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YP-YG의 라이벌에 대한 좋은 글..

읽을 만한 내용이다. --> Pride는 자신에게서 나오는건가? 리더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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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오른쪽 사진) 와이지 사장과 박진영(왼쪽) 제이와이피 프로듀서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박진영은 영어를 잘한다. SBS TV <일요일이 좋다>의 ‘K팝스타’에서 영어권 출연자들에게 영어로 심사평을 할 정도다. 그때 박진영 옆에 앉은 양현석은 한국어로 심사했다. “박진영씨만큼 영어를 못 해서”라는 이유다. 하지만 10여 년 전, 양현석의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수석 프로듀서 페리는 미국인이었다. 양현석은 그와 영어로 대화했다.

카메라 앞에서도 영어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박진영은 직접 미국으로 갔다. 미국 음악시장 관계자들에게 영어로 자신의 곡을 사달라고 설득했고, JYP 미국 지사를 세워 미국 음악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에 나섰다. 영어에 신중한 양현석은 소속 가수 세븐의 미국 진출 실패 후 미국에 가지 않았다. 대신 유튜브의 YG채널로 소속 가수들의 국내 활동을 퍼뜨렸다. 영어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가 지금 미국에서 원더걸스를 실패시키고, 싸이를 성공시켰을 리 없다. 다만 박진영은 JYP 소속 가수의 히트곡을 대부분 작곡한다. 그 곡들 중 대다수는 앞 부분에 박진영이 녹음한 “Yo JYP!”라는 말이 들어간다. 원더걸스의 ‘Tell me’는 직접 안무도 짰다. 자신의 영어를 믿고 아무 기반도 없는 미국시장에 진출하려던 박진영의 자신감은, 그가 JYP를 끌고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반면 양현석은 YG에서 영어처럼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싸이의 전세계적인 성공에 놀랐지만, ‘강남 스타일’의 믹싱 엔지니어가 양현석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그는 오래전부터 YG에서 나오는 모든 음원의 사운드를 최종적으로 조율했지만, 앨범 크레디트에 이름을 싣는 것 외에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양현석이 YG의 첫 번째 성공작인 지누션의 ‘가솔린’을 작곡한 것 역시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원하는 곡을 써줄 만한 마땅한 작곡가를 찾지 못한 양현석은 2년 동안 작곡을 배워 ‘가솔린’을 만들었다. 자신보다 더 좋은 곡을 훨씬 빨리 쓸 수 있다는 페리가 들어온 후에는 작곡에서 손을 떼고 페리의 곡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사정이 어렵던 초창기 YG의 수익을 위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그가 직접 나설 필요가 있어서다. 이후 사업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클럽 사업에 나섰고, 대중의 감을 익히려고 시간 나는 대로 클럽에서 디제잉을 한다. 그가 사운드 엔지니어를 하는 것도 “회사에서 이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나”라는 게 이유다.

꼼꼼한 조력- 나홀로 대결

박진영은 JYP를 통해 영어로, 작곡으로, 춤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왔다. 양현석은 YG가 필요하면 영어를, 작곡을, 엔지니어링을 배웠다. ‘K팝스타’는 그들이 얼마나 다른 종류의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박진영이 ‘중음밖에 없다’고 비판한 출연자에 대해 양현석은 ‘느낌은 좋다’며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박진영이 ‘공기 반 소리 반’, ‘말하듯이 불러라’, ‘찍고 날려라’처럼 노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면, 양현석은 ‘말로 잘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감동적’이라거나 ‘매력적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곡으로 JYP를 일으키고 미국에 진출한 박진영에게 가수는 그의 이상을 가장 잘 실현해줄 조건을 갖춰야 한다. 양현석은 프로듀서 테디부터 싸이, 타블로, 지드래곤에 이르기까지 싱어송라이터들의 사운드를 조율했다. 그는 타고난 테크닉 대신 타고난 개성을 가진 사람을 캐스팅한다. 빅뱅 멤버 지드래곤·태양·탑·승리·대성 사이의 공통점은 양현석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하나뿐이다. 박진영이 초등학생이던 조권에게 ‘말하듯 노래하는 법’을 가르치는 동안, 양현석은 13살의 지드래곤에게 매주 작곡을 하도록 만들었다. 박진영은 원하는 가수를 찾아낸다. 양현석은 뭐가 됐든 자신이 끌리는 사람을 뽑아 능력을 극대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실질적 시작점인 서태지, 그리고 2000년대 K팝의 최종병기가 된 싸이 옆에 모두 양현석이 있었던 것은 절반은 우연이지만 절반은 필연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핵심은 당연히 서태지였다. 하지만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세 명으로 구성된 그룹을 제안했고, 카세트 레코더로 ‘난 알아요, 요 요!’ 같은 부분을 직접 만들었으며, ‘컴백홈’을 부를 때는 의상과 안무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싸이의 전작들과는 다른 ‘강남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양현석이 조율하는 YG 특유의 사운드이다. 그리고 흥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뮤직비디오는 YG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거의 전속으로 연출하는 조수현 감독의 작품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뮤지션 양현석은 춤, 노래, 작곡, 디제잉 어느 하나 일등이 아니었다. 하지만 춤, 노래, 작곡, 디제잉, 엔지니어링을 배운 사업가 양현석은 서태지부터 싸이까지 자기 세계를 가진 뮤지션과 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YG 이하이에게 곡 써준 박진영

박진영
박진영이 흥미로운 인물인 것은, 그가 혼자서 서태지와 양현석의 영역을 동시에 하려는 것은 물론 자신이 그것을 매우 즐기는 데 있다. 원더걸스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박진영은 미국의 대형 의류업체에서 원더걸스의 싱글 CD를 판매하도록 설득했다. 이 계약은 원더걸스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원더걸스, 미스A, 2PM의 장우영 솔로 앨범이 계속 나온 2012년에 그는 솔로 가수로 활동했고, 영화 <오백만불 사나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성공하면 그는 뛰어난 작곡가이자 가수이며 사업가다. 실패하면 일에 집중하지 않은 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간다. 무모하고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데뷔 때, 그는 주위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외모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속옷이 비치는 비닐 바지라도 입어서 자신의 외모를 개성으로 연출했다. 성에 대한 발언으로 비호감의 대상이 되자 책까지 쓰며 자신의 생각을 설득시키려 했다. 자신에 대한 악플을 저장해놓고 읽으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남자다. 박진영은 20대 후반 회사를 차려 god, 박지윤, 비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박진영에게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승률은 꽤 높았다. 박진영이 JYP에 ‘K팝스타’ 우승자 박지민이 있는데도 YG 소속의 준우승자 이하이에게 노래를 준 것은 박진영과 양현석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세상과 혼자 싸우는 박진영은 박지민이든 이하이이든 어울리는 가수에게 자신의 곡을 줄 수 있다. 그에 따른 찬사와 비난도 그의 몫이다.

반면 양현석은 YG 소속 뮤지션의 곡을 YG 이외의 가수에게 주는 일은 거의 없다. YG가 외부 프로듀싱한다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다. 자신의 역할을 YG의 필요한 부분을 처리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에게는 회사 내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페리를 스카우트해서 YG의 곡만 쓰게 하던 시절부터, YG는 아웃소싱 개념이 거의 없는 회사였다. 소속 프로듀서들은 YG만을 위한 곡을 쓰고, 코디네이터와 뮤직비디오 감독은 물론 영상 편집과 재킷 디자인까지 모두 전속 개념으로 일한다. 새로 지은 YG 사옥은 양현석의 경영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17개 팀의 프로듀서들이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는 많은 스튜디오가 있고, 지하에는 YG 스태프만을 위한 음식을 하는 전속 요리사가 있다. 양현석이 YG 소속 가수들을 ‘YG 패밀리’로 규정함은 끈끈한 유대감을 강조하려는 것만이 아니다. 패밀리처럼 서로 그들만을 위해 일하며 콘텐츠의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 YG의 경쟁력이다.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들고, 경쟁력을 갖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돌 테디가 한국의 대표적인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데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YG가 가요계 전체를 장악할 만큼 메가 히트를 기록한 것도 2007년 빅뱅의 ‘거짓말’이 처음이었다. 그 사이 YG는 그들의 바깥 세상에 대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폐쇄적’ 비난받는 YG

양현석 사장
양현석과 박진영, 둘 중 누가 더 옳고 더 뛰어난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은 언제나 자기 방식으로 세상과 싸웠고, 승리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박진영이 더 크게 이겼고, 지금은 양현석이 자신의 시대를 열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와 함께 한국 음악산업의 ‘3강’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단지 회사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이 데뷔한 1990년대는 싱어송라이터의 노래 한 곡이 음악산업 전체를 흔들고, 제작 시스템은 아직 마련되지 않던 때다. 상업적 성공만이라면 티아라의 제작자 김광수가 박진영과 양현석보다 더 성공한 때도 있다. 하지만 김광수가 기존 가수 매니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펼쳐나갔다면, 가수이자 프로듀서였던 양현석과 박진영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회사 경영에 투영했다. 세 사람의 삶 방식이 곧 SM과 YG와 JYP가 움직이는 방식이고, 세 사람의 개성과 역할은 경영자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넘어 회사를 움직이는 시스템의 일부다.

최근 양현석의 행보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 개인과 시스템의 결합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YG 가수들은 활동 시기에 주로 SBS TV <인기가요>에만 출연한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신 한 프로그램에 역량을 집중해 무대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또한 빅뱅의 음원 서비스는 네이버와 독점에 가까운 계약을 통해 대형 프로모션으로 진행했고, 앨범 재킷의 콘셉트는 현대카드와 함께 기획했으며, 공연은 삼성전자의 단독 후원을 받는다. 2013년에는 제일모직과 함께 YG 뮤지션들이 디자인에 참여하는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다. 보통 다른 기획사들은 인기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가수를 여러 미디어에 노출시켜 홍보하며, 성공하면 많은 CF를 찍어서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YG는 소속 뮤지션들로만 곡을 만들고, 특정 미디어를 통해 활동하며, 성공해도 특정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에 가까운 방식으로 일하면서 돈을 번다. 양현석은 ‘잘하는 선수끼리 한다던 작업 방식을 YG 내부를 넘어 바깥 수익구조까지 확장한 셈이다. 양현석은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읽지 않았지만, “내게 아이폰이라는 멋진 물건을 쥐어줬기 때문에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가 거둔 성과를 스티브 잡스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외부에 배타적인 태도로 일하며 콘텐츠의 완성도를 최대한 높이고, 콘텐츠에 대해 실무자들과 디테일한 영역까지 상의하며, 콘텐츠의 상업적 성공을 통해 독자적 수익구조를 설계하는 양현석의 경영 방식은 스티브 잡스와 닮아 있다.

싸이는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했다. 빅뱅 공연은 미국에서만 4만8천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 잡지 <롤링스톤>은 지드래곤의 솔로 곡 ‘크래용’을 리뷰했다. 그러나 지금 YG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건은 양현석이 자신의 방식을 YG 바깥에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양현석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YG였다면, 2012년의 양현석은 YG 바깥에서도 자신의 방식을 관철시키기 시작했다. 박진영이 자신의 음악을 증명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아티스트라면, 양현석은 사업을 위해 음악을 공부한 사업가였다. 그러나 2012년의 양현석은 마치 아티스트처럼 사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표현했다. YG를 만든 지 15년 만에 양현석은 자신의 사업을 다른 차원으로 진화시켰다.

뒤집힌 승부, 이어지는 대결

양현석의 현재는 박진영의 숙제이기도 하다. 2000년대의 대중음악은 점점 더 한 명의 작곡가나 프로듀서 대신 제작사의 시스템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 ‘K팝스타’ 자체가 SM-YG-JYP가 만들어낸 제작 시스템이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싸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양현석의 방식은 제작부터 수익구조까지 자신의 생각이 관철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자신이 곧 JYP의 시스템인 박진영은 궁극적으로 언제나 혼자 싸울 수밖에 없다. 2012년의 그는 자신의 방식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큰 히트곡을 만들지 못했고, 자신의 노력으로 나름의 성과를 거두던 미국 진출은 싸이의 성공으로 폄훼됐으며, 가수와 배우의 활동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가 앞으로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자신의 방식을 바꾸거나, 초인이 돼야 한다. 박진영은 얼마 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감나무 밑에 있는 사진을 올리며 “떨어진 (작곡)감을 찾아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때로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승부처는 여전히 좋은 곡을 쓰고, 좋은 노래를 불러서 세상을 뒤엎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과거 god를 성공시킨 것처럼, 원더걸스를 빌보드 싱글차트에 오르게 한 것처럼. 박진영이 이번에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면, 그는 지금과 전혀 다른 폭과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서태지부터 싸이까지, 언제나 뛰어난 사람들을 돕던 조용한 조력자. god부터 미스A까지 자신의 노래를 다른 이에게 부르게 한 화려한 초인. 그들 중 결국 세상에 자신의 방식을 인정받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지금은 양현석이 한 발 정도 앞서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박진영이 본다면 저장해놓고 이 글이 헛소리였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겠지.

강명석 | <텐아시아> 편집장

Posted by 워렌팍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