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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는 물티슈중에 몽드드라는 회사가 있다.

별생각없이 샀던 이 회사가.. 생각보다.. 스토리가 있는 회사이고, 빠른 성장을 하는 회사였다.

2009년이면 대략 4~5년 전에 만들어진 회사가 매출액 100억을 돌파할 정도로 성장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매우 노력해서

1위 기업까지 되었다는 점에서.. 작지만 비즈니스를 잘하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임직원들도 자부심이 꽤 있었을듯 하다.


하지만.. 한순간 CEO의 잘못된 행동은.. 조직 전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그 구성원들의 당당함과 자부심은 치욕과 수치심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표이사가 바뀌고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지 잘 봐야할 기업이다.



몽드드 성장 스토리 최대 위기

충성맹세 주부들도 썰물처럼…

[제1185호] 2015년01월28일 10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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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프랑스어로 ‘내 담요’를 뜻하는 아기 물티슈 업체 ‘몽드드(Mon Dou Dou)’의 시작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서 인연이 닿은 피아니스트 이루마(36)와 유정환 전 대표(35)는 ‘내 아이에게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1년의 준비 끝에 물티슈 사업에 뛰어들었다. 출발은 초라했다. 이루마가 500만 원을, 유 전 대표가 700만 원을 투자해 설립된 몽드드의 사무실은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의 자그마한 곳이었다.


상세 기사 내용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11066


KB금융의 사태는 직원들의 사기에 어떤 영향을 줄까..

KB지주와 KB은행간의 CEO및 Management 관련 갈등은 대부분은 내부에 팽배해 있는 조직간 이기주의와 

관치금융에 따른 조직 전반에 걸친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고 한다.

KB그룹에 다니는 임직원들은 어떨까.. 대부분 출근길/퇴근길에 이번 사태를 두고 한두 마디씩 할 것이다.

어떤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얼굴을 들기 어렵다는 말까지도 서슴치않고 한다. 본인이 은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얼굴 들고 다니기 어려운 적이 없다면서..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부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시장의 평가는 조직 구성원들의 사기 즉, 자부심에 영향을 주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건.. 발생된 문제 자체도 그렇지만, 해결 과정에서 발생되는 일련의 해결 과정이 정정당당하게 알려지는지에 따라 조직에 대한 자부심은 매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KB사태를 보면서.. Management Risk가 매우 중요한 조직적 요인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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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KB금융의 추락, 더 이상은 안된다
2014-05-29 16:38:42
국민은행이 30일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연다. 주전산기기 교체를 둘러싼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간의 갈등이 밖으로 터져 나온 지난 19일 이사회 이후 열하루 만의 일이다. 이에 앞서 이건호 은행장과 정병기 감사는 전산시스템을 IBM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바꾸기로 한 은행 이사회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었다. 이사회에서 채택을 거부당하자 지주사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 검사가 진행 중인 상태다.


표류하는 KB금융…내ㆍ외부 갈등 `악화일로'

기사입력 2014.08.12 오전 6:01
최종수정 2014.08.12 오전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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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체계 붕괴ㆍ인사지연ㆍ계열사 차명계좌 등…"회장ㆍ행장 대승적 화해 필요"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 금융감독원의 경영진 제재가 늦어지면서 KB금융의 내ㆍ외부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경영 공백'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경영 차질이 빚어지면서 금감원의 조속한 제재 결정과 함께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대승적인 화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내가 속한 조직의 CEO 혹은 Leader로 인해 자부심은 생기기도 하고 무참히 망가지기도 한다.

40~50대 샐러리맨들에게 신화적인 CEO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Owner를 꼽으라면 아마도..

강덕수 STX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들은 조그마한 회사에서 시작해서 혹은 일반 직장인에서 부터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도전적인 M&A전략으로 30대 그룹에 들정도로 기업을 키워나간 인물들이다.

STX와 웅진의 직원들은 Owner의 이름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정도였으니.. 회사와 Owner는 같은 등급 혹은 Owner에 의해서 회사를 선택했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STX와 웅진에게는 그들은 없다. 

그들은 어느 순간 실패한 경영자로, 몰락한 기업가가 되어 버렸고, 그들이 운영하던 기업의 임직원들은 한순간에 길바닥에 나앉아 버렸다.

강덕수와 윤석금이란 이름을 더이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 연구해 볼만한 것들이다.

그들과 더불어 팬텍의 박병엽 부회장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Owner의 Risk

Owner말고도 CEO나 리더들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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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엇갈린 신화’ 강덕수 울고 윤석금 웃는 이유

‘수직 계열화’가 발목 vs ‘캐시카우’ 매각으로 승부수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평사원에서 시작해 대기업 총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하지만 신화는 영원하지 않았다. 계열사 부도와 그룹 해체의 수모를 겪으며 성공 극장도 막을 내렸다. 비슷한 흥망사를 쓸 것 같았던 두 사람의 행보. 그런데 최근 이들의 상황이 극명하게 갈린다. 강 전 회장이 구속 수감된 데 반해 윤 회장은 법정 관리를 졸업하고 경영 복귀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무엇이 이 둘의 얄궂은 운명을 끌어낸 것일까. 두 사람의 경영은 무엇이 어떻게 달랐던 걸까.


  • 입력:2013.09.27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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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신화 왜 잇따라 무너지나… 문어발식 몸집 불리기 ‘惡手’ 기사의 사진



[Pride] 왜 LIG손보 노조는 KB를 선택했을까?

LIG손보는 국내 4위의 손해보험 회사로 자산이 19조 규모로 매각을 위해 시장에 나왔다. LIG그룹에서 LIG건설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잘 못하는 바람에 발생한 막대한 피해보상 자금으로 대략 2000억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실제 LIG그룹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LIG손보를 매각하게 된것이다. 

초기 LIG손보 매각에 따라 손보험업계의 지각변동도 예상되었다. 우선적으로 기존 손보사들보다는 실탄(자금)이 있는 KB금융과 롯데그룹등이 초기부터 매우 가능성을 가진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롯데그룹의 인수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LIG손보의 매각을 발표한 당일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롯데손보는  2013년 말 대비  롯데손해보험은 38.35% 올랐다. 13년 말 2855원이었던 주가는 3950원으로 껑충 뛰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손해보험시장에서 점유율이 낮은 롯데손해보험이 LIG손해보험을 인수하게 되면 시장점유율이 크게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2013년 말 기준 롯데손해보험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3.08%다. 만약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업계 4위에 올라있는 LIG손해보험(13.58%)을 인수하게 되면 16.66% 수준이 된다. 현대해상(16.43%)과 동부화재(15.64%)를 제치고 삼성화재(26.40%)에 이어 업계 2위로 올라서게 되는 셈이다.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호재다. 지난 1분기 롯데손해보험은 31억6400만원의 영억손실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에도 37억원의 적자를 낸 바 있다. 반면 LIG손해보험은 롯데손해보험과 비교해 1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만 306억5700만원을 올렸다. 손해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롯데손해보험이 2008년 대한화재해상보험을 인수하며 손해보험업을 시작한 이후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만약 이번 인수에 성공하면 보험업계의 판도가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롯데그룹은 전략적으로 LIG손보 인수에 나설것이고, 매우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어떻게 하든 인수하려고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반면에 KB금융은 M&A를 시도할 때마다 실패했던역사가 있다.. 외환은행과 ING생명,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매물이 나올 때마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말에는 우리투자증권을 두고 NH농협금융지주와 경쟁했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KB금융은 근본적으로 기업 포트폴리오가 은행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 다양한 수익창출이 어려운 구조여서 적극적으로 M&A를 나서게 된 상황이고 특히 손해보험은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에 아예 없다는 점에서 4위의 LIG손보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된 M&A의 실패와 회장단의 추진의지와 이사회와의 불협화음등으로 실제 M&A에서 전략적 취약점이 노출되었고, 가장 중요한 기업인수시 소요되는 제안가를 높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LIG손보가 어떤 회사를 선택할지를 놓고 시장의 반응이 뜨거운 상황이었다. 

결과는 가장 높은 제안가를 쓴 "롯데"는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쓴 "KB"가 선택되었다. 더 놀라운건 보고펀드가 2위를 했고, 롯데는 꼴등인 3위를 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높은 제안가를 쓴 "롯데"가.. 왜 일까?? 일반적으로 기업의 M&A에서 가장 중요한건 가격인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런데도.. 롯데가 아닌 KB가 된 것이다. 

왜 일까.. 

첫번째는 시너지효과일 것이다. KB가 가진 보험업 경쟁력은 KB생명뿐이고 시장 점유율도 1%뿐이다. 그래서 LIG손보의 인수는 전체적인 보험금융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두번째는 노조의 영향력때문일 것이다. LIG노조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를 들어 롯데를 반대했다. 무엇보다 경영능력이 없는 기업이 LIG손보를 인수하면 경영을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롯데손보와 합병후 구조조정이 발생한다는 점도 강조했지만, 생각 보다 롯데그룹의 낮은 복리후생과 직원 처우 때문에 안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조직에 대한 프라이드 관점에서는 손보업계의 1류 기업(1~4위는 비슷비슷한 순위고 5위 부터는 매우 차이가 많이 난다)인 LIG구성원들이 가진 프라이드를 유지할 만한 곳으로서 롯데와 KB를 비교해 보면.. 롯데손보의 브랜드와 기업문화는 3류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4대금융지주인 KB는 메이저회사라는 관점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프라이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역량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롯데는 선택되어선 안될 조직이었던 것이다.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들에게는 조직 전체의 변화에 있어 나의 프라이드가 어떻게 변화될지에도 매우 민감하게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낮은 처우라고 해도 브랜드와 같은 무형적 요소로 프라이드 전체가 유지되거나 높아 질 수 있다면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것이다.

LIG손보가 KB에 인수되고 나서 어떤 경영성과를 보여주는 지를 살펴보면, 프라이드 인식수준의 변화에 대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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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손보, KB금융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벼랑끝 KB금융’ LIG손보 인수로 위기탈출?

http://www.int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1833


LIG손보 인수에 목매는 롯데그룹…'승자의 저주' 우려<세계파이낸스>

http://www.segyefn.com/articles/article.asp?aid=20140610023639&cid=0504020000000?OutUrl=naver


 어느 유통회사 직원이 퇴직하면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보통.. 기분좋게 퇴사하는 경우도 적고, 불만이 있다고 해도.. 별로 알리려 하지 않는.. 한국적 문화에서.. 종종...기사화되는 내용을 보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퇴사하는 사람의 말을 100% 신뢰할수는 없다. 보통.. 상대가 되는 누군가 또한 선의의 피해를 볼수 도 있고, 무조건 한쪽의 잘못이라고 할 수 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에 대한 자부심(Pride)라는 관점에서 무엇이 그 직원을 퇴사까지 밀어 넣었을까.. 생각해보자.

직원이 지적한 4가지 문제점을 보자 실제로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 직원에게 비전보다는 고통분담을 강요.

회사는 끊임없이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성과를 달성하고 매출과 이익이 늘어도, 절대로 직원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성급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거시적 관점에서 거기에는 조직 미래에 대한 불안이 존재한다. 올해 잘했다고 내년에 잘한다는 보장이 없고, 누구도 그걸 확언할 수 없다. 또한 경영자나 Owner의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 그러니 직원들에게 잘했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미시적으로 보면, 조직은 당해년도만 잘한다고 수익을 확대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너무 경쟁이 심한 사회라 미래에 생길 경쟁에 대비해서 지금 수익을 유보하게 된다. 기업이 현금을 쌓아놓는 유보율이 1000%씩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한 노조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불안감을 자극하게 된다.

이런걸 보면.. 우리 사회 전반의 경쟁구도가 건강하지 않다는건 분명하다. 경쟁에서 승리해도 보상보다는 더 큰 불안감과 고통분담만 있을 뿐이고, 경쟁에서 지게 되면 그냥 퇴출이 되는 사회환경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직원들에게 고통분담만을 이야기했다는건.. 그들과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건 조직문화가 따라가지 못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구성원의 자부심은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내가 조직을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구나 라는 믿음을 만들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을 잡아 둘 수도 없고,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소통은 그 첫 걸음이다.

두번째, 패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

조직문화는 하루 이틀만에 만들어 지는건 아니다. 오랜시간 Owner로 부터 만들어져 내려오는 일종의 DNA와 같은 것이다. 하루 아침만에  삼성이 구글이 될수 없고, LG가 NC소프트가 될수 없다. 업의 특성도 다르고, 조직을 운영하는 Owner혹은 CEO의 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문화는 별수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나갈수 밖에.." 하지만..  모든 중이 절이 싫다고 나갈수 없다. 중이 너무 많아서 시주승으로 살기에는 밖의 환경은 더 죽을 맛이기 때문에... 그래서.. 조직은 잘 바뀌질 않는다. 기본적으로 어떤 조직문화를 가져가도..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데.. 이젠 그럴수 없다.  Social Networking으로 조직 전체의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가 왔다갔다하고, 개개인들의 영향이 조직의 존폐에도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조직문화의 패쇄성과 권위성으로 운영할 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직원들의 불만이 SNS을 타고 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직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알리는 전달자이다. 조직에 대한 자부심도 전혀 없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조직문화보다는 부정적인 현상은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전달될 것이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는 하나의 조직운영 형태이지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 빠른 의사결정과 일사분란한 조직체계가 필요한 조직에서는 꼭 필요한 조직문화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대표적인 권위조직인 이스라엘의 군대는 훈련과 전투수행중에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지만, 평상시에는 상급자와 하급자가 끊임없이 중요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하고 고민하는 문화가 바랄되어 있다. 그 군대에서는 어느 누구도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정말 군대 스러운 문화를 가졌다고 이야기 한다. 조직을 운영하는 관리자와 운영자가 무엇을 위해서 조직을 운영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데서 조직 문화의 병폐는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세번째, 직원처우 및 근로기준법 준수여부, 휴가나 오버타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

직원처우는 직원이 조직을 바라보는 첫번째 척도이다. 나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는가 아닌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따라서 나에게 많은 이익을 주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휴가나 오버타임은 어찌보면.. 그저 핑계다. 다른 부분(연봉)이 다른 곳보다 좋지 않으니... 휴가나 오버타임을 통해 핑계를 댄다. 어떤 회사에서는 연봉이 기본적인 경쟁수준에서 떨어지니 휴가나 오버타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해결해 준다. 그것도 방법이다. 부수적이지만, 사람으로서 대우받는다고 느끼게 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을 지지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조직을 구성하는 개인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것을 알고 있다. 좋은 일보다는 안좋은 일들이 더 빨리 퍼지고, 더 빨리 동조하 되기 마련이다. 작은 일이지만 더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다. 그 핵심은 개인이 느끼는 조직의 자부심 정도에 따라 다를수 밖에 없다.

경영진이 어떤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직원들과 충분히 교감이 되어야 한다. 어느 회사의 HR부서에나 있는 뻔한 목표와 활동 방침을 들이대 봐야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경영진이 꼼수를 쓴다는걸 직원들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마라.. 

직원은 곧 우리 회사의 고객이며, 우리 회사를 가장 많이 아는 가장 두려워해야할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공화.

 

 [단독]롯데슈퍼 직원의 절규 “수당도 못 받고 노예처럼 일했다”

 http://www.newsway.co.kr/view.php?tp=1&ud=2014060710331758488


“똥통” 놀림받던 대안학교, 유기농업 산실로 만들고 '봉사하는 삶’ 가르친 선생님
무농약 오리쌀 재배하며 전국에 가족 4만명 만든 농부
폐농가 속출하는 시골동네, 생태마을로 탈바꿈시킨 이장…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청량감 가득한 물줄기 하나 간절한 때 더욱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봄마다 마을 만들기 또는 공동체 가꾸기를 하는 지역을 찾아다닐 때 전국의 골짜기에서 만났던 일꾼들이다. 일꾼이라기보다 그들은 밀알이었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열매를 맺는 밀알.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의 홍순명 선생님.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는 풀무학교를 50년 동안 이끌어온 분이다. 스물네 살 총각으로 풀무학교에 부임한 후 칠순을 넘겼으니, 평생을 그곳에서 교육과 농업에 헌신해온 셈이다. 선생이 풀무학교 교장으로 계실 때 이미 시험 없는 학교를 만들어 학생이 각자의 능력대로 꿈을 키우게 했고, 교육을 머리만이 아니라 땀으로 체득하도록 교과과정에 노동을 포함시켰다. ‘똥통학교’란 비아냥거림을 듣던 이 학교 졸업생들이 퍼져 나가, 지금은 홍동면이 유기농업을 이끄는 터전이 되었다. 홍동면에는 현재 전국에서 면 단위로는 유일하게 출판사가 있어 책을 펴내고, 민립(民立) 밝맑도서관을 세워 농촌에 인문학 향기를 전파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 서두르는 협동조합이란 사업도 이 지역에서는 이미 55년 전 풀무학교를 세울 때 설립해서 운영해온 오래된 메뉴다. 문당리 신협에서 판매하는 빵과 과자를 먹어본 필자는 일주일 내내 기뻤다. 정직한 사람들이 유기농 쌀로 음식을 만들 때 어떤 맛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경남 거창군의 김선봉 교장선생님. 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아들놈을 거창고등학교에 맡기고 싶어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단박에 그 진실과 소박함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외모. 인사를 드리기 쑥스러워 그냥 학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강당에 이르러 가슴이 뛰었다. 아주 오래된 글씨였는데,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거기 걸려 있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웬만한 학교에서는 수험생들에게 예체능 수업도 시키지 않는 요즘, 그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이 봄가을로 예술제를 일주일 동안 연다. 합창, 연극, 체육대회로 일주일 내내 신명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주말에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여 가보았을 때 운동장에는 선생님은 안 계시고 학생들뿐이었다. 운동 경기도 학생이 심판을 보고, 학생이 시상을 하는 학교였다. 집안에 사정이 생겨 아들놈을 서울의 집 옆으로 전학시키고 싶다고 죄인처럼 말씀드리러 갔을 때 저만치에서 모른 체 서운해하시던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강원 화천군의 토고미마을 한상렬 위원장. 일찍이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을 깨달은 그가 농촌의 시골마을로 가게 된 사연은 남다르다. 시내 농협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던 한 위원장은 1996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망 중 시골로 들어간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 자신이 희망을 찾은 것처럼 농촌마을에도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 마을 주민 세 명과 환경농업 작목반을 구성했다. 

당시 1ha로 시작한 무농약 오리쌀 재배는 이제 25ha로 확대되었고, 전국에 토고미가족 회원이 4만 명 생겨났다. 토고미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오리쌀은 토고미가족들의 주문을 충당하기도 바쁘고, 1년이면 2만 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온다. 초창기 마을에서 외면당하던 한 위원장은 이제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꾼으로 인정받는다. 십여 년에 걸친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한 원천을 묻는 내게 한 위원장은 신앙을 꼽았다. “요즘 같은 이익추구 사회에서 누가 힘든 일을 하겠습니까. 자신들 좋게 해주려는 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모세처럼 일하는 거지요” 하며 그는 웃었다. 

충북 단양군 한드미마을의 정문찬 이장. 1998년 그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품었던 꿈은 친환경 생태마을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네에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우렁이농법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빈집이 수두룩하던 동네에 지금은 귀농이 이어져 47가구가 모여 사는 윤기 있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곳도 1년이면 3만 명의 방문객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2005년에는 소문을 듣고 대통령이 찾아왔다. 세 시간여 마을에 머물던 대통령은 마을 사람들과 고구마 순을 심고, 율무 씨앗도 뿌렸다.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고, 또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싶은 마음을 주민들이 작은 돌에 새겨 놓았다. ‘풀벌레 노래와 한 방울 물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국민의 대통령.’ 

이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 사회에 청량한 노래 한 편 들려주는 시인, 그리고 이 땅을 화폭 삼아 빛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세상이 시끄럽고 혼탁해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얼굴들이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거창고등학교 강당에 걸린 직업 선택의 10계명

 

제1계명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제2계명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제3계명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제4계명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제5계명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제6계명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제7계명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제8계명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제9계명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제10계명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에 '거창'한 건 없습니다" 김선봉 거창고 교장
58년 역사 명문…"신앙, 정신교육, 그다음이 지식이죠"
 
 
 
김선봉(58) 교장은 거창고 10계명을 이해하기에 앞서 지금의 명문 거창고가 있기까지 저변에 흐르고 있는 가치관 교육을 강조했다.

김 교장은 3가지를 소개했다. 먼저 신앙 및 정신교육, 다음은 지식교육, 그리고 마지막이 정서교육.

이 3가지는 전인교육의 밑바탕에 흐르는 정신이 되었으며,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기보다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거창고에서 3년 동안 공부하고 나면 적어도 이 정신은 나도 모르게 몸에배게 된다고 했다.

김 교장은 또 ‘서울대 몇 명 보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는 우리 교육의 관행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서울대 가는 것이 학교 평가의 절대 기준이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공부도 운동이나 다른 특기처럼 하나님이 준 재능(달란트)입니다. 재능만 믿고 거드름을 피우는 우수 학생보다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풍토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사실 김 교장의 이런 교육 철학은 지금의 교육 현실과 배치돼 몇몇 학부모들과 때론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하지만 거창고는 김 교장이 선봉에 서고, 교사·학생들이 자율과 책임 하에 올곧게 교육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거창고는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인 경남 거창읍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학년당 4학급씩 12학급, 학생 수는 360명 정도며 이 중 320여 명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자율과 책임의 명문고로 유명하다.



조직은 어려울때 조직의 역량이 들어나고 구성원의 자부심이 높아진다. 누구나 현실의 어려움을 알지만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따라 리더의 리더십은 평가된다.  제대로 된 리더십은 영속된 기업문화를 만들고, 애사심을 생성시키게 된다. 프라이드란 그런 과정들을 경험한 구성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발전된다.


꽤 많은 조직에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1) 조직의 역량과 관계없는 과도한 목표(실상 실현 불가능한 목표지만, 경영진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무조건 높은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되어야 한다고 구성원을 압박한다.)

 2)  인원 구조조정(실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고, 비용 중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람을 짜르는 것이다),

 3)  끊임없는 경쟁사 벤치마킹 (우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살펴보는게 아니라,  잘하는 조직의 성공사례만 추구하다. 내 잘못을 들쳐 내는것에 대한 공포 같은것이 작용한다)

그러다 보면 업무보다는 보고가 많아진다. (리더들은 끊임없이 회의를 한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그저 회의만 한다.), 그리고 경영진과 구성원은 서로를 안믿게 된다 (공식 석상이나 회의, 보고시에 서로를 믿지 않는 다는 것을 채감한다). 

조직에 대한 프라이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약해지고 퇴색해지게 된다. 조직은 그렇게 무너져 가게 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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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 한화證 직원 "직원은 박지성이 아니다"

사내 인트라넷에 쓴소리 "삭감되는 급여, 떠나는 직원…희망이 없다"

  • 머니투데이 오정은 기자 |입력 : 2013.01.30 10:34|조회 : 2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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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으로 증권가가 어려운 가운데 한화투자증권 (4,215원 상승15 -0.3%)을 떠나는 한 직원이 사내 인트라넷에 회사에 고하는 직언을 올렸다. 이 직원은 한화투자증권의 △희망퇴직 △과도한 영업목표 △사고에 책임지지 않는 자세 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3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경북의 한 지점에 근무하는 K대리는 인트라넷에 회사를 떠나는 글을 올리며 "마지막 출근일인 오늘 회사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시원함이 앞선다"고 말문을 뗐다. 

그는 "2007년 증시 활황장 끝에 입사한 당시 한화증권은 신용과 의리로 똘똘 뭉쳐 힘든 일은 이겨냈다"며 "이제는 그런 분위기는 사라지고 서로 살아남기 위한 힘든 모습만 남았다"고 말했다. 

K대리는 "260명의 자식을 떠나보내며 위로의 말 한마디 없는 회사, 260명의 자식이 나갔지만 임원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고 직언하며 "부양할 윗 사람은 많은데 아랫사람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자식인 저는 가출을 결심했다"고 적었다. 

2010년 한화증권은 푸르덴셜투자증권을 인수했고, 지난해 금융위원회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아 통합 한화투자증권으로 출범했다. 합병 과정에서 약 2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진통을 겪었다. 

글쓴이는 "우리 회사는 캠페인으로 고객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고객과의 약속을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는 캠페인이 계속됐다"며 "직원도 고객인데 과연 우리가 다른 곳에서 한화투자증권과 거래해보라고 자신 있게 권할 수 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이어 "금융은 신뢰로부터 시작된다고 배웠다"며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그 직원들의 가족이 한화투자증권과 거래를 할 수 있는 그런 회사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적에 대한 압박도 지나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원들의 상반기 실적 목표 배분액은 어마어마하다"며 "그걸 달성해도 회사는 적자라고 지적하는데 마른 행주도 계속 쥐어짜면 찢어진다, 직원은 무한체력 박지성이 아니다"고 말했다. 

2010년 금광기업 기업어음(CP) 부도 사태를 회고하며 "당시 회사는 엄청난 영업 드라이브를 걸었다"며 "하지만 정작 사고가 터졌을 때 직원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없었던 곳이 회사인데 직원이 어떻게 회사를 믿고 영업을 하겠는가"며 탄식했다. 

지난 2010년 1월 한화증권은 그 해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금광기업 CP를 신탁고객 대상으로 약 200억원 어치 판매해 홍역을 치렀다. 

창의성은 없고 획일화돼 가는 회사 정책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계속되는 대형사의 벤치마킹 실험, 실패에도 불구하고 피드백도 없이 계속되는 모방, 일은 뒷전이고 밤낮으로 계속되는 보고서 쓰기가 영업을 저해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K대리는 회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몇 년 뒤에 한화투자증권의 모든 직원들이 'K라는 건방진 놈이 있었는데 지금쯤 회사 그만둔 걸 후회할 거다'고 말하게 해달라"며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에 이 글을 남긴다"고 끝을 맺었다. 

K대리는 현재 퇴사 직전에 쓰는 장기휴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K대리가 인트라넷에 올린 글은 10분 만에 500클릭을 돌파하는 등 사내에서 광범위하게 읽혔다.


JYP-YG의 라이벌에 대한 좋은 글..

읽을 만한 내용이다. --> Pride는 자신에게서 나오는건가? 리더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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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오른쪽 사진) 와이지 사장과 박진영(왼쪽) 제이와이피 프로듀서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박진영은 영어를 잘한다. SBS TV <일요일이 좋다>의 ‘K팝스타’에서 영어권 출연자들에게 영어로 심사평을 할 정도다. 그때 박진영 옆에 앉은 양현석은 한국어로 심사했다. “박진영씨만큼 영어를 못 해서”라는 이유다. 하지만 10여 년 전, 양현석의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수석 프로듀서 페리는 미국인이었다. 양현석은 그와 영어로 대화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진영은 직접 미국으로 갔다. 미국 음악시장 관계자들에게 영어로 자신의 곡을 사달라고 설득했고, JYP 미국 지사를 세워 미국 음악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에 나섰다. 영어에 신중한 양현석은 소속 가수 세븐의 미국 진출 실패 후 미국에 가지 않았다. 대신 유튜브의 YG채널로 소속 가수들의 국내 활동을 퍼뜨렸다. 영어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가 지금 미국에서 원더걸스를 실패시키고, 싸이를 성공시켰을 리 없다. 다만 박진영은 JYP 소속 가수의 히트곡을 대부분 작곡한다. 그 곡들 중 대다수는 앞 부분에 박진영이 녹음한 “Yo JYP!”라는 말이 들어간다. 원더걸스의 ‘Tell me’는 직접 안무도 짰다. 자신의 영어를 믿고 아무 기반도 없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던 박진영의 자신감은, 그가 JYP를 끌고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반면 양현석은 YG에서 영어처럼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싸이의 전세계적인 성공에 놀랐지만, ‘강남 스타일’의 믹싱 엔지니어가 양현석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그는 오래전부터 YG에서 나오는 모든 음원의 사운드를 최종적으로 조율했지만,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을 싣는 것 외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양현석이 YG의 첫 번째 성공작인 지누션의 ‘가솔린’을 작곡한 것 역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원하는 곡을 써줄 만한 마땅한 작곡가를 찾지 못한 양현석은 2년 동안 작곡을 배워 ‘가솔린’을 만들었다. 자신보다 더 좋은 곡을 훨씬 빨리 쓸 수 있다는 페리가 들어온 후에는 작곡에서 손을 떼고 페리의 곡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사정이 어렵던 초창기 YG의 수익을 위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그가 직접 나설 필요가 있어서다. 이후 사업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클럽 사업에 나섰고, 대중의 감을 익히려고 시간 나는 대로 클럽에서 디제잉을 한다. 그가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는 것도 “회사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이유다.

꼼꼼한 조력- 나홀로 대결

박진영은 JYP를 통해 영어로, 작곡으로, 춤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왔다. 양현석은 YG가 필요하면 영어를, 작곡을, 엔지니어링을 배웠다. ‘K팝스타’는 그들이 얼마나 다른 종류의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박진영이 ‘중음밖에 없다’고 비판한 출연자에 대해 양현석은 ‘느낌은 좋다’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박진영이 ‘공기 반 소리 반’, ‘말하듯이 불러라’, ‘찍고 날려라’처럼 노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면, 양현석은 ‘말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감동적’이라거나 ‘매력적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곡으로 JYP를 일으키고 미국에 진출한 박진영에게 가수는 그의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해줄 조건을 갖춰야 한다. 양현석은 프로듀서 테디부터 싸이, 타블로, 지드래곤에 이르기까지 싱어송라이터들의 사운드를 조율했다. 그는 타고난 테크닉 대신 타고난 개성을 가진 사람을 캐스팅한다. 빅뱅 멤버 지드래곤·태양·탑·승리·대성 사이의 공통점은 양현석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하나뿐이다. 박진영이 초등학생이던 조권에게 ‘말하듯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는 동안, 양현석은 13살의 지드래곤에게 매주 작곡을 하도록 만들었다. 박진영은 원하는 가수를 찾아낸다. 양현석은 뭐가 됐든 자신이 끌리는 사람을 뽑아 능력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실질적 시작점인 서태지, 그리고 2000년대 K팝의 최종병기가 된 싸이 옆에 모두 양현석이 있었던 것은 절반은 우연이지만 절반은 필연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핵심은 당연히 서태지였다. 하지만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세 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제안했고, 카세트 레코더로 ‘난 알아요, 요 요!’ 같은 부분을 직접 만들었으며, ‘컴백홈’을 부를 때는 의상과 안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싸이의 전작들과는 다른 ‘강남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양현석이 조율하는 YG 특유의 사운드이다. 그리고 흥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뮤직비디오는 YG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거의 전속으로 연출하는 조수현 감독의 작품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뮤지션 양현석은 춤, 노래, 작곡, 디제잉 어느 하나 일등이 아니었다. 하지만 춤, 노래, 작곡, 디제잉, 엔지니어링을 배운 사업가 양현석은 서태지부터 싸이까지 자기 세계를 가진 뮤지션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YG 이하이에게 곡 써준 박진영

박진영
박진영이 흥미로운 인물인 것은, 그가 혼자서 서태지와 양현석의 영역을 동시에 하려는 것은 물론 자신이 그것을 매우 즐기는 데 있다.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박진영은 미국의 대형 의류업체에서 원더걸스의 싱글 CD를 판매하도록 설득했다. 이 계약은 원더걸스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원더걸스, 미스A, 2PM의 장우영 솔로 앨범이 계속 나온 2012년에 그는 솔로 가수로 활동했고, 영화 <오백만불 사나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성공하면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가수이며 사업가다. 실패하면 일에 집중하지 않은 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 무모하고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데뷔 때, 그는 주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속옷이 비치는 비닐 바지라도 입어서 자신의 외모를 개성으로 연출했다. 성에 대한 발언으로 비호감의 대상이 되자 책까지 쓰며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키려 했다. 자신에 대한 악플을 저장해놓고 읽으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남자다. 박진영은 20대 후반 회사를 차려 god, 박지윤, 비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박진영에게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승률은 꽤 높았다. 박진영이 JYP에 ‘K팝스타’ 우승자 박지민이 있는데도 YG 소속의 준우승자 이하이에게 노래를 준 것은 박진영과 양현석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세상과 혼자 싸우는 박진영은 박지민이든 이하이이든 어울리는 가수에게 자신의 곡을 줄 수 있다. 그에 따른 찬사와 비난도 그의 몫이다.

반면 양현석은 YG 소속 뮤지션의 곡을 YG 이외의 가수에게 주는 일은 거의 없다. YG가 외부 프로듀싱한다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다. 자신의 역할을 YG의 필요한 부분을 처리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에게는 회사 내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페리를 스카우트해서 YG의 곡만 쓰게 하던 시절부터, YG는 아웃소싱 개념이 거의 없는 회사였다. 소속 프로듀서들은 YG만을 위한 곡을 쓰고, 코디네이터와 뮤직비디오 감독은 물론 영상 편집과 재킷 디자인까지 모두 전속 개념으로 일한다. 새로 지은 YG 사옥은 양현석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17개 팀의 프로듀서들이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는 많은 스튜디오가 있고, 지하에는 YG 스태프만을 위한 음식을 하는 전속 요리사가 있다. 양현석이 YG 소속 가수들을 ‘YG 패밀리’로 규정함은 끈끈한 유대감을 강조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패밀리처럼 서로 그들만을 위해 일하며 콘텐츠의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 YG의 경쟁력이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고, 경쟁력을 갖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돌 테디가 한국의 대표적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데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YG가 가요계 전체를 장악할 만큼 메가 히트를 기록한 것도 2007년 빅뱅의 ‘거짓말’이 처음이었다. 그 사이 YG는 그들의 바깥 세상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폐쇄적’ 비난받는 YG

양현석 사장
양현석과 박진영, 둘 중 누가 더 옳고 더 뛰어난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언제나 자기 방식으로 세상과 싸웠고, 승리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박진영이 더 크게 이겼고, 지금은 양현석이 자신의 시대를 열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함께 한국 음악산업의 ‘3강’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단지 회사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이 데뷔한 1990년대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 한 곡이 음악산업 전체를 흔들고, 제작 시스템은 아직 마련되지 않던 때다. 상업적 성공만이라면 티아라의 제작자 김광수가 박진영과 양현석보다 더 성공한 때도 있다. 하지만 김광수가 기존 가수 매니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펼쳐나갔다면, 가수이자 프로듀서였던 양현석과 박진영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회사 경영에 투영했다. 세 사람의 삶 방식이 곧 SM과 YG와 JYP가 움직이는 방식이고, 세 사람의 개성과 역할은 경영자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넘어 회사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일부다.

최근 양현석의 행보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 개인과 시스템의 결합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YG 가수들은 활동 시기에 주로 SBS TV <인기가요>에만 출연한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신 한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빅뱅의 음원 서비스는 네이버와 독점에 가까운 계약을 통해 대형 프로모션으로 진행했고, 앨범 재킷의 콘셉트는 현대카드와 함께 기획했으며, 공연은 삼성전자의 단독 후원을 받는다. 2013년에는 제일모직과 함께 YG 뮤지션들이 디자인에 참여하는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보통 다른 기획사들은 인기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가수를 여러 미디어에 노출시켜 홍보하며, 성공하면 많은 CF를 찍어서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YG는 소속 뮤지션들로만 곡을 만들고, 특정 미디어를 통해 활동하며, 성공해도 특정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하면서 돈을 번다. 양현석은 ‘잘하는 선수끼리 한다던 작업 방식을 YG 내부를 넘어 바깥 수익구조까지 확장한 셈이다. 양현석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읽지 않았지만, “내게 아이폰이라는 멋진 물건을 쥐어줬기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가 거둔 성과를 스티브 잡스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외부에 배타적인 태도로 일하며 콘텐츠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고, 콘텐츠에 대해 실무자들과 디테일한 영역까지 상의하며, 콘텐츠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독자적 수익구조를 설계하는 양현석의 경영 방식은 스티브 잡스와 닮아 있다.

싸이는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 빅뱅 공연은 미국에서만 4만8천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 잡지 <롤링스톤>은 지드래곤의 솔로 곡 ‘크래용’을 리뷰했다. 그러나 지금 YG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건은 양현석이 자신의 방식을 YG 바깥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양현석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YG였다면, 2012년의 양현석은 YG 바깥에서도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기 시작했다. 박진영이 자신의 음악을 증명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아티스트라면, 양현석은 사업을 위해 음악을 공부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2012년의 양현석은 마치 아티스트처럼 사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표현했다. YG를 만든 지 15년 만에 양현석은 자신의 사업을 다른 차원으로 진화시켰다.

뒤집힌 승부, 이어지는 대결

양현석의 현재는 박진영의 숙제이기도 하다. 2000년대의 대중음악은 점점 더 한 명의 작곡가나 프로듀서 대신 제작사의 시스템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 ‘K팝스타’ 자체가 SM-YG-JYP가 만들어낸 제작 시스템이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싸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양현석의 방식은 제작부터 수익구조까지 자신의 생각이 관철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자신이 곧 JYP의 시스템인 박진영은 궁극적으로 언제나 혼자 싸울 수밖에 없다. 2012년의 그는 자신의 방식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큰 히트곡을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노력으로 나름의 성과를 거두던 미국 진출은 싸이의 성공으로 폄훼됐으며, 가수와 배우의 활동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자신의 방식을 바꾸거나, 초인이 돼야 한다. 박진영은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감나무 밑에 있는 사진을 올리며 “떨어진 (작곡)감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때로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승부처는 여전히 좋은 곡을 쓰고, 좋은 노래를 불러서 세상을 뒤엎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과거 god를 성공시킨 것처럼, 원더걸스를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르게 한 것처럼. 박진영이 이번에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는 지금과 전혀 다른 폭과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서태지부터 싸이까지, 언제나 뛰어난 사람들을 돕던 조용한 조력자. god부터 미스A까지 자신의 노래를 다른 이에게 부르게 한 화려한 초인. 그들 중 결국 세상에 자신의 방식을 인정받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은 양현석이 한 발 정도 앞서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박진영이 본다면 저장해놓고 이 글이 헛소리였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겠지.

강명석 | <텐아시아> 편집장


개인에게 자부심이란.. 일종의 브랜드에 대한 아이덴티티로 연결되곤하낟.

그중 특별한 것이 CEO의 능력과 역량 그리고 브랜드가치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YG엔터에는 양현석이라는 Owner의 존재가치가 뚜렷하다.

왜.. 그들에게 다른 여타 엔터테인먼트보다 경쟁력이 있는 걸까? 역시 CEO에 대한 자부심이다.
종종 YG멤버들이 이야기 하는 CEO에 대한 견해를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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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빅뱅, 2NE1 등 소속사 가수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현석 대표(왼쪽에서 여섯째). <사진 제공=YG엔터테인먼트>

지난 한 해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44)는 온 국민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가 1996년 설립한 YG(당시 현기획)는 설립 이래 그 어떤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이루지 못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메가히트를 치면서 하반기에만 80억원을 벌어들였다. 1년 전만 해도 3만원이던 주가는 한때 10만원까지 치솟았고, 양 대표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을 누르고 연예인 최고 부자(약 2195억원)로 등극했다. 

한 해를 화려하게 장식한 양현석 대표를 지난달 27일 서울 합정동 YG 사옥에서 만났다. 초면인 사람과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그는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번뜩이는 비유로 상대방을 매료시켰다. 그는 "성격상 책을 읽지 못한다. 오히려 공중화장실의 간단한 표어에서도 배우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춤바람이 나고 노는 데 빠지면서 많은 경험을 했는데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어서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싸이의 성공은 `대박`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요즘 기분이 어떤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전 세계가 예측을 못했을 것이다. 콘텐츠가 가진 위력이 어떤 산업보다 막강하다는 걸 실감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유명한 기업도 하지 못한 일을 단기간에 해냈다. 만약 `강남스타일`을 홍보했으면 수천억 원이 들었을 거다. 그 일을 싸이는 노래 한곡으로 해냈다." 

-싸이, 빅뱅, 이하이 등 YG 모든 아티스트의 활약이 눈부셨다. YG가 잘된 비결은 무엇인가. 

"지금은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모든 시장이 글로벌화돼 있다. 한국에서 일등하겠다고 만들면 성공할 수 없다. 지난해 아이돌이 60여 팀 나왔다고 하는데 한 팀도 성공하지 못했다. 국내를 목표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눈높이가 높지 않은데 어떻게 최고를 만들겠나. 우리는 1990년대부터 세계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외국 아티스트 눈높이로 음악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트렌드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절대 그들이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반면 아이돌 그룹은 주춤했다. 일각에선 K팝 위기론도 나온다 

"한 거리에 커피숍이 즐비하게 서있다. 거기서 커피숍 열면 100% 망한다. 나라면 그곳에 밥집을 낸다. 아이돌이 실패한 이유도 같다. 비슷한 그룹이 너무 많다. 아이돌 시장이 붕괴된 게 아니라 차별화된 아이돌이 안 나온 거다. 금방 커피 마셨는데 또 커피 마시라면 누가 마시겠는가." 

-`포스트 싸이`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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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성공은 K팝 때문이 아니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 K팝 붐이 일어나느냐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람들은 싸이의 성공을 우연이라고 보지만 이 세상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싸이가 성공한 것은 미국에 그런 가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셔와 똑같이 따라한 가수가 나가면 실패한다. 분명하게도 YG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싸이처럼 대박 터뜨린 사람은 한 번 더 만들어낼 수 있다. 빅뱅도 기대된다. 빅뱅과 같은 그룹은 해외에 없다. 훌륭한 외모에 큰 키는 아니지만 본인들이 작사ㆍ작곡하는 아이돌은 드물다." 

-2007년 세븐의 미국 진출은 성과가 없었다. 

"막막했다. 미국은 뜬구름 같은 시장이었다. 가요계엔 너무나 커다란 문이었다. 우리는 저게 왜 안 열릴까 하면서 도끼로 찍어보고 달걀도 던져본 것이다. 원더걸스나 보아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될 거라고 진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뭘로 두들길까 고민하던 시장이 싸이로 인해서 저절로 열렸다. 밖에서 열려고 했을 때는 대답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에서 스스로 열었다." 

-지난해 미국 뉴욕에 YG USA가 문을 열었고, 홍콩에 아시아 지국도 열었다. 

"홍콩, 미국에 직원 10명 정도의 사무실을 열었다. 1999년 베이비복스를 비롯해 많은 기획사가 중국 진출을 했지만 그때 나는 중국을 내다보지 않았다. 중국은 불법 콘텐츠도 많고 (수익성을 내기에) 이르다고 판단했다. YG처럼 해외 진출에 신경 안 쓴 회사도 없다. 그런데 이제는 무르익었다. 낚싯대를 넣으니 꿈틀대는 것 같다. 사공의 입장에서 입질이 왔다. " 

-대성, GD(지드래곤), 씨엘 등 기존 아이돌과는 다른 개성 강하고 실력 있는 멤버들이 많다. `YG는 얼굴을 안 본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외모보다 매력을 본다. 처음 대성이를 봤을 때 날 이렇게 웃게 하는데 대중도 똑같은 사람이니까 좋아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일차원적인 직감이었다. YG에 이쁘고 잘생긴 친구들이 많이 온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별로면 쓰지 않는다. 내가 봐도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떨어지는데 대중은 오죽하겠는가. 빅뱅, 투애니원이 대단한 것은 양파처럼 까도까도 나오는 매력이 있어서다. 굉장한 경쟁력이다. 또 예쁘고 잘생긴 애들은 대체적으로 노력을 안 한다. 나도 잘생기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대성은 교통사고, GD는 대마초 사건에 연루됐지만 빅뱅은 재기에 성공했다. 싸이는 병역 비리, 타블로는 학력 위조 논란으로 힘든 일을 겪었지만 YG에서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소속 가수들이 `오뚝이`처럼 재기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당시 대성은 본인한테도 닥친 불행이니까 혼내지 않았다. GD는 독하게 혼을 냈다. 다독일 때도 왜 그것이 잘못됐는지 꼬집어서 얘기해서 진심으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람이 매일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다. 그걸 계기로 빅뱅은 단단하게 뭉칠 수 있었다. 저한테는 빅뱅을 더욱 성공시키겠다고 각오를 다진 계기가 됐다. 싸이나 타블로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려운 일 겪은 친구들을 좋아한다. 그 시련을 이기면 음악에서 크게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의 장단점 중에 장점을 끌어내는 걸 잘하는 것 같다.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면 된다. 나는 그 사람이 실수했다고 장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아티스트를 아낌없이 지원하기로 유명하다. 

"2011년 합정동 사옥(80억원으로 추정)을 살 때 개인 재산을 털었다. 빚을 내서 연습실, 스튜디오, 식당을 만들었다. 다른 회사에 보여주고 싶었다. 돈을 버는 데 신경을 쓰지 말고 소속 가수들이 작업하는 환경에 신경을 쓰라고.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벌써 포화상태여서 지금은 빌딩 3곳을 더 내 스튜디오와 연습실로 쓰고 있다. 2~3년 안에 그 모든 장소를 하나로 모으겠다. 아티스트들의 동선을 효율화하기 위해서다." 

-연예인 최고 부자라고 한다. 기분 어떤가 

"남들이 2000억 부자라고 한다. 생각해보자. 삶에서 보람된 일이 뭘까. 재산이 2조원이 있으면 만족할까. 그렇지 않다.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음악을 하지 않았다. 90년대 힙합이 뿌리내리지 않았을 때도 지누션과 원타임을 만들었다. 당시 힙합은 돈이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어서 대중과 나누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즐겁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지 억지로 돈을 벌려고 앨범을 낸 적은 없다. " 

-2013년 YG의 목표는 무엇인가. 

"YG가 3대 기획사 중에서 신인을 제일 안 낸다. 그만큼 신중하다. 그냥 막 이것도 저것도 만드는 게 아니고 한 가지에 집중해왔다. 올해 새 걸그룹이 나오는 데 투애니원 이후 5년 만이다. 보이그룹은 빅뱅 이후 7년 만이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양현석으로 인해 음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편해질 수 있느냐를 항상 생각한다. 내 재산을 세상에 환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보다 현재 콘텐츠를 만들면서 세상을 유익하게 만들고 싶다. 그 첫번째가 YG를 글로벌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 He is… 

양현석은 서울 중동중 시절 흑인 음악에 심취하며 댄서의 길에 들어선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 `난 알아요` `컴백홈` 등을 히트시킨다. 

1996년 그룹 해체 후 제작자로 변신해 현기획을 설립한다.
 

세븐, 렉시, 휘성 등 인기 가수를 꾸준히 배출한 그는 2006년 빅뱅의 성공 이후 연예계의 `큰손`으로 부상한다. 2011년 YG를 상장한 후 현재 연간 매출액 1000억원을 내다보고 시가총액이 6000억원이 넘는 회사로 키웠다. 좌우명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자`. 가수 이은주와 9년간 열애 끝에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이선희 기자] 


프라이드 - 이곳을 사랑하는가?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제품을 사랑하는가?

티파니에서의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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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것부터 명품까지 모두 성공시킨 럭셔리의 민주주의
저렴한 상품에도 최고 디자인 적용 멀티 스펙트럼 전략 
'블루 박스' 선물 포장 설렘의 아이콘 돼
"시장과 타협 않고 업계와 반대로 행동하는 전략. 장기적으로 보면 불황 타파에 효과적"
뉴욕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로 만들어
화려함·즐거움·창의성 녹아 있는 제품들
고객이 얼마의 돈을 쓰느냐와 상관없이 디자인의 진가 느낄 수 있도록 제작
다양한 가격대 제품으로 25년간 흑자 행진
소득 양극화 심해진 상황에선 최상위 제품군 호조
합리적 가격대 제품으론 '티파니 드림' 확산시켜 
중산층 자신감 회복하면 더 큰 비즈니스 기회 열려

175년의 역사, 불굴의 장인정신,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욕망의 결정체…. 명품 보석·시계 브랜드인 티파니(Tiffany)는 이런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힘들다. 고가(高價) 브랜드의 대명사이면서 뉴욕 증시에서 코카콜라·월마트·애플·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더불어 미국 소비 흐름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기 때문이다.

티파니의 매출 실적 등에 따라 '본격 소비 시즌이 시작됐다'거나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같은 진단이 내려진다. 주가·고용·소비지수 같은 공식 지표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실물 경제를 비추는 '미국 소비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1837년 뉴욕의 한 팬시 문구점으로 출발해 지난해 36억8000만달러(약 3조97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샤넬(18억6000만유로·약 2조7000억원·2010년 매출액)을 압도하는 글로벌 명품 거인인 티파니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결은 수십억원대의 초고가 보석부터 중저가 은(銀) 제품까지 폭넓은 상품 가격대를 구축·판매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티파니는 명품 보석 브랜드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10만원대의 은 목걸이 같은 저가 제품을 여럿 갖고 있다.

저가와 고가품을 동시에 공략하는 '멀티 스펙트럼 전략'은 1999년부터 수장(首長)을 맡고 있는 마이클 코왈스키(Michael Kowalski·60) 회장 겸 CEO의 작품이다.

Weekly BIZ는 이달 3일 뉴욕시 맨해튼 23번가에 있는 티파니앤코(Tiffany & Co) 14층 접견실에서 코왈스키 회장을 만났다. 1983년 티파니에 입사한 그는 CEO 취임 후 IT 버블 붕괴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매년 흑자 행진을 할 뿐 아니라 까르티에·몽블랑·반 클리프 아펠 같은 유명 브랜드들을 보유한 스위스 명품그룹인 리치몬트(Richemont)에 이어 세계 보석·시계 업계 시장 점유율 2위로 티파니를 키운 '마술 경영'의 주인공이다.

지난해에만 월급·스톡옵션 등을 포함해 898만달러(약 97억원)의 총보수를 받은 세계 보석업계의 최고 CEO인 그의 첫인상은 럭셔리 브랜드 CEO라기보다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손목시계와 소매단추(cuff links)를 제외하면 일절 장신구조차 하지 않고 있고, 구두와 넥타이 등도 명품과 거리가 먼 평범한 제품이었다.

산호 채굴 금지 같은 자연보호 운동과 생태계 보전 관련 환경 단체의 열성 회원이라고 밝힌 코왈스키 회장은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디자이너이다. 자연에서 발견한 클래식한 모양들에서 디자인의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했다.

그는 특히 총매출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은 세공품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은 제품은 럭셔리에 대한 티파니의 민주적인 시각을 상징합니다. 장인 정신으로 아름답게 세공된 은 제품은 고급 다이아몬드 제품 못지않은 가치를 담고 있어요."

이런 자신감은 그가 강력 추진하고 있는 '디자인 중심(design driven) 정책'에서 유래한다. 코왈스키 회장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영입한 다음 그들에게 먼저 '은' 제품을 만들어줄 것을 주문한다. 대다수 보석 디자이너들이 초고가 원석을 다루며 솜씨를 뽐낼 때 티파니는 거꾸로 저렴한 상품에 최고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다.

'하트 목걸이(러빙 하트), 티어 드롭(눈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모양), X자 모양 펜던트, 열쇠 디자인 펜던트…' 등 티파니 하면 떠오르는 제품은 모두 은제품으로 제작돼 있다.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제품도 있지만 디자인은 모두 공유한다. "실버는 매우 훌륭하고 럭셔리한 금속 소재입니다. 합리적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티파니 드림'을 가진 고객들의 열망을 만족시키려 합니다."

코왈스키 회장은 1시간여 동안 인터뷰 내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차분하게 말했다. "티파니는 화려함, 즐거움, 창의성,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뉴욕 하면 떠올리는 모든 것과 상통합니다."

그는 수치 등 정확한 대답이 필요할 때에는 배석한 마크 애런 IR(기업설명)담당 부회장에게 반드시 확인했다. 그가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들뜬 목소리로 답한 순간은 티파니의 푸른색 선물 포장 상자인 '블루박스(blue box)' 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블루박스'가 여성 고객에게 주는 설렘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선물을 받는 사람처럼 들떠 있었다.

마이클 코왈스키 회장은 럭셔리 업계에서 보기 드문 장수(長壽) CEO다. 1983년 티파니에 입사한 그는 고속승진해 1999년 CEO에 취임했고 2002년부터는 회장을 겸하고 있다. 21년간 루이비통을 이끈 이브 카셀을 제외하고 글로벌 명품 업계에서 10년 이상 장수한 CEO는 코왈스키 회장이 유일하다. 길어야 5년 정도 CEO로 일하는 업계 관행에 견줘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1987년 티파니의 뉴욕 증시 상장을 주도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이후 25년 동안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는 '내실 경영'이다. 코왈스키 회장은 "적절하게 공격적이었으나 무모한 적은 없었다"며 '중용(中庸)'을 키워드로 꼽았다. 그는 "좋은 성과를 달성하려면 장기적 안목과 강점에 대한 집중력, 강력한 비전 이 세 박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안경 뒤로 보이는 그의 눈매는 매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중심가인 5번가에 자리한 티파니 플랙십 스토어를 찾은 고객(가운데)이 점원(왼쪽)의 안내를 받으며 보석을 쇼핑하고 있다. / 블룸버그
보석 업계의 '루스벨트'. "반대를 반대하라"

―최근 같은 극심한 글로벌 불황에서도 흑자를 내는 비결이 궁금하다.

"항상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다른 분야로 비즈니스가 분산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어느 한 부분의 매출이 좋다고 해서 시장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장과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시장을 '주도'할 전략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행한다."

―매출 증대는 CEO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 아닌가. 매출을 포기하고라도 시장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어떻게 성장하느냐다. 어떤 브랜드 이미지와 인식을 주는가가 더 중요하다. 최근 30년간 티파니의 매장은 더 화려해졌고, 디자인은 훨씬 개선됐다. 우리의 목표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다. 단기적인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

'반대에 반대하는'(long term recession-busting strategy·티파니의 독특한 장기적 불황 타파 전략으로 업계 행태와 반대로 가는 것) 그의 결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회장 선임 직후 단행한 '가격 재조정'이다. 1999년 CEO를 맡은 후 그는 티파니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한 '리턴 투 티파니(Return to Tiffany·명품 브랜드 '로고'처럼 단번에 티파니 제품임을 알 수 있도록 제품 앞면에 '티파니' 글자를 새긴 것)' 제품들을 내놓았다.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불린 이 제품은 1997년 7280만달러에서 5년 만에 1억8990만달러로 매출이 67% 정도 늘었다. 이렇게 잘나가는 시점에서 그는 매장과 디자인을 리뉴얼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 있는 일부'초저가' 제품 판매를 중단시켰다. 매출 증대보다도 '10대(代)용 브랜드'로 전락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전략은 얼마나 효과적이었나? 반대도 상당했을 텐데.

"직원과 고객에게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시도한 일들에 대해 업계에선 의혹과 우려, 반대도 했지만 결국 우리가 옳았다는 게 증명됐다. 가격 재조정 정책 실시 후 팔로마 피카소 라인(2005년), 프랭크 게리 라인(2006년) 등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고급 이미지를 굳혔다. 요즘 같은 소득 양극화 시대에 매출의 견인차는 이런 고급라인이다. 우리는 '저가'와 '고가' 양 부문에서 티파니만의 독보적 위치를 구축했다. 또 제품 제조를 모두 인하우스(in house·내부 제조)로 대체하겠다는 정책을 10년 전에 내놓고 이를 실행했다. 20년 전, 티파니의 자체 제품 제작 비율은 약 20%였으나 지금은 70%에 이른다."

이런 '뚝심 경영'으로 인해 그는 '보석 업계의 루스벨트'로 불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6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연설에서 "미국 역사에서 한 사람(루스벨트 자신)을 반대하는 힘이 이토록 결집된 적은 없었다. 나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한다"고 외쳤던 장면과 코왈스키 회장을 동일한 선상에 두는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에서 탈출했듯, 코왈스키 회장 역시 과감한 재투자와 장기적인 브랜드 관리로 탁월한 위기 대응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의 '장기적 관점'은 불황 때 특히 유효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으로 경영을 긴급 긴축해야 했을 때, 자체 생산 덕분에 분량을 탄력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경쟁 브랜드들은 매년 가장 큰 수익을 내는 추수감사절 시즌에 '재고 세일' '눈물의 세일'을 하며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

"가격의 민주화, 제품의 과학화, 디자인의 자기(自己)화를 구축하라"

―세계 5대 보석 브랜드 가운데 티파니를 제외하면 모두 프랑스 브랜드다.

"티파니는 사실 하나의 브랜드이자 뉴욕을 상징한다. 제품 품질도 뛰어나지만 화려함, 즐거움, 창의성 그리고 세계 사람들이 뉴욕 하면 떠올리는 모든 것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브랜드는 관점이 매우 미국적이다. 티파니는 럭셔리에 대한 민주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른 유명 브랜드보다 더 다양한 가격대와 소재의 제품들을 접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훌륭한 디자인과 위대한 장인(匠人·craftsmanship)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게 다듬어진 실버(silver) 주얼리는 장엄한 다이아몬드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저렴한 가격대의 '엔트리(entry·'시작한다'는 의미로 브랜드 접근성을 높인 제품들)' 제품군이 상당히 많은데.

"이 모든 것이 디자인을 통해 가능하다. 엔트리 제품 역시 티파니 유산의 일부며, 고객이 얼마만큼의 돈을 쓰는가가 아닌, 얼마큼 위대한 디자인의 진가(眞價)를 알아보는지를 중시한다."

―하지만 2008년 등 불황기엔 엔트리 제품이 많은 이윤을 내지 않았다.

"이는 항상 우리의 도전 과제 중 하나였고,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 올해는 특히 그렇다. 최상위 제품군에서 호조를 보인 반면 합리적 가격 제품군에서는 고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을 고수하며 제품의 모든 영역에 걸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지속되더라도 고가 제품군에서 호조를 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실제 최근 1억5000만원이 넘는 고가(高價) 제품이 굉장히 잘 팔린다. 여기에다 중산층 혹은 희구 소비층(aspirational customers)이 자신감을 회복하면 이는 더 큰 기회가 된다."

'저가'와 '고가' 양립 정책에 따라 중저가 실버라인 매출 비중이 최소 20% 이상 차지하도록 유지시킨다. 명품 브랜드 '엔트리' 라인이 전체 5% 이상 차지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투자다.

―럭셔리 브랜드인 동시에 혁신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소개된 루베이도(Rubedo) 라인의 경우 보석 브랜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메탈 하이브리드를 사용했다. 옐로 다이아몬드를 널리 퍼뜨린 것도 티파니의 공(功)이다.

"금속소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티파니의 엔지니어들이 루베이도를 탄생시켰다.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멋진 사례이다. 또 상당량의 옐로 다이아몬드에 투자할 자금력을 갖고 있기에 우리는 그 기회에 도전했다."

―티파니 제품의 절반은 예술이고 나머지 절반은 과학이라고 볼 수 있나?

"물론이다. 위대한 디자인의 결합이다. 훌륭한 금속, 다이아몬드의 광채와 모든 아름다운 요소들을 극대화하는 커팅법(cutting skill)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의 조합이다. 또 디자인과 과학을 결합해 여성들이 착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로 회생시키는 장인 손놀림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이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직원에게 항상 "이곳을 사랑하는가"라고 물어라

―많은 기업은 추락의 시기를 갖고 있다. 특히 정상에 오래 있던 기업일수록 현실에 만족하기 쉬운데.

"그래서 1만여명의 임직원에게 회사에 대한 '가치'와 '유산'을 이해하도록 힘쓰고 있다. 한 예로 누구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갤러리에 전시된 티파니의 위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상장회사로서 '성장'은 의무라는 것을 임직원들이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는 회사를 성장시킬 기회를 찾고 있다. 브랜드의 위엄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단기 이익은 가능해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재앙일 것이다."

―직원들과 이런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어떻게 그들을 동기 부여하나?

"직원들과 무척 자주 이야기한다. 티파니에는 매우 강력한 조직문화가 형성돼 있다. 종종 새 임직원에게 '당신이 어느 부서에 근무하건 만약 당신이 뉴욕매장 혹은 다른 여느 티파니 매장을 방문했을 때 보이는 것들에 대해 흥분이 되지 않고 제품에 대한 애착이 없으며, 자긍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회사에 대한 '애정' 그리고 본인의 일에 대한 '열정'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 비즈니스의 핵심을 생각해 보면 미(美)를 창출하고 우리 고객들의 삶에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장치나 기기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고객에게 감성과 기대감을 심어준다. 일에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직원들은 이 일이 생계유지 수단이 아닌 봉사활동(labor of love) 같은 행복한 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드비어스 등 내로라하는 다이아몬드 회사를 거쳐 티파니로 온 직원들은 "'보석 업계 종사자들의 종착역은 티파니'이다"고 한다. 1위 회사로서 직원들에게 보상이나 대우는 어떤가?

"직원들에게 공평한 보상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회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공정한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애정과 별도로 회사와 직원 간에 이행해야 할 '약속'이 있다. 보상은 궁극적으로는 업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세일즈, 마케팅 분야 최고의 인재를 뽑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인생의 절반을 티파니에서 보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87년 회사 상장(上場)과 올해 창립 175주년을 맞았을 때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었고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2008년 경제위기와 이후 불경기를 겪으며 회사가 더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을 때이다. 브랜드의 지속적인 회복력에 놀라움을 느낀다. 매번 티파니라는 브랜드가 이를 견뎌내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볼 때 큰 위로와 보상이 된다." 

마이클 코왈스키(Michael Kowalski) 회장은

출생 : 1952년 미국

학력 : 펜실베이니아대학 학사(경제학),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

경력 : 티파니 CEO(1999~현재) 티파니 회장(2002~현재)
        뉴욕 멜론은행 이사회 멤버(2007~현재)
        페어몬트호텔&리조트 이사회 멤버

기타 : 2011년 총수입 898만달러(약 96억원\연봉 및 스톡옵션 등 포함)


조직에 대한 프라이드에 연봉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외에 도전하는 분위기와 똑똑한 동료들,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브랜드) 은 중요한 고려요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페이스북 인턴들의 평균 임금이 미국 정규직 평균 임금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취업정보 사이트 글라스도어가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 인턴들이 월 평균 5602달러(약 600만원)를 받는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6만7000달러(약 7200만원)에 달한다. 미국 사회보장청이 집계한 정규직 평균 연봉 4만2976달러(약 4600만원)보다 2만4000달러가량 많다.

하지만 페이스북 정규직 직원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인턴들의 임금 수준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라고 CNBC는 전했다. 페이스북 정규직 직원의 연봉은 10만달러(약 1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페이스북은 글라스도어가 발표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에서도 1위에 올랐다. 글라스도어는 직원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기업 순위를 매긴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평균 5점 만점에 4.7점을 줬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에 대해서는 99%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회사의 강점으로 도전하는 분위기와 똑똑한 동료들,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꼽았다.

일하기 좋은 직장 2위에는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선정됐다. 이어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 리버베드테크놀로지,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 MD앤더슨 암센터가 각각 3, 4, 5위를 차지했다.

애플은 34위에 머물렀다.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루고 수시로 해고하는 분위기 탓에 하위권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어느 조직이건..
내가 몸담은 조직이 없어지거나, 다른곳과 함쳐지게 되면
매우 불안한 법이다.

기존의 업무는 어떻게되나, 내자리는 보전되는 건가?, 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피곤한데.
등등... 조그마한 조직에서도 조직 변화는 스트레이스이다.

하물며.. 검찰에서.. 그것도 핵심중의 핵심인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니..

뭐.. 가만히 있는게 이상하지.. 검찰의 반발이야 당연하다. 검찰-정치권-정부-청와대 등등..
최근 검찰과 관계가 별로 인 경찰까지...
정신없이 머리를 굴릴 것이다.

실상.. 조직저항을 뚫고 가기란 쉽지 않다.
기업에 새로운 IT기술이나 제도를 도입할때.. 개개인은 좋다고 하지만.. 조직 전체관점에선.. 반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죄를 지어서.. 뭔가 구린게 있어서.. 일까? 아니다.. 생각보다. 바뀌는 자체가 싫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검찰은 바뀌는것 자체게 싫어서 그런거 같진 않다...

권력에 의해서 그저 도구로 전락해 버릴수 밖에 없다면.. 법치 국가의 검찰에게는 치명상이 될것이다.
권력을 이용하는데 익숙한 그들에게 권력과의 긴밀한 끈은 독배의 끈일 뿐이다.

혁신은 그래서 쉽지 않다.
어떻게 될까...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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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국가기관으로 '검찰'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대한민국 최고의 철옹성 기득권 집단인 검찰의 개혁은 시대의 요구이고, 국민의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검찰관계법 소위가 지난 3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직접 수사기능을 폐지하기로 하자 검찰이 강력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회 사개특위 등 정치권이 "권력형 비리 수사는 중수부가 없어도 일선지검 특수부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대해, 검찰은 "특수부 역량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반발과 그 양태가 한마디로 치졸하고 구태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의 문자메시지 지시로 전원 출근 가능하도록 유선 대기명령을 내렸고,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는 태업까지 벌였으며, 오늘(6일) 오전에는 검찰총장 주재의 확대간부회의가 개최되고 있다고 합니다.

 

 

검찰은 중수부 폐지에 대해 집단 반발하고 있으며,

문자메시지를 통해 비상대기를 하달하였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 남용과 기득권 옹호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개혁이라는 것도 결국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혁파하자는 것이고, 중수부 폐지는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이 민주화되는 가장 유력한 방도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고,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그 추악한 자본과의 결탁도 결국은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권력형 비리'는 반드시 척결해야 하는 구조악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행했던 중수부 존속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권력형 비리'에 대한 투명하고 합리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처절하고 솔직한 자기성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독립을 보장하며 일절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독립은 '검사와의 대화'와 같은 변질된 행태로 양산되었고,  검찰 내부의 개혁은 커녕 오히려 기득권 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오히려 정권 초기에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구사하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실질적인 검찰개혁의 토양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비대해진 검찰 권한을 조정하고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수부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참여연대의 성명과 같이 검찰이 중수부 폐지 반대 명분으로 내세우는 ‘권력형 비리 수사의 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가 해법일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국회 사법개혁 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중수부 폐지를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검찰은 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이던 중수부 검사들이 수사 대상자들을 모두 귀가시키고 자신들도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몇몇 간부급 수사관들은 술을 마시며 언론사 기자들에게 중수부 폐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권력을 빙자한 명백한 사실상의 파업이고, 직무유기이고, 근무태만이며, 국민의 세금을 받는 공무원의 항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검찰은 검찰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느 집단이나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 남용과 기득권 옹호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 개혁이라는 것도 결국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혁파하자는 것이고, 중수부 폐지는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수다"

대중과의 약속을 잠시 망각해서 대중에게 버림받을뻔 했던..
그러나 그들에게 "노력과 열정"이라는 가치가 쉽게 버림 받아선 안된다는 걸 있는 그대로 보여준..
예능버라이어티 순위결정 쇼?? 이다.

요즈음 그 가치에 이끌려 "나는 가수다"를 본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음악이란 그저 소비해야할 또 하나의 사물에 불과했다.
90년초반 시나위, 서태지와 메탈리카, 메가데스에서 90년 후반 데프레파드, 그린데이
2000년 초엔 체리필터나 브라운 아이드소울과 같은 인디락, 소울 하는 친구들 음악을..
2000년 말부턴 소녀시대나 카라의 음악을 그저 순간 순간 감정과 기분에 따라 소비해왔다.

음악이란 장르에서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감동엔 무감각했다.

어디에서도 감동을 느낄 "스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슈퍼스타K2는 충격이었다.
장재인과 김지수를 만나며.. "노력과 열정"을 봤다.
음악을 향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 던질수 있고, 1등이 아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나는 가수다"는 또 다른 충격이다.
이 시대에서 노래좀 한다는 가수들이 Video로는 불가능하지만, Audio라 가능했던 가수들을...
주말 황금시대에 본다는 사실만 해도 충격인데..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신선함 그자체이다.

어떤 가수는 정상급 가수가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했지만, 끝없이 평가를 받아야 하는 가수에겐
노골적인 "나는 가수다"의 평가가 오히려 정직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음악에는 1등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 절감한다.
1등이란 음악을 듣는 나에게 있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1등을 감히 결정할 수 없다는 것..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를 보며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내가 몇 등을 한다 해도 오직 "노력과 열정" 만으로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렇게 외치는 1등 이란 자리가 무의미 하다는... 
1등만 있는 미친 세상이 아닌 2등, 꼴뜽도 더불어 살 수있는 세상이 가능하다는 간단한 진리가.
"나는 가수다"를 통해 시작되어 우리사회 전부가 변화한다는.. ^^

共華

참 어처구니 없다. 재도전이라니..

오랫만에 즐거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일요일 저녁 5시 20분만 되면.
자리에 앉아 TV를 봤는데...

거참.. 3주만에.. 최악의 프로그램에 낚인 기분이다.
이젠.. 여기저기서 뒤통수 치다가.. 예능 프로그램까지 뒤통수를 치는건.. 뭘까?

아.. 예능프로지.. 웃고 즐기자고 했던..
역시.. 시청자는 없고.. 자기들만 웃고즐기면.. 되고..
자기들의 논리로 프로그램 운영하면 되는 그런 딴딴라적 사고만을 가진...

김영희 PD 프로그램이라서. 더 기대했는데..
맛이갔다. 전혀. 시청자는 고려하지도 않고.. MBC가 맛이 가서 그런가?

김수현 작가의 말이 맞다. 최소한 김건모는 재도전을 선택했으면 안된다.
아니.. 김영희 PD의 놀라운 술책에 빠져서.. 모든 비난을 자신이 들으면 안되었다.

그저.. 출연한 출연진이 안타까울뿐..
김제동도 한마디 하던데.. 재도전해 주면 안되냐고.. 김제동에게도 그 순간 시청자와 약속은 없었겠지.

딴따라는 신청자가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다.
이렇게 뒤통수 치는 프로그램은 빨리 폐지되어야 한다.

모쓸 정치인들이나 하는 말바꾸기, 자기 논리만 주장하기를 그대로 보여줘서..
평범하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해악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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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김수현 작가가 '나는 가수다'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20일 오후 방송된 MBC '나는 가수다'에선 7인의 가수가 80년대 히트곡을 재해석하는 서바이벌 무대에 도전한 결과 김건모가 청중평가단 투표에서 7등을 기록해 첫 번째 탈락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후배 가수들과 스태프들의 재도전 요청으로 김건모는 탈락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 남아 다시 기회를 얻게 됐다.

이 같은 프로그램 규칙 변경에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수현 작가가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수현 작가는 방송 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건모 탈락을 본 순간 든생각"이라며 "1. 뺑뺑이 돌려 받은 노래가 그에게는 아주 불리했었다. 2. 아 그가 첫번째 탈락자가 됨으로 다음 탈락자들은 훨씬 편하겠다. 왜냐면 천하의 김건모도 탈락했는데 뭐 3. 당혹스러워하는 다른 가수들이 모두 아름답고 이뻤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작가는 "그런데 재도전 어쩌구 소리가 나오면서 순간 이건 무슨 소리? 분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의논할 때. 하지마! 깨끗이 받아들여! 그래야 건모가 건모인거야! 결과는 재도전. 저런. 건모가 거모됐네. 쯔쯔 MBC 에이고오오 쯔쯔쯔쯔 탈락했어도 김건모는 김건몬데"라며 재도전 결과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또한 "제목이라도 좀 연하게 뽑아주지 직격탄이라니. 나는 그의 퍼포먼스도 노래도 불만 없었어요. 그저 평가단 있으나마나 만든 재도전을 급조하고 영리하게도 선택권은 가수에 넘긴 방송사 얍실함이 입맛이 썼고 우리의 건모씨가 멋지게 '노우' 하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네티즌들은 김건모의 재도전 결정에 대해 "시청자를 우롱했다", "정말 어이가 없다", "대체 3주동안 우리는 뭘 본 거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어떤 회사이든..
경영에는 특별한 방식이 있는것 같다.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하는 회사도 없지만..
경영은 해답이 없는거 같다.

재미있는 회사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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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Joins.com

일본 히로시마에 본사를 둔 ㈜21(투원)은 ‘메가네(안경)21’이란 브랜드로 안경과 콘택트렌즈 판매업을 하는 회사다. 1986년 2월에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사내에 이익을 거의 남기지 않고도 잘 굴러가고 있다.

현재 22개 직영점과 111개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 매출은 84억 엔(2007년). 종업원 수는 550명에 달한다. 수상하게 여긴 세무당국이 몇 차례 세무조사를 벌였지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투명했다.

주주의 이익(주가와 배당)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낙제점을 받을 만한 이 중견기업의 ‘아주 특별한 경영’이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 회사는 22년 전 히로시마의 한 대형 안경회사에 다니다 구조조정 때 옷을 벗은 4명의 퇴직사원이 출자해 설립했다.

다니던 회사에서 직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장이 죽자 경영권을 이어받은 딸이 경영 합리화를 꾀한답시고 이들을 내쫓은 것이었다. 미국의 대학에서 검안(檢眼)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딸은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던 아버지의 경영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본력 등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4명의 퇴직사원이 어떻게 매출 1000억원에 가까운 번듯한 중견기업을 일궈낼 수 있었을까? 성공요인은 한마디로 ‘고객의 눈높이에 선 오픈 경영’이다.‘고객의 눈높이’나 ‘오픈 경영’을 외치는 기업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구호로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완전에 가까운 오픈 경영 시스템을 구축했다. ‘21은 사원의 행복을 중시합니다. 사원은 고객에 대한 신뢰를 중시합니다.’ 이 회사의 사시(社是)다. 과거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아픈 기억 때문에 ‘사원의 행복’을 기업 가치관의 1순위에 올려놓았다. 기업의 존재 방식은 ‘이익추구’ 한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이색 기업의 특이한 경영방침을 살펴보자.

방침1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

지난해 이 회사는 84억 엔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경상이익은 500만 엔에 불과했다. 2006년에는 400만 엔의 적자를 냈다. 설립 이래 사내에 이익금을 유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남은 이익을 사원들에게 나눠주고, 상품 가격을 낮춰 고객에게 환원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이익 지상주의’다.

매출액이 아무리 많더라도 이익이 제로에 가깝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사업으로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주식을 공개한 상장기업은 투자자에 대한 환원(배당)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익을 내려고 노력한다. 또 확보한 이익은 유보금으로 자본에 편입시켜 기업 성장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21은 정반대다. 남은 이익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까지 포함해 모두 나눠 갖는다. 분배 방법도 완전 공개적이다. 각자의 평가점수에 따라 분배한다. 연봉 상한선은 1231만 엔. 사장이라도 그 이상은 받을 수 없다.

방침2 사원 평가·상여금 완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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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은 완전한 정보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회사 실적이나 재무상황은 물론 모든 사원의 평가, 급여나 보너스 정보까지 사내 인트라넷에 공개되어 있다. 아무리 오픈 경영을 외치는 기업이라 해도 21처럼 모든 사원의 평가나 급여까지 공개하는 곳은 없다.

오히려 대부분 기업들은 직원 간 급여에 대한 정보교환을 금지하고 있다. 30세가 되면 급여 인상이 멈춘다. 입사 10년차쯤 되는 이 나이는 판매원으로서의 기능이 더 이상 올라갈 게 없는 숙련 상태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각자 노력해 매출을 높이면 보너스로 보상을 받는다. 보너스 시기는 2월(결산기), 7월, 12월 세 차례다. 결산기 때 회사에 이익이 남으면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배분한다.

반대로 실적이 나빠지면 그것과 연동해 보너스가 내려간다. 이익 배분 때 기준이 되는 것은 사원 평가다. 평가는 최고 100점, 최저 1점의 포인트제로 하며, 그 내용은 모두 인트라넷에 공개된다. 평가를 둘러싼 분쟁은 없을까? 창업자의 한 사람인 히라모토 기요시 상담역의 설명이다.

“평가에 불만이 있는 직원은 자유롭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제한이 없어요. 하지만 평가를 바꾸려면 정당한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모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으면 평가를 바꿀 수가 있어요. 처음에는 몇몇 직원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요. 그만큼 투명하기 때문이죠. “

21은 ‘평론가 타입’의 직원을 없애기 위해 정보를 완전 공개한다. 그래서 일은 게을리하면서 뒤에서 쑥덕대는 ‘평론가’들보다 ‘실무자’ 쪽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평가에 대한 반론이나 지지도 인트라넷에 공개된다. 히라모토는 “평가의 부당성에 대해 반론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퇴직자가 늘어납니다. 우리 회사의 직원 이직률이 아주 낮은 걸 보면 이 제도가 괜찮은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한다.

방침3 노르마(책임 판매목표)가 없다

21에는 직원들에 대한 노르마가 전혀 없다. 본사에서 내려오는 각 점포에 대한 매출목표조차 없다. 매출목표는 각 점포에 소속된 직원들이 자유롭게 결정하면 된다. 모든 것이 자율적이다. 일반적으로 영업사원들은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영업목표가 설정되며 그것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최종 목표액과 일일 달성률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충격요법을 쓰는 곳까지 있다. 사원 개개인, 부서별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것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자극제가 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21에는 이러한 목표 부담이 전혀 없다.

방침4 관리직을 두지 않는다

이 회사에는 과장·부장 등의 관리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원이 점포에 나가 고객을 상대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데 종사해야 한다. 노르마가 없기 때문에 실적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사원들은 영업일지 등 보고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 보고서를 써봤자 읽어줄 관리자가 없기 때문이다.

품의서도 필요 없다. 예컨대 점포의 간판을 새로 달고 싶으면 스스로 판단하여 처리하면 된다. 통상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역할을 가진 부서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각 부서에는 책임자가 있어 판단을 내리고, 일이 순조롭게 굴러갈 수 있도록 관리한다. 군대가 대표적인 관리형 조직이다.

명령하는 상관과,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하가 없으면 군대는 존재하지 못한다. 하지만 21의 조직체계는 완전히 수평적이다. 모든 사원은 하나의 목표, 즉 ‘사원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방침5 사장은 4년마다 교체한다

상법상 주식회사이기 때문에 사장(대표이사)과 임원을 두고 있지만 거의 형식적인 자리에 가깝다. 사장은 아무리 길어도 4년 이상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대표하는 사장이라도 점포에 나가 청소도 하고, 안경도 직접 판매한다.

21은 외부 출자나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지 않는다. 직원 35명의 출자금과 사내예금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있다. 사내예금에 대해서는 일반 은행보다 약간 높은 금리로 이자를 지불하고 있다. 물론 사내 출자나 예금에 강제성은 없다. 직원들이 배당금도 없고 주가가 오르지 않는데도 출자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애사심’ 때문이다.

회사가 출자자나 사내예금자에 대해 보상하는 것은 평가 때 약간의 가산 포인트를 주는 정도다.
이 회사의 경영권 이양은 MBO(mana gement buy out: 경영자 인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MBO는 기업을 경영진과 임직원이 중심이 되어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21의 MBO는, 후배 사원이 정년퇴직하는 선배 사원으로부터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경영권을 자연스럽게 이어받는다. 회사가 이익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주식도 액면으로 매매할 수 있어 경영권 양도가 간단하다.


세상이 변하는걸 본다.
어떤것도 그대로 있지 않고.. 변해간다. (진화한다고 한긴 좀그렇고...)

강호동. 김구라를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모습이 되어가는지..
알수 있다.

다양성.. 이 안에 Business 기회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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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이현우 기자]
○ 그 많던 토크쇼는 다 어디갔을까?

현재 지상파 방송에서 전통적인 형식의 토크쇼는 평일 오전 주부대상 프로그램에서 요일별로 편성되는 토크 코너를 제외하고는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정도가 유일하다.

토크쇼 전성기 90년대에 봇물터지듯 쏟아진 토크쇼들은 하나같이 미국식 토크쇼였다. 미국 토크쇼를 직수입한 '자니윤쇼'를 시작으로 '이홍렬쇼', '김혜수의 플러스유',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와 같은 히트작들은 한명(많으면 두명)의 스타를 스튜디오에 초대해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진솔하고 유쾌한 대화로 담아냈다. '서세원쇼'는 토크쇼를 집단 수다 방식으로 변형시켰고 2000년대 '야심만만'이 태어나며 토크쇼는 설문이나 게임의 테마를 차용해 또 한번 변화를 맞았다.

올해 1월 3일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MBC '황금어장'에서 '무릎팍 도사'라는 코너를 마련해 최민수를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재연 꽁트 코미디 프로그램을 지향하던 '황금어장'에서 강호동은 코스프레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최초로 토크쇼를 시도했다. 같은 프로그램 속에 '라디오스타'를 통해 토크쇼는 또 한번의 변화를 맞았다.

○ 듣고싶은 말을 하는'무릎팍' 하고싶은 말을 하는 '라디오스타'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가 처음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을 때는 그 '공격성' 때문이었다. 그동안 물어보기 껄끄러웠던 스캔들이나 이혼, 대마초 관련 파문 등에 대해 대놓고 물으며 그들의 변을 직접 들어보겠다는 거침없는 방식이 '무릎팍 도사'를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다.

이승철은 대마초로 구속이 된 적이 있고, 최진실은 이혼을 했으며, 이영자는 다이어트 거짓말로 한동안 TV에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연예인에게는 전모가 공개돼버린 사안에 대해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 것이 더 이미지에 좋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실수를 저질렀건 다시 실력으로 방송에서, 음악에서, 연기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면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무릎팍 도사'가 연예인의 '면죄부 씌워주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무릎팍'이 면죄부 토크쇼, 고단수 포장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 '라디오 스타'가 탄생했다.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 김국진이 진행하는 '라디오 스타'는 게스트 배려 없는 방송으로 프로그램 콘셉트를 잡았다. 김구라는 인터넷 방송 시절 '태도'를 지상파에서 재연하며 게스트에게 하고싶은 말을 전부 뱉어내는 방식으로 '라디오 스타'를 단번에 히트상품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라디오스타'는 시청자와 방송심의위원회의 주목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 '무릎팍 도사'=강호동, '라디오스타'=김구라 대안없는 선택

단순하고 무식한 강호동의 캐릭터 설정은 '무릎팍 도사'의 전체 성격을 규정한다. 다소 어처구니 없는 질문도 '강호동이니까' 할 수 있다. 강호동은 스스로 '무식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없다. 무릎팍 도사를 통해 강호동의 무식한 캐릭터는 긍정적인 반응으로 돌아오고 있다.

방송 후 며칠 간이나 화제가 지속된 '무릎팍 도사 엄홍길 편'(6월 27일 방송), '곽경택 편'(9월 20일 방송)에서 강호동의 이런 매력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재미를 위해서 하는 질문도 "대장님 제가 몰라서 묻는 건데요..." 라고 시작하면 다소 무례하게 들려도 용서가 된다. 결정적으로 그의 질문들은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반면 '아는게 지나치게 많은' 김구라는 '라디오 스타'의 성격을 규정한다. 김구라를 비롯해 '라디오스타' 4명의 MC들은 그것이 정보든 루머든 알고 있는 사실을 게스트에게 마구잡이로 던지고 얻어 걸리는 것을 물고 늘어진다. 감동이나 해명 따위는 김구라의 관심 밖이다. 인터넷에서 쌓은 명성(?)으로 거칠 것 없이 쏟아내는 '말 잔치'는 '라디오 스타'의 최대 장점이다.

○ 무슨 말을 하는지 귀기울이게 하는 방법

그동안 지나치게 젊은 취향에 경도되던 오락프로그램은 무조건 좀더 빠른 것, 좀더 세련된 것이라는 공식에 지배당해왔다. 하지만 1:1로 대화를 하는 토크쇼의 기본 구성상 속도를 끌어올리는데는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때문에 '무릎팍 도사'는 화면과 사운드의 구성에 전력을 다한다.

먼저 이제는 너무도 유명해져버린 '액션!' 등 효과음의 삽입이다. 이 편집방식은 기대 이상으로 효과적이고 중독성이 강해서 이제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액션!' 뒤에 따라오는 발언들이 재미있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떤 발언들을 강조할 때 내는 북소리 효과음과 프로그램 중간중간 어색함과 긴장 지루함을 묘사하는 화면 편집도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시도들이다.

자막의 처리 방식에서도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는 초대손님이나 감정을 묘사하는 자막들이 빈번히 등장한다. 서브 MC로 참여하고 있는 유세윤과 올밴 우승민의 경우 직접적인 발언으로 화면에 노출되기 보다는 자막으로 감정상태를 나타내는 식의 노출이 더 빈번하다. 그 이유는 서로의 '말'이 물리고 겹치는 것을 막고 대화의 흐름을 최대한 방어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유세윤과 우승민은 반드시 재미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지 않으면 최대한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모든 시도의 공통점은 '대화' 또는 '말'을 최대한 강조하고 집중력을 흐뜨러뜨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토크쇼가 가져야 할 기본을 유지하면서 속도감을 더해주고자 했던 제작진의 고민 흔적이 역력한, 매우 영리한 편집이다.

반면 '라디오스타'는 말보다는 독한 감정을 살리는데 주력한다. 네명의 MC들의 말잔치로 오디오가 물리고 화면이 자막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라디오스타'에서는 말 자체보다는 감정을 살리기 위한 장치들이 총동원된다. 게스트의 발언들은 극단적으로 편집되기 일쑤고 한명의 출연진만 흑백으로 처리되거나,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는 등의 애니메이션 장치들은 예능 역사상 가장 정신없는 토크쇼를 완성시켰다.

○ 정통과 변종, 토크쇼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던가, 처음부터 끝까지 '말' 하나로 진행되는 토크쇼는 진행자의 말솜씨 능력에 따라 전체적인 재미가 결정된다. 매끄럽고 깊이있게 때로는 날카롭게 초대손님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토크쇼 진행자의 역량과 권위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무릎팍 도사'는 지난 10년 동안 각종 버라이어티에서 쌓아온, MC 강호동이 그의 진행 내공을 100% 뿜어내고 있다. 현란하지만 어렵지 않은 그의 말솜씨는 재미있는 토크를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조금씩 무뎌져가고 있지만 10년 이상의 연예인이라는 출연조건은 단지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인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경험치 만큼 양질의 대화거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라디오스타'에서는 관계에 따른 경쟁 구도로 긴장감을 얻는 방식을 택했다.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 신정환은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야합과 분열을 일삼으며 최대치의 긴장을 이끈다. 아군도 적군도 없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게스트는 일종의 변수로 작용한다. 이 변수에 따라 '라디오스타'는 매회 다른 형태의 토크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