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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인간 되기 프로젝트

진중권 from 한겨레21

워렌팍 - 가치를 만드는 지식 혁신가 2012.02.15 12:03
나의 지적 감흥을 올려주는 몇명중 한사람 진중권..
그 의 논리적, 물리적 접근방법, 전략전술을 통해 배울것이 많다.

인간이 착하거나 악할 필요도 없고, 그런 가치에 대한 고려도 별로 관심없지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효과적으로 들어내는 진중권을 보면..

그는 이사회에 꼭 필요한 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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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곽노현 등 비판해 ‘입진보’ 비아냥 들어도 
‘비합리성’과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진중권…
상하좌우 없이 대중에 편승한 반지성을 비판하는 
문제적 개인, 진중권의 전쟁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진중권은 ‘전사’다. 10여 년 전 <조선일보> 게시판을 단기필마로 휘젓던 시절부터 공인된 사실이지만, 그는 전투를 거듭할수록 에너지가 넘치는 타고난 무인 체질이다. 이런 진중권을 두고 소설가 서해성은 “그가 우리 편인 게 퍽이나 다행”이라 안도했지만, 최근 그가 취하는 공세의 칼끝은 공교롭게도 자신을 ‘아군’으로 여겨온 일군의 무리를 겨냥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구속수사,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와 영화 <부러진 화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소 변경 의혹 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서 진중권이 맞서 싸우는 상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보’로 규정해온 사람들이다.

나꼼수 향해 “닭들이 부흥회하는 분위기”

이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서 적잖은 ‘진보 인사’들이 실망과 배신감을 토로한다.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이 할 역할을 진중권이 대행하고 있다”거나 “유아적 감수성을 벗지 못한 전형적인 소영웅주의자의 행태”라는 반응 등이 그렇다. 유념할 대목은, 진중권의 ‘진보 비판’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가깝게는 2010년 6·2 지방선거를 전후해 자신이 당원으로 있던 진보신당의 논객들과 벌인 ‘대중노선 논쟁’, 멀리는 2002년 안티조선운동의 ‘친민주당’ 편향을 지적하며 강준만과 벌인 ‘옥석 논쟁’이 그런 경우다. 진중권 스스로도 자신에게 환호하는 대중을 향해 “수가 틀리면 언제든 배신을 때릴 수 있으니, 지나친 애정은 쏟지 말라”고 당부하지 않았던가.

진중권도 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가 주류 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좌절·분노·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이정우

물론 곽 교육감과 <나꼼수>의 옹호자들이 진중권의 비판에 그토록 격하게 반응한 것은 단순히 믿었던 논객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배신감 탓만은 아니다. 그들의 분노를 키운 건, 자신들이 한 때 한국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심형래 사태의 ‘비이성적 대중’과 동일한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다는 불편함이었다.


실제 진중권은 곽노현 구속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한 <나꼼수> 방송분에 대해 “닭장 속에서 닭들이 부흥회 하는 분위기”라는 조롱조의 소감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나꼼수> 현상을 다룬 <한겨레21> 칼럼에선 곽노현 옹호론이 “노무현·한명숙(에 대한 정치보복) 사건을 기억하고 곽노현 사건에 거의 반사적으로 반응한” 순진한 대중과, 이들을 활용해 과거 황우석·심형래 사건에서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김어준의 합작품이란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상당수가 <나꼼수> 애청자인) 곽노현 지지자들은 이 ‘도발’을 참기 힘든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진중권의 트위터는 순식간에 곽노현·<나꼼수> 지지자들의 비난과 욕설로 도배됐다. 하지만 여기에 굴할 진중권이 아니었다. 절대적인 수적 열세에도 특유의 풍자와 독설에 의도적인 무시와 회피술을 능란하게 섞어가며 논쟁의 판세를 주도해갔다. 지난해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입증된 <나꼼수>의 위력에 위기감을 느껴온 보수언론은 호재를 만난 듯이 양쪽의 충돌을 중계 보도하며 부채질했다. 상황은 뒤이어 벌어진 영화 <부러진 화살>의 편파성 논란과 신생 대안언론 <뉴스타파>에 의해 재조명된 선관위 투표소 변경 의혹 공방에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황빠·심빠, 대중과 불화의 역사

눈여겨볼 대목은 진중권도 <나꼼수>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나꼼수>가 주류 언론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좌절·분노·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구술 메시지의 파급력도 높이 산다. 그가 문제 삼는 것은 그 안에서 유통되는 과도한 음모론과, 대중의 열광에 편승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나꼼수> 제작진들의 ‘정치적 욕망’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비판이 <나꼼수>에 ‘놀이’ 또는 ‘오락 프로그램’으로서의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런 진중권의 싸움은 단기간에 전과를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의 상대는 그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단순한 문화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꼼수 4인방’이라는 정치색 강한 스타들을 중심으로 결속한 ‘정치 팬덤’에 가까웠다. 팬덤은 그 특성상 환호 대상과의 동일시가 강하고, 환호하는 이들끼리의 결속력도 견고한 법이다. 여기에 4인방의 일원인 정봉주의 구속을 계기로 만들어진 ‘순교자’ 정서와, 민주주의의 평등 논리가 가미된 ‘반지성주의’, 그리고 ‘반MB’라는 정치적 진영 논리가 결합했다. 싸움은 어느 순간부터 “적을 이롭게 하는 ‘입진보’ 지식인”과 ‘MB와 싸우는 각성한 대중’의 유사 대결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볼 수 있습니다.
진중권도 이 싸움이 간단찮게 전개되리란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황(우석)빠’ ‘심(형래)빠’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통제되지 않는 대중의 ‘어두운 힘’을 누구보다 생생히 체감했기 때문이다. 2006년엔 지방 강연을 갔다가 황우석 지지자들에 의해 3시간 동안 억류되는 상황도 겪었다. 진중권은 뒷날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 사태가 정점을 찍었던 2005년 가을 당시를 이렇게 돌이켰다. “‘노(무현)빠’와 ‘박(근혜)빠’가 ‘황빠’로 뭉쳐 한목소리를 냈다. 90%의 압도적 다수였다. 파쇼적, 나치즘적 상황이었다. 군중의 독재를 느꼈다.”

한편에선 최근 <나꼼수> 팬들과의 논쟁에서 보여준 진중권의 날 선 비판이 2006년의 억류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도 내놓는다. “진중권은 황우석 사건 당시 집단의 광기에 휩싸인 대중에게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적 있다. 혹시라도 그 트라우마가 대중에 대한 인색한 평가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장은주 영산대 교수)

실제 진중권은 2006년 심신의 피로를 이유로 1년 가까이 글쓰기를 중단했다가, 2007년 영화 <디 워> 논쟁에 휘말리며 논객으로 복귀했다. 2009년 한 지방신문과의 인터뷰에선 “3년 전부터 약간 우울증이 있다. 황우석 사태 이후 정신적으로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치적 글쓰기를 재개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화법도 문제인가, 화법만 문제인가

하지만 진중권이 대중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목해온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는 영국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을 인용해 “군중(대중)은 한편으로 더불어 있는 게 황홀한 존재지만, 한편으론 두려운 존재”라고 말한 적 있다. 대중에겐 공중의 긍정적 계기와 폭민(暴民)화의 부정적 가능성이 병존한다는 뜻이었다. 2008년 여름의 촛불집회를 겪은 뒤엔 대중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도 한층 구체성을 띠게 된다.

“황우석 사건과 심형래 사건 때 (대중은) 이 사회에 대해 절망하게 만들었고, 촛불집회 때는 절망 속에서 다시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촛불집회의 그 대중은 황우석 때, <디 워> 때 그 대중이다. 대중은 굉장히 파시스트적인 군중이 될 수 있고 상당히 자율주의적인 다중이 될 수도 있다.”(2009년 <한겨레21> 인터뷰 특강)

문제는 이런 대중의 ‘얼굴 바꾸기’가 한국 사회에선 매우 빠르고 극단적인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진중권도 이 지점에 주목한다. “대중은 조변석개하고 조삼모사한다.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오늘은 환호하고 다음엔 욕먹는다. 대중, 참 사랑스러우면서도 얄미운 존재다.” 이런 ‘대중의 변덕’은 그가 볼 때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한국 사람들 자체가 파토스가 강하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할 문화가 없고 선전·선동에 약하다. 중요한 건 한국 사람들의 인성 자체가 봉건적이고 파토스가 강하다는 거다.”(2003년 지승호와의 인터뷰)

진중권에게 2005년 ‘황우석 사태’는 통제되지 않는 대중의 ‘어두운 힘’을 체감하게 만든 계기였다. 2006년 3월 황우석 지지자들이 서울대 본관 앞에서 학교 쪽의 징계 조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자료
흥미로운 점은 진중권이 이런 ‘파토스 과잉’을 한국의 뿌리 깊은 구술문화 전통과 연결짓는다는 사실이다. 500년 전부터 문자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한 덕분에 지식인의 이성적인 정신 구조가 대중에게 폭넓게 뿌리내린 서구와 달리, 한국은 문자문화의 정착 역사가 50년이 채 안 돼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구술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중권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문제 대부분은 문화와 습속의 ‘비합리성’(후진성)에서 발원한다. 따라서 이성이 가리키는 바른 길로 대중을 향도하기 위해, 대중의 비합리성을 부단히 비판하고 때로는 그들과 전면전을 불사하는 것은 시대가 부여한 지식인의 소명이다. “참된 먹물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참된 신뢰를 얻는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중이 듣고픈 말만 하면서 대중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편에 따라 말 바꾸지 않고 잘못된 걸 꾸준히 비판하는 것, 그게 신뢰다.”(2008년 <한겨레21> 인터뷰 특강)

문제는 ‘소명’에 복무하는 그의 비판이 필요 이상의 많은 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진중권을 지켜본 학계의 한 인사는 “아무리 옳은 소릴 해도, ‘닭짓’이니 ‘새대가리’니 하는 언사를 예사로 날리는 사람 말이 얼마나 호소력을 갖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진중권에게 가해지는 비판의 상당 부분은 그의 화법·문체와 관련돼 있다. 그의 장기는 풍자와 비틀기다. 때론 모욕에 가까운 조롱과 냉소가 동원된다.

“참된 먹물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참된 신뢰를 얻는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중이 듣고픈 말만 하면서 대중과 더불어 가려고 한다. 그러니 일관성이 없어 공신력이 떨어진다. 편에 따라 말 바꾸지 않고 잘못된 걸 꾸준히 비판하는 것, 그게 신뢰다.” -진중권

타락한 사회에 타락한 방법으로 맞서기

자신의 화법이 많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진중권도 안다. 하지만 바꿀 뜻은 없어 보인다. 2003년 인터뷰에서 그는 “예의, 말투, 그런 부차적인 것들을 문제 삼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인성의 봉건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한국일보> 인터뷰를 보면, 주변에서 뭐라든 자신의 화법을 극단까지 밀고나가 보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나는 사람들을 다독거리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약을 올린다. 생각하고 엉기게 만든다. 건방진 느낌으로, 살짝 재수 없게, 열받게 건드린다. 그래서 덤비면 슬슬 상대해준다. (논쟁의) 인문학적 임무는 진보건 보수건 공부를 하게,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잘못하면 바보가 되니까 인터넷 검색이나 생각이라도 한번 하고 덤벼들게 만든다.”

이런 진중권에게 불화와 고독은 운명이다. 어쩌면 그는 뤼시앵 골드망이 정의한 근대소설의 주인공처럼,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진중권을 우리 시대의 반영웅, 진정한 의미의 ‘문제적 개인’이라 불러도 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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