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 놀림받던 대안학교, 유기농업 산실로 만들고 '봉사하는 삶’ 가르친 선생님
무농약 오리쌀 재배하며 전국에 가족 4만명 만든 농부
폐농가 속출하는 시골동네, 생태마을로 탈바꿈시킨 이장…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해마다 5월이 되면, 나는 그리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청량감 가득한 물줄기 하나 간절한 때 더욱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봄마다 마을 만들기 또는 공동체 가꾸기를 하는 지역을 찾아다닐 때 전국의 골짜기에서 만났던 일꾼들이다. 일꾼이라기보다 그들은 밀알이었다. 한 알의 밀알로 썩어져 열매를 맺는 밀알.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의 홍순명 선생님.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는 풀무학교를 50년 동안 이끌어온 분이다. 스물네 살 총각으로 풀무학교에 부임한 후 칠순을 넘겼으니, 평생을 그곳에서 교육과 농업에 헌신해온 셈이다. 선생이 풀무학교 교장으로 계실 때 이미 시험 없는 학교를 만들어 학생이 각자의 능력대로 꿈을 키우게 했고, 교육을 머리만이 아니라 땀으로 체득하도록 교과과정에 노동을 포함시켰다. ‘똥통학교’란 비아냥거림을 듣던 이 학교 졸업생들이 퍼져 나가, 지금은 홍동면이 유기농업을 이끄는 터전이 되었다. 홍동면에는 현재 전국에서 면 단위로는 유일하게 출판사가 있어 책을 펴내고, 민립(民立) 밝맑도서관을 세워 농촌에 인문학 향기를 전파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 서두르는 협동조합이란 사업도 이 지역에서는 이미 55년 전 풀무학교를 세울 때 설립해서 운영해온 오래된 메뉴다. 문당리 신협에서 판매하는 빵과 과자를 먹어본 필자는 일주일 내내 기뻤다. 정직한 사람들이 유기농 쌀로 음식을 만들 때 어떤 맛이 되는지를 처음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경남 거창군의 김선봉 교장선생님. 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아들놈을 거창고등학교에 맡기고 싶어 방문했을 때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단박에 그 진실과 소박함이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외모. 인사를 드리기 쑥스러워 그냥 학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강당에 이르러 가슴이 뛰었다. 아주 오래된 글씨였는데,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거기 걸려 있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승진의 기회가 없는 곳으로 가라.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웬만한 학교에서는 수험생들에게 예체능 수업도 시키지 않는 요즘, 그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이 봄가을로 예술제를 일주일 동안 연다. 합창, 연극, 체육대회로 일주일 내내 신명나게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주말에 체육대회를 한다고 하여 가보았을 때 운동장에는 선생님은 안 계시고 학생들뿐이었다. 운동 경기도 학생이 심판을 보고, 학생이 시상을 하는 학교였다. 집안에 사정이 생겨 아들놈을 서울의 집 옆으로 전학시키고 싶다고 죄인처럼 말씀드리러 갔을 때 저만치에서 모른 체 서운해하시던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강원 화천군의 토고미마을 한상렬 위원장. 일찍이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을 깨달은 그가 농촌의 시골마을로 가게 된 사연은 남다르다. 시내 농협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던 한 위원장은 1996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절망 중 시골로 들어간 그는 죽지 않고 살았다. 자신이 희망을 찾은 것처럼 농촌마을에도 희망을 선물하고 싶어 마을 주민 세 명과 환경농업 작목반을 구성했다. 

당시 1ha로 시작한 무농약 오리쌀 재배는 이제 25ha로 확대되었고, 전국에 토고미가족 회원이 4만 명 생겨났다. 토고미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오리쌀은 토고미가족들의 주문을 충당하기도 바쁘고, 1년이면 2만 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온다. 초창기 마을에서 외면당하던 한 위원장은 이제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꾼으로 인정받는다. 십여 년에 걸친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한 원천을 묻는 내게 한 위원장은 신앙을 꼽았다. “요즘 같은 이익추구 사회에서 누가 힘든 일을 하겠습니까. 자신들 좋게 해주려는 그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더라도 서운해하지 않고 모세처럼 일하는 거지요” 하며 그는 웃었다. 

충북 단양군 한드미마을의 정문찬 이장. 1998년 그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품었던 꿈은 친환경 생태마을이었다. 당시만 해도 동네에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친환경 농사를 지으며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우렁이농법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빈집이 수두룩하던 동네에 지금은 귀농이 이어져 47가구가 모여 사는 윤기 있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곳도 1년이면 3만 명의 방문객이 전국에서 찾아온다. 2005년에는 소문을 듣고 대통령이 찾아왔다. 세 시간여 마을에 머물던 대통령은 마을 사람들과 고구마 순을 심고, 율무 씨앗도 뿌렸다.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고, 또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싶은 마음을 주민들이 작은 돌에 새겨 놓았다. ‘풀벌레 노래와 한 방울 물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국민의 대통령.’ 

이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이자 사회운동가였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 사회에 청량한 노래 한 편 들려주는 시인, 그리고 이 땅을 화폭 삼아 빛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세상이 시끄럽고 혼탁해질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얼굴들이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Posted by 워렌팍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