을 파고들어 자신의 일을 찾아내고 키워 간다. 》


‘1인 기업’ 시대, 생각이 곧 돈이다


#장면 1 “1년에 평균 1억 원 이상은 벌지요. 하지만 돈보다 좋은 것은 평일에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미술관과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가는 길은 다른 길이다. 하늘에서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다면 아마 이런 장면일 것이다. 비슷비슷한 정장을 차려 입은 직장인들이 도심의 회색빛 빌딩으로 들어갈 때 그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서울 종로구 북촌길의 정독도서관을 찾는다.

김용섭(35) 씨는 휴식과 일을 겸해 일주일에 2∼3일은 도서관에 들른다.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미술관을 자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전 직장에서 디지털미디어 전략 업무를 맡았던 그는 7년째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김 씨가 하는 일은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팅. 법인의 전략을 짜 주는 개인이다.


#장면 2 김 씨가 정독도서관에 있을 즈음, 수원에 사는 안용성(30) 씨는 자신의 집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자신이 관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자기경영 플러스’에서 좋은 교육 아이템을 발견했다.

‘이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몇 사람이나 참여할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강의 장소로 적합한 회의실 위치가 내비게이션 지도처럼 쫙 펼쳐졌다. 적당하지 않은 후보지를 지워가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다. 핵심 콘텐츠를 보유한 강사들의 리스트는 이미 사진첩처럼 잘 정리돼 있다.

프로그램이 확정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를 띄운다. 1개월에 10회 정도 열리는 그의 세미나에는 많게는 100명, 적게는 30명이 참여한다. 행사 당일 부족한 일손은 대학생의 도움을 받는다. 안 씨의 직업은 자칭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다.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시장의 흐름을 파악했고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일을 만들었다. 소득은 웬만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


○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 수요에 맞춰


권윤구(34) 씨는 자신을 ‘북 코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만든 직업이다.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은 뒤 인상 깊은 구절과 책의 메시지를 e메일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2005년 북 코치로 나서기 전 1년가량은 직장생활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책 읽은 소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e메일로 보내던 것이 아예 직업이 됐다. ”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급증하면서 책을 선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 주 수요층이다. e메일 서비스는 무료다. 그 대신 다독(多讀)의 경험을 살려 출판사의 출판기획 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득을 올린다. 자신의 ‘책 리뷰’를 온라인 사이트에 연결해 주는 조건으로도 돈을 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케이블 TV에 출연하는 것도 일과에 포함됐다.

미국 포천지 편집인을 지낸 윌리엄 화이트가 만든 단어인 ‘조직 인간’. 산업화 이후 정형처럼 굳어진 그런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사람이 1인 기업이다. 거대 조직에 봉사하느라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를 잊거나 덮어두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권기훈(45) 씨는 오피스텔과 와인 바를 오가며 소믈리에(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골라주는 사람)를 교육하는 와인 전문가다. 오스트리아에서 의대를 다니다 와인에 빠져 1998년부터 현지 와인스쿨에서 지식을 쌓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벌린다’는 원칙에 따라 오피스텔에서 한 번에 3, 4명만 가르친다. 와인 실습은 자신이 컨설팅해 준 제자의 점포에서 번갈아 여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였다.

와인 열풍과 더불어 소믈리에 수요가 늘어 현재 월 800만∼900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마산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혼자 심리학책 출판해 베스트셀러 터뜨렸죠”


○ 잘하는 분야에서 독자영역 구축해야


2005년 중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심리학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교보문고의 인문서적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다. 통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3개월도 지키기 힘들다는 점에 비춰보면 작지 않은 성공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조영희(38) 씨가 혼자서 만든 책이다. ‘에코의 서재’라는 1인 출판기업을 세우고 6개월간 준비했다. 그는 위즈덤하우스 등 대형 출판사에서 10여 년간 일하며 틈새를 찾았다.

“역사나 철학에 비해 심리학 분야에선 고급 독자를 겨냥한 책이 거의 없었다. 심리학과 경제·경영서 중에 학문적 이론이 결합된 고급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출판업계는 디자인과 편집, 교정 등의 작업이 정교하게 분화돼 있어 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1인 기업의 활동이 쉬운 편이다. 조 씨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책도 내놓았다.

물론 독립이 쉽지는 않다. 1인 기업이 되려면 ‘조직 인간’일 때 받는 정기적인 급여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고정적인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용섭 씨는 “전문 지식과 인맥을 쌓아 가면서 자신의 일을 서서히 키워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닭이 껍데기가 여문 계란을 낳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회사와의 별도 계약을 통해 1주일에 2, 3일만 출근해 일하는 형태의 근무를 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진행하던 자신의 일이 많아져 전업을 해야 했지만 회사에서 그의 손이 필요한 기간에 시간을 갖고 독립 능력을 키웠다.


○ 1인 기업의 생리


“행사를 알리느라 돈을 들이는 일은 없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지를 올리면 제휴를 맺은 커뮤니티에도 알려지거든요. 통상 5만 건의 조회를 기록할 정도이니 적은 숫자는 아니지요.”(안용성 씨·교육 프로그램 기획가)

비용의 최소화는 1인 기업의 숙명이다. 인터넷은 이런 필요에 가장 충실한 도구다. 개인이 블로그나 미니홈피로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김민희(27) 씨는 인터넷에 ‘연애할 때 유용한 요리’라는 독특한 아이템을 올려 자신을 알렸다. 덕분에 요리와 관련된 기업의 객원 연구원으로 영입돼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

1인 기업의 주요 생산품목은 결국 지식이다. 컨설팅이나 교육강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가장 손쉬운 ‘원재료’ 확보 수단이기도 하다. 외국의 강연장을 찾지 않고도 최소의 비용으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여러 곳에서 확보한 지식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1인 기업의 몫이다. 이들에게 유독 책읽기나 인터넷 검색 시간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술과 강연은 이들의 핵심 마케팅 수단이자 소득원이다. 인세와 강연료를 챙기면서 미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1인 기업은 넓은 사무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사무실을 임차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주’들이 많다. 비용의 최소화는 시장에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무기가 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을 컨설팅할 때 경쟁상대인 법인보다 가격을 낮춰 제시할 수 있다. 책을 출판할 때도 대형 출판사들이 최소 3만 부에 손익분기점을 맞춘다면 1인 출판기업은 1만 부로도 가능하다. 적은 비용 지출은 곧 높은 영업이익률을 뜻한다. 대부분의 1인 기업은 ‘매출’과 ‘순이익’ 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금전적인 투자비용이 적은 만큼 사업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 1인 기업의 인프라


사회 인프라의 발달은 1인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북 코치로 활동 중인 권윤구 씨는 방송 일정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택배시스템의 발달 덕택이다.

서울 강남과 신촌 등에 있는 ‘토즈’라는 가게는 1인 기업의 사회적 인프라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은 2인실부터 90인실까지 다양한 독립공간을 갖춰놓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던 1인 기업들은 이곳을 예약해 자신의 사무실처럼 사용한다. 2시간 동안 쓰면서 1인당 차 한 잔 값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인테리어는 대기업의 사무실 공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지식 생산이 주 업무인 1인 기업을 위해 콘텐츠를 유통시켜 주는 장(場)도 섰다. 인터넷 사이트 비법닷컴(www.vipup.com)에서는 ‘동대문 상권 분석’ 같은 독창적인 콘텐츠를 개인들로부터 확보해 유료로 유통시키고 있다.

비법닷컴 나원주 사장은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도 소득을 올리는 개인이 늘고 있다”며 “이곳은 특정분야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 수단도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다변화한 것도 1인 기업에는 고무적인 변화다. 1인 기업은 케이블TV와 위성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등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연애 요리 전문가 김민희 씨와 북 코치 권윤구 씨는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글로벌 1인 기업 성공전략’ 강연가로 활동하며 자신도 1인 기업인 김형환(40) 씨는 “처음 개척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한 성공조건”이라며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 진정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홀로 회사’ 차리려면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

1인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계발 욕구가 강하다. 자신이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 되는 기업을 꿈꾸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기 전 자신이 가진 핵심기술을 단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소장은 직장 생활도 ‘회사와 나(1인 기업)의 계약 관계’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회사를 고객으로 인식하면 고객을 만족시킬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고, 자신의 기술도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1인 기업의 생존은 자신의 핵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출판 분야의 경우 기획능력이 있다면 1인 기업 설립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이다.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는 능력을 갖췄다면 온라인 장터(마켓플레이스)에 쇼핑몰을 차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물론 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외부 서비스 환경을 적극 활용해 핵심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 기획가인 안용성 씨는 프로그램 기획과 마케팅에만 관여하고 구체적인 행사진행 등은 대학생들에게 맡긴다. 자신이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외부 서비스 환경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사업 계획을 세울 때는 잠재적인 실패 요인에 유의해야 한다. 성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들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예측에 근거한 시장 조사나 예상 매출액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신기술이 나오면 내 편으로 만든다. 북 코치 권윤구 씨는 처음에는 웹메일 서비스를 이용해 e메일을 보내다가 e메일 대행 서비스 업체를 3곳이나 바꿔가며 신기술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e메일 관리를 수월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 가끔 일을 하지 않아도 표가 나지 않지만 1인 기업에서는 바로 실적으로 나타난다”며 창업자의 의지와 역량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했다. 권기훈 씨는 “전문 지식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없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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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 에서 Great Company는 유명한 CEO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외부에서 보기엔 Star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봐서 보수적으로 경영한다고 봐야 할수도 있지만,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게 좋을듯 하다.

경제가 어렵고 힘들어야 Really Great Company를 확인해 볼수 있다.
잘 돌아갈때는 문제가 보이지 않다고 어려워지면 그 문제가 전부 들쳐나기 때문이다.

LG는 이런 면에서보면..
100년을 이어갈 기업이라는 생각이든다.
보수적인 경영환경과 여전히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진 조직
한때.. 1등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신자유주의적 사고로 내달리던 조직이..
이제서야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진 따뜻한 이미지로 회귀하는 듯하다..

마켓팅 중심(고객 가치 창출)은 실상 LG의 가장큰 강점으로 키워야 함에도.
어설프게 삼성을 쫓아 가려했던 시기가 있기도 했는데..

외부에 드러나는 CEO도 없고, 구본무 회장 또한 그저 담백하게 움직일뿐 드려내질 않는다.

3~4년전 김쌍수 부회장시절 전 LG그룹원이 읽어야만 했던 Good to Great의 내용이 내재화 된탓일까.
아이러니 하게도 김 부회장 시절은 1등으로만 내달리던 시대였는데..

LG그룹이 다른 그룹이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던 금융이나 부동산과 같은 자산형 사업(경제가 좋을땐 대박 - 한마디로 쉽게 돈 벌수 있는, 그러나 망하기도 쉬운)이 아닌 전세계와 경쟁하는 전자, 화학 산업에서 일군 성과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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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앞선 구조개편이 성장 밑거름 됐다

LG그룹 매출 100조 시대
2년전 위기때 일찌감치 계열사 책임경영체제 구축

"올해 수고 많았습니다. 내년에 경기가 어렵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도전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동관 30층 회의실. 구본무 LG 회장은 3주간 진행된 계열사 최고경영진과의 '컨센서스 미팅(Consensus Meeting)'에서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미래 준비를 위해 해야 할 것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일관성 있게 진행하자"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경기가 안 좋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도 했다.

내년에 투자와 고용, 어느 쪽도 줄이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글로벌 경기 악화로 내년 사업환경이 시계 제로 상태로 치닫고 있지만 LG는 오히려 공격 경영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LG그룹이 창사 61주년을 맞은 올해 처음으로 매출액 '100조원 클럽'에 가입한다. 100조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9분의 1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LG는 지난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 81조119억원을 기록했다.

이 속도대로라면 연초 목표했던 100조원 돌파는 무난할 전망이다. 100조원 매출 달성은 국내 대기업집단 가운데 삼성그룹과 현대ㆍ기아차그룹에 이어 세 번째다. LGLS(2003년) GS(2005년) 등이 계열분리하기 전에도 100조원 매출은 달성하지 못했다.

당시 LG가 계열분리와 지분매각 등을 통해 금융과 유통 분야 등에서 손을 떼자 '캐시카우(현금창출원)'를 다 내줬다는 염려 섞인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LG는 지난 3년간 그룹 매출을 20조원 이상 확대하며 세간의 염려를 빠르게 불식시켰다. 매출 100조원은 핵심 계열사별로 고른 성장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을 부문별로 들여다보면 전자 부문(9개 계열사)이 50조원, 화학 부문(7개 계열사) 15조원, 통신ㆍ서비스(23개 계열사) 부문 15조원 등으로 구분된다. 전자, 화학, 통신ㆍ서비스 등 3대 사업 영역이 어느 쪽도 뒤처지지 않고 적절한 균형미를 보여준 셈이다.

외형 성장 이상으로 수익성이 강화된 점도 눈길을 끈다. LG그룹은 지난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7조7000억원(지주회사 포함)을 달성했다. 연초 목표했던 7조원을 이미 뛰어넘은 셈이다. 4분기 성장세는 경기 악화 영향으로 주춤할 전망이지만 8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누적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은 계열사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 4곳에 달했고, 특히 LG전자 MC사업본부(휴대폰),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부(전지), LG디스플레이(LCD 패널), 실트론(반도체 웨이퍼) 등 10개 계열사 또는 사업 부문은 3분기 누적실적 기준으로 두 자릿수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LG전자 휴대폰 부문은 프리미엄 전략이 먹혀들며 영업이익이 120%나 늘었다. 올해 판매량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1억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LG디스플레이는 대형 LCD 출하량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고, 통신 계열사인 LG데이콤도 인터넷전화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섰다.

LG의 약진 배경으로는 2년 전에 미리 위기를 거치면서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한 점이 꼽힌다.

LG는 2006년 LG디스플레이 적자와 LG전자 실적 부진 등이 겹치면서 한때 '유동성 위기설'까지 제기된 적이 있었다. 당시 LG는 전자 부문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전격 교체하며 분위기를 일신했다. 또 LG전자 등은 해외사업 조직을 전면 개편하고 슬림화했다.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에 강력한 '워닝(경고)'을 가하자 조직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위기 영향으로 무리한 인수ㆍ합병(M&A)을 자제하고 재무구조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온 점도 불황을 맞아 새삼 돋보이는 대목이다. LG는 대형 M&A딜에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덕분에 외환위기 당시 500%를 넘던 그룹 부채비율은 80%대로 낮아진 상태다.

이훈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LG는 지난 2~3년간 무리한 기업 인수를 하지 않아 재무적 여력이 충분하고 계열사도 질적 경쟁력을 키워왔다"며 "현재 경제위기 국면을 적극적 투자를 통해 성장성 확보의 기회로 활용할 여력과 의지를 모두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용기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LG그룹은 최근 5년간 총차입금이 감소한 국내 유일의 대기업집단"이라며 "재무적 안정성이 견고하고 사업 포트폴리오 분산이 잘 돼 있다"고 밝혔다.

LG그룹이 2003년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한 점도 5년여 만에 본격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고객가치를 맨 앞에 놓는 이른바 'LG웨이' 등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과 용인술도 큰 몫을 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구 회장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신년사에서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35회나 사용했다"고 전했다. 구 회장은 최근엔 현장경영 보폭을 넓히며 임직원들을 추스르고 있다.

물론 LG에도 위기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LG전자LG디스플레이 등 핵심 계열사 실적 둔화로 내년에는 100조원 매출을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의존도가 높은 전자 부문이 불황기에 직면한 현 상황을 LG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눈길이 쏠리고 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TAG lg그룹
또한명의 인포프리너.. 미국이라 가능한걸까??
 미국의 경제규모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다시금 고민해 보지 않을수 없다.



[동아일보]

NYT ‘맥루머스닷컴’ 운영 전업 아널드 김씨 소개

한 재미교포 의사가 본업을 그만두고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거로 변신해 주목받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는 재직하던 병원을 최근 그만두고 2000년 의대 재학 시절 만든 ‘맥루머스닷컴’(MacRumors.com) 운영에 전념하고 있는 아널드 김 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맥루머스닷컴’은 컴퓨터 회사인 애플과 관련된 각종 소문과 신제품 정보 등을 소개하는 블로그. 최근 기술 분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블로그 중 하나로 떠올라 월 방문자 수가 440만 명에 이른다.

인터넷 관련 정보 사이트인 ‘24/7 월스트리트’는 맥루머스닷컴에 대해 “애플 경영진보다 애플을 더 잘 안다”고 평가하며 ‘가장 가치 있는 블로그 25개’ 중 2위에 올리기도 했다.

김 씨는 “아직 백만장자 블로거도 아니고 온라인 광고시장이 위축되고 있지만 향후 수익 구조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맥루머스닷컴은 3년 전부터 구글 광고 등과 연계해 수익을 내고 있으며 병원 사직 후에도 김 씨는 의사 시절 연봉과 비슷한 액수의 돈을 번다.

김 씨는 블로거로 전직하는 것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의사인 아버지가 찬성했고 14개월 된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한국의 미래, 10년을 내다본다면.. 무슨일이 있을까??

국부 펀드는 10년후 국제 금융의 지도를 바꿀것이 확실하다.
이제 국가간의 전쟁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

거시적 흐름이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거대화등을 통해서 더욱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변화한다면.. 미시적 흐름이 개인들은 어떤 Action을 취애햐 하는가??

단순 고민에서 머물것이 아니라..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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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새 美에만 240억弗투자…금융시장 큰손 부상

한국 KIC 200억弗규모 세계17위…5년내 5배 확대

국가 재테크 시대, 나랏돈을 운용하는 국부펀드가 세계 시장을 누비며 기업 사냥에 나서고 있다.

국부펀드는 최근 몇 달 새 미국 금융기관에만 240억달러를 투자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신용위기 속에서 씨티그룹,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블랙스톤, 칼라일 등이 아시아 국부펀드로부터 수혈을 받았다.

세계 최대 은행인 씨티그룹의 최대주주는 이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으로 바뀌었다.

이들의 손길은 금융기관뿐 아니라 첨단 정보기술(IT) 회사와 철강회사, 패션업체 등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테마섹과 함께 싱가포르의 대표적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은 지난 12일 이탈리아 유명 패션업체인 베네통의 지주회사 신토니아 지분 3%를 15억3000만달러에 인수해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국부펀드는 대부분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 자산투자에 치중했으나 최근 들어 기업 지분을 획득하고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등의 전략적인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부펀드가 인수.합병(M&A)시장의 새 강자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크게 2가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외환과 오일머니가 넘쳐나는 데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실물자산 투자가 유력 포트폴리오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국부펀드, M&A시장 재편

=국부펀드는 현재 30여개국에서 약 40개를 운용하고 있다. 8750억달러를 운용하는 UAE의 ADIA, 3300억달러를 운용하는 GIC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투자공사(KIC)가 200억달러 규모를 운용 중이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국부펀드 총액이 2조5000억~2조8000억달러에 달하며 2015년이면 12조달러으로 전 세계 외환보유액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헤지펀드의 규모가 1조6000억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다.

국부펀드의 외연도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2004년 러시아, 2006년 호주에 이어 지난해에는 우리나라에서도 KIC가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중국에선 2000억달러의 중국투자공사(CIC)가 지난해 9월 공식 출범했고, 프랑스와 일본 인도도 국부펀드 설립을 검토 중이다.

LG경제연구소는 ‘2008년 주목해야 할 글로벌 경제의 뉴 트렌드’ 보고서에서 “신흥시장의 금융자본(국부펀드)이 향후에는 사모투자펀드(PEF)나 투자은행(IB)과 같은 역할을 직접 수행하는 다각적인 투자기구로 발전할 수 있다”며 “특히 M&A시장에의 활발한 참여를 통해 해당 국가의 글로벌 제조업 기반을 확충, 세계 경제의 재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두바이 소재 투자회사인 아브라즈캐피털의 아리프 나크비 최고경영자(CEO)도 “10년 후에는 세계 금융환경이 (국부펀드를 중심으로) 완전히 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부펀드의 기업 사냥은 올 들어서 더욱 활발해져 지난 1월만 해도 수십억달러대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쿠웨이트투자청(KIA)과 GIC가 125억달러를 씨티그룹에 투자했고, ADIA는 독자적으로 75억달러를 씨티그룹에 쏟아부었다. 캐나다 연금공단은 로데트교육에 36억7700만달러를, 중국개발은행은 바클레이즈(영국은행)에 29억8000만달러를 각각 투자했다. 또 두바이국제금융센터는 스웨덴 증권거래소에 35억5100만달러를 집어넣었으며, CIC는 최근 세계 2위 철광석 수출업체인 리오틴토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국부펀드의 가장 큰 매력은 정부의 힘을 기업에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부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면 그 기업의 경영과 사업에 해당 국가의 전략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국판 테마섹, KIC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제금융센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국부펀드인 KIC는 전 세계 28개국 32개 국부펀드에 대한 종합평가에서 17위에 불과하다. 1위는 24점을 얻은 뉴질랜드의 국부펀드였으며, 2위는 노르웨이 국부펀드(23점)였다. KIC는 조직구조(8점 만점에 6점), 지배구조(4점 만점에 2점)에서는 중간 이상의 점수를 받았으나 투명성과 책임성은 12점 만점에 1점, 운영의 신축성은 1점 만점에 0점을 받아 총 25점 만점에 9.0점을 받았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따라 KIC의 자산 규모와 역할을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테마섹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KIC 자산운용 규모를 늘리고 자산운용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기관 설립의 근거가 되는 한국투자공사법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재정부 구상에 따르면 한국판 테마섹은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주식을 모두 넘겨받아 설립된다. 매각 일정이 이미 확정됐거나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된 기업들의 지분은 매각 후 현금으로 출자되며 정부가 지분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은 현물로 출자된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현재 200억달러 수준인 KIC의 자산운용 규모를 앞으로 5년간 1000억달러로 5배 확대하는 내용을 검토한 바 있다.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글로벌 탤런트'를 춤추게 하라] ②스웨덴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 네트워크등 완벽 구비
"일회용 인재유치 없다" 숙련인력은 해고 안해
기업맞춤형 인력양성 위해 IT대학 별도설립도

"글로벌 인재를 키우려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합니다.”

앤더슨 플로트스트룀 스웨덴 왕립공대(KTH) 총장은 “인재를 키우는 대학은 설령 재정이 빠듯하더라도 학생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스웨덴은 글로벌 인재들에게는 천국이다. 이들은 좁게는 200만㎡(시스타사이언스시티의 면적), 넓게는 반경 25km(스톡홀롬을 중심으로 한 계획도시들) 범위 내에서 연구는 물론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인재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글로벌 탤런트들을 불러 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틴 썬먼 패킷프론트 CEO는 “시스타는 IT인력들에게 안정적인 개발 환경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잘 갖추어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며 “패킷프론트의 사업 아이디어도 시스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개발된다”고 말했다.

◇인재의 도시 시스타=“저기 군사시설 같은 곳이 IBM의 단독 연구소입니다.” 시스타(Kista)사이언스시티에 들어서자 김장용 ITU 일렉트롬재단 연구원은 정면에 보이는 숲쪽을 가리켰다. “2~3년 뒤가 아닌 최소 10년 뒤 IBM의 먹거리를 찾고 있는 곳”이라며 “IBM의 미래가 시스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시스타를 잠깐 둘러보면 마치 ‘에릭슨 기업도시’ 같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내로라하는 글로벌 ITㆍ통신기업들의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글로벌 ITㆍ통신의 미래가 시스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시스타는 정부나 지자체가 만든 도시가 아니다. 당초 군사훈련장으로 쓰던 곳이었지만 에릭슨이 지난 75년 무선통신사업본부와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IBM,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왔다. 글로벌 기업들이 시스타를 찾은 이유는 당시 무선통신사업의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에릭슨의 인재들과 네트워킹을 하기 위해서다.

2001년 시스타는 명칭을 시스타사이언스파크에서 시스타사이언스시티로 바꿨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별다른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공원(Park)은 말 그대로 일하다 잠시 쉬러 오는 곳이지만 ‘시티’(City)는 24시간 일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스톡홀롬시는 세계 언론들이 시스타를 ‘무덤의 관’이라고 조롱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스타 타워’를 만들고 164개의 상점과 식당, 11개의 스크린이 있는 최신 극장을 만들었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재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인재가 살 수 있는 생활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것을 시스타는 알고 있었고 이를 실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회용 인재유치는 없다=스웨덴은 인재의 미래를 본다. 나노산업 관련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한국의 대기업과 협력을 하고 있다는 페터 에흐만에게 한국기업의 인재관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에흐만은 “직원들이 장사는 참 잘한다”고 말했다. 마케팅 능력으로 단기적인 성과는 올리고 있지만 장기적인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말로 들렸다.

스웨덴 기업의 고용구조는 언뜻 보면 일본의 장인 시스템과 유사하다. 니스 조나스 칼슨 보캅 CEO는 “스웨덴은 일회용 인재유치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1년 에릭슨은 구조조정을 하며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을 해고했다. 신입이나 경력이 짧은 직원들은 스웨덴의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실업수당을 받으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의 해고는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고스란히 경쟁사에 넘겨주기 때문이다. 칼슨 CEO는 “연구인력 특히 숙련된 연구인력에게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는 기업만이 인재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맞춤형 인재 위해 대학도 구조조정=시스타내에 위치한 ITU는 시스타의 IT연구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99년 스웨덴왕립공대와 스톡홀롬 대학의 IT분야 학과들이 통합해 설립됐다. 세계 10대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스웨덴왕립공대가 자존심(?)을 꺾고 스톡홀롬대학의 학과와 통합해 새로운 대학을 만든 것이다. 최근에는 음악프로듀싱과 의학 분야가 IT와 결합되고 있는 추세에 따라 스웨덴왕립음악학교와 칼라스칸 의대 등 IT와 연계할 수 있는 대학들이 속속 결합되고 있다.

울프 칼손 ITU 교수는 “스웨덴은 오랜 산학협동 시스템의 전통이 있다”며 “ITU는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실적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에릭슨, IBM 등 글로벌 기업들과 연계해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ITU의 교육은 철저하게 현장중심으로 한다. 스웨덴의 미래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을 대학에 의뢰하고 대학은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스웨덴왕립공대에서 박사과정을 진행중인 반쉬팡은 “KTH에서 성공한 기초연구를 ITU를 통해 시스타에서 제품화한다”며 “시스타는 연구와 산업현장이 결합된 곳”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야네케 슐만 ITU 대외협력 매니저
“석사 과정중 1년간은 기업과 프로젝트 진행”

"대학은 교육과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회와의 관계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쟈네크 셜만(사진) ITU 대외협력 담당 매니저는 "스웨덴 대학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산학협력프로그램은 이익보다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셜만 매니저는 "지난해 에릭슨의 연구원 재교육 프로그램을 오픈한데 이어 올해는 IBM,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스웨덴 인재가 아니라 해도 시스타(Kista)사이언스시티에 들어온 인재는 ITU와의 연대를 통해 R&D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TU의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독특한 것은 석사 과정 중 1년간은 반드시 기업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학생의 아이디어가 기업으로 전달되고 최종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셜만 매니저는 "시스타 내 기업들을 통해 학생의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만들어 내도록 하고 있다"며 "아이디어의 파급효과가 클 경우에는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해당기업의 R&D센터로 바로 취업하도록 하고 있어서 연구의 연속성이 확보된다"고 소개했다.

ITU는 재학중인 학부생 5,000명 가운데 20%를 외국인 학생으로 채울 정도로 글로벌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셜만 매니저는 "ITU는 세계 어느 대학보다도 인터내셔널 프로그램이 잘 짜여져 있는데다 글로벌 대학간 협력 시스템을 통해 세계 각국의 인재들을 불러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셜만 매니저는 "학부 졸업생 중 상당수가 ITU의 석사과정으로 들어오고 석ㆍ박사 졸업생들은 시스타내 글로벌 기업의 R&D센터로 흡수된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7/15 16:12

수정시간 : 2007/07/15 16:17

Posted by 빠른불곰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